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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추억 만들기

작성일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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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며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

졸업시즌이다. 어딜가든 졸업 이야기와 포스팅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특히 첫아이 졸업식을 맞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많아 보인다. 어린 자녀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처음 경험하며 심정이 복잡해 보인다. 나도 그랬기에 이맘때쯤이면 큰딸이 졸업했을 때가 떠오른다. 특히 큰딸을 위해 준비했던 졸업 여행이 기억이 난다.

그해에 내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유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여행이어서였다. 이민생활이라 바쁘고, 빠듯하니 가족여행이라 해봐야 가까운 곳으로 며칠 다녀오는 게 전부였는데 당시 큰맘 먹고 멀리 동부로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식구 다섯명의 항공비용과 오래 집을 비우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큰 맘 먹고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커가는 아이들과 얼마 있으면 시작될 이별을 준비하는 ‘추억 만들기’ 여행이어서 그랬다. 그 첫 시작은 큰딸을 위한 졸업여행이었다.

큰딸이 고3이 되자 이제 대학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품 안의 자식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커서 한집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별 아닌 이별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문득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아빠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자녀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 말했지만 나의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잘해준 적보다 못해준 적이 더 많았고, 상처 준 일들도 적지 않았다. 첫아이라 엄하게 키웠고, 참을성 없는 아빠의 모난 성격 때문에 많이 혼나며 컸다. 예뻐했지만 잘못 키우면 안된다는 불안감에 지나치게 아이를 잡은 적이 많았다. 그래서 간혹 딸의 얼굴에서 그늘이 보일 때면 마음이 아팠다.

이제 와서 지난 상처들을 꺼내어 일일이 사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아무 노력도 하지않고 보낼 수도 없었다. 머지않아 완전히 자립할 아이와 가깝게 보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뒤늦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나쁜 기억들은 어쩔 수 없어도,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어, 그 기억들이 오래 남기를 바랐다. 그래서 살다가 힘든 날을 만나면 무섭게 화내는 아빠가 아니라, 마음을 열 수 있는 아빠가 생각나 언제든 집으로 찾아올 수 있기를 원했다.

다 큰 숙녀에게 어렸을 때처럼 스킨십을 할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가족과 함께 가까운 쇼핑몰에 가서 외식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큰딸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꾹 참고 다른데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며, 점심도 먹고 싶은 데로 가자며 좋게 설득했지만, 이런 아빠의 노력을 고마워 하기는커녕 되레 짜증을 내는 딸을 보며 결국 내가 터져버렸다. 그 동안 쌓였던 게 한꺼번에 터지면서 차 안에서 온갖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분위기는 최악이 되었다. 길가에 차를 세워 큰딸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 질렀고, 아이는 잔뜩 긴장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내가 말렸지만 나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딸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보라고 윽박지르자 딸은 "I'm sorry for disrespecting you" 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하며 틀에 박힌 사과를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 순간, 딸에게 고작 몇 번 잘해줬다고 이렇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 동안 이런 식으로 딸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순간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딸을 끌어안고, "I'm sorry. I am so sorry" 를 계속 반복하며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리둥절했던 딸도 같이 울며 자기가 잘못했다며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렇게 둘이 한참을 끌어안고 울었다. 차 안에서 엄마와 동생들도 같이 울며 우리가족은 길가에서 눈물 바다가 되었다. 이 일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서 큰딸이 내게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아빠의 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아이들과 ‘추억 만들기’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 날 밤 큰딸이 "I'm so happy" 라고 혼잣말 하는 것을 들었다. 비록 맛있는 시카고 피자를 먹으면서 신이 나서 한 말이지만 내게는 충분한 보상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은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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