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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상처와 생존

작성일 : 202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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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해 보라.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아기는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다. 이 아기가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기는 이 세상을 알아간다. 

아이는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즐거움, 여유, 환희, 창조성, 친밀성, 열린 마음, 베푸는 마음, 재롱, 희망, 아름다움, 여러가지 재능 등 정말 많은 좋은 것들의 보고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것들을 아무런 방어 없이 이 세상에서 표현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이 거절되고, 무시당하고, 비난을 받으면 그 순간 이 좋은 것들을 숨겨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친밀감을 표현했는데 그 친구가 무슨 이유에선지 그 손을 밀어버렸다면, 아이는 놀라고 당황하고 수치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아무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친밀감”을 감춘다. 그 친밀감을 표현한 것 때문에 친구로부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 세상은 친밀감을 마음껏 표현하면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상처의 경험으로 배운다. 

그리고 친밀감을 더이상 표현하지 않는다.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눈치를 봐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아무에게도 친밀감을 표현하지 않는 게 상처받을 위험이 없으니 안전하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받는 과정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많은 좋은 것들을 하나씩 숨긴다. 

이렇게 숨겨진 좋은 것들은 내면 세계에서 억압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느새 나에게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억압되어 의식되지 않을 뿐이다. 여전히 내 안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무방비 상태에서 나의 선의와 호의가 거절당하고 나의 존재 자체가 부인당하고, 상당히 조건적으로만 관심과 인정을 받았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는 연약하고 이기적인 죄인들이 만든 집단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많은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정도의 개인차는 있겠지만 이런 저런 상처를 받고 그 결과로 우리의 많은 좋은 것들을 억압해 나가며 살아간다.

풍부한 좋은 것들을 다 억압시키면서 우리의 마음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상처받기 쉬운 이 험한 세상에서 최대한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기 위한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생존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위험한 것은 피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삶이 메마르고 단조롭고 피곤해진다. 점점 무기력감을 느끼고 지치고 삶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엡1:3)들을 다 억압해 버리고 그저 하루하루 안전하게 지나가기만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한번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라. 지금 나는 얼마나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잃어버린 나의 좋은 성품과 재능들은 어떤 것들인가?

위에도 언급했듯, 그것들은 아주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숨겨진 채로 억압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신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주님이 약속한 풍성한 삶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모든 좋은 성품과 재능들을 다시 회복하고 일상의 삶에서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삶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이 안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상처를 받아 억압한 그것들을 이제 주님 안에서 완전한 안전감을 누리면서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의 능력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예수님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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