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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민수 목사의 피시전도법 - 과거를 답습하지 말자!

작성일 :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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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착한 일인 복음 하는 일
전도 방법을 찾아 즐겁게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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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보다는 복음을 찾아 헤매야 하는 큰 백화점과 같은 교회에 데려다 놓으려고 한다. 내가 만난 예수님 때문에 내 삶과 가치관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전도의 목적이다. 소개받은 샴푸나 비누를 백화점 안에서 찾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그 넓은 백화점 안에서 자신이 소개 받은 제품을 찾기라도 한다면 다행이지만, 큰 백화점의 화려함 속에 혹은 다른 여러 마케팅 전략에 속아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라도 옮긴다면 소개한 사람이나 소개받은 사람에게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도들은 전도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또 전도에 필요한 능력을 은사로, 달란트로 받았다. 물론, 각자가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다르지만, 모두가 적어도 한 달란트 이상은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복음을 전하고 전도할 수 있다. 백화점에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경험한 것을 똑바로 전해 주어야 한다. 책임이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그 다양한 방법 중에서 나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고 또 배워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성도 스스로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따라 전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그저 교회에 빠지지 않고 잘 나오고 교회 일이라면 시키는 대로 잘하고 헌금 잘 내면 믿음 좋은 성도라고 가르치면 안 된다. 제자가 되어야 하고, 제자가 되어 다른 제자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낚시 전도법에서는 이 다양한 전도의 방법 중에서 가장 본인에게 맞는 전도 방법,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정리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착한 모습만으로도 주변에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사고만 안 쳐도 하나님이 욕먹지 않는 세상이다. 믿음이 있다는 성도들이, 심지어 목사와 교회들이 앞다투어 사고를 친다. 거짓말도 잘한다. 돈을 좋아한다. 사람 앞에 냄새나는 것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전도는 커녕 오히려 교회와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다. 특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목사와 교회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과거에 화려한 이력이 있고 수많은 성도가 있고 자랑거리가 많다고 해도 오히려 전도를 방해하고 전도의 물결에 역행하고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책임을 물게 될 것이다.


 요즘은 성도 각자가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사는 것만으로도 수동적인 의미에서 전도에 동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성경 말씀대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전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우리의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착한 일 가운데 가장 착한 일은 구원과 연관되어 빛 되신 주님을 전하는 일이다. 이 일이야말로 예수님께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착한 일이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 그것이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전도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 보았다. 그런 경험 속에서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욕먹는 것을 자주 보았다.


 성도들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목사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욕을 먹는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바르게 행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전할 수 있다. 그분의 이름을 높여 드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착한 일인 복음을 보여주고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이나 기업에서 하면 욕먹는 일들을 버젓이 한다. 실상은 전도 길을 다 막으면서도 잘한다고 여기며 산다. 우리 모두 참 뻔뻔한 것이다.


 전도하기 위해서 약한 자들과 함께 약한 모습으로 동감하고, 함께 느끼고, 동행하는 것, 이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전도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복음에 참예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의 다양성이다. 이 복음의 다양성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가 모두 다 전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도는 특정한 사람, 혹은 부류만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전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전도할 의지가 있는가? 진심으로 전도하고 싶은가?


 만약 특정인에게만 전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예수님의 대사명은 불완전한 명령이 되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한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 모두가 전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믿기 바란다. 지금 당신은 가난한가? 가난하다면 전도할 수 있다.


 돈이 많은가? 그럼 돈이 많아서 전도할 수 있다. 직장이 있고 일이 너무 많은가? 그렇다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전도를 잘할 수 있다. 직장이 없어서 놀고 있는가? 직업이 없어도 전도할 수 있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는가? 그럼 그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전도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다 할 수 있도록 주님이 설계해 놓으셨다. 이것이 전도의 혁명이고 전도의 파워다.


 우리는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전도 방법을 찾아 즐겁게 전도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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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수 목사

방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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