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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두 번 고난 당하신 예수

작성일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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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신학교를 다닐 때였다. 복음서 강의 시간이었다. 마침 부활절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날 수업은 신학공부 보다는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 묵상하고 교회에 돌아가서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교수님은 로마의 가장 가혹한 형벌인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이 겪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형벌의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당하신 수많은 잔인한 고문과 끔찍한 고통을 생각해보며 모두 조용해졌다. 그 장면을 머리 속에 떠올리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데 문득 한 학생이 교수님께 참으로 뜻밖의 질문을 했다. “정말 예수님은 아셨을까요...?”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잠시 당황한 듯 말이 없다가 이내 침착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적 근거로 예수께서 그가 당하실 일들을 모두 알고 계셨다는 것을 설명하셨다. 일부 학생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걸 정말로 몰라서 묻느냐는 듯이 그 학생을 쳐다보았다. 주일학교 아이들도 알고 있는 이 기본 신학을 정말 신학 대학원생이 몰라서 질문한 것일까. 그 학생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내가 아는 이 사람은 절대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어이없는 질문을 한 것일까. 그 이유는 신학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생각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당할 일을 몰랐다면 모를까 어떻게 알면서 그 고통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겪으려 할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드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문득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한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잘못된 질문이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질문을 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예수께서 당하실 고난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알면서도 선택하신 것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 가사를 쓴 사람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예수님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가 막혀서 그런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이 당하실 일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예지의 능력으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미 아셨고 정확하게 예언도 하셨다. 베드로가 어느 시간에 몇 번을 부인할지, 십자가에 어떻게 못박혀 죽을지 이미 아셨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도 미리 아셨다. 마지막 만찬에서 “이것은 나의 살과 피” 라 하시며 자신의 살이 갈기갈기 찢기고 피를 쏟으실 것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고통받고, 어떻게 죽으실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어날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고, 모두 조금도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치 경험하신 것처럼 일어날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하신 것을 볼 때 죽음의 공포와 고통의 정도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알고 당하는 고통은 모르고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주사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주사 바늘이 몸을 찌르고 들어올 거라는 두려움이 공포를 유발하고, 당할 위치와 시간을 예측할 수 있기에 온몸의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어 고통이 더 가중되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의사가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주사를 놓을 때 생각과 시선을 분산시켜 집중을 방해하고 주사를 넣어 아이의 고통을 줄여주려는 이유가 그렇다. 모르고 당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미 당한 후에는 통증은 남지만 앞으로 겪어야 한다는 공포는 없기 때문이다.  심인성 통증이란 증세에 의하면 생각만으로도 고통을 유발하는 의학적인 현상도 있다.


 힘든 일을 또 해야 할 상황을 통틀어 당사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이 겪으신 것이 그와 같다. 예지의 능력으로 당하실 고난을 한번 겪으셨고, 다시 또 한 번 몸소 겪으신 것과 다름이 없다. 


 또 다시 부활절을 앞두고 있다. 예년처럼 나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때이다. 사람이 한 번만 겪어도 끔찍한 고통을 이미 경험한 것과 다름없이 아시면서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겪으셨다는 그 사실은, 나를 살리기 위해 하신 일이 내가 아는 그것 이상이란 걸 알게 해준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의 무게를 더 깊게 생각해보게 한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은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마 20: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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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목사 

choyoungs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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