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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0 <문화속의 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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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적응과 도전이 빠를수록 목표한 바 성장을 이루고 삶의 대처 능력이 향상된다

사람은 문화 속에 산다. 문화는 단일 문화 또는 복합 문화 간에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상호관계의 총체적 체계이고 하나님의 천지창조 아래 포함한 모든 산물과 행위이다.
다소 복잡한 다문화는 사람에게 문화 충격을 안겨준다. 사람 마다 가치관 및 정체성이 다르고 환경의 서로 다른 이질감으로 스트레스를 낳고 심하면 탈진으로 이어진다. 단일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각자가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기까지 도전과 변화가 필요하다.
문화속의 탈진은 두가지를 이해하면 긍정의 관점을 발견하기가 수월하다.
첫째, 문화 충격이다. 자문화와 타문화의 다른 점에서 오는 충격은 정체성을 혼란 시키고 정신 뿐만 아니라 육체와 영적 타격도 불러온다. 토마스 홈즈와 마수수(Thomas Holmes and M. Masusu)는 생활의 변화로 생기는 스트레스를 측정했다. 배우자의 죽음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이혼 73, 결혼 50, 직업 교체 36, 생활 환경의 변화 25, 거주지 이동 20, 함께 사는 가족 수의 변화 15, 식사습관의 변화 15를 나타냈다. 스트레스 150점 미만의 1/3정도가 2년 내에 큰 병이 걸릴 것이고 300점 이상 되는 4/5 정도는 향후 2년 내에 심각한 건강문제가 발생한다는 연구이다. 타 문화권의 신임 선교사는 보통 400점 이상의 스트레스를 쌓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경고를 울린다.
폴 히버트(Paul G. Herbert)는 이중문화를 만드는 그 자체도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이중문화는 단일문화 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다. 이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자국을 떠나 언어장벽, 생활환경의 변화, 관계 갈등과 단절, 기후, 음식, 심리, 문화 장벽, 의사소통 부재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 및 각종 질병 등으로 악화된다. 다양한 스트레스가 장기화 되면 에너지 고갈로 탈진한다.
둘째, 문화 적응이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문화 적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질적문화 적응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이고 적대감 및 부적응의 의사소통의 부재로 어려움을 호소한다. 사회적 고립 또는 제약으로 심리 및 정신의 스트레스와 탈진을 유발한다.
문화 자체가 기하학적으로 복잡하고 잠재적 스트레스가 높지만 부정적 시각 보다 긍정적 영향이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화 충격이나 문화 적응의 스트레스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거나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지만 사람의 내면은 문화 적응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은 역동적 스트레스를 긍정의 자세로 수용하여 겸손과 존중을 배우고 공감하며 새로운 통찰력을 발휘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속한 문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과 친화하며 생존 기술을 연마한다. 자 문화와 타 문화 간에 상호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이 높아진다. 문화 적응과 도전이 빠른 사람은 목표한 바 성장을 이루고 삶의 대처 능력이 향상된다. 결국, 능동적 문화 적응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균형감각을 회복하며 고난을 승리로 이끈다.
김영윤의 나선형 그래프를 생각해 보자. 동그라미의 연속인 나선형은 낮은 점의 퇴행과 재생을 통해 앞으로 상향한다. 스트레스와 적응을 반복하면서 탈진을 극복하고 성장한다.
파킹 설계의 혁명가로 불리는 하형록 목사님은 2012년 플로디가 주차협회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린시절을 목회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부산 나환자촌에서 살았다. 친구들은 그가 나환자 촌에서 산다는 이유로 돌을 던지고 따돌림을 하였다. 그는 미국 이민을 와서도 인종차별과 인생의 쓴 뿌리를 경험했다. 곧 문화 충격과 문화 적응 스트레스를 받았다. 성공을 다짐했지만 교통사고로 심장이식을 두번이나 했고 약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마음을 새롭게 했다. ‘남을 위하여 살자.’ 인생의 어려운 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새롭게 도전하여 나선형의 성공이 있었다. 결국 문화를 뛰어넘는 성장을 보여줬다.
문화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을지라도 사람은 문화를 지배하고 문화 속의 탈진을 극복하며 더 나은 미래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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