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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교계뉴스] 세기언 독후감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 “한 달란트”

작성일 : 20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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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회장 이영선 목사, 이하 세기언) 8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에서

최종심에 오른 30 수상작에 선정된 6(최우수상 1, 우수상1, 장려상 4) 소개한다.



장려상  수상작 “한 달란트”

“한 달란트(박성현, 두란노)”를 읽고

김진해장로(브라질)



 미주 크리스천 신문이 매년 주최하는 기독 독후감 추천 책들의 제목을 훑어 봤을 때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좀 거슬렸다.

 “한 달란트” 란 어렸을 때 부터 항상 부정적으로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한 달란트의 주인공은 영락없이 게으른 자 곧 하나님이 저주하신 죄인으로 내 마음에 못을 박으셨기 때문이다. 틀린말이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용기로 이런 제목을 선정했는지 호기심이 서서히 오르면서 한국에 나가있는 학생 딸에게 이 책을 부탁했다. 우선 한 분이 아닌 부부 선교사님의 프로필을 대하니 막강한 이력서를 소유한 교수로써 또한 과학자로서의 신분은 이 책의 제목과는 사쁜 상반된 분위기였다.

 20달러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는 간증은 그저 때때로 자주 들은 고백이고 유학생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선 별로 큰 감동꺼리가 되진 않았다. 지구촌 여러 곳에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은 그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고 특히 노숙자들을 상대로 희생의 길을 선택한 자들은 기독교인 외에서 여기 브라질에서 가끔 접할 수 있는 현황이기 때문이었다.

 몇 쪽을 지나 어린 시절의 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섬뜻 멈춰버렸다. 파라과이! 파라과이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브라질의 이웃 나라가 아닌가! 상파울루에서 버스로 16시간이면 국경 도시인 Ciudad del Este에 도착한다. 전세계 물품들을 낮은 세금으로 브라질로 밀수하는 악명높은 그 곳에서 박선교사님이 어린 시절을 보내셨단 말인가! 어딘가 모르게 예수님의 고향 지인들과 밖에 유명 인사들이 나사렛이란 그 따위 동네에서 인물이 나올리 있겠냐는 속삭임이 내 마음속 구석에서 들렸다.

어린시절에 부모님따라 이민을 가게된 동기나 “꼬레아”라고 불리며 눈 찢는 시늉을 봐야되는 그 심정, 누구보다 내가 너무나도 격었고 체험했던 나 자신의 삶이다. 10살 때 한국에서 막 국민학교 3학년을 다니기전에 브라질로 이민 왔으니 어쩜 박성현 선교사님의 이민 초기의 생활이 나와 똑 같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선교사님의 아버님이 식료품점을 하셨다면 우리 아버지는 조그만 과일구멍가게를 하셨고 선교사님의 어머니가 몸과 영의 힘든 나날로 갑자기 쓰러지셨다면 우리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를 어떻게해서든 공부를 시키시겠다는 욕심과 오기로 결국 그토록 원하셨던 대학법대에 내가 합격하는 바로 그 날 병원 침상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한 숨을 쉬는 내 품에서 숨을 거두셨다.

 우리 삼남매중에서 공부에 좀 열심이었던 난 브라질의 검사가 꿈이었고 주위 사람들의 동의하는 말에 나 스스로도 공부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5년 공부를 가까스로 마치고 졸업식에이어 변호사가 되기위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왜 이렇게 박선교사님 학창시절의 삶이 나의 그 때 상황과 똑같을까!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의 과거를 한 걸음 한 걸음 되새긴다. 사립고등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그때 당시 브라질 이민자들의 유일한 재봉업에 힘들게 종사하시면서 형편상 공부를 포기했던 나에게 늘 미안함과 죄책감의 눈치를 비추셨다. 태현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당당했던 나의 모습이 어쩜 더 우리 어머니의 마음에 못을 박았을지 모르겠다.

 몇 년이 흘렀을까 대학의 꿈을 잊은채 그럭저럭 일과 교회생활을하던 어느 날 고등학교 졸업장을 대신하는 검정고시를 볼수있는 기회를 얻어 긴 여행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대학에 진입할 수 있는 고등교육 인증서를 따냈다.

 나를 무시하는 파라과이 사람들 앞에 우뚝 서고 가정의 경제를 염려함은 같은 시기에 비슷한 분함과 오기로 가득찬 나 자신에게 아직 걸음마의 수준에 꺄우뚱되는 믿음에 불길을 일으켰다.

 어떻게 박선교사님은 이와중에도 교회의 리더로서 더더욱 청년부 회장으로서 믿음의 자리를 굳건이 지킬 수 있었을까… 자칫 담배, 술, 도박등으로 한 인생을 송두리째 내팽겨칠 수 있었을 그 순간들을 무엇으로 막아내셨을까…공장 일을 마치고 귀가한 후 교회에 들러 저녁 9시부터 두세 시간씩 개인 기도 시간을 가졌다는 글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감히 나의 옛날 시절을 박선교사님의 지속적인 기도의 삶이랑 비교할 수 있는가! 난 말의 재능도 없고 그다지 좋은 머리의 소유자도 아닌데가 믿음 역시 별볼일없는 존재였지 않은가. 한 가지, 딱 한지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끝없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뿐이다.


 한국에서 파라과이로. 다음 이스라엘로. 유대인의 고향인 그 곳에서, 더군다나 역사적, 종교적 시각으로 불편한 팔레스타인들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모두의 구세주로 소개하고 가르치셨던 선교사님의 사명의 한계는 무엇일까? 아니, 하나님께서 이 부부에게 주신 사명에 한계가 있는걸까…

 그때 그때마다 다가온 고비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의 마 7:13-14 말씀으로 예수님을 더 잘 알아가는 축복의 통로로 받아드리고 만족해하시는 모습에 나 자신에게 놓였던 수많은 문들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


 결혼이 하나님께서 박성현, 장현경 선교사님 부부에게 약속하신 계획이라면 나의 결혼 또한 한 없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를 잃고 방황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 교회 청년부에서 지금 아내를 만나 현재 슬하에 세 딸과 손자 둘의 할아버지가 된 나는 그 어떤 영화의 시나리오보다 반전과 반전에 엽기적인 오늘의 삶을 사는 장본인일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첫 부분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끝없는 행진이었다. 예루살렘 쪽의 유대인과 베들레헴의 팔레스타인 간을 오가면 받은 사명을 감수했다면 난 전혀 관심없는 옷 장사로 새가정을 꾸려가야만했다. 내 나름대로 가장이란 책임을 완수하고자 파라과이에서 전자품을 밀수로 사들여 판매하며 아내의 돈벌이에 보탬이 되고자 원했건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한번 하나님의 손길이 나의 인생 방향을 틀어놓셨다. 박선교사님의 언어 은사는 받지 못했지만 그나마 남을 가르치는 재능을 허락하셔서 늦게 그 길을 열어 주셨다. 법대를 졸업한 후 생계를 위해 묻어버린 인문과에 대한 열정을 30년을 훌쩍 넘어 때마침 찾아온 교육학을 다시 공부하고 곧 이어 브라질 포어과를 대학원 과정을 통해 마쳤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에게 예수님을 가르치셨다면 브라질에 와 찢어진 눈의 할아버지가 현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포어를 가르침이 어찌 다르겠는가. 이 첫 걸음을 시작으로 브라질 고등학생, 성인, 어린이들까지 가르치게됐다. 언제부터 또 어디서부터 하나님의 손길이 닿았는지 미쳐 알지는 못해도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뒤를 돌아본다면 50여년을 뒤로 한 채 한국에서 부모님따라 비행기에 올랐을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 책을 거진 다 읽어내려갈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하늘의 기적을 체험한 하인들을 보았다. 다른 누구도 모르는, 오직 하나님과 하인이었던 본인들만 아는 은밀한 비밀. 이 책은 끊임없는 비밀을 삶으로 풀어내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으로 나타내는 두 선교사님을 우러러 바라볼 수 밖에 나를 거울에 비춰본다. 지금 내가 사는 이 브라질 땅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만약 눈치챘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언제 무엇으로 구체화해야할지…책을 덮기전 다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학대학원에서, 남미인들에게 그리고 노숙자들에게 다가가는 박성현, 장현경 선교사님은 나의 “다짐” 을 동사 현재로 끌어올린다. 


 서로 달라야만 가능한 “하모니”...나의 지금까지의 삶, 이 이상 더 달라질 수 있을까? 감사 노트 1. 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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