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Follow Me’
크리스천헤럴드2024.07.28
한 사람의 영성은 그 사람의 됨의 한 부분이다. 나눌수 없다는 말인데,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 영성이 따로 있고, 일터 영성이 따로 있고, 영성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혹은 않아도 되는 삶의 부분이 따로 존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결코 그렇지 않다는 말이며, 그래서도 안될 뿐더러 그럴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상은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성을 구분해서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예배를 드릴때, 찬양을 할때, 기도를 할때, 공적인 신앙 모임이 있을 때에는 평소 집에서 혹은 직장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표정과 언어선택을 하며 최대한의 영성을 드러내려 하는 것을 보게된다.하지만 교회에서 모임을 마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 영성의 스위치는 OFF가 되어지고, 또 다른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아야 한다. 필자의 컬럼도 큰 타이틀이 ‘일터영성’ 인데, 이것이 다른 영성과 구분 되어져야 하는 특별한 것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럴수도 없는 것이라 강조하고 싶다.종종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혹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다, 라는 식의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런 표현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우리의 삶은 하나다. 생명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분 이시고, 결국 우리의 영성도 구분되어 질 수 없는 하나의 영성이다.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애쓰셨던 삶의 부분이 따로 있으셨고, 세상과 어울려 살아내셨던 삶의 부분이 따로였다고 나눌 수 있는 삶이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으셨다.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예수님으로 사셨다. 계획하신 사역들을 이루어 가시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예수님 답게 사셨고, 우연히 지나가시던 곳에서 만났던 그 어떤 만남의 순간에도 예수님은 예수님으로 사셨다.제자들과 밥을 드시거나 대화를 나누실때는 케주얼한 복장을 입으셨다가도, 회당과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르치실때에는 정장으로 갈아입으시고 옷 매무시를 보다 더 신경을 쓰셨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예수님이 예수님으로 사셨다 라는 표현을 다르게 바꾼다면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마주하시던지 사랑의 사람으로 사셨다.” 가 아닐까. 멋지지 않은가? 그렇다.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 처럼 삶을 살아내야 마땅하다. 교회사역, 예배, 기도, 전도, 선교 등을 할때에만 신앙인 처럼 살아내다가 사역을 마치고 나면 자연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세상을 벗삼아 살아가고 있는 생활의 반복을 하고 있다면, 결국은 탈진하고 말것이며,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찬 내 모습만 발견하게 될 것이다.의지적인 결단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살겠다 라고 결단하고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예수님 닮아가는 삶이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가장 모범적인 모습이라고 확신한다.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수제자 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수제자 라고 하면 베드로를 떠올릴 것이다.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셨을때(마4:19) 하셨던 말씀과, 부활하셔서 공생애의 마지막 즈음을 보내고 계시던 때에 베드로를 만나셨을때 (요21:22)의 말씀은 놀랍게도 같은 말씀이셨다.“Follow Me!” 나를 따르라 라는 말씀이셨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유창하게 숙련되게 하는 것을 우리에게 원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저 나를 따르지 않겠니? 라고 우리에게 간청하고 계신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 처럼 삶을 산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순간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호흡하고 있는 모든 순간에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뜻이다. 나누어 생각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 따름의 가장 핵심은 예수님 처럼 사랑의 사람으로 매 순간을 살아간다는 말이다.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 한다.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 특정한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큰 일들을 해 낼 것이라는 바로 그것이다.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큰 업적을 이루어 내는 것 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예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아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가장 소망하신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란 결국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며, 그런 인생이라야 나와 내 주위가 예수의 향기와 기쁨과 축복과 행복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다.그런 이유로 나를 따르라 라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것이다. 크고 힘있고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뭔 일을 낼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곳곳에 작은 예수들이 필요한 세상이다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삶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에 대한 성도의 바른 응답은, 나도 예수님 처럼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게 하겠습니다, 라고 결단하는 것이다예수님은, 내 소원을 위해,내 성공을 위해, 내 교회의 부흥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 였기에 기꺼이 그리 하셨다!이것이 복음이며, 우리가 삶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며, 그런 삶의 핵심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행위를 드리는? 행위로 보여지는 신앙생활은 멈춰져야 한다.호흡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셨던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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