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1-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8 <윌리엄 제임스 홀 일가>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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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1-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8 <윌리엄 제임스 홀 일가>

작성일 :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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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일가족은 조선을 향한 열망과 사랑의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향하여 만세를 외쳤다

핍박 가운에 밀알로 썩어져 조선을 사랑한 일가를 본다.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 Hall)는 평양 최초의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1890년 뉴욕시 메디슨가 빈민의료선교에서 만나 1891년 12월 조선 땅에 도착했다. 이들은 그 이듬해에 한국최초의 기독교식 결혼식을 올렸다. 닥터 홀은 평양선교를 위해 책임자로 임명되어 광성학당과 병원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조선에 온지 2년째인 1894년 7월 청일전쟁 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치료하다가 자신이 병에 감염되어 숨을 거두었다. 

로제타는 남편 없이도 여성선교를 감당했다. 그녀가 1890년에 도착하여 진료를 시작한 첫날 4명으로 시작하여 3년간 1만 4천명을 치료했다. 남편이 순직한 후 1894년 평양에 병원을 세웠고, 1894년 평양 여맹학교, 1898년 광혜여원, 1900년 평양외국인학교, 1909년 농아학교, 192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와 인천 간호전문보건대학 등을 설립했다. 그녀는 조선인 에스더와 박유산을 의사로 키웠고, 오봉래에게 점자를 가르쳐 특수교육 교사로 키웠다. 로제타는 43년간 조선을 위해 사역했다.

로제타의 외아들 셔우드 홀은 의료선교사가 되어 조선 최초의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했다. 그는 결핵 퇴치 자금 마련을 위해 조선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셔우드 홀과 아내 메리안 홀은 15년간 헌신하다가 1940년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을 당했다. 닥터 홀의 일가족이 조선을 위해 헌신한 기간은 73년이었다.

필자는 닥터 홀 일가의 탈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로제타는 장질환을 앓았고, 닥터 홀은 기침으로 시달렸으며, 온 가족이 이질을 앓기도 했다. 홀은 의사, 간호사, 약제사, 안내역까지 혼자 맡아 일했기 때문에 고된 사역이었다. 평양에서 밤낮 환자를 치료해주다가 병에 걸렸다. 발진티푸스와 고열과 온 몸이 마비되어 결국 순직했다. 로제타는 여성선교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쉴 틈도 없이 치료함으로써 힘겨운 사역이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로제타는 남편을 잃고, 4살 된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싸웠다. 그리고 영적 탈진도 경험했다. 가족의 절반을 잃음으로써 인생의 아픔과 두려운 시련을 겪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겨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교훈도 희미 해졌다. 셔우드 홀은 결핵요양소를 운영하다가 스파이로 몰려 형을 언도 받는 사건으로 조선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닥터 홀의 일가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초조와 공포감, 그리고 심리적 압박도 많이 경험했다.

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당시 천주교들이 처형을 당하던 시기였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조상을 숭배하는 관습과 힘든 투쟁의 시간이었고, 기독교 포교자는 사형한다는 법 때문에 공포와 위협을 당했다. 외국인들은 조선 아이들을 잡아먹고 약으로 쓴다는 소문이 퍼져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평양은 가장 문란하고 더러우며 폭력배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10만 인구 중에 외국인은 닥터 홀 가정 뿐이었으므로 언제 폭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청일전쟁은 시체들이 널리게 했고, 악취와 몸서리 쳐지는 잔해를 낳았다. 선교사는 시험 이상의 고통과 시련을 경험했다.

닥터 홀 일가의 탈진회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닥터 홀의 지혜로운 대처방법이다. 문화충격과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 보다 어려움을 즐겁게 대처했다. 둘째, 닥터 홀의 굳은 신념과 헌신이다. 닥터홀은 조선인들의 적개심 앞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의료사역에 헌신했다. 셋째, 로제타의 약속과 헌신이다. 가족을 잃은 상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사역을 감당할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네 번의 전쟁을 체험하면서도 여성사역과 병원 및 학교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했다. 넷째, 셔우드 홀의 사랑과 친절한 헌신이다. 그는 원수가 아버지 홀을 죽이려 했고,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던 원수 같은 집안의 아들과 손자를 폐병과 결핵에서 치료해줌으로써 그의 가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기쁨을 누렸다.

윌리엄 제임스 홀은 일생의 사역이 짧은 듯 했지만, 가족들의 선교사업에 길을 다져주었다. 그의 일가족은 조선을 향한 열망과 사랑의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향하여 만세를 외쳤다.


  • 김 은 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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