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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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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여주봉 칼럼 - 성도들의 새해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5년을 지나며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는 우리 주님의 생명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더 나아가 모든 세상에 더 강하게 비춰지기를 소망하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회복의 은혜가 풍성하게 부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을 향한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하나님이 일하시는 주된 통로는 바로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소중히 여기신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교회는 점점 침체되고 있고,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달갑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초대교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초대교회의 삶은 그 당시 로마 시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사회에서 외면 받는 자들을 돌보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의사들조차 도망가는 난리통에도 환자들을 돌봤다. 또한 성적 타락이 극심한 그 시대에 정결한 삶을 추구했고, 도움을 청하는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교적 삶을 살았고,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교회에 믿는 자들의 수가 더해졌다.지금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이 가려진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에 주신 선교적 소명이다.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운 대로 살고, 또 살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말씀을 올바로 배우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 없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교회의 소명과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기를 소망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강력하게 이뤄가시는 새 창조의 역사에 온 삶으로 동참하는,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우리가 하는 일의 소명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돌보시며 지금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고자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고, 우리의 일을 통해 온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공급하신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급의 통로다. 그렇기에, 교회와 성도가 선교적 소명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일의 소명이 회복되는 것과 반드시 연결된다.이 시대에 적지 않은 성도들조차 일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다. 전도나 봉사 등 교회에서 하는 일은 ‘주의 일’이라며 거룩하게 여기지만, 우리가 우리의 일터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고 저급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가 이 시대에 팽배하지만,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골로새서 3장에서는, 노예들이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을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자 이웃을 사랑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일은 고귀한 소명이며,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일의 소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탁월하게 일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야 한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주신 일의 소명이 그렇게 올바르게 회복되기를 소망한다.십자가 복음으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 또한 회복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경우 윤리적인 죄(간음, 거짓말, 살인, 도둑질 등)는 심각하게 여기지만 관계적인 죄(상대에 대한 후욕, 판단, 비방이나 상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거나 상대에게 마음을 닫고 좋지 않은 마음을 품는 것 등)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관계적인 죄도 윤리적인 죄 못지않게 심각한 죄들이다. 관계적인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에는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 말로는 연합을 외칠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기적인 욕심대로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과 세대와 정치적 성향을 따라 갈등과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적대시한다. 특히 정치가 우상이 돼 거기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거기에 동의하고 분열시키는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대인 것이 분명하지만, 주님은 이때에도 당신의 교회와 열방을 진정으로 회복하기 원하신다. 그 회복의 동력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이며, 그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온갖 차별이 가득했던 로마 시대에 ‘반(反)문화 대안(代案)사회’로서 세워진 초대교회를 통해 그 시대가 바뀌었던 것처럼,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일터를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를 변혁하고 구속해 나가기를 소망한다.“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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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외면 받는 한국교회에 대한 소망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고 엔데믹으로 바뀐 지 3년째를 맞고 있다. 코로나 사태 당시에 종교 활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았고 교회도 큰 어려움에 처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회복이 돼가고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작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면 또는 비대면을 포함해서 출석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비율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 조사에서는 코로나 이전 대비 예배 및 활동에 참석하는 교인 수 변화는 감소했다는 응답이 30% 있었지만, 유지 55%, 증가 16%로 급격한 감소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교회학교가 줄었다는 응답이 43%로 가장 많아서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나, 대부분의 활동에서 감소와 증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예배 출석이나 교회 활동이 어느 정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한국리서치의 종교 조사 결과에서는 개신교 신자 비율이 20%로 불교(16%), 천주교(11%)보다 많아서 이 기관에서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신자 수에서 세 종교 모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의 이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신자의 유입과 종교 이탈이 서로 비슷한 수치를 차지한 결과이다. 문제는 세 종교 모두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보다 종교 인구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체 성인 남녀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이지만, 천주교 신자의 50%, 개신교 신자의 44%, 불교 신자의 43%가 60세 이상이다. 종교인 10명 중 4~5명이 60세 이상인 셈으로, 전체 인구 기준 대비 10% 포인트 이상 고령 인구가 많다.종교 활동에 가장 열심인 종교는 개신교이다. 개신교 신자 중 종교 활동에 매주 참여하는 사람은 63%로 나타났다. 1년 전과 비교하면 8%포인트 늘었고, 천주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매주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신자의 비율이 크게 높다. 개신교 신자의 77%가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특히 41%는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천주교 신자는 55%가 중요하다고 답해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불교 신자 중 종교 활동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35%에 그쳐 개신교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호감도가 낮은 개신교개신교가 신자 수나 종교 활동에서는 다른 종교를 앞섰지만, 호감도는 반대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이슬람교 순으로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의 호감도는 전년 대비 상승한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오히려 소폭 낮아졌다. 개신교는 주요 종교 중에 유일하게 호감도가 감소했다.불교 호감도는 54.4점으로 전년 대비 3.1점 상승했다. 종교별 호감도를 측정한 2020년 이후 가장 높으며, 주요 종교 중에서 호감도가 가장 높다. 불교 호감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51점 이상)은 전체의 49%이며, 특히 76점 이상으로 매우 높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이 전체의 26%로 적지 않았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호감도가 낮은 사람은 전체의 16%로 적었다. 최근 불교가 MZ를 비롯해 좋은 인상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통계 조사로도 나타난 것이다.천주교 호감도는 52.7점으로 불교보다 조금 낮았지만, 보통 이상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호감도가 4.1점 높아졌고, 불교와 마찬가지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호감도다. 천주교 호감도가 보통을 넘는 사람은 전체의 46%이며, 23%는 76점 이상의 매우 긍정적인 호감도를 보인다. 반면 24점 이하로 매우 부정적인 사람은 전체의 17%이다. 반면에 개신교 호감도는 34.7점으로, 불교 및 천주교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주요 종교 중 유일하게 호감도가 전년 대비 소폭(0.9점) 감소해, 지난 2년간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개신교 호감도가 51점 이상인 사람은 전체의 22%로 불교나 천주교의 절반 수준이며, 76점 이상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불교나 천주교보다 낮은 15%이다. 반면 24점 이하의 매우 낮은 호감도를 보인 사람은 전체의 46%로 불교나 천주교 대비 두 배 이상 많다.교세에서는 개신교와 비교할 수준이 되지 못하지만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호감도는 개신교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심지어 작년에 있었던 한 조사에서는 무종교인들의 종교 호감도에서 원불교가 개신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교회에 대한 소망사회 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각 교단에서 보고하는 교세 통계는 갈수록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 개신교 신자 수가 일정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교인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교회 밖 신자들 때문이다.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신자 수가 최근에는 3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신자 수가 20%가 된다고 해도 그 중에 6%는 가나안 신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체 개신교 신자 중에 대략 1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이단 신자도 제외한다면 정통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는 전체 국민 가운데 1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앞에서 살펴본 개신교의 낮은 호감도를 감안하면 이 비율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나쁜 인상을 준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삶의 모습이나 교회의 활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호감도가 낮은 종교에 관심을 갖거나 찾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전도하기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영적이고 도덕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증명해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배려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하나님께 지으심 받은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더 책임감 있게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이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고 교회가 신앙공동체로서 참다운 모습을 보인다면 호감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될 것이다. 단순히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영적 성숙을 통해서 신자다움과 교회다움을 회복하는 새해에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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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3
    [오피니언] 이영훈 컬럼 - 2026년, 믿음으로 건너야 할 약속의 땅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희망찬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새해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대변하듯, 야심차게 세운 계획들조차 1월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무력감이 우리 신앙생활에도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 통독, 새벽 기도, 전도 등의 목표가 반복되는 일상과 영적 게으름 속에서 쉽게 무너지곤 한다. 그러나 2026년, 우리는 이 습관적인 패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파도가 높고 거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절대 긍정의 믿음’이 필요하다.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범람하는 요단강과 견고한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저출생과 인구 절벽, 양극화와 세대 갈등, 고물가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거대한 장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교회 또한 성장의 정체와 다음 세대의 이탈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정복해야 할 ‘현대의 가나안’이다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은 태산과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절망의 끝자락이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다. 모세가 떠난 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승리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확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다. 2026년을 승리의 해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여호수아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 여호수아가 승리한 비결은 탁월한 전술이 아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라는 말씀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와 SNS 등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소리에는 민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음성에는 무뎌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길 힘은 정보가 아닌 믿음에 있다. 그리고 그 영적 근력은 오직 말씀으로 단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성경을 펼쳐야 한다. 말씀이 우리 안에 채워질 때 비로소 담대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여호수아는 물이 마른 뒤에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는 순간, 흐르던 물이 멈춰 섰다(수 3:15~16). 기적은 계산하며 상황을 재는 자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려워도 전도하고, 부담돼도 헌신하며, 힘들어도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의 순종이 선행될 때 하나님은 비로소 길을 여신다.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의 돌’을 세워야 한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열두 돌을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했다. 우리가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지난날 우리를 도우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잊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고비마다 도우셨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그 감사의 기억들이 모여 2026년의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이 될 것이다.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해 보일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2026년, 우리 앞에는 약속의 땅이 기다리고 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무장하여 기적과 승리의 한 해, 그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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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춘식 교수와 함께 하는 조나단 에드워즈 선교신학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다시 읽는 조나단 에드워즈>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정체성 회복의 신학 노루는 자연 속에서 생존력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민첩하고 경계심도 강하다.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건망증이다. 포식자의 위협을 느끼고 전력으로 도망치다가도, 잠시 후 자신이 왜 뛰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그 자리를 맴돌다 결국 잡아먹히곤 한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 건망증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단순한 동물의 습성처럼 보이지만,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 역시 두 세계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한국인의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으나, 일상의 언어와 사회적 규범은 미국 사회(American society) 안에서 형성된다. 가정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영어로 사고하고 경쟁한다. 신앙의 언어와 생존의 언어가 교차하는 이 삶의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신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문화적 혼란을 넘어선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개인이 하나님께 던지는 근본적인 신앙의 물음이다. 미국 디아스포라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차별(invisible discrimination), 성취에 대한 압박(pressure for achievement), 자녀 세대와의 문화적·신앙적 간극, 그리고 성공 여부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성과 중심의 정체성에 익숙해진다. “무엇을 이루었는가(what I have done)”가 “내가 누구인가(who I am)”를 대신하는 기준이 된다. 이 지점에서 18 세기 미국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시대 역시 사회적 전환과 종교적 혼란이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환경이나 성취, 혹은 감정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 중심성(Godcenteredness) 위에서만 참된 자기 이해(true self-understanding)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에드워즈에게 신앙은 종교적 활동(religious practice)이나 개인적 체험(private experience)에 머물지 않았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이었으며, 인간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이해는 그의 선교신학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에드워즈가 이해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특정 지역이나 사역을 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따라 인간을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는 신학적 선언이다. 이 관점에서 디아스포라는 우연히 형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땅에 보내진 존재로 이해된다. 이민자의 삶이 불안정한 근본 원인은 외적 환경의 불확실성(external uncertainty)에만 있지 않다. 정체성의 토대가 흔들릴 때 삶 전체 역시 구조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위기를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했으며, 그 회복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삶, 곧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 중심의 정체성은 인간의 가치를 성취(achievement)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belonging to God)라는 사실에서 발견하게 한다. 다시 노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루는 위험을 감지할 능력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위험을 인식하고도 그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을 잃는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는 순간, 삶은 방향을 잃고 세상의 흐름에 쉽게 휩쓸린다. 신앙의 정체성을 잃으면 마음은 분산되고, 목적을 상실한 삶은 어느새 세상의 기준에 붙잡히게 된다. 정체성은 영적 나침반(spiritual compass)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자리에 두셨는지를 기억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에드워즈의 신학은 오늘의 디아스포라에게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뿌리 없는 존재(rootless people)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둔 사람들(rooted in God)이다. 이 진리를 붙들 때 디아스포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경계인이 아니라, 두 세계를 잇는 선교적 존재(missional being)로 다시 서게 된다. 정체성의 회복은 곧 사명의 회복이며, 그것이 오늘 미국 디아스포라 신앙이 다시 출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필자 약력 신춘식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을 연구하여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국제선교목회학박사(D.MinGM) 학위를,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CPU)에서 선교학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GMS 서부지부 지부장이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를 섬기는 한편, CPU 선교학과 박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 서울: CLC. 2025)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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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국현목사의 신년사 <2026년 새해를 향한 기대>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사랑하는 크리스천 헤럴드 독자 여러분께, 2026 년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터 위에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한 해의 수고와 눈물, 그리고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인내를 주님께서 아십니다. 새해는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행복하게” 주님 안에서 걸어가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렌지카운티 교회 협의회 회장으로서, 2026 년을 시작하며 이 말씀을 함께 붙들고 싶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이 말씀은 아주 다정하게,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평강은 단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흔들려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고, 내일이 불확실해 보여도 소망을 놓지 않게 됩니다. 2026 년에는 우리 안에 이런 평강이 더 굳게 자리 잡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는 안정과 번영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진짜 번영은 “내 손에 무엇이 더 많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 삶에 하나님이 더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면 가정이 새로워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다시 따뜻해집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깊이 들어오면,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모든 이에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첫째, 오렌지카운티의 교회들이 더 하나 되게 하소서. 교단과 배경을 넘어,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서로를 축복하고 지역사회를 섬기게 하소서. 교회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웃을 품는 “따뜻한 집”이 되게 하소서. 둘째, 이 지역사회에 평강과 안정이 임하게 하소서. 경제적 어려움, 가정의 갈등, 청년들의 불안, 외로움과 우울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닿게 하소서. 우리의 작은 친절과 섬김이 누군가의 한 해를 살리는 은혜가 되게 하소서. 셋째,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선교지까지 복음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소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더욱 “화해의 길”을 보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국경을 넘어가고, 기도와 선교가 끊어지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선교지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새 힘을 주시고, 복음의 문을 넓게 열어 주소서. 독자 여러분, 2026 년은 “내가 잘해내는 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집에 머물고,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분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고, 교회가 살아나며, 지역사회가 건강해지고,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해, 주님 안에서 평강과 소망, 안정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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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
    [오피니언] 남진석 원장의 신년사 <2026년을 기대하며>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2026년은 육십갑자 기준으로 ‘병오(丙午)년’입니다. '병(丙)'은 오행 중 '불'을, 그리고 색깔로는 '붉은색'을 상징하며, '오(午)'는 십이지 동물 중에서 '말'을 의미하니 ‘붉은 말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주는 상징성은 활달함, 추진력, 강인함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동양의 육십갑자가 한해의 운명을 결정 짖는 원천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해의 상징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차용하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2026년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많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는 ‘노란 봉투법, 검찰청 폐지’등 현재까지 지켜왔던 사회적 기본질서와 가치의 틀이 완전히 새로운 틀로 바뀌는 원년이 됩니다.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노란 봉투법으로 인한 경영권 유지 리스크가 커지며 우량기업이 앞다투어 해외로 이전하고, 검찰청 폐지로 인하여 사회악에 대한 즉각적인 퇴치와 처리속도가 지연되고 이에 따른 사회안전망의 부실 우려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은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책임은 오롯이 유권자인 국민의 몫이 될 것입니다. 2026년 11월에는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상하원의 상당수 그리고 주지사의 70%가 새롭게 선출되는 해입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의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종횡무진 좌충우돌 연일 큰 국제적 정치 뉴스를 만들어 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회가 될지 위기가 될지를 가름하는 인류사적 중간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2026년에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FIFA 월드컵 대회가 북미 3개국에서 열리게 됩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FIFA체제 이후 가장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월드컵이 됩니다. 종전 32개국에서 무려 16개국이 더 추가된 48개국이 우승을 놓고 열전을 펼치게 됩니다. 'North America 2026 FIFA World Cup'이라 불리어지는 이번 대회의 공식 명칭은 ‘United 2026’입니다. 23개의 경기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미국에서만 17개의 경기장에서 치루어집니다. 사실상 미국 월드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때마침 대한민국 뿐만아니라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손흥민 선수가 LAFC에 소속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역 국가대표선수로 마지막 출전하는 월드컵대회가 자신이 활동하는 안방에서 치루어지기에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 북미에 거주하는 동포사회를 벌써 부터 설레이게 하는 큰 이벤트가 되고 있습니다.  2026년 세계 선교와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확실성의 위협을 내포하고 있는 가운데 인적 물적 선교자원의 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이들의 탈 교회는 여전히 심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로의 이주민 및 제3세계 난민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선교의 기회는 꾸준히 증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적 과업을 충분히 감당하기 위하여 상당한 선교적 비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지역교회의 재정 동원 능력이 저하되고 있기에 선교 현장에서 선교재정을 위한 자급자족을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세워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미국남침례교(SBC) 2024년 연례 교회보고서(ACP)에 의하면 성도들의 숫자에 있어서는 미미한 감소세 임에도 불구하고 공예배, 주일학교, 제자훈련 등의 출석율은 현저하게 증가하였으며, 약세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북동부나 서부에서 성도들의 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청년대학생 층의 성장세도 교회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우려되는 문제들의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준비된 개인과 교회 그리고 기관을 통하여 일하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목도하여 왔습니다. 2026년 새해에도 하나님께서 각성도들과 교회들과 기관들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역사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 큰 기대가 됩니다. 염려보다는 기대와 확신으로 승리하는 한해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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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9
    [오피니언] The letter 19 김광근 -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하나님을 알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1절우리는 종종 죄를 지었을 때 "몰라서 그랬다"라고 변명하지만. 성경은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기에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 즉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는 '관계적인 거부'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우리는 '익숙함'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을 빼앗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녀나 건강, 자존심과 같은 우상이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면 우리의 마음은 어두워지고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나 실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2026년, 아는 신앙' 을 넘어 '사는 신앙'이 되기 위해 우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적극적인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숨 쉬는 것, 건강한 것,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이웃은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섬김의 대상입니다. 불평이 나오려 할 때마다 감사의 고백으로 그 자리를 채우며, 올 한 해 하나님과 더욱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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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2026년, 새해 첫날 드리는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6.01.11
    1 새해 벽두부터 축복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시니 말씀에 근거하여 축복선언을 할 때 한 해 동안 주실 기쁨의 전주곡을 듣게 하셔서 감사합니다.2 새로 시작하는 첫 번째 드리는 말씀은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는데 얼마나 기쁘고 마음이 설레는지 우리의 정체성의 변화를 실감하며 서로 위로와 축복을 해 주는 시간 갖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3 신분이 변한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품위를 지키며 말로도 남을 세워주는 힘을 나타낼 것을 강조하다 보니 현장감을 더욱 느낄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4 새해가 되어도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은 채 실의에 빠진 자들에게 던지는 위로의 말씀은 오늘 하루가 마치 산산조각 같은 상태일 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으로 격려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5 사역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다 보면 자랑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 반드시 골방으로 들어가해야 할 일은 침묵기도입니다. 사단은 귀가 밝아 우리의 입술로 뱉은 말들을 듣고 노리기 시작하여 우리를 넘어뜨리기 때문에 어떤 불평이나 비판의 말을 다시는 입에 담지 않기로 결심 또 결심하며 감사를 드립니다.6 우리에게는 이미 복을 주시는 목적은 반드시 복을 나누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사명으로 이어져서 새해에 나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나를 통해 형통의 사건들이 생길 것을 기대하며 감사드립니다.7 우리의 영적인 힘을 잃게 하는 습관들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해 심한 충격과 함께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이 생깁니다. 이럴 때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주님 앞에 나아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새로운 힘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8 우리가 경험하는 영적 체험을 함부로 말할 때 사탄은 듣고 공격해 옵니다. 하나님과 연애편지를 쓰는 자세로 하나님께만 비밀로 교제하는 것이 영력을 유지하는데 유익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9 말로 간증하는 것보다는 삶으로 보여주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행동이나 얼굴에서 비추어지는 빛을 이미 주셨으니 이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해 주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0 새해를 주신 하나님 금년 한 해에도 무엇으로든지 채워나갈 선택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침묵기도를 통하여 축복을 지켜 나가게 하시고 입술로 받은 복을 썩지 않도록 입술의 파수군을 보내 주시옵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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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거짓을 막는 진리의 방패다 크리스천헤럴드2025.12.20
    요근래 한국 사회는 사이비 이단 문제로 깊은 충격을 겪고 있다. 단지 특정 종교 집단의 일탈이나 개인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과 결탁하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공공성과 윤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공식석상에서 사이비 이단의 실태를 언급할 만큼, 그 영향력은 이미 국가적 신뢰를 흔드는 수준에 이르렀다.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 문제를 외부의 위협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이비의 문제는 단지 그들만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구조적 허점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많은 이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신앙심이 약하거나 판단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진지하게 믿음을 추구하던 이들일수록, 사이비의 메시지에 더 쉽게 끌리기도 한다. 이단 사이비들이 던지는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히 택하셨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며, 우리만이 참 진리를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말들이 기존 교회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갈증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교회는 사람들의 갈증을 잘 모른다. 사이비는 돌봄의 언어로 다가온다. 교회에서 질문하지 못했던 것을 허용해주는 듯 보이고, 오랜 시간 갈증을 가진 채 외로움 속에 나름의 신앙을 지켜오던 이들에게 깊은 관심과 연결감을 제공한다. 처음엔 진짜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매일 안부를 묻고, 함께 기도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 속에서, 신앙인은 자신이 비로소 이해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돌봄은 곧 통제로 바뀌고, 확신은 맹신이 되며, 공동체는 폐쇄적인 울타리로 변질된다.교회는 이 지점에서 침묵해선 안 된다. 많은 경우, 사이비로 넘어간 이들의 발걸음은 이미 교회에서 마음이 떠난 뒤였다. 목회자의 부도덕성과 이중적인 언행, 권위적인 리더십,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분위기, 형식적인 양육과 무기력한 성경공부,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훈련. 그 모든 요소가 사람들을 서서히 지치게 만들고, 결국엔 교회를 떠나도록 만든다. 문제는, 그들이 완전히 믿음을 버리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더 순수하게 하나님을 갈망하기에, 거짓이 진짜처럼 보일 때 그 유혹에 쉽게 붙잡힌다.교회가 놓친 자리는 사이비가 가장 쉽게 뿌리내리는 장소다. 교회 안에서 충분히 돌봄받지 못한 마음, 함께 말씀을 나누고 해석할 기회를 갖지 못한 갈증,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없었던 침묵의 시간들이 결국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만다. “이건 아무에게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다.” “너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 말들이 믿음을 갈망하던 사람들에게는 위로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사이비는 결핍을 공략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외로움,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말씀 속 진리를 만난 적 없다는 영적 허기. 이 모든 것을 사이비는 채워줄 듯 접근하지만, 결국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가족의 미래를, 한 사회의 윤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회가 진짜 교회다워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설교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말씀을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리더십은 더 이상 통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세워져야 한다. 성도들 간의 관계는 표면적인 인사로 끝나지 않고, 삶의 구체적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질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의심과 회의가 죄로 취급되지 않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지금 사이비 문제는 단지 법과 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회가 건강해질 때, 그 틈은 사라진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 앞에서 서고, 삶 안에서 진리를 살아낼 때, 어떤 거짓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진짜 복음은 사람을 얽매지 않는다. 두렵게 하지 않는다. 조종하지 않는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교회가 소통을 회복하고, 성경을 깊이 있게 나누며, 신앙이 삶과 연결되는 공간이 될 때, 우리는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사이비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규제가 아니라 진짜 교회다. 그리고 그 진짜 교회를 만드는 일은 지금, 여기, 우리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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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연륜 크리스천헤럴드2025.12.20
    예배 인도를 마치고 내려가기 전에 찬양대 지휘자가 사용할 보면대 하나를 항상 두고 내려간다. 찬양대 앞에 지휘자가 서는 자리에 보면대를 놓되, 잊지 않고 반대로 돌려놓고 내려간다. 지휘자가 지휘 궤적을 확보하기 위해 받침이 없는 위쪽을 자신 앞으로 돌려놓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해온 시간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발견되는 것들이 있다. 특이하고 독특한 습관들도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되면 자연스럽게 눈에 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습관들이 있다. 한두 번 보아서는 잘 모르지만 자주 보면 알게 된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서로의 성향과 습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도 같다. 친해지기 전에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기에 다 보이지 않지만 가까워지고 편해지면, 그제서야 서로 몰랐던 부분들까지 알게 된다. 좋은 면도, 부족한 면도 알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 깊은 이해가 생긴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을 함께 겪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비로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이런 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수강했던 헬라어 교수가 들려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그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때 사도바울에 대한 논문을 썼다고 한다. 자료도 많이 찾고 열심히 분석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바울의 삶과 신학에 대해 좋은 논문을 쓰기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학과 지도교수가 여간 깐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면밀히 따지는지, 논문을 검증받는 날이면 늘 긴장되었다고 한다. 이 지도교수 때문에 아예 논문주제를 바꿔 다른 교수를 찾아간 학생들도 있었고, 그래도 버티고 끝까지 남은 학생들 중에는 지도교수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 분노에 차 있거나, 얼굴이 빨개져서 나오는 모습을 본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바울신학에 대해서는 정평이 있는 교수라서 어려워도 지도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그동안 준비한 논문을 발표할 차례여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지도교수를 찾아 간 그는 질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것에 대해 철저히 준비를 하고 갔다고 한다. 따질 것으로 보이는 것들은 더더욱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되려 반문할 질문들도 준비를 하는 등,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찾아갔었다고 한다. 철저한 준비가 헛되지 않게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했고, 지도교수가 날카롭게 던진 의문점들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하게 연구 내용을 입증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어떤 말에도 지지 않고 모두 능숙하게 답변을 하자,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고 고개만 설레설레 젓는 지도 교수를 보며 마음속으로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바로 그때, 지도교수가 내뱉은 한마디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참담함을 금치 못하며 방을 나섰다고 한다. 지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 맞는 말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은 바울답지 않다.” 지도교수의 모든 질문에 대해 대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말한마디에는 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도교수가 자신보다 바울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십 년간 바울을 연구해온 지도교수, 그는 바울의 신학만 아니라, 그의 어법, 필체, 성격, 습관 등등, 그의 글에서 숨소리조차 느낄 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박사과정 논문을 쓰기 시작한 그가 바울을 연구한지는 불과 1-2년 남짓. 수십 년간 바울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함께 지내온 사람에게 이제 바울과 동행한지 몇 해 안된 사람이 바울에 대해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같다. 오랜 세월동안 주님과 동행한 나날들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다. 깊은 교제 속에서 쌓아온 주님에 대한 경험과 지식, 주를 아는 마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 주님과의 오랜 사귐은 이처럼 신앙의 성숙으로, 연륜으로 남는 것이다.“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베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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