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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실명 후 구치소서 만난 하나님의 용서 / 안일권 목사 편 / 세계십자가선교회 대표 크리스천헤럴드2024.09.18
    전 세계 곳곳에서 아픔을 갖고 있는 분들 그리고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을 따뜻한 품으로 껴안아 주시면서 한국 땅에서 같힌자 억눌린자들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계시는 세계 십자가 선교회 대표이신 안일권 목사를 만났다.  젊은 시절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갑자기 실명 하면서 감옥에도 갇히면서 절망 가운데 있었 지만 그 어둠속에 빛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 역전의 길을 걸으면서 사역하고 있는 안일권 목사의 신앙고백이다.  윤우경 본부장(이하 윤): 안일권목사님, 저 멀리 한국에서부터 이번에 제10차 세계선교대회 참석차 또 이렇게 남가주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안일권 목사(이하 안): 예 저는 이렇게 원래 ROTC 출신이었고 제가 우리 한국의 대기업 계열 회사에 근무하다가 무역회사를 잘 경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부터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고 많은 병원을 다녔고 많은 약을 써봤지만 4-5개월이 지나면서 결국 앞을 못 보게 됐습니다. 처음엔 조금씩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백약이 무효했지요. 제가 그때 33살이었습니다. 윤: 그때 당시에는 안 목사님 혹시 하나님을 알고 계셨나요? 안: 전혀 믿지 않고 있었을 때 였고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그 암흑 가운데 거하시게 된 안 목사님을 만나주신 걸까요? 안: 병원에서도 안 되고 침을 맞아도 안 되고 심지어 뱀을 먹고 지렁이를 먹고 굼벵이를 먹고 별짓을 해도 안 되니까 아내가 여기저기서 목사님한테 안수받으면 볼 수 있을 것이라  해서 여기저기 많이 끌려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 포기하게 되었는데 하던 사업도 연달아 부도를 당하면서 부채 채권자들 생기게 되고 채권자들이 저를 교도소에 이제 넣었습니다. 앞을 못보니 제가 간 교도소가 장애인들이 따로 수감 되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생활을 하던 중에 제가 점자를 좀 배웠고 아내가 점자 성경을 넣어줬어요. 뭐 아무 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그 속에서 이제 점자를 조금씩 더듬거려 읽어가면서 마태복음 25장 40절 말씀을 제가 읽게 됐어요.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쇠뭉치로 얻어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거죠. 그게 예수님이 저에게 주신 말씀이셨고 음성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고요. 저는 이 말씀대로 살 수 없지만, 이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헐벗은 자 배고픈 자 집 없는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문자적으로 그렇게 그 말씀을 듣고 이들을 위해서 저도 살게 해 주세요. 그렇게 고백하고 나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윤: 성경 말씀 읽는 걸로 시작을 하셨던 거네요. 안: 저는 그걸 읽을 때 1페이지 성경을 분량을 읽으려면 3시간 4시간을 읽어야했습니다. 그걸 읽으면서도 그게 정확하게 무슨 글자인지 저 감각이 둔해가지고 모르고 그냥 막 더듬거리다 안 되면 또 다음 장 읽어가고 그렇게 했습니다. 윤: 갑자기 장애를 입으면 이젠 누가 날 도와줘야하고 섬겨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목사님께서는 남을 섬기겠다는 생각부터 품으셨습니다. 안: 놀랍게도 그 교도소 안에서 이 말씀을 듣고 참 많이 기도했죠. 기도를 쭉 하는데 같이 감방에 우리가 23명이 함께 있었어요.  그런데 기도중에  바로 내 옆에70이 넘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분은 눈이 하나 없는 장애인이었어요. 저는 39살. 그분한테 뭘 나누어 주면은 감방장이 못 주게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기도중에 지혜가 생겨서 성경을 좀 읽어달라 했죠. 하루 한 장씩… 그러다가 제가 기도를 하기도 했고 주기도문도 읽고 하면서 결국엔 짧은 예배가 됐어요. 윤: 참 지혜로우셨네요. 안: 그러면서 먹을 것도 나누고  런닝 팬티도 나눠주고 이렇게 쭉 나눠주니깐 그 전에는 못 주게 하던 그 감방장이 나한테 성경 읽어준 댓가로 주니까 아무 말 안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감방에 23명 있었는데, 결국엔 18명이 같이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예배에 동참하게 된 거예요. 윤: 감옥에는 하나님께서 왜 보내셨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어떤 섭리였을까? 하는 생각, 목사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안: 이제 믿음 생활을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사실, 눈을 뜨는 게 기적아닌가,  정상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눈 감은 저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해 주었다는 건 나로써는 최고의 축복이고 최고의 기적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으로 사는 최고의 인생이다, 이제 이렇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윤: 36년 동안 해 오신 사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안:  정말 저는 하던 사업이 망했으니까 아무것도 없잖아요. 저는 처가살이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작은 방을 한 칸 주셨어요. 우리 4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교도소에서 출소한 형제를 한울산 기도원에서 만났고 그 형제를  저희한테 보내주신거죠. 단칸방을 장롱으로 막고 제 아들하고 청년하고 셋이 같이 생활했죠. 그러면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유치장 전도도 다니고 서울의 시립동부병원에 행려 환자들 방문하고 그다음에느 교도소도 가기 시작을 했죠. 그러던 중에 그 형제가 어느 날 저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목사님 제가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마약이 전혀 생각이 안 나고 제가 이제 마약에서 해방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약을 하는 한 친구가 자살하겠다고 그러고 있으니 제 친구 좀 살려주세요. 하고 애원 하는 거예요. 근데 단칸방이잖아요. 우리 딸이 그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요. 걔네들은  30살 정도 애들이고 마약하는 애들이고 교도소 들락거리는 애들이고요. 그걸 또 하나를 데려온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근데 기도하는데 이 자가 지극히 작은 자다 마약하는 이 친구를 데려오는 것이 내가 한 것이다. 이 말씀이 막 내 마음에 막 이렇게 감동을 주시니 어떻게요. 가서 데려오라고 그랬죠 윤: 사모님께서는 뭐라하시던가요?안: 그떄 마침 아내가 친정에 가 있을 떄였어요.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근데 참 하나님의 고렇게 그럴 때마다 잘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의 생명의 교회 여주에 있는 생명 이 공동체 생활이 된것이죠. 살 던 곳에서 8번 쫓겨 다녔고요. 마약 중독자들 알코올중독자들 출소자들 위한 감호소가 청송감호소 또 공주의 치료감호소가 있었지만 마약 알코홀 중독 정신질환자들은 사실 갈 데가 없어서 길거리를 헤매고 술 먹고 저한테 전화하고 아내가 전화 욕도 하는 친구들이었죠. 하다 하다 이건 정말 안 되겠다. 하나님 우리도 아들 아닙니까? 예수 잘 믿고 그런 일반 교회 다니는 사람만 하나님 아들입니까? 하고 따져 묻기도 했어요. 우리도 하나님 아들인데 우리도 집을 달라고 떼 쓴거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시각장애인 들이 같이 봉사하는 삭월셋집을 허락하셔서 시작했습니다. 윤: 어떻게 먹고 사셨어요. 4식구도 먹는 것도 빠듯하셨을 텐데. 안: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 같은 동력자들 그런 후원자들을 보내주셔서 정말 기가 막힌 역사가 그때그때마다 일어났어요. 청주교도소나 대전교도소나 교도소에 갈 때 떡도 필요하고 그들에게  영치금도 넣어줄 돈이 필요해요. 근데 하나님은 정확했어요. 그때그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직접 체험하는 거죠. 저는 믿음은 체험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체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렇게 죄 예수님의 제자로 종으로 써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거다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다 하시는 일에 심부름꾼이다. 그걸 체험하는 거예요. 윤: 세계 십자가 선교회가 여주에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공동체 생활은 어떻게 벌어지고 있어요. 안: 치유 프로그램을 성경을 통해서 주셨어요. 아침에는 새벽 큐티를 하고요. 기가 막힌 것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쭉 읽고 그 말씀 한마디를 듣고 펑펑 울면서 제가 죄인입니다 고백하기도 하지요. 또 오전에는 예배를 통해서 치유 프로그램, 말씀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요.  오후에는 노동치유 또 팀별 모임 또 서로 이렇게 여러 가지 봉사 그런 프로그램을 하고 있구요. 저녁에 내일 7시 반에  저녁 예배 성경을 통한 치유 성경 공부가 있고요. 저녁 10시 또 기도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코로나 때에 다들 예배를 못 드렸잖아요. 놀랍게도 저희는 1번도 예배를 못 드린 날이 없어요. 저녁 10시에 그 예배는 에 저희가 조금 중단했었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3개월 프로그램이 있어요.  3개월 동안에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은 중독으로 살고 죄인으로 살았던 그 모든 죄를 66학교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중독인데 감정이 병들었다 상한 감정 마음의 병이 크고요. 마음의 감정 치유를 깊게 해요.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시간이지요. 술 마시는 아버지가 그렇게 때렸고 그 아버지를 내 눈에 흙이 들어가 죽어도 용서 못한다 했던 형제가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같이 기도해주고 그래 나라도  그렇게 맞고 살았으면 나도 용서 못하지, 근데 너는 예수님이 너를 용서했잖아. 그 피를 다 쏟고 너를 위해 죽기까지 마음에 용서했잖아. 용서 못 하지만 내가 예수님께 용서받았으니까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용서하겠습니다. 한마디만 해라 해도 강권해도 못하던 이가 놀랍게도 그걸 따라 했는데 그 한마디로 용서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아버지를 용서하는 기도하고, 눈물 콧물 쏟아가면서 용서하다가 나중에 이렇게 고백하더군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되는 게 아니라 제가 아버지한테 용서받아야 됩니다. 그렇게 변하는 거죠. 윤: 미국에서 여러가지 범죄로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교포들도 있다던데 그 런 분들도 도우신다고요?안: 맞습니다. 미국에서 징역을 살다가 결국 한국으로 추방 당하는 한인들 약 300명 이상이 우리 선교회를 거쳐 갔습니다. 지금도 계속 오고있고요. 와서 훈련받고 있고 현재 13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마약 중독자 시민권자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악하고 악한 사람들이 오면은 목사님 전 독사놈 같아요. 눈이 무서워요 어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깨지는 거예요.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게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는 거죠. 그런 즉 누구든지 그래스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젠 그 선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그들이 목사가 됐고요. 그들이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됐고요. 윤: 프로그램에 몇개의 단계가 있다고요? 안: 예, 모두 6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가 하나님과 관계 맺기 회귀하라 천국이 가까워요 . 거의  1개월 정도인데 죽은 양 살리기 병든양 고치기, 그다음에 속사람의 변화, 악령이 성령으로 마귀가 예수님으로 마음, 상한 마음 치유, 생각 바꾸기,  속상함의 치유고요. 이제 3단계가 겉사람의 변화, 내 몸을  거룩한 몸 건강한 몸 깨끗한 몸  말의 변화, 행동과 습관의 변화, 4단계는 생활의 변화, 생활의 변화에 대한 중심이 큐티고요. 말씀과 기도 생활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섬기는 생활 , 5단계는 일기 쓰고 그날그날 내가 회개할 건 회개하고 감사할 건 감사 그다음에 간구기도 중보기도 프로그램으로 삶의 중심의 변화인데, 과거 돈중심이고 세상중심이고 마약이나 도박이나 알코올이나 중독 중심으로 살 던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삶의 중심의 변화입니다.  6단계는 인생의 변화,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사는 예수님의 일꾼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사는 그런 훈련 6단계 훈련으로 진행됩니다. 윤: 그렇군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이 거쳐 가셨습니까? 안:  한 6~7천명 거쳐 갔을 거예요.  그중에 세례받고 수료받은 사람이 200~300명 됩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200~300명 중에 지금 선교사가 6명 나갔고요. 2명은 지금 선교지에서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 농촌교회 섬기고 있고요. 미국에도 필라델피 한인연합회의 담임 목사로 작년 부터 사약하는 권장열 목사가 있고요. 또 어떤 분들은 과거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고 싶어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밝히지 않겠지만요. 또 한 형제는 콩고 피그미 선교사 사역중인 형제도 있는데 그곳에 교회를 2개 건축을 했습니다. 피그미 아주 산골에 지난 6월 4일  헌당 예배 드리느라 19일날까지 2주 동안 갔다 왔습니다. 윤: 이번 세계선교대회에서는 어떤 일을 감당하셨는지요?  안: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해서 중독 사역 기관 사역에 발제자였습니다. 저하고 권단열 목사하고 같이 발표 했습니다. 윤:  그랬군요. 권단열 목사님은 섬기시는 교회에서 자신의 과거 문제들을 내어놓고 함께 그것에 대한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겠네요. 안: 지난 작년 9월 달에  취임 예배드릴때 제가 가서 다 풀어놓았죠. 본인도 교회에 알리기는 했지만, 나중에 누가 그걸 약점 잡아 시비걸고 트집 잡게 되면 그때 가서 어려움 당 하느니 아예 처음부터 나는 과거 이런 사람이였고 이런 출신이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이 쓰는 목사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렇다 그렇게 시작한 거지요.  필라델피아가 마약이 아주 심해요. 그 교회 권사님들이 햄버거랑  커피 사고 가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그러는데 권 목사는 그들의 문제를 아주 잘 알잖아요. 권목사와 저는 그 지역에 중독회복을 위한 센터를 세우고 싶어서 기도 중입니다. 윤: 사람의 능력으로는 될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말도 안 되죠. 기억나는 형제 중에  오바마 대통령 보좌관 아들이 마약 알코올 도박 중독자였어요. 미국의 치유 기관에서는 한달에 약 3만 불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별 걸 다 해봤겠죠. 실패한거죠. 결국  권단열 목사가 워싱턴 중앙장로교회 EM 목사일 때 소개하면서 한국의 안일권 목사한테 가라 해서 그분이 현직에 있으면서 직접 아들을 데려왔어요. 한국 미팔군에 있었고, 그 어머니는 한국분이에요. 제 손을 잡고 도박하고 뭐 이것저것 했으니까 집안이 막 쑥대밭이 됐잖아요. 제 손을 잡고 아들 살려달라고 그러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어떤 때는 미국에서 이제 한국의 교회에서 보내놓고 저희 미국 목사님이 한국에 자기 신도 아들이니까. 영어도 못하는 제가 오로지 고린도 이장 1절 말씀드린 아름다운 말과 지혜로 하는 게 아니고 설득력 있는 지혜도 안 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성령에 나타나신과 능력을 통해서 구원해주시고 치유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죠.  말이 안통하는 이 아들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난동도 부렸고 여기 두고 간 어머니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도 했는데 결국 몇 개월에 걸쳐 회복이 됐죠.  참 기적같은 이야기입닌다. 윤: 그렇군요. 만약에 세계의 십자가 선교회로 중독문제로 고생하는 내 자녀를 때로는 남편과 아내일 수도 있을탠대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가 있나요? 무작정 간다고 될 건 아니지 않겠나요? 안: 어느 분이든지 누구든지 어느 때든지 저희는 새벽에도 와도 다 받습니다. 다만 중독을 넘어서 정신질환 있으신 분들은 의사 도움이 필요하기 떄문에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럴땐 병원에서 어느 정도 치유가 돼서 회복이 돼야 우리의  영적치유 프로그램을 할 수가 있거든요. 예 그래서 그런 어려움이 있고 또 하나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지금 우리 1세와 2세의 갈등이 너무 크지요.  우리 여기에 미국에서 온 아이들 치유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은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또 언어 소통이 안 되니까. 부모들과 언어와 문화의 문제로 인한 문제가 크죠. 윤: 만약에 우리 목사님께 보내면 어떤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야 되나요? 안: 어떤 때 보면 기가 막힌 게 12월 말경 되면 한국 몹시 춥잖아요. 영하 뭐 17도 20도 올라가는데 LA에서 처방당한 형제 보면은 티셔츠 하나 있고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오는 거야. 그러니까 가슴 아프죠. 하여튼 제가 돌보고 인제 주민등록도 만들어줘야 되고 몸이 아픈 사람 병원에 치료도 해줘야 되고 또 거기서 한국말 못하면 한국말 배울 수 있도록 다 학원도 보내 줘야 되고 한국어학당도 보내야 되고. 그래서 제가 하나님 살아계시다는 거죠. 윤:  연합감리교회 권단열 목사님의 간증문에 본인을 44기라고 쓰셨어요. 지금 몇 기가 움직이고 있습니까? 안:  1기가 3개월씩 훈련시키고 있구요. 지금 127기가 훈련 중이지요윤: 목사님 혼자 다니시기 어렵잖아요. 어떤 분들이 함께 동역 하시나요? 안: 이번에 온 형제는 이제 부목사인데요. 알코올 중독자 출신이고요. 피그미의 교회 건축할 때 마침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조금 주셔 가지고 거기 교회를 건축한 목사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중독자니까 중독자 형제들을 막 자기 친구처럼 동생처럼 때로는 임마 이 자식아 그러면서 같이 왔어요. 하하하늘나라 가기까지 쓰시는 대로.  우리 선교회 출신들이 세계 곳곳에 있거든요. 영국에도 중독과 치유 선교사가 있고요. 필리핀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습니다. 그저 어디든 가서 온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그냥 그렇게 다니고 싶어요. 윤: 전세계 어디 있든지 한국에 어두운 터널을 가고 계시는 분들에게 목사님 도전과 또 회복의 말씀을 짧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어떤 말씀이 있을까요? 안: 저는 이 사역을 하면서 모든 중독 치유의 길은 이 죄로 인해서 세상에 다 병들고 망가진 인생들의 살길은 오직 예수 분이다 믿게됐고요. 이분을 믿는 자는 하나님 약속하신 그대로 멸망의 삶에서 영세의 삶으로 중독에서 치유받고 예수님의 일꾼으로 제자로 세워서 땅끝까지 복음을 여는 증인들의 삶으로 변하는 것을 처음 목도했잖아요. 제 힘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눈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이 써주시니까 36년째 이사역을 했습니다. 오직 예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필요로 돌아가신 그 예수님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중독에서 권해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유일하신 예수님의 피 글을 믿는 자는 다 치유받고 구원 받는 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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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심상은목사 편] OC교회협의회 33대 회장 심 상 은 목사 크리스천헤럴드2024.07.28
    열정과 추진력으로 지난 3년을 오렌지카운티 300여 교회와 성도들을 아우르는 연합전선에서 뜀박질 해온 갈보리선교교회 심상은목사를 만났다. 1981년 창립되어 긴 역사를 갖고 있는 갈보리선교교회는 심상은목사가 2대째 목회자로 부임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오렌지카운티의 보기드문 교회 중 하나이다. 부에나파크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비치와 스탠튼 길이 묘하게 만나는 꼭지점, 낫츠베리팜 지척에 자리잡은 갈보리선교 교회는 올드타이머들과 신세대가 교회 위치만큼 묘하게 어우러져 성장하는 깊은 믿음의 뿌리를 갖고 있다. 심상은목사는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목회자이다. 무역학을 전공하고자 일본 유학 중에 신학의 길로 들어선 이후 영적으로 메마른 일본의 영혼에 특별히 빚진 마음이라는 심목사는 신학교육에도 각별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성회교단의 신학교 학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지역교회들의 연합사역에 전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건 31대 교협회장으로 섬기게 된 2021년, 갑작스런 중책을 맡게 되어 난감한 상황속에 기도 응답으로 만나게 된 한 두명의 목회자들과 함께 교회의 연합전선을 넘어 이제는 교계기관들의 연합을 이끌어 내게 된 것을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구수한 경상도 악센트로 종종 일본어까지 동원되는 대화는 투박함 속에 세심한 배려가 숨겨진 츤데레 타입의 그의 인성이 잘 묻어난다. 다양한 리더십들이 있지만 심목사는 “드러나지 않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동역자들을 자연스레 연합의 장으로 이끌어 낸다. 오렌지카운티 지역내 교계 기관장들은 물론 일반 단체장들도 그의 겸손함과 연합코자 하여 상대방을 세워가는 그의 리더십에 은연중 녹아진다. 적극적일듯 한 외모와는 다르게 수줍은 듯 상대를 끌어들이는 그만의 독특한 친화력이다. 심상은 목사와 OC목사회 이원석목사,  OC장로협의회 배기호장로, OC기독교전도회연합회 신용회장이 공동 주최하는 차세대목회자 21인 초청 OC영적대각성 새벽기도회가 올해는 7월22일부터 8월14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개최된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영적각성새벽기도회는 ‘그리스도인이여, 탄식하며 울어라(겔 9장4절)’를 주제로 오는 7월22일(월)부터 8월14일(수)까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5시30분, 토요일에는 오전 6시에 갈보리선교교회에서 갖게 된다. 21일 기도회를 모두 마친 다음날 8월15일(목)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까지  은혜한인교회(담임 한기홍 목사)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갖게 된다.심상은 목사는 “차세대목회자 21인 초청 OC영적대각성 새벽기도회는 역대하 7장 14절 말씀을 붙잡고 2년 전인 2022년에 시작했다”며 “당시 팬데믹이라 모여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의 시간을 허락해주셨다. 강사는 열정적으로 섬기는 21명의 젊은 목사님들을 선정했다. 1차 기도회는 팬데믹을 마치고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성격으로 진행되었으며 새벽마다 열정적으로 모여서 기도했다. 그리고 작년에 열린 2차 기도회 때는 지역 교회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키는 은혜가 있었다”고 말했다. 심 목사는 “이번에 열리는 3차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며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우리 주변에 귀한 동역자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어 감동이 되었다. 올해도 은혜의 물결을 허락해주실 줄을 믿는다. 기도회를 통해 지역사회를 살리는데 함께 동역하게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지난 6월 24일, 사전에 추천받아 선정된 21인의 차세대 목회자(30세에서 60세미만 개척교회 중심으로 선정된) 들은 첫 준비모임에서 상견례를 겸한 준비기도회를 가졌다. 이번에 세워진 강사진은 강서기 목사(행복한교회/웨슬리언), 양홍규 목사(굿프렌즈교회/예성), 임상훈 목사(섬김의교회/PCA), 류진욱 목사(남가주은혜로교회/WPC), 조성우 목사(남가주성결교회/미주성결교회), 박종순 목사(제자들교회/SBC), 박헌준 목사(팀쳐치/CRC), 김정호 목사(가스펠교회/KAPC), 김도일 목사(세계등대교회/C&MA), 김상우 목사(미주새한교회/ 미주성결교회), 김영호 목사(LA소망선교교회/C&MA), 유요셉 목사(전 팀쳐치) 등이다.  주일을 제외한 21일간 매일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과 21인의 매일 다른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게다가 매일 100여명의 조찬을 마련하는 일은 재정마련은 물론 음식을 조리하는 일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회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전적인 신뢰와 헌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성도들에겐 교회내의 봉사만으로도 그 헌신이 대단한 것인데 담임목사의 교계연합 활동에 3년을 연이어 함께 섬긴다는 것은 결코 수월하지 않을 일이다. 심목사는 그 대목에서 교회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가슴 뜨거워한다. 인터뷰에서 심목사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번 주제도 주신 감동으로 결정하게 되었지요. 원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사회에서 분리되어서 이렇게 소수 그룹으로 이렇게 몰래 모여서 자기들끼리 예배드리는 이런 민족 이런 그룹이 아닙니다. 원래 그리스인들은 프로테스턴트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에 대해 목소리 높여 대항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처음부터 교회의 태동이 그러했고 그리스인들의 태동이 그러했지요.”심목사는 이어서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사회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고 있지 않는가, 사회에 흐르고 있는 영적 상황을 보면 교회들마다 우리 사회가 어이없이 무너져내려가는 것을  정말 탄식하고 울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저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의 소수 모임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이번 새벽 예배 21일 동안 만큼은 귀한 목사님들 모시고 지역사회의 성경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도덕적으로 공교육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얼마나 타락해 가고 있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비춰보면서 기도의 접점을 찾아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고 성경적으로 돌아오는 역사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서 우리가 먼저 울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누가 이 세상을 향해서 울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라고 반문한다.  또한 심목사는 “이번 새벽기도회의 주제는 에스겔 9장 4절에 남유다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고 우는 자들, 그 사회가 무너짐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우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이마에 표시를 하고 구별된 하나님 은혜를 주시면서 다시 구원 시켜주시는 장면 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사회를 보면서 진짜 울고 탄식하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구별시켜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이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데, 귀하게 승인받는 그런 일꾼들이 이번 새벽에 한 번 모여서 같이 울고 같이 기도하는 시간이 됐으면 너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고 강조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심목사는 오렌지카운티 내 교계기관과의 협력에 특별히 감사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행사를 앞둘때 마다 매주 이른 새벽에 모여 함께 의논하는 OC목사회 이원석목사(하사랑교회)와 OC장로협의회(배기호장로), OC기독교전도회연합회 (신용회장), OC여성목사회(고문 이선자목사)와 수석부회장 이창남목사(주님의길교회), 총무 조진용목사(바인교회), 서기 정우영목사, 김수연대표(차세대사역자), 외 제임스한목사, 신경섭목사, 필요할 떄 마다 후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이사장 김영수장로(컬러컴대표, 은혜한인교회) 등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거듭 강조한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역사적이다. 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33년을 사역해온 OC교협의 증경회장단과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교협의 연합사역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심목사는 특별히 은혜한인교회와 한기홍목사의 관심과 지원을 잊지 않는다. 모든 연합사역에는 드러나지 않는 내려놓음, 낮아짐, 섬김이 우선되야 한다고 믿는 심목사는 동역자들과 땀흘리고 열심히 섬긴 후에는 뒷풀이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여서 먹고 웃고 감사하고 기쁨을 나누면서 함께 지내다보면 연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더라는 경험에서다.  모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끈끈한 신앙과 나눔으로 하나되어지는 오렌지카운티 믿음의 공동체가 성장하는데는 각 기관들의 리더십의 조화가 좌우한다. 신앙의 공동체가 동일하게 바라보고 나아가는 푯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며 든든한 사랑의 띠로 묶여 있을때 가능한 것임을 오렌지카운티 교계는 은연중에 이루어 내고 있다.  [이 게시물은 크리스천헤럴드님에 의해 2024-07-28 10:25:40 특집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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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김재곤 장로 편 / 한국 [주]가마치통닭 그룹 대표 크리스천헤럴드2024.07.03
    윤우경 본부장(이하 윤): 이번에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가마치 통닭, 가마치는 무슨 뜻인가요? 김재곤 장로(이하 김): 누룽지의 가마솥에 누룽지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구요. 고소하다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룹이라기보다는요 가족적인 분위기로 저희는 사육을 하고요. 사육을 하고 종괴도 가지고 있구요. 또 도계에 이어 가공을 해서 전국 프랜차이즈 한국에 있는 프랜차이즈 750여 개 점포에 공급하고 있고 저희가 직접 개발한 소스나 양념 파우더 등을 가공을 해서 체인점에 공급하는 수직 계열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윤: 상상을 초월합니다. 직원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김: 전국에 있는 저희 실제 직원은 한 230명 정도 입니다.  저희 직영점이 현재 12개 정도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구요. 그리고 나머지 나머지 750여개는 전부 프랜차이즈 가맹 회사입니다. 윤: 염광교회를 섬기신다고 하셨는데 교회 잠깐 소개해 주세요. 김: 염광교회는 40년 전에 개척해서 은평구 녹본동에 위치하고 있고요. 이제 40대 된 목사님이 2년전 부임하셔서 아주 활기차게 부흥되고 있는 교회이고요. 성도들을 한 400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우리교회는 무엇보다도 교육 부서가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고 또 어린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그런 교회라서 차세대 희망 있는 교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윤: 남다른 간증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장로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셨는지요 김: 누구나 성도라면 다 간증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에게는 좀 특별한 주님의 만남이 4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저는 26살 때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는 사고를 만나서 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 되는 일이 생겼지요.  너무 억울해서 누명 씌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죽이고 저도 죽겠노라 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교도소에서 조그마한 기드온 책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제게 찾아오셨고 저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깨닫고 제 인생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거죠.윤: 구치소에 들어갈 때와 나왔을 떄, 용서를 배우기 전과 배운 후, 어떤 변화의 인생을 사셨던가요 김: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 다니는데 큰 믿음 없이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은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으셨나봐요. 그런데 마태복음 6장 14절 15절의 말씀을 제가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보면 너희가 만일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내 잘못을 용서하시겠다는 그 말씀이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온거죠. 결국 저는 그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그 후엔   제 마음의 평안과 알 수 없는 그런 미래 불안감이 사라지고 제 마음이 굉장히 큰 자유를 깨닫게 된거죠.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아가게 됐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윤: 그 일로 해외 취업을 나가려고 했던 일은 수포가 되었겠네요. 김: 이미 수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던 면허증도 다 취소가 되었고 제 직장까지 잃어버리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지게 된 것이죠. 윤: 인생이 바닥을 쳤다.. 는 심정이셨겠어요.김: 그렇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바닥에서 오히려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두려움과 걱정 염려를 다 덮었지요. 하나님은 그 해에 믿음 좋은 자매를 만나게 해 주셨고 또 그 이듬해 결혼하게 돼서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또 아내가 믿음이 좋아서 저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셨지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고 또 용서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가정을 꾸리고 나면 제일 먼저 각각의 사람에게 숙제로 오는 것이 생업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해 주셨을까요? 윤: 가마치 통닭이라는 그 큰 기업을 이루시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장로님 그 과정을 좀 나누어 주시죠. 김: 장사를 하면서 주일성수를 못 했습니다. 근데 교회를 다니면서 제 마음의 부담이 오게 되었는데 하루는 결단을 하고 서울 시내에 있는 거래처 한 40~50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제가 이제 주일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토요일 날 이틀 분량을 준비해서 영업하시는 데 지장 없도록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한 절반 정도는 이탈될 거라고 결단 한것인데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2곳만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한 40여 군데는 동의 해 주셔서 주일성수를 하면서 사업에도 큰 어려움 없이 가능했었지요. 이것 역시 하나님의 참 큰 선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날엔가는 또 큰 우리나라에서 한 두 번째 가는 회사가 제가 운영하는 공장을 사 주고 또 저를 그 회사의 대표이사로 운영할 수 있도록 안정될 때까지만 경영을 맡아달라 요청해 왔죠. 그 회사 사주가 저를 놓아주질 않아 한 6~7년을 하다가, 아 여기서 정년을 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회사가 또 다시 매각이 되는 바람에 저는 거기를 또 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양계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면서 충주 쪽의 한 만 평을 땅을 일부 계약하고 일부는 또 사고 또 은행에 빚도 좀 내고 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고 뭐 환경평가도 아무 이상 없이 다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 민원 제기로 그 양계사업을 못 하게 됐습니다.결국 저는 기도하게 되었지요. 그 일로 하나님은 제 삶을 기도원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무려 1년을 기도하게 하셨어요. 그 당시에 어떻게 하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해야 될지 굉장히 두려운 마음이었고, 또 앞날에 계획도 없이 일이 막히니 굉장히 힘들었는데 1년을 기도하게 하시면서 주신  응답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이자 비용은 더 커지고 수입도 없이 하루에 만 원으로 하루 생활을 기도원 가서 기도하고, 헌금 드리면서 기도원 생활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는데  아무런 변화는 없었어요. 하나님은 과연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이런 마음이 저를 좀 힘들게 할 때도 있었으나 그해 말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됐죠. 그 사람을 통해서 다시 직장을 얻게 되었고 함께 사업을 하게 됐는데 계획도 없이 그분이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사업을 축소하는 바람에 제가 고스란히 인수받아서 오늘날 이렇게 가마치 사업을 하게 된것이지요. 이 사업이 결국  닭 사육을 하면서 유통사업까지 확장 했는데 프랜차이즈 본사에 닭을 공급하게 됐었지요.  그런 와중에 공급해드리던 치킨집들이 한 분 두 분, 그 사업체를 인수 해달라는 기회들이 생기면서  여러과정을 거쳐 1호점 2호점 개장을 하다가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750- 760개 지점이 운영중이고 지금도 매월 10개 이상씩 오픈이 되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도 굉장히 성장 속도가 높고 매출도 굉장히 많이 오르고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하게 한 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윤: 분명히 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업 운영 방침도 있으실 것 같애요.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신가요? 김: 제 계획에는 본래 없던 것인데 하나님이 이 사업을 내가 할 수 있도록 3년간 준비하게 하시고 그 준비한 사업체를 저한테 몽땅 주었을 때 아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쓰실려고 나를 사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해서 저는 그 사업체를 그때부터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건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수익의10분의 1을 작정해서 지금은 선교사님 5분과 농어촌 목회자들을 위해 매월 10만 원 이상씩 매년 10분을 섬기게 됐지요. 이제 사업한지 8년째 되는데 현재  91분을 섬기고 있고 또 전도용으로 닭을 도계를 해서 매년 10만 수 이상으로 전국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제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쓰시고자 하는 그 목적대로 변함없이 지속 중이고 내년이면 100분을 섬기게 되는 해가 되게 됩니다. 윤: 해외로 진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 현재 국내에선 매월 10개 이상이 오픈되는데 향후 5년 이내에 1500개까지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 오픈이 목표입니다. 1500개가 되면 해외 시장을 한번 두드려 봐야지 하는데  4년 후면 제 나이 70세가 됩니다. 은퇴 할 때 겠지요. 그 때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던 일들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 현재로는 해외 사업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윤: 예 아쉽습니다. 엘에이에서 가마치 통닭을 맛볼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까 말씀 도중에 은퇴 이후에 갖고있는 계획이 있으시다고 하셨어요. 나눠주시지요. 어떤 계획이십니까?김: 한 4가지 정도인데요. 첫째 장애가정을 돕는 일입니다. 사실 저희 큰딸은 생후 6개월 부터 뇌성마비 악성 간질이라고 하는 장애를 안고 2년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기도 중에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누워서만 살던 아이가 5살엔 앉기 시작했고, 일어서기 시작했고, 지금은 걷기도 하죠. 86년 생인데 의사소통도 안되고 신변처리도 안되는 상태이긴 하지만 아주 건강하게 잘 살고있죠. 가족들과 늘 행복하게 기도하지요. 경제적인 여건들을 허락해 주셔서 불편함 없이 잘 양육하고 있습니다. 3-4분의 돌봄이들 께서 24시간 이 아이를 케어하시는데, 이 아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소통이 안 돼서 때로는 답답해 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좀 잘하면 손 갖다 잡아다 주고 아빠 손 하면서 특별히 저를 좋아합니다. 하하그 후로 두 딸을 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이 아이들한테 저희 신경을 잘 못 썼어요. 막내는 결혼했고 둘째는 지금 보스턴에서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이 두 딸들이 장애있는 언니를 정말 사랑스러워하고 아끼지요. 큰 딸 때문에 우리는 장애자 가정의 그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두고 키우면서 지체장애아를 가진 가정은 일상 생활이 안 됩니다. 그래서 평생 이 아이를 케어하면서 일도 할 수 없고 같이 붙어있어야 되는데 그런 애로사항을 제가 알기 때문에 장애자 케어센터를 좀 만들어서 이 아이들을 잘 돌봐야 되겠다 싶어요. 처음엔 장애아 10명을 직접 돌보고자 했는데 최근에 아내하고 의논하기는  부모보다 그 아이를 잘 키우는 사람이 없으니 남이 맡는 보다 그 가정에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고 있습니다.  매월  300만 원 정도씩 10 가정에게 생활비로 후원하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이제 100명의 목회자 선교사들을 섬기게 되는데 이분들이 노후 준비가 되신 분도 있고 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들은 노후준비 없이 선교지에서 사역하는데 선교지에서 돌아오면 이분들을 맡아줄 곳이 없는 거예요. 생활이 안되요. 지금 섬기는 선교사100분 중 선정해서 평생 동역자가 돼서 이분들과 같이 살자 그래서 그분들 일자리도 좀 만들어 드리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해서 집이 없는 분들은 거기 와서 살 수 있도록  하자 해서 경기도 쪽에  땅도 준비가 돼있고요.  또 그 분들의 자녀 중에 학비 때문에 신학을 하지 못할 경우 100프로 장학금 지원해 주자 하고요.  세 번째는 저는 여행을  많이 못 했잖아요. 젊었을 때 많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사실 여행할 겨를이 없고 아이들에게도 참 많이 미안한데 노후에는 여행을 다녀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냥 여행을 다닌 것보다도 선교사님들 100분들의 선교현장 방문해서 함께 기도도 하고 그분들의 속사정도 살피면서 국내나 해외 여행을 다니고자 합니다. 더불어 전도용 만화책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만화로 전세계 복음화를 꿈꾸시는 김종두라는 만화 작가와 함께 새 만화로 전 세계를 복음화 하고자 해서 최소한100만 권을 만들어 가지고 배포하자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기드온 사역을 현재 하고 있거든요. 참 하나님께서 그 섭리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40년 전에 교도소에서 기드온 소책자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제 삶이 변화됐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기드온 이사를 한 10년 전부터 하게 됐는데 아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제 삶을 기드온사회에게 헌신할려고 작정하고 지금 은평캠프에서 한 30여 분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윤: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생각해 보면 용서는 정말 인간관계에서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기는 다 잘했고 상대가 나에게 다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운거죠.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핵심 중에 핵심은 용서의 삶이잖아요. 결국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평생을 그릇된 길로 가거나 예수님의 정말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를 쥐고 살아가고 있는데, 저는 이 시대의 크리스찬이라면 적어도 용서하는 삶을 좀 배우고 용서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생각을 하고요.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마음에 참 상처를 입고 목회를 하시다가 용서에 대해서 저한테 한번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1만 달러한테 빚진 종에 대해서 예수님이 천국에 비유해서 하신 말씀을 깊이 이렇게 깨달아 보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용서하고 살자 이제 그런 제 인생에 또 신앙의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경험되어져서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살면 좋겠다싶습니다. 윤: 용서의 하나님으로 인생을 살고 계시는 우리 김재권 장로님을 모시고 함께 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아 나는 늘 피해자야 난 늘 피해를 입기만 했어.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또 가해자이기도 했다라는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귀한 말씀 나눠주신 가마치 통닭 그룹의 대표이신 김재곤 장로님, 오늘 귀한 시간 정말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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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권태진 목사 편 / 군포제일교회 크리스천헤럴드2024.06.16
    윤우경 본부장: 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님 오래간만에 미국을 방문하셨습니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권태진 목사: 예 반갑습니다. 또 이렇게 미국에 와 가지고 고국을 떠나서 열심히 사는 분들에게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윤: 군포제일교회는 성민원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지역의 주민들을 섬기고 또 그 구제와 봉사와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 소식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목사님 성민원의 시작과 지금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권: 성경적으로 보면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그랬으니까 어 빛이 비춰야 될 대상이 세상이고 소금이 녹아야 될 장소도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면서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어떤 변화를 줘야 될까 생각을 하다가 이제 노인복지 또 장애인 복지 뭐 연약한 분들에게 다가서다가 보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럽니다. 참 좋은 교회다라고 하는 글평을 받으면서 하고 있고 또 그걸 하게 되기를 되는 거는 교회 영혼은 육체에 담겨 있더라고요. 영혼은 육체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복음을 줄 때 비로소 그 영혼이 거리도 안에서 다시 한번 한번 깨어나는 회복되는 걸 느끼기 때문에 바로 한 곳은 목회와 복지는 그냥 하나의 안과 밖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뭐 복지하는 것이 새롭다라고 생각을 안 하고 지금까지 26년 됐습니다. 그러나 법인을 낸 지가 26년이지 시작은 제가 개척하면서 천막을 치면서 시작을 했던 것인데 정부하고 같이 위탁을 받아서 할려고 하니까 법인을 내야 될 것 같아서 필요에 의해서 법인을 냈고 또 승리는 이라는 말은 백성 거루간 백승이라는 뜻이에요. 성민 성민 그래서 처음에는 봉사를 할려고 쭉 하다 보니까 모든 교회들과의 갈등이 있어요. 열심히 나면 교회들이 전도 목적으로만 하는 걸로 해서 자꾸 시기가 생겨서 그러면 크게 보자 교회를 드러내지 않고 거룩한 백성으로 한번 세상에 빛이 되보자. 그래서 성민원 이렇게 만들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윤: 어떤 계획을 갖고 복지와 구제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니까 만들고 필요하니까 돕고 사람의 생각이 먼저 나서지 아니했고 아비의 시각으로 그들을 품다 보니 아비목회를 하게 되더라 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우리 낯선 분들에게 1번도 이런 말을 들어보지 못하신 분들께 아비목회란 무엇일까요? 권: 예 뭐 제가 아비 목회를 한다고 하면 주지넘은 거예요. 그러나 나하고 함께 했던 성도들이 저보고 아비 목회입니다. 참 아버지처럼 따뜻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이름이 아비목회가 된 겁니다. 교회를 가정으로 보니까 복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니까 얘들을 어떻게 하면 교육할까 하다 보니까 선교원을 세웠죠 고다음에 청소년들이 활발하게 좀 움직여야 되는데 얘들에게 어떤 가치를 심어줄까 고민하다가 청소년 복지학교라 또 신방 가가지고 치매 걸린 어른을 만나보면 검사님이시라도 사위 보고 아저씨 누구예요? 그럴 때 이거 큰일 났다 그래서 이제 그날 가서 2층 얻어가지고 요양원도 시작을 해봤고 고다음에 실직자들 있잖아요. IMF 때문 어렵고 이런 사람들이 고민하는 걸 보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일자리 만들고 또 보면은 푸드뱅크를 하는데 가난한 가정은 많은데 줄 게 없어요. 고민하다가 시청에 가서 내가 우리가 푸드뱅크 할 거니까 우리에게 자격을 달라 그래 가지고 푸드뱅크라 하니까 뭐 학교에 급식하고 있는 거 남은 거 굉장히 좋은 음식입니다. 빵집 학교급식 이런 것들을 이제 다 거두어 와서 그 아파트 가난한 아파트 갖다가 내려놓으면요 줄을 쫙 서가지고 다 사 가져와요. 그래서 장애인 이 늘 만나면 장애인 복지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복지 어른 만나면 일자리 그다음에 이런 것을 하다가 보니까 참 인원도 많아졌어요. 우리 예배당에 오면 제과점도 있어요. 왜냐하면, 제과점 하는 분이 부도가 났어요. 문을 닫았는데 어떻게 안 되잖아요. 그래서 오븐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와라 잘 꾸워라 이래서 우리 교회에 간식 줄 거를 전체 찬양대주일학교 이렇게 해서 이렇게 나눠주고 또 간식 살 돈으로 봉급 주고 출판부도 있고 다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에 의해서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복지가 됐어요. 네, 그러잖아요. 가정에도 할머니 생기면 할머니 방 생기고 아이들 태어나면 아이방 만들고 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장애인이 올라다니기 좋게 계단도 줄이고 손잡이도 만들고 이렇게 하잖아요. 교회도 그 정신으로 하다가 보니까 복지하는 교회가 됐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윤: 네 이번에 교단 관계 일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교단 관련 일을 잠깐 소개해 주시면서 목사님이 보시는 이 한인 이민 사회와 이민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권: 지금 이민사회의 일대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꼭 수확한 가을에 포도밭을 보는 것 같아요. 여러분 수확한 가을에 포도밭을 보면 2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현장만 보면 참 쓸쓸해요. 이민 오셔서 일대에 제가 알기로는 일대 이민 오신 분은 한국의 최고의 유명한 분들이에요. 다 대학하고 영어가 되는 분들이고 깨여있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쭉 와 가지고 헌신한 다음에 지금 2대 3대쯤 넘어가잖아요. 그러면 지금은 보니까 밀려나잖아요. 젊은 세대들에게 그런데 이거를 보면서 어떻게 평가해야 되냐 하면은 현상만 보지 마라 현재에만 보지 말고 과거의 수구했던 것을 알아줘야 된다. 이거죠. 그러면 2가지 있잖아요. 수확한 밭에 포도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어서 그 잘 익은 포도나무가 지붕 포도주가 돼 가지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 역할을 한 그걸 보라는 거죠. 그럼 인민사회 일대는 수고하고 땀 흘려고 했던 그분들의 수고를 일대가 보고 그 영향이라는 걸 알아 가지고 부모를 잘 공개를 해야 된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교회도 마찬가지거든요. 아니 나이가 들었으니까 뭐 그냥 은퇴하시고 물러나세요. 그게 아니라 그분들의 수고를 통해서 오늘날 교회가 있고 또 그분들을 보면서 현세만 보는 게 아니라 그분들은 천국 가실 분이다는 거예요. 천국 가실 분이고 이 땅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들이 라고 하는 생각을 하고 천국에 가실 분들로 알아서 존귀하게 해야 된다. 백발을 영광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어야 어린 아이와 젊은이들과 노년이 멋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게 이민 오셔서 지금 목회하는 목사님들 고생하는 거 봤어요. 우리 교단의 미주 어 우리 합신 노회가 이번에 설립이 돼 가지고 그다음에 저런 또 우리 합신 동문과 노예 뭐 수련회 왔다가 창조 과학탐사를 통해서 우리가 여러 곳 돌아보고 왔지요 윤: 네 사실 65세 70세 75세 됐으니 딱 은퇴하시고 교회는 발걸음도 못 하시고 막 이렇게 집에 계시는 건강하신 목사님들을 뵈면 마음이 많이 허전했어요. 저희도 그분이 갖고 계신 많은 영역들이 은퇴와 더불어 그저 덮여버리고 마는 것 같아서 우리 목사님 추수되어진 포도밭에 만들어진 포도주를 보라 열매 맺어진 그 열매의 결과물을 보고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천국 가시는 날까지 잘 섬기고 더 많이 배우고 하는 귀한 도전 우리 이민사회에도 아주 커다란 울림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권: 예 뭐 힘이 있는 데까지 해야 되죠. 지금 목사는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복음 전하고 또 영혼 구원사역의 그걸 위해서 부러움을 받았잖아요. 받았고 우리가 은퇴 은퇴 얘기를 하는데 성경에 아무리 찾아봐도 은퇴하는 나이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나는 교단도 속해 있고 다 했지만은 은퇴를 하는 거 할 수 있으면 뭐 하면 좋겠지만은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리고 건강 주는데 왜 건강을 가지고 70이 되면 철이 들잖아요. 철도 안 들고 은퇴하는 사람들 생겨나요? 저는 이게 뭐 개인적인 겁니다마는 70이 되면서부터 많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제가 찬송가를 쓰잖아. 아이 그죠 찬송시를 써 가지고 찬송가를 만들었어요. 지금 한 90곡 정도 나왔고 복음성가도 뭐 어 오소서 같은 그런 여러 해인데 찬송시를 쓰면서 제가 느낀 게 한국적 찬송가가 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찬송가는 외국의 거 다 번역을 했고 또 어느 국가 이런 이런 거거든요. 그럼 우리 한국도 지금 기독교 역사가 깊고 그런데 찬송가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제 찬송가를 쓰고 설교한 다음에 그 설교에 맞는 찬송가가 없어 그걸 부르기도 하고 그리고 또 이민할 사회 와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 정말 귀하게 봅니다. 제가 우리는 황금모장에 있는데, 이분들은 황금모장 게 아니고 가끔 있는 거요 여기에 100명이면 한국의 천 명 이상의 소중한 거예요. 우리 저 음 이민 오신 분들 목회하는 목사님들 너무 좌절할 필요 없어요. 교회 문제는 내가 보니까 교회나 밖의 문제는 피부병이고 가정의 문제가 부부간의 문제는 암병이니까. 밖에서 문제 교회문제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부부간의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아이들도 너무 목사 되라 사모 되라 그러지 말고 생긴 대로 살게 만들어 놓으면 애들은 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고 거루하게 살려고 노력할 겁니다. 우리 성도들과의 또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 있도록 그렇게 하면 너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윤: 네 자 목사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해주신 찬송가 90곡 또 그것이 작년인가요? CTS에서 음악회로 발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그 영상을 저희도 지금 저희 온디맨드 코리아의 방송을 통해서 이제 편성해서 내보내려고 준비 중에 있거든요.권: 우리 성도들하고 발표를 했어요. 그게 지금 한국에서도 방영이 되고 있고 또 아주 좋은 분들 많이 불렀어요.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제 중심이 돼 가지고 불렀습니다. 찬송가가 만들어지고 부름으로 해서 교회도 건강해지고, 신앙의 동질도 이루어지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아주 좋아졌습니다. 윤: 저 우리 목사님이 쓰신 책만도 수십 권이 넘는다고 들었구요. 교회를 찾아가 보니까 도서관이 서 있더라고요. 로비에 책들이 목사님 저서만으로도 꽉꽉 채워져 있었고, 또 간혹 선물로 주신 책들을 보면 시들도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바로 그런 것들이  찬송가가 되어진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이죠.권: 이거 해주세요. 그게 아니라 내 시를 많이 쓰면 작곡하시는 분들이 인제 보고 이걸 가지고 인제 만들어도 되냐 그러면 허락을 하면 만들어내는 거죠. 그리고 책을 많이 썼다고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무식해서 많이 쓴 거예요. 왜그냐 하면 책 쓰는 게 상당히 겁나거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으 두려워하면 책 못써요 근데 생각나는 대로 이렇게 썼는데 하나님께서 그래도 은혜 주셔서 비판이 아니라 그래도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 라고 하는 평을 받아서 참 그랬는데 잘 쓴 건 아니고 그냥 생활을 이렇게 한 거 그렇습니다. 지금 읽으면 야 이걸 책이라고 냈냐 할 정도로 내 자신이 좀 부끄럽습니다. 예 윤: 이제 마무리를 해야 될 시간인데 우리 이 지역에 미국 내 한 220만 정도의 한국인이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까 이들에게 삶에 깊숙히 어떤 신앙의 관점에서 도전과 위로를 주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말씀이 있으실까요? 권: 여러분 여름 참 미국에 사는 분들이 정말 귀해요. 내가 보니까 미국은 첫째는 공기가 좋고 고다음에 자유가 있습니다.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공기 고 다음에 자유 그리고 평안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한국에 오시면은 외국이라고 느낄 거예요. 한국은 하도 빨리 변하니까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낄 정도로 빨리 변한다고 그러거든요. 다 느낄 겁니다. 미국에 사는 거요 정말 하나님의 축복인 줄 알고 제가 워싱턴에 가서 미국 역사 그 기념관을 가봤는데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에 있는 분들이 많은 피를 흘렸어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대한민국이 되도록 여러분 위로해 주세요. 공원 꼭 부탁드려 윤: 목사님 오늘 포커스 온 갓, 너무나 주옥같은 말씀들로 우리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큰 도전과 은혜 끼쳐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또 한국에 가시거든. 저희 크리스천 헤럴드의 한국의 이사장으로 추대가 되셨기에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권:  예 뭐 그냥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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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아프리카 흑암의 땅에 3천개 교회 건축을 꿈꾸며 크리스천헤럴드2023.12.14
    강신정 목사(논산한빛교회 담임/아프리카선교회 대표)가 주님의영광교회 집회 등을 목적으로 미주지역을 방문했다. 강목사는 크리스천헤럴드 본사를 방문해서 2025년 10만명 아프리카전도집회 등 관련사안을 논의하고 본사의 Focus on The GOD에 출연했다. 인터뷰내용을 간략 정리했다.                     (편집자 주) Q: 윤우경 본부장(이하 윤) : 환영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오신 방문 목적이 있으실 텐데요. A: 강신정목사(이하 강) : 이번에 하나님 은혜 가운데 주님의 영광교회(신승훈목사)와 남가주새누리교회(박성근목사) 얼바인 침례교회(권태산목사) 등에서 부흥집회 인도를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논산한빛교회가 위치한 논산은 약 12만 정도 되는 조그마한 도시로 개척해서 34년 목회를 하고 있지요. Q(윤) 개척의 배경과 과정들은? A(강): 27살, 신학교 4학년 때 기도원에서 10일 금식 후 하나님께서 논산 땅에 보내주셔서 그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작은 방에서 천막교회로 조립식 열세 평 건물로, 공사 현장에 있는 조립식 건물 뜯어서 40 평,  상가건물로 옮겼고  다음엔 교회에 불이 났었거든요. 그 이후 지금 현재 있는 논산 한빛 교회까지 건축만 제가 천막부터 친다면 6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하하Q(윤): 논산 한빛 교회가 성장하기까지 지탱해온 교회의 정체성과 목회 방향은? A(강):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개척의 마음을 주셨어요. 신학교 4학년 때 결혼하고 제가 1년 지났을 때 제가 있었던 곳을 떠나서 다른 도시로 가서 사역을 해야 되겠다 했는데 금식 기도하다가 만난 집사님이 바로 논산 분이었어요. 결국 논산에 가서 사역을 시작하게 됐고요. 지금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일곱 가지로 정리됐지만 당시엔 그냥 가서 열심히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죠. 지금 강조하고 있는 우리교회 정체성은 첫 번째는 교회 신앙이 분명한 교회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라고 말씀을 처음 하셨지요.  두 번째로,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는 교회, 디모데전서 4장5절에 기록된 대로 말씀 기도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거룩해 지는 교회를 꿈꿉니다. 셋째로는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 입니다. 저희 교회는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로 주일날에는 부서별로 예배드리지만 주일 저녁 예배 수요일 예배 금요일 예배는 3대가 같이 예배드리지요.  네 번째 교회의 정체성은 우리가 사는 논산을 영적 문화를 이루어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행복한 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5번째 정체성은 한국 교회를 기도로 세우는 교회이고자 하는 것인데 한국내 5만5000 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개척교회 목사님을 모셔서 세미나도 하고있지요. 6번째 정체성이 아프리카를 세우는 교회인데  아프리카에 이제 3000개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아프리카의 유치원 중고등학교 또 중고등학교 아프리카 민족사관학교 그다음에 대학교는 교육대학을 세워서 아프리카의 좋은 교사들 믿음의 교사들을 길러서 아프리카를 변화시키는 그리고 병원과 간호대학을 세워서 그곳에 필요한 믿음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일들을 하고요. 7번째 정체성이 아름다운 노후를 책임지는 기회입니다. 교회에서 헌신하고 충성하며 달려왔던 분들이 마지막 노후가 되면 교회도 못 나오고 또 신앙생활을 못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늘 시민이 되기 전까지 우리가 교회가 책임입니다. 교회 우리 어르신 성도님들이 너무 좋아하고 계십니다. Q(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마음을 쏟는 일을 넘어 땅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어떤 연유일까요? A(강): 우리나라가 70년대만 해도 엄청 어려웠어요. 우리나라의 급성장 배경엔 미국이나 외국 선교사들이 영적인 토대를 세워주심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 교회도 개척 당시 미국 남침례교 교구이 선교사들이 커다란 천막을 제공해줬어요. 그러면서 선교사님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우리 교회에 와서 전도 집회를 해주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교회가 성장했지요. 그런데 아프리카는 한인 선교사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지요. 어느 날 아프리카에 대한 마음을 주셨고 아프리카 목회자 세미나를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보니까, 하나님이 이곳에 부르심이 여기 있구나 라는 심정이 들었고 그때부터 선교를 시작하게 됐고요. 그리고 아프리카의 마사이에 갔더니, 정말 우리나라 예전에 70년대 80년대의 소 움막 같은 집보다 못한 곳이 교회인 거예요.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3000개 교회를 세우자 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 교회를 지을 때 한 500만 원 정도면 지금은 이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이 올랐어요. 그래서 이제 700 에서 1000만 원 정도면 한 교회를 30 평에서 40 평 정도 온전한 건물로 지역의 센터로 지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5년 정도 됐는데 186개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교회 세우는 일들도 학교를 짓는 일들도 너를 만나서 네가 입을 벌려 말하면 사람들을 만나게 할것이다 해서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입 벌려 말하고 다녔고 한 분 한 분이 모여 아프리카에 186개 교회를 짓게 된 거죠. Q(윤): 교회 성도님들의 반응은?  A(강): 처음부터 좋아하셨겠어요?  아름다운 노후를 책임지는 교회에는 박수치고 좋다고 했지만 아프리카 라는데는 쉽지 않았지요. 해서 우리 성도들과 함께 아프리카엘 갔어요. 청소년들도 데려가고. 실제 예배 현장을 가서 보고 그동안 제가 외쳤던 일들이 아프리카에 진행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백이 달라지더라고요. 하나님께서 그곳에 3만 평 땅을 주셨거든요.  이제 간호대역을 짓고 교회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로 되는구나. 믿게 된거죠. 논산, 조그마한 도시잖아요. 우리 교회가 큰 교회도 아니고요. 확신이 없다가 현장에서 확인이 되니  생긴 거예요. 갔다 오신 분들은 100% 믿고 헌신하지만 안 갔다 오신 분들은 아마 잘 믿어지지 않을거예요. 저도 사실은 안 믿어졌으니까. Q(윤): 교회 건축 3천개, 간호대학이나 또 대학 수준까지도 이끌어 가실려는 계획을 갖고 계시는데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시는지요? A(강): 아프리카의 나무 그늘 밑이나 그냥 천막 교회에서 예배드리던 교회에 건물이 지어지면 금새  100여명이 모이더라고요.애들이 와서 예배드리고 어른들이 모이고요. 그런 교회들이 논산 한빛교회 이상으로 자라서 아프리카 더 어려운 지역으로 선교하는 교회로 자라날 것을 저는 확실히 믿고요. 또 한 가지는 학교가 세우는 일인데 탄자니아에 대학교가 세워지고 간호대학이 세워지면, 지금 간호대학이 일 층은 건축됐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한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54개 나라 14억 인구인 아프리카 민족을 사랑하고 아프리카 땅의 복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정말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그런 리더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윤): 하나님은 원대한 계획을 시작하실떄 분명히 어떤 한 사람을 들어쓰시는 것은 확실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2025년에 아프리카 10만 명 구령선교대회를 꿈꾸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요? A(강) : 아프리카의 재작년에 갔을 때 그곳의 송 교사님이 아프리카에 와서 만명 어린이 전도축제를 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들으면 즉시 순종하는 스타일이니까 제가 만명 집회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하겠다 했지요.  그런데 저희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아프리카에서 만 명 전도 축제를 하려면 논산에서 못해도 어린이 1000명은 해보고 가야 되지 않겠냐 고요. 결국 10월 2022년도 10월 아이들 천명 전도축제를 열었고 참석한 아이들이 1365명었어요. 그때는 여전히 코로나 기간이었음에도 애들이 물밀듯이 온 거죠.  저희들도 놀라고 성도들도 놀라고 정말 하나님은 알고 계셨지만 우리가 놀랬죠.  이걸 경험으로 지난 6월에 아이들 이제 전도축제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만 명 은 정부에서 위험하다해서  5000명으로 제한을 해서 5000명 전도 축제를 했는데 실제로 5000명 이상이 모인 거예요. 소 세 마리를 잡고 그리고 아이들 도시락 5000개를 만들고 빵을 6000개 굽고 부스 40개 정도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들에 맞는 놀이도 하고, 그러면서 5000명 전도 축제를 하게 됐습니다. 이제 그 경험으로  2025년도에는 우리가 어른들 우리 한국의 빌리그램 전도 대회처럼 아프리카를 영적으로 부흥을 일으키는 운동을 하자. 그래서 이제 10만 명 전도축제 계획을 하게 됐습니다. Q(윤): 한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사실 어마어마한 그림이 아닌가 싶은데요. 어떤 동역자들이 계신지 그리고 이번에 어린이 전도 집회를 하셨을 때에도 교회에서 어떻게 함께 움직여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A(강) : 어린이 전도축제를 위해서  3월달에 바자회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바자회예상 수익을500만 원, 1000만 원 나올까 하더라고요.  그정도 예상이면 그냥 헌금하고 말자, 실제 목표액이 2천만원이니 그리하자 했는데 바자회 하루에 모인 기금이 2000만 원 이상이 나왔어요. 성도들이 모두 놀랐지요.  그 기금으로 5천명 어린이 전도집회는 잘 마쳤습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2025년도 아프리카10만 명 전도 축제는 저희 교회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한국 교회와 우리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정말 연합해서 목사님들도 성도들도 미국에서 300명 정도가 함께 갔으면 좋겠고요 동역할 동역자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죠. Q(윤):  네 우리 아프리카 구령대회를 위해서 저희 또 헤럴드 본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A(강):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헤럴드 크리찬 헤럴드에서 이렇게 오늘 인터뷰도 하고, 또 이 사실에 대해서 기사화하고 방송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제 입을 통해서 나가는 일들을 지금 방송이라는 또 신문 매체를 통해서 확성기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어쩌면 하나님께서 헤럴드가 하나님의 확성기가 되어서 정말 놀라운 일들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기대가 됩니다. 네네 Q(윤) :목사님의 신앙 배경이 좀 궁금합니다.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요? A(강) : 저는 이제 충청남도 홍성 결석면 형산리 안전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마을의 교회에도 또 복음을 들은 기회가 없었어요. 중학교를 면 소재지 중학교를 간 거예요. 걸어서 1시간 10분 정도 다니는 학교였는데 하나님께서 짝을 만나게 했는데 그 짝이 예수를 믿는 신실한 친구였어요. 저한테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는 교회에 나갈 마음이 없었어요. 절에 다녔고 또 무당들이 와서 굿은 했는데 교회라는 것은 너무 생소했거든요.  3학년이 되었을 때 또 친구가 제 짝이 된 거예요. 그때 교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는데 하나님이 기도하는 분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그분이 박재순 권사님이신데, 그 권사님을 만나면서 제가 이제 온전한 기도의 사람 또 신앙을 갖게 되면서 토요일날 되면 이제 교회 청소도 하고, 전도도 했죠. 전도하러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한테 질문하는 거예요. 너 뭐하고 살래 이런 물음이 왔어요. 그때 제가 하나님, 나 전도하며 살고 싶어요라는 마음이 들었죠.  목사님이 되려면 신학 대학 간다는 것도 잘 그때 몰랐었거든요. 그러고서 이제 고 3 이 돼서 진로를 결정할 때 목사님한테 상의드렸더니, 그러면 신학 대학 가야 된다고 해서 신학 대학에 가게 됐죠 그래서 주의 길을 가게 된 계기입니다.  Q(윤): 건강에 문제가 좀 있었을 때가 있으셨다고요. A(강): 목회하면서 어느 날  교회에 불이 나고 힘들 때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내시경 검사하라는 마음을 불어주셨어요. 그때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종양이 생겼다고요. 그때 위를 거의 절제하고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사실 그때 다시 뜨겁게 또 만났습니다. 하나님 내 삶이 나는 한 달이 될지 3개월이 될지 6개월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를 사용해 달라고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쓰임 받고 싶다고 눈물로 밤에 기도했죠.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셨고 또 새롭게 만나주셨죠 그리고 이제 그다음 날 새벽이 되었을 때 몸을 씻고 나보니까, 얼굴에 병색이 없어졌더라고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분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하고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주셔서 지금 오늘까지 건강하게 지내고있지요.그때 결심한 게 있어요. 하나님 내가 주님이 살려주셔서 정말 어느 곳 가든지 내가 마지막 정말 집회다 생각하고 마지막처럼 집회할게요 생명 걸고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할게요. 이제 어느 곳에 가든지 제가 정말 사력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시간시간 성도를 위해서 안수도 해주고 기도도 하고, 지금도 교회에서 매 예배 때마다 아이들이 강단에 올라오면 제가 수요일날 금요기대회 때 꼭 안수를 해주듯이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교회가 원하면 시간시간 제가 꼭 성도를 위해서 안수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Q(윤): 미주지역 성도들에게 논산 한빛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A(강)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미국 땅에 오셔서 이민을 오셨든 그리고 공부를 하든 여러분들이 여러분 삶 속에도 고난이 있고 또 아픔이 있잖아요. 정말 한국에서 보면, 야 미국의 이민 같애 그래서 불우할지 모르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선 치열하게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거죠. 한국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미국에서도 함께하시고 그래서 욥이 고백한 것처럼 앞을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뒤를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시고 옆을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그런 고백을 하잖아.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되어 나온다고 말씀 고백을 했어요. 그렇죠. 여러분의 현재의 고난이 장차 하나님 앞에서 나타날 영광과는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살아계신 하나님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세요. 아무리 미국 땅이 좋아도 여기는 영원한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가야 될 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미국 시민으로 산다 할지라도 천국 시민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이 땅에 예수님 몸인 오직 교회 붙들고 정말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 생각날 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또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특별히 아프리카 정말 54 나라 14억 인구 그들은 하루 한 끼 먹고 삽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마사이에 가서 학교 초등학교 하나가 세워졌는데요. 아이들은 병원 가려면 5시간을 걸어가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5학년 6학년 세우기 전에는 아이들이 세 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가고 또 세 시간을 와야 되는 곳도 있더라고요. 아프리카를 위해서 같이 기도해 주시고, 또 감동이 오시면 마음이 오시면 저와 함께 정말 아프리카 땅 54개 나라 14억 인구를 놓고 함께 기도하고, 또 함께 물질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함께 달려가는 저의 기도의 동역자 물질의 동역자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되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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