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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교계뉴스] AI와 선교온라인 세미나 열린다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시드선교회가 다가오는 1월30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6시(미서부시간)까지 AI와 선교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는 선교를 위한 구글 AI입문과 활용에 관한 온라인 강좌로 대상은 선교사 목회자, 신학생, 미디어 사역자 및 관심 성도들이며 FMnC과학기술전문인선교회가 협력한다. 세미나는 2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제1세션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선교전략 수립 으로 AI시대의 선교 페러다임 변화, 기초이론, 선교현장 맞춤형 프롬프트 작성법, 그리고 Gemini지도 자격증 응시(무료) 소개 및 안내까지 포함된다. 강사는 CPU AI 설교연구소장 이세영 선교사다. 제2세션은 구글 AI를 선교에 활용하기 를 주제로 Gemini를 활용한 성경 연구 및 설교준비, NotebookLM으로 선교자료 체계화하기, 나노바나나를 활용한 교육 컨텐츠 제작 및 현장 활용사례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강사는 FMNC 과학기술전문인선교회 전생명 선교사다. 약간의 등록비가 있으며 문의는 infoseedusa@seedtoday.org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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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3
    [미주교계뉴스] 수능 이후 '이단 포교 집중기'… 예비 대학생 대상 예방 교육 열린다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대학 입학 전까지는 이단·사이비 단체의 포교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로 꼽힌다. 이 같은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예비 대학생 대상 이단 예방 교육이 열린다.호남이단상담소(소장 박정철 목사)는 오는 24일 '고3 예비대학생을 위한 이단 예방교육'을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번 교육은 예비 대학생들이 대학 입학 전 이단의 접근 방식과 포교 수법을 미리 인지하고, 실제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이단 상담과 대응 현장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선다. 윤수봉 광주참빛교회 이단상담소장은 대학가에서 실제 활용되는 포교 수법을 중심으로 강의하며, 오명현 전주함께하는교회 목사는 이단 교리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는다. 박정철 호남이단상담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이단대책위원회 총무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천지 등 주요 이단의 위장 전략과 대응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강의 이후에는 실제 피해 사례를 나누는 간증과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돼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는다.박정철 소장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대학 입학 전 이단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면역력을 갖추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학생은 물론 자녀의 신앙을 염려하는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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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2
    [미주교계뉴스] 불안한 시대 속 “오래된 해답” 성경판매 역대급 호황기 누려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6년 1월 현재, 미국의 성경 판매량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역대급 호황기를 지나며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일반 도서 판매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성경은 불안한 시대 상황 속에서 "오래된 해답"을 찾는 수요에 힘입어 판매가 급증한 것이다. 미국 내 주요 성경 판매 현황은 2025년 총 판매량: 약 1,900만 권이 판매되며 2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5년 한 해에만 전년 대비 약 11%~14% 증가한 수치이다.월간 급증 사례로 2025년 9월 한 달간 약 240만 권이 팔렸는데, 이는 당시 사회적 불안과 특정 보수 활동가의 사망 사건 등이 맞물리며 전년 동월 대비 약 36% 급증한 결과로 분석된다.사용자 통계로 미국인의 약 41%가 연간 3회 이상 성경을 읽는 '성경 사용자'로 분류되며, 특히 MZ세대(밀레니얼 및 Z세대)의 성경 독독 결심과 구매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주요 인기 번역본 (2025년 기준 순위)을 살펴보면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 독보적인 판매 1위 스테디셀러,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 특히 보급형 에디션이 큰 인기, KJV (King James Version) - 전통적인 선호도가 높음, NLT (New Living Translation) - 쉬운 현대어 번역으로 인기 현재 미국에서는 경제적 불안, 정치적 양극화,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등 사회적 변화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성경을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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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1
    [오피니언] 여주봉 칼럼 - 성도들의 새해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5년을 지나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는 우리 주님의 생명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아가 모든 세상에 더 강하게 비춰지기를 소망하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을 향한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하나님이 일하시는 주된 통로는 바로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소중히 여기신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는 점점 침체되고 있고,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달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초대교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의 삶은 그 당시 로마 시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외면 받는 자들을 돌보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의사들조차 도망가는 난리통에도 환자들을 돌봤다. 또한 성적 타락이 극심한 그 시대에 정결한 삶을 추구했고, 도움을 청하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교적 삶을 살았고,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교회에 믿는 자들의 수가 더해졌다.지금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이 가려진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주신 선교적 소명이다.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운 대로 살고, 또 살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 없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교회의 소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이뤄가시는 새 창조의 역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우리가 하는 일의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돌보시며 지금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고, 우리의 일을 통해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공급하신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의 통로다. 그렇기에, 교회와 성도가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일의 소명이 회복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된다.이 시대에 적지 않은 성도들조차 일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전도나 봉사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은 ‘주의 일’이라며 거룩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우리의 일터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고 저급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 시대에 팽배하지만,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골로새서 3장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을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자 이웃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은 고귀한 소명이며,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일의 소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탁월하게 일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주신 일의 소명이 그렇게 올바르게 회복되기를 소망한다.십자가 복음으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 또한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경우 윤리적인 죄(간음, 거짓말, 살인, 도둑질 등)는 심각하게 여기지만 관계적인 죄(상대에 대한 후욕, 판단, 비방이나 상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거나 상대에게 마음을 닫고 좋지 않은 마음을 품는 것 등)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관계적인 죄도 윤리적인 죄 못지않게 심각한 죄들이다. 관계적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에는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 말로는 연합을 외칠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대로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대와 정치적 성향을 따라 갈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적대시한다. 특히 정치가 우상이 돼 거기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거기에 동의하고 분열시키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인 것이 분명하지만, 주님은 이때에도 당신의 교회와 열방을 진정으로 회복하기 원하신다. 그 회복의 동력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이며, 그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온갖 차별이 가득했던 로마 시대에 ‘반(反)문화 대안(代案)사회’로서 세워진 초대교회를 통해 그 시대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일터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를 변혁하고 구속해 나가기를 소망한다.“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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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40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외면 받는 한국교회에 대한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고 엔데믹으로 바뀐 지 3년째를 맞고 있다. 코로나 사태 당시에 종교 활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았고 교회도 큰 어려움에 처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이 돼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작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면 또는 비대면을 포함해서 출석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비율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 조사에서는 코로나 이전 대비 예배 및 활동에 참석하는 교인 수 변화는 감소했다는 응답이 30% 있었지만, 유지 55%, 증가 16%로 급격한 감소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교회학교가 줄었다는 응답이 43%로 가장 많아서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대부분의 활동에서 감소와 증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예배 출석이나 교회 활동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한국리서치의 종교 조사 결과에서는 개신교 신자 비율이 20%로 불교(16%), 천주교(11%)보다 많아서 이 기관에서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신자 수에서 세 종교 모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의 이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신자의 유입과 종교 이탈이 서로 비슷한 수치를 차지한 결과이다. 문제는 세 종교 모두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보다 종교 인구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체 성인 남녀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이지만, 천주교 신자의 50%, 개신교 신자의 44%, 불교 신자의 43%가 60세 이상이다. 종교인 10명 중 4~5명이 60세 이상인 셈으로, 전체 인구 기준 대비 10% 포인트 이상 고령 인구가 많다.종교 활동에 가장 열심인 종교는 개신교이다. 개신교 신자 중 종교 활동에 매주 참여하는 사람은 63%로 나타났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포인트 늘었고, 천주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매주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신자의 비율이 크게 높다. 개신교 신자의 77%가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특히 41%는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천주교 신자는 55%가 중요하다고 답해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불교 신자 중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35%에 그쳐 개신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호감도가 낮은 개신교개신교가 신자 수나 종교 활동에서는 다른 종교를 앞섰지만, 호감도는 반대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이슬람교 순으로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의 호감도는 전년 대비 상승한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오히려 소폭 낮아졌다. 개신교는 주요 종교 중에 유일하게 호감도가 감소했다.불교 호감도는 54.4점으로 전년 대비 3.1점 상승했다. 종교별 호감도를 측정한 2020년 이후 가장 높으며, 주요 종교 중에서 호감도가 가장 높다. 불교 호감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51점 이상)은 전체의 49%이며, 특히 76점 이상으로 매우 높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이 전체의 26%로 적지 않았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호감도가 낮은 사람은 전체의 16%로 적었다. 최근 불교가 MZ를 비롯해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통계 조사로도 나타난 것이다.천주교 호감도는 52.7점으로 불교보다 조금 낮았지만, 보통 이상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호감도가 4.1점 높아졌고, 불교와 마찬가지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호감도다. 천주교 호감도가 보통을 넘는 사람은 전체의 46%이며, 23%는 76점 이상의 매우 긍정적인 호감도를 보인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부정적인 사람은 전체의 17%이다.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34.7점으로, 불교 및 천주교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주요 종교 중 유일하게 호감도가 전년 대비 소폭(0.9점) 감소해, 지난 2년간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신교 호감도가 51점 이상인 사람은 전체의 22%로 불교나 천주교의 절반 수준이며, 76점 이상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불교나 천주교보다 낮은 15%이다. 반면 24점 이하의 매우 낮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은 전체의 46%로 불교나 천주교 대비 두 배 이상 많다.교세에서는 개신교와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하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호감도는 개신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심지어 작년에 있었던 한 조사에서는 무종교인들의 종교 호감도에서 원불교가 개신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교회에 대한 소망사회 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각 교단에서 보고하는 교세 통계는 갈수록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개신교 신자 수가 일정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교인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교회 밖 신자들 때문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신자 수가 최근에는 3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신자 수가 20%가 된다고 해도 그 중에 6%는 가나안 신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체 개신교 신자 중에 대략 1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이단 신자도 제외한다면 정통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는 전체 국민 가운데 1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앞에서 살펴본 개신교의 낮은 호감도를 감안하면 이 비율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나쁜 인상을 준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삶의 모습이나 교회의 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호감도가 낮은 종교에 관심을 갖거나 찾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도하기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영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하나님께 지으심 받은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더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고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 참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호감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단순히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영적 성숙을 통해서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새해에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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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39
    [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2026년, 믿음으로 건너야 할 약속의 땅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새해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야심차게 세운 계획들조차 1월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무력감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통독, 새벽 기도, 전도 등의 목표가 반복되는 일상과 영적 게으름 속에서 쉽게 무너지곤 한다. 그러나 2026년, 우리는 이 습관적인 패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파도가 높고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이 필요하다.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범람하는 요단강과 견고한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저출생과 인구 절벽, 양극화와 세대 갈등, 고물가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대한 장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성장의 정체와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정복해야 할 ‘현대의 가나안’이다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은 태산과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다. 모세가 떠난 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승리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확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다. 2026년을 승리의 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여호수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비결은 탁월한 전술이 아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라는 말씀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와 SNS 등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소리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음성에는 무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길 힘은 정보가 아닌 믿음에 있다. 그리고 그 영적 근력은 오직 말씀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성경을 펼쳐야 한다. 말씀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담대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여호수아는 물이 마른 뒤에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는 순간, 흐르던 물이 멈춰 섰다(수 3:15~16). 기적은 계산하며 상황을 재는 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워도 전도하고, 부담돼도 헌신하며, 힘들어도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순종이 선행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길을 여신다.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돌’을 세워야 한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지난날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잊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고비마다 도우셨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 감사의 기억들이 모여 2026년의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이 될 것이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해 보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2026년, 우리 앞에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기적과 승리의 한 해, 그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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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다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정체성 회복의 신학 노루는 자연 속에서 생존력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민첩하고 경계심도 강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건망증이다. 포식자의 위협을 느끼고 전력으로 도망치다가도, 잠시 후 자신이 왜 뛰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그 자리를 맴돌다 결국 잡아먹히곤 한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 건망증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단순한 동물의 습성처럼 보이지만,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 역시 두 세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한국인의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으나, 일상의 언어와 사회적 규범은 미국 사회(American society) 안에서 형성된다.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영어로 사고하고 경쟁한다. 신앙의 언어와 생존의 언어가 교차하는 이 삶의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신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문화적 혼란을 넘어선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개인이 하나님께 던지는 근본적인 신앙의 물음이다. 미국 디아스포라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차별(invisible discrimination), 성취에 대한 압박(pressure for achievement), 자녀 세대와의 문화적·신앙적 간극, 그리고 성공 여부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성과 중심의 정체성에 익숙해진다. “무엇을 이루었는가(what I have done)”가 “내가 누구인가(who I am)”를 대신하는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18 세기 미국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대 역시 사회적 전환과 종교적 혼란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환경이나 성취, 혹은 감정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 중심성(Godcenteredness) 위에서만 참된 자기 이해(true self-understanding)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드워즈에게 신앙은 종교적 활동(religious practice)이나 개인적 체험(private experience)에 머물지 않았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이었으며, 인간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그의 선교신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에드워즈가 이해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특정 지역이나 사역을 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따라 인간을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이 관점에서 디아스포라는 우연히 형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땅에 보내진 존재로 이해된다. 이민자의 삶이 불안정한 근본 원인은 외적 환경의 불확실성(external uncertainty)에만 있지 않다.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릴 때 삶 전체 역시 구조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위기를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했으며, 그 회복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삶, 곧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 중심의 정체성은 인간의 가치를 성취(achievement)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belonging to God)라는 사실에서 발견하게 한다. 다시 노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루는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는 순간, 삶은 방향을 잃고 세상의 흐름에 쉽게 휩쓸린다. 신앙의 정체성을 잃으면 마음은 분산되고, 목적을 상실한 삶은 어느새 세상의 기준에 붙잡히게 된다. 정체성은 영적 나침반(spiritual compass)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자리에 두셨는지를 기억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에드워즈의 신학은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뿌리 없는 존재(rootless people)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둔 사람들(rooted in God)이다. 이 진리를 붙들 때 디아스포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이 아니라, 두 세계를 잇는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다시 서게 된다. 정체성의 회복은 곧 사명의 회복이며, 그것이 오늘 미국 디아스포라 신앙이 다시 출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필자 약력 신춘식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을 연구하여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국제선교목회학박사(D.MinGM) 학위를,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CPU)에서 선교학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GMS 서부지부 지부장이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를 섬기는 한편, CPU 선교학과 박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 서울: CLC. 2025)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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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국현목사의 신년사 <2026년 새해를 향한 기대>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사랑하는 크리스천 헤럴드 독자 여러분께, 2026 년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터 위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해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인내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새해는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행복하게” 주님 안에서 걸어가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렌지카운티 교회 협의회 회장으로서, 2026 년을 시작하며 이 말씀을 함께 붙들고 싶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이 말씀은 아주 다정하게,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평강은 단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흔들려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내일이 불확실해 보여도 소망을 놓지 않게 됩니다. 2026 년에는 우리 안에 이런 평강이 더 굳게 자리 잡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는 안정과 번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진짜 번영은 “내 손에 무엇이 더 많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 삶에 하나님이 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면 가정이 새로워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다시 따뜻해집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깊이 들어오면,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모든 이에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첫째, 오렌지카운티의 교회들이 더 하나 되게 하소서. 교단과 배경을 넘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지역사회를 섬기게 하소서. 교회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웃을 품는 “따뜻한 집”이 되게 하소서. 둘째, 이 지역사회에 평강과 안정이 임하게 하소서. 경제적 어려움, 가정의 갈등, 청년들의 불안, 외로움과 우울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닿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친절과 섬김이 누군가의 한 해를 살리는 은혜가 되게 하소서. 셋째,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선교지까지 복음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소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화해의 길”을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국경을 넘어가고, 기도와 선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선교지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복음의 문을 넓게 열어 주소서. 독자 여러분, 2026 년은 “내가 잘해내는 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집에 머물고,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분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살아나며, 지역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 주님 안에서 평강과 소망, 안정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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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남진석 원장의 신년사 <2026년을 기대하며>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6년은 육십갑자 기준으로 ‘병오(丙午)년’입니다. '병(丙)'은 오행 중 '불'을, 그리고 색깔로는 '붉은색'을 상징하며, '오(午)'는 십이지 동물 중에서 '말'을 의미하니 ‘붉은 말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주는 상징성은 활달함, 추진력, 강인함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양의 육십갑자가 한해의 운명을 결정 짖는 원천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해의 상징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차용하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2026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많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는 ‘노란 봉투법, 검찰청 폐지’등 현재까지 지켜왔던 사회적 기본질서와 가치의 틀이 완전히 새로운 틀로 바뀌는 원년이 됩니다.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노란 봉투법으로 인한 경영권 유지 리스크가 커지며 우량기업이 앞다투어 해외로 이전하고, 검찰청 폐지로 인하여 사회악에 대한 즉각적인 퇴치와 처리속도가 지연되고 이에 따른 사회안전망의 부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오롯이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 될 것입니다. 2026년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상하원의 상당수 그리고 주지사의 70%가 새롭게 선출되는 해입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의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종횡무진 좌충우돌 연일 큰 국제적 정치 뉴스를 만들어 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를 가름하는 인류사적 중간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2026년에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FIFA 월드컵 대회가 북미 3개국에서 열리게 됩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FIFA체제 이후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월드컵이 됩니다. 종전 32개국에서 무려 16개국이 더 추가된 48개국이 우승을 놓고 열전을 펼치게 됩니다. 'North America 2026 FIFA World Cup'이라 불리어지는 이번 대회의 공식 명칭은 ‘United 2026’입니다. 23개의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미국에서만 17개의 경기장에서 치루어집니다. 사실상 미국 월드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때마침 대한민국 뿐만아니라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손흥민 선수가 LAFC에 소속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역 국가대표선수로 마지막 출전하는 월드컵대회가 자신이 활동하는 안방에서 치루어지기에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 북미에 거주하는 동포사회를 벌써 부터 설레이게 하는 큰 이벤트가 되고 있습니다.  2026년 세계 선교와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확실성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가운데 인적 물적 선교자원의 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이들의 탈 교회는 여전히 심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로의 이주민 및 제3세계 난민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선교의 기회는 꾸준히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적 과업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하여 상당한 선교적 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지역교회의 재정 동원 능력이 저하되고 있기에 선교 현장에서 선교재정을 위한 자급자족을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세워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미국남침례교(SBC) 2024년 연례 교회보고서(ACP)에 의하면 성도들의 숫자에 있어서는 미미한 감소세 임에도 불구하고 공예배, 주일학교, 제자훈련 등의 출석율은 현저하게 증가하였으며, 약세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북동부나 서부에서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청년대학생 층의 성장세도 교회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우려되는 문제들의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준비된 개인과 교회 그리고 기관을 통하여 일하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목도하여 왔습니다. 2026년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각성도들과 교회들과 기관들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역사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 큰 기대가 됩니다. 염려보다는 기대와 확신으로 승리하는 한해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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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9 김광근 -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하나님을 알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1절우리는 종종 죄를 지었을 때 "몰라서 그랬다"라고 변명하지만. 성경은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에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 즉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관계적인 거부'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는 '익숙함'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을 빼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녀나 건강, 자존심과 같은 우상이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면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나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2026년, 아는 신앙' 을 넘어 '사는 신앙'이 되기 위해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적극적인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숨 쉬는 것, 건강한 것,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섬김의 대상입니다. 불평이 나오려 할 때마다 감사의 고백으로 그 자리를 채우며, 올 한 해 하나님과 더욱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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