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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사랑이 넘칠 때 모든 장벽은 무너집니다’

작성일 : 202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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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사랑을 통해 일 할 때” 무너뜨리지 못할 장벽은 없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선한 일을 찾아서 그 일들만 하기에 선한 일들을 해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이미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선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은 두가지 결심을 선행할 때에 가능해 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겠다’는 결심이 그 첫번째 이고, 두번째는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 가겠다’는 결심이 선행 되어야 한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말이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 이시자 그 근본이 사랑 이시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닮겠다는 결심이 곧 나는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라는 결심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믿음을 강조한다. 아니, 믿음만 강조한다.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항상 따라오는 단어들은 성도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말들 뿐이다. 헌신, 희생, 섬김, 충성, 봉사, 출석, 참여, 협력, 헌금 등등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성도들의 속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앵무새가 뜻도 모르고 같은 말들을 되풀이 하듯, 강단에서는 학교에서 수업 강의를 하듯 믿음 이라는 단어만 반복적으로 쏱아 내고 있지 않은가?

믿음으로 주일에 가게 문을 닫으세요. 믿음으로 힘들어도 십일조 하세요. 믿음으로 교회일에 충성 하세요. 그 말에 순종했다 치자, 주일에 출석하는 성도의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날테고, 더 모여지는 헌금으로 교회 사역이 보다 원활하게 돌아갈수 있게 될 것이고, 교회에 일꾼들이 부족해 지지 않을 것 이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여기에 성도들이 ‘사랑’ 받고 있다 라는 요소를 발견할 수가 없다. 

사랑은 목적이다, 결코 수단 일수가 없다. 교회 사역의 목표,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성도 여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들은 성도들을 교회 유지, 성장, 부흥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음을 과연 부정할 수 있겠는가?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라. 단 한번도 제자들과 따르는 이들을 예수님의 사역의 수단으로 이용하신 적이 없으시다. 정녕 그렇다. 단 한번도 없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람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사랑을 부어주셨고,  결과적으로 주님의 사역이 사랑을 통과하지 않은 것은 단 한번도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을 닮아가겠다는 결심은, 바로 나도 모든 일을 사랑을 통해 하겠다 라는 결심인 것을 잊지 말자. 내가 앞으로 만나는 사람, 그 누구라도 난 사랑하겠다 라는 결심이, 위대해 보일순 있어도, 실제로는 실현 가능할까 싶은 어려운 일이다. 

그 결심 보다는 앞에서 언급한 두가지 결심, 예수를 닮아가겠다,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이 결심에 주목하며 살아가 보자. 내가 사랑의 불로 활활 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 앞에 그 누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분명히 이미 불타고 있는 나의 사랑의 불에 그도 불이 붙을 수 밖에 없다. 

주중 일하는 식당 주방에, 지난주에 후안 이라는 히스패닉 젊은 친구가 새로 일을 시작했다. 그 친구 3일째 일하는 날에 나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찌나 긴장을 하던지 하는 일들마다 실수 연발이다. 돼지고기 동파육을 EVENLY 잘라서 튀겨내어 오더를 나가야 하는데, 칼질이 서툴러서 동파육 한덩어리가 다 뭉게져서 쓸수 없게 되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동작과 표정이 굳은채로 내 눈치만 살핀다. 아마도 내가 호통을 치며 화를 낼 것 같았나 보다. 나는 누구에게나 늘 하던 대로 씨익 웃음한번 보이고, 입에 손가락을 대고 너랑 나랑만 아는 비밀로 하자는 표시를 해주고 잘못 자른 고기를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새 동파육을 꺼내서 칼질을 보여주며 찬찬히 가르쳐 주었다. 긴장했던 모습에서 점점 여유를 찾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날 일 할때는 한결 밝은 표정으로 일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터에서 만나는 히스패닉 아미고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음을 넘어서서 아주 좋은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한번도 누군가 처음 왔을때 저 친구를 사랑으로 보듬겠다 라는 결심을 한적이 없다. 하지만 일터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에 언제나 두가지 결심을 먼저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나로 인해 가게가 어떻게 해서든 좋아져야 한다는 결심과, 누구와 일하던지 나로 인해 그들의 삶이 좋아져야 한다는 심플한 결심이 그 두가지 이다. 이 결심이 결국, 사랑의 사람으로 오늘을 살겠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겠다 라는 결심과 다르지 않은 같은 결심인 것을 잊지말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힘든 문제는 다름아닌 관계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그 어떤 장벽을 어떻게 해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의 삶에 사랑이 흘러 넘치면 모든 장벽이 무너진다.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기술로만 되지 않는다. 믿음으로만 되지 않는다. 기도로만 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믿음은 힘이 없다. 힘만 들고 결국은 공허해 진다. 믿음이 사랑을 통과할때, 믿음이 사랑을 통해 일할때엔 어떤 장벽이던 무너뜨리지 못할 장벽이 없음을 기억하자.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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