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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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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환란의 바다일지라도 감사로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1오늘도 변함없이 새날 주시고 아침에 기상할수 있는 건강주셔서 감사합니다.2 오늘의 암송말씀은 시120: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입니다.평탄할때보다 환난이 닥쳐올때의 부르짖는 소리가 제대로 나올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맛볼수 있으니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환난의 바다에 던지시는 것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3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고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외치긴 하지만 당혹스럽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실때가 있습니다. 이런 정황속에서도 잘 견디기만 하면 전에 누려보지 못한 기쁨을 누릴수 있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4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은 당신의 삶의 기로에서 선택할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나타날수 있지만 스스로 죄인의 옷을 입고 십자가위로 가셨습니다.나에게도 이런 선택의 특권을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실까를 찾아 나서게 하심 감사합니다.5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순간 주님안에 들어가게 되기에 주님과 하나되는 기쁨을 누릴수 있으니 좀더 철저히 순종할것을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교회안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부쩍 증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인생이 막 태어나서부터 죽기전까지 각각 특징을 가지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 들면서 이 시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할때 노년기는 용서와 화해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남을 용서하기에 앞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기 보다는 자신에게 찾아 먼저 자신을 용서해야 남도 용서를 할수가 있습니다. 영향력있는 어른이 되어갈수 있으니 노인으로만 그치지 말고 어른이 되기 위해 새롭게 도전하며 감사를 드립니다.7 이스라엘 왕들을 보면 처음엔 우상을 철폐하고 하나님만 섬기도록 통치를 잘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들도 있었지만 마무리를 할땐 욕심의 극치로 달려가 결국 하나님의 버린바되는 안타가운 왕들의 역사를 볼때마다 재결단을 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8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 지기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별기도입니다. 읽을때마다 가슴이 뭉클해 지곤 합니다.하나님이 아들과 성령이 하나됨 같이 우리도 주안에서 하나되기 위해 간곡히 기도하는 내용을 읽을때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또한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하심 감사를 드립니다.9 노인이 된다는 의미를 알고나면 노인이 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 할일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노인이 되느냐가 더 간절한 바람입니다.노인의 특징은 지혜요 기다릴줄 아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이 되는 것을 너무 슬프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통증속에서 절제의 실력이 점점 커지는 특혜도 주셨으니 날마다 감사를 드립니다.10 오늘도 지구촌 구석에서 나 홀로 위로받고 싶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모님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가셔서 참된 위로를 해 주실것을 간구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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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사순절,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마다 사순절을 맞이하기 전에 절기를 위한 치밀한 준비에 임합니다. 가을부터 관련된 설교자료와 심방, 집회 일정을 신중하게 챙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순절 절기 자료를 편집해서 몇 교회와 선교지에서 공동교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마치고 선교지의 영혼들에게 보급하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은 나 자신이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해마다 40일 사순절 큐티 교재를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역에 필요성을 느끼고 자원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작업이 수렁에 빠진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울고,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해 무명한 나 좀 도와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음이 터져서 울다가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 지고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으며 말씀속에 사순절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16대 링컨 대통령은 ‘나는 울면 안되기 때문에 웃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남북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의 환경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둘로 갈라져 서로 죽이고 죽어가는 전쟁의 비극속에 살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눈물이 없는 것보다는 눈물많은 인생이 오히려 더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눈물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애통, 회개, 기도, 위로, 기쁨 등을 나타냅니다. 눈물은 고난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눈물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위로와 치유, 영적 성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흘리는 눈물,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통해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아시며, 우리의 눈물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 눈물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수많은 믿음의 기적과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민 생활 속에서 눈물은 필수요소입니다. 울어야 삽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들통이 났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슬플 때에 맘껏 울어야 삽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장아장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도 악쓰고 울어댑니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와서 끌어않고 위로해 주며 다독입니다. 걸린 돌을 대신 뻥 차고 혼내줍니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하는데 어느 부모가 눈물 없이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어느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면서 맨정신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까? 딸을 바라보며 두 손을 잡고 흘리는 그 눈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엄마의 눈물은 눈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이고 사랑입니다.하늘의 아바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체면 차릴 것 없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부르시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으십시오. 문제를 아뢰고 해결을 받으십시오. 속상함을 토하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우리 주만 믿으면 구원함을 얻으며 영생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야로 흘리신 눈물의 기도,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눈물은 바로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우리를 영원천국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초청장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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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3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치유의 시작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최근 한국에서 몇 명의 젊은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이 볼 때 화려하고 엄청난 인기와 수입으로 늘 행복할 것 같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다. 뉴스를 통하여 듣고,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죽음 뒤에는 각각의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며,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발언, 일반 대중의 무차별적인 공격, 그리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들을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교회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한다.연예인들은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수입, 경쟁적인 방송 환경, 그리고 단체 생활로 인해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하며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지속적인 경쟁 속에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작품 속 캐릭터와 실제 자신의 괴리로 인한 정체성 혼란도 심각한 문제다. 특히 그들이 법을 어기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경우, 무차별적인 공격은 견디기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높은 공적 자의식으로 인해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이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된다.연예인 자살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도 문제다. 연예인의 죽음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튜버들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며, 이는 사회적 논의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예인들은 공인으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한 인간이며, 대중의 이해와 보호가 필요하다. 기독교계 역시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연예 산업이 보다 도덕적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공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모든 교회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들과 관련된 교회는 연예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압박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제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는 심리적 지원과 회복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심리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독교적 가치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또한, 연예인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들은 직업 특성상 고립되기 쉽기 때문에, 교회가 연예인들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서로 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중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멘토링과 직업적 윤리 교육도 중요한 역할이다. 연예인들에게 건강한 가치관과 직업 윤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독교적 멘토링을 제공하고, 연예인 선배들과 신앙적인 리더들이 멘토가 되어 직업적 고민과 개인적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교회는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대중과 미디어의 태도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건전한 미디어 소비 문화를 장려하고, 연예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공적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연예인들을 위한 긴급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예인들이 즉각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 핫라인을 운영하거나 관련 기관과 협력해야 한다.연예인의 자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보도,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발언, 대중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연예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이들이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고, 건강한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독교적 가치 속에서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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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8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5- 존 로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스트레스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심리적 기제로서 스트레스 대처반응에 따라 디스트레스(distress)와 유스트레스(eustress)를 유발한다. 스트레스 경험에 따라 박탈감과 탈진에 이르기도 하고, 반대로 매우 유쾌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스코틀랜드에서 선교사로 파송 되어 거의 40년 동안 중국 만주와 한국 개신교 교회에 이바지 하였다. 그는 게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지만, 영어와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남달랐다. 11개 언어를 구사했고, 성경번역과 주석에 업적을 남겼다. 특히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신양성경을 번역하고, 자립과 자기 전파와 자치에 중점을 두었으며, 선교 이론과 실천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필자는 로스의 탈진을 다음과 같이 발견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는 한글 신약성서 번역을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번역자 팀은 수년에 걸쳐 구성원이 바뀌었고, 우리가 아는 이름은 일부일 뿐이다. 다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로스였지만, 한 사람이 제2외국어를 배우고 번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로스는 스튜어트(M. A. Stewart)와 결혼하여 1872년 8월에 산둥반도 엔타이 선교지에 도착했다. 부인은 1873년 2월말에 아들 드러먼드(Drummond)를 낳고 얼마 후, 소천 했다. 아내를 잃고, 상심이 컸을 터이다. 다른 심리적 압박은 한글 신약성서 출판을 위한 재정 문제였다. 스코틀랜드 국립성서공회는 본문의 인쇄 활자를 만드는 비용만 제공했고, 실제적 비용은 기독교 자선가를 찾아 기부로 충당했다. 1874년은 만주에서 고려문을 방문했다가 파견된 스파이로 오해를 받았고, 1880년대 초에는 해외 선교위원회 및 모교회와 긴장 상태를 일으켰다. 그가 한글 성경번역과 학술연구로 인해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듯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합 장로교 신학관의 학생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사용하며, 특정 부동산을 구매한 것도 갈등의 문제였다. 비난을 받은 그는 사임을 고려할 정도였다.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당시 조선은 외국인과 교류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었다. 조선인이외국인을 섬기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모든 친척이 감옥에 갇히고, 몇몇은 참수될 상황이었다.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인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고 배부했던 것은 많은 어려움을 감수한 일이었다. 복음서가 배포되던 때, 조선의 수도에서 혁명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갇혔다. 개종자들은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조선의 참담하고 암담한 상황이었다. 또한 조선의 겨울날씨는 2피트 눈이 쌓여 몹시 추웠고, 복음을 가지고 고개를 넘기에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좁고 거칠었으며, 여름은 습했다. 로스의 탈진 회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과도한 역량을 발휘한 뒤 새로운 충전을 위해 휴가를 떠났다. 그는 선교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1879년 3월에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중에도 한글 번역이 출판되도록 하는 노력과 역사서를 출판하기도 했지만, 쉼으로 새로운 충전과 도전이 되었을 터이다. 둘째, 복음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열정이다. 아내 사망의 슬픔에서 일어나 언어공부에 집중했고, 선교사업 계획을 세웠다. 그는 선교본부 편지에 조선의 쇄국정치는 무너질 것이고, 천성적으로 순수한 종교적 성향 때문에 기독교가 급속히 퍼져 나갈 것이며, 새 민족과 새 나라와 새 언어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일부 성경이 불태워지고, 나머지는 압록강에 던져졌을 때, 압록강을 마시는 조선인들은 생명수를 얻겠고, 불에 탄 성경재는 조선교회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로스는 열악한 상황에도 복음의 소망을 놓치지 않았다.셋째, 조선의 문화 충격을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한글로 신약성경을 번역하며,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 결과, 번역을 도와준 조선인과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조선인 스스로 첫 교회를(소래교회) 세우는데 영향을 미쳤다. 넷째, 한글 성경번역을 위해 여러 명의 조선인 동역자들을 만난 축복이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믿는 조선인들이 번역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번역은 1882년 한글 ‘예수셩교전서 누가복음’과 1887년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다섯째, 화합의 영성이다. 1874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선교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선교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여 에큐메니컬한 노력에 헌신했다. 로스는 여러 스트레스와 탈진의 국면에서 유스트레스로 전환하여 탈진을 회복했다. 탈진을 경험했을지라도 탈진의 신호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바라보는 노력은 회복 탄력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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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교회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下)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AI와 교회의 미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AI는 학교 교육에서 보다 밀도있게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맞춤형 교육으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부분으로 자기주도 학습을 위해 최적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교회에서도 교육적인 도구로 활용할 때, 학생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큐티를 구성하며 좀더 깊고 실제적인 말씀 나눔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단순한 주입식 학습이 아닌 자기 주도형의 신앙생활이 가능하기에 이런 장점을 극대화 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신앙 지도가 함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AI가 교회사역을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으려면, 교회는 신학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를 활용할 때에는 신학적으로 검증된 자료인지를 분별하도록 돕고, AI가 신앙적 가치관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목회자의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신앙적으로 건강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AI와 인간 목회자가 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AI는 설교 준비, 성경 연구, 상담 보조,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목회자와 교사는 AI가 할 수 없는 영적 지도와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사역을 강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AI를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이를 통해 복음 전파와 신앙 교육의 새로운 기회로 삼을 때, 교회는 AI 시대에도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결론: AI를 통한 목회 혁신,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이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성경연구와 설교 준비, 신앙 성장과 교육, 복음 전파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AI를 활용한 온라인 성경 공부 플랫폼은 개별 성도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개인의 신앙 여정에 지속적인 도움으로 효과적인 신앙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교회 내 소그룹 활동에서도 AI를 활용한 성경 공부와 말씀 나눔을 통해 구성원들의 영적 필요를 파악하고, 맞춤형 돌봄을 실현할 수 있다.AI는 교회의 행정과 목회를 지원하며,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설교와 선교사역등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지에서 AI를 활용한 번역 시스템을 통해 현지 언어로 된 성경 교육이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또한, AI 기반의 신학 연구 도구는 모든 목회자들이 더욱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해준다.살펴본대로 AI는 세상을 변혁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과 영성은 AI의 기술이 아닌 인간 목회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되, 그 과정에서 신학적,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며 균형 잡힌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AI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는 더욱 혁신적인 방식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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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4 - 김광근 목사의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 삶"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로마서 12장 12절 삶에는 기쁨과 도전이 공존합니다.때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바울의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권면은, 단순한 감정적인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실 선한 계획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나옵니다현재의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미래를 신뢰할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우리에게 인내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믿음의 길은 때때로 기다림을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늦지 않으시며 최선의 때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오늘도 소망을 붙들고 기뻐하십시오하나님께서 모든 순간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우리의 삶은 더욱 단단해지고,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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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결국은 사랑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일터영성 이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것이 2년 가까이 되어간다.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도 세월 속에서 변화를 마주할수 밖에 없다고도 할수있다.무슨말인가 하면, 나이를 먹게 되고 몸은 2,30대의 최고 정점을 찍고 쇠퇴기로 점점 향하여 가는 것을 막을수 없다는 사실이다.목회자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36년째를 맞이하는데, 그 동안 관찰 되어 온 것 중 정말 놀랍도록 단순한 사실 한가지가 있다.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와 건강상태를 영적인 상태와 함께 간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쉽게 말하자면, 젊은시절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엔 영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기이며 영적인 수준이 가장 정점을 이루는 시기라고 생각들을 한다.나이를 먹으며 에너지도 떨어지고 몸도 젊은 시절 같지 않게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노력 또한 그 시기에 맞물려 멈춰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60대, 70대 이상의 크리스찬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겠다 라는 결심을 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헌신했던 사역들, 열매가 있었던 사역들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 일쑤고, 지금은 영적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시냐고 여쭈어 보면, 이제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뭘 할수 있겠는가? 반문 하면서, 이제는 그저 예배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나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들 말한다.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연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것을 정말 하나님은 원하실까?세미나와 집회를 인도할때에 필자가 택하는 주제는 언제나 예외없이 영적성장 이다.이 칼럼에서 모든것을 말하기엔 너무 제한적이지만, 그저 몇가지만 말해보기로 한다. 영적성장의 핵심은 ‘일, 사역’이 아니라 ‘됨’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엄청난 하나님의 맡기시는 일들을 잘 해결하고 감당할수 있다 라는 페러다임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영적성장은 의외로 그 목표나 너무나도 간결하고 명료하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의 어떤것을 닮아야 하는가?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 사랑의 사람 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2천년전 십자가의 사건을 클라이막스로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한다.사랑의 사람이 되겠다는 영적성장의 목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 목표임을 잊지말자. 오늘의 칼럼은 더 이상의 설명 보다는, 며칠전 적어 놓았던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가름하기로 한다.아파본 사람,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 건강함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지 않는다. 아픈 이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불우했던 사람, 지인 중 정말 불행한 사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행복해도, 그 행복함을 대놓고 자랑하고 떠들어 대지 않는다찢어지게 가난해 봤던 사람, 가난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요함을 여기 저기 마구 떠들어 대며 의시대지 않는다자고로, 자랑이라 함은, 모두가 함께 기뻐해 주고 박수쳐줄 만한 일 이어야 가장 바람직한 것 일텐데, 작금의 사람들의 자랑 이라는 것을 보고 듣다 보면, 대부분은, 그래, 그래서 너는, 너네는 참 좋겠다…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아픔과 고난을 진정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는 짓, 쏟아내는 말 마다 어쩜 그리 밉상인지. 정말 너를 위해주는 인격자는, 결코 떠들어 대며 나를 자랑하지 않는다.예수님이 그러셨다. 단 한번도 그 무엇이든 자랑하신 적이 없으셨다. 오직 한가지 자랑하신 것은,자신이 사랑하신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존귀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 자랑하셨다. 얼마나 존귀히 여기셨으면, 십자가를 코 앞에 두시고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 13:1) 라고 기록되어 있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순간에도, I am with you always! (Matt 28:20) 라고 말씀하셨을까. 서로가 서로의 자랑이 되는 커뮤니티가 바로 천국이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것들은 전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니, 결국 다 지나갈 것들에 시간과 정력과 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영원히 남을 것에만 모든것을 쏟아부어라. 결국은 사랑이다. 가진것을 자랑하기를 멈추고, 자랑하기 위해 모으는 것을 멈추고, 지혜로운 말과 사랑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고 살아보라.  당신이 선 그곳이 천국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될 터이니.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랑의 사람임을 확신하고, 내가 밟고 서 있는 그 어느곳 에서도 예수님 처럼 사랑의 사람으로 기꺼이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하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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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하나님의 속깊은 마음에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1 오늘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 새로시작하는 하루를 기대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2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알려주신 일들을 놓고 계속 꿈만 꾸고 있다보면 하나님도 아무일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맛볼수 없으니 여기에는 단단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기에 이 믿음을 구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3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일들을 하라고 하실때가 있습니다. 낯선 세상을 향하여 한발자국 떼라고 하실 때 무조건 순종하는 자에게만이 주시는 축복이 있으니 나에게 이런 명령이 무엇인가를 또 생각하며 찾게 하심 감사합니다.4 자녀들을 향한 기도가 응급으로 올 때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부르짖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5 하나님은 우리와 모든 일들을 함께 하고 싶어서 나를 부르시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까지도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이럴때 나를불러 주시는 하나님은 고생스런 길로 가자고 하실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이 나를 사랑하는데서 온다는것을 알수록 오히려 힘들어서 헉헉 되면서도 순종할 마음 주시니 감사가 넘칩니다.6 오늘은 북가주 에이레네 방에서 말씀을  전하는동안 얼마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였던지 사모님들로부터 전보다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수 있어서 몇배의 축복을 느끼는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7 오늘의 암송구절인 수21:4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말씀대로 세월은 흘러가 과거의 상처도 점점 잊어져 가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때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루어 주시는것을 볼때마다 새삼 하나님의 속깊은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8 또한 이사야 42:9 에는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 말씀이 오늘따라 눈에 확 들어오면서 가슴 깊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동안 되어지는 사역에 놀랄때가 많았는데 이것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안에 다 들어있음을 발견하고나니 앞으로 새일을 행하실 하나님이 더 깊숙히 내 마음안으로 들어오셔서 속삭여 주시니 가슴이 뛰면서 감사를 외치게 됩니다 9 두아들을 놓고 결국 오랜 투병끝에 소천하신 사모님을 생각하면서 두고 간 두아들을 잘돌보겠다고 하시는 선교사님의 약속의 말씀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면서 함께 짐을 지고 갈 마음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10 그외에도 알게 모르게 사랑하던 이들을 세상떠나 보내고 슬픔에 빠진 채 오열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부어지기를 바라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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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믿는 구석!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부산의 한 청소대행 업체 이름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름이 ‘믿는 구석’입니다. 구석 구석까지 믿음을 주는 믿는 구석이라고 회사를 소개합니다. 그만큼 청소분야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로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고 확실하게 일한다는 당찬 표현입니다. 이름이 참신하고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에 83세가 넘으신 이영숙 권사님이 35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서 무척 긴장하고 불안하다며 근심하고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고된 이민살이를 하느라 한국에 갈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방에서 변화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시고 기도를 받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출국하기 전날 전화를 드리니 밝은 목소리로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길래 ‘어떻게 마음이 평안해지셨느냐?’고 하니, “우리 손녀 딸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권사님에게 믿는 구석이 생긴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란 긴박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거나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대상 혹은 그 무엇을 말합니다. 믿는 구석이 마련되어 있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렵고 긴장했던 모든 일들로 인해서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는 구석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안전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불안해하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는 구석이 없는 사람, 믿을 구석이 없는 사람, 믿는 구석을 모르는 사람은 매일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에 떨며 긴장된 삶을 살아야 하기에 인생이 비관적이고 소망을 모르기에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점점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구석으로 붙잡으려고 합니다. 뭔가 안전장치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험을 만들려 하고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입니다. 물질입니다.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근심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상야릇하고 기괴한 문신을 몸에 새기고 달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름모를 우상화된 것을 지니고 다니기도 합니다. 개가 집을 잘 지켜준다고 믿기도 합니다. 정말 개가 집을 잘 지키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믿는 구석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의지하는 한 불안과 근심, 걱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티베트 격언에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 걱정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해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늘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살아갑니다.성경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 14:1)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믿을 것 하나도 없는 블안한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들의 믿는 구석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내가 ‘믿는 구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근심과 걱정을 거두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세상과 사람만을 바라보는 눈은 걱정과 근심 가운데서 의지할 무엇인가를 늘 찾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노력은 에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찾는 것이기에 결국에는 헛되고 헛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고되고 함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처음과 나중되시며 우리의 산 소망이요 반석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의 통로를 차단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세계로 지경을 넓힐 때에 우리는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믿는 구석! 믿을 구석! 변찮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나의 믿.는.구.석. 예수님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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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교회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면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신념으로 삼고 교회나 목회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국 초기부터 교회와 정치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해왔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는 교계 단체가 지지 성명을 발표해 개신교계 내부에서 큰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보수 진영의 교회들은 엄격한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보수정권을 옹호했으며, 진보 진영의 교회들은 사회참여와 정권 반대 운동을 하면서 대립 양상은 더욱 심화됐다. 또한 개신교인 장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마다 교회 안에서의 노골적인 지지 발언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이를 주도한 촛불 집회에 대한 입장 차이로 한국교회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에는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태극기 집회가 열렸고 태극기 집회 참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발언들이 교회 안에서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작년 말에 시작된 또 한 번의 탄핵 정국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도 양극단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고 있다. 철저하게 이념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심지어 악마화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과연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자괴감 섞인 한탄이 나오고 있을 지경이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 사이에 SNS를 통해 확산되는 정치 발언과 정보들 중에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도 다수 포함돼 교회가 정치로 오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른 신앙관을 갖는 데에도 큰 걸림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서 교회우리는 교회와 정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교회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토크빌은 미국의 교회들을 관찰하면서 매우 큰 인상을 받았다. 유럽의 교회들이 국가 교회 형태로 때로는 현실 정치와 결탁한 가운데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반면, 미국의 교회들은 개교회 안에서 시민들의 민주주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초가 바로 교회와 기독교 정신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그가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의 요지다.한국교회 역시 전래 초기부터 민주주의 학습장의 역할을 해왔다.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됐으며, 자발적인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수평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인 토론이 뿌리내리기 전에도 교회 안에서는 부서들마다 토론을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신앙심에 기초한 애국심에 표현이기도 하지만 전국을 엮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조직이 교회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국 역사에서 교회는 민주적인 조직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현재의 한국교회 안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교회에서 말이 많은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고 덕스럽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서 토론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일방적인 지시나 주장들이 대신하고 있다. 토론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본 덕목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강단에서의 선포만 있고 강단 아래서는 권위적인 위계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우니 교회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싸움으로 번지고 심지어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바람직한 정치 참여최근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교회가 정치에 압도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른바 ‘구국의 일념’으로 거리에 나서고 있으며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공공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교세 확장과 교권 유지 등 세상과는 벽을 쌓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만 몰두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교회의 현실 참여도 대부분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실 참여는 공공성이 담보돼야 한다. 어떠한 정치 표현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공공의 관점에서 유익한가를 점검해야 한다. 우파나 좌파나 스스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공공성은 헤게모니와 당파성 너머에 있다. 공공성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성찰적으로 대상화하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공공성이 무엇인지 몰라서라기보다는 모든 인간 행위자들 스스로가 예외 없이 강력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보다 넓은 차원에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여기서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는 초월의 이상과 경험 현실 사이에 적절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 관계일 때에라야 종교가 현실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생명력은 현실에 대한 ‘초월성’에 있다. 현실 세계에 동화되어 세속 가치에 매몰돼 버린다면, 종교의 본질인 초월의 이상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만 종교는 초월의 기준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의 이상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한다면, 성경의 가르침 또는 하나님의 뜻에 다름 아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이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일부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치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지만, ‘믿는 바에 대한 도덕적 실천’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모든 국민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어야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란 시민들의 참여,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의 등과 같은 민주주의 과정 전체를 포함한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기독 시민의 참모습일 것이다.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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