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5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3- 로버트 토마스>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선교사는 타문화 가운데 기하학적으로 복잡하고, 위험하여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토마스 홈즈와 마수수(Thomas Holmes and M. Masusu)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측정했다. 측정지수를 보면, 배우자의 죽음 100, 결혼 50, 임신 40, 생활 환경의 변화 25, 거주지 이동 20, 식습관 변화 15로 나타났다. 선교사의 타문화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반 사람들 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최난헌 1840~1866)는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에서 신학을 마치고, 1863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해 7월 21일 런던선교회(LMS)에서 중국으로 파송을 받았다. 하지만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아내와 사별했다.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 했다. "제 사랑하는 아내 캐로라인(Caroline Godfrery)이 작년 3월 24일 사망했고, 이로 인해 저는 완전히 무력해졌습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제 슬픔이 다시 터져 나옵니다…방금 시작한 고귀한 일에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지금은 깊은 슬픔에 짓눌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정과 기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무리 심각한 시련이라도 이 영광스러운 대의에서 나를 떼어놓지 말고, 오히려 그녀의 평화롭고 고통 없는 종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거두셨으니, 주의 이름에 찬양이 있을지어다.” 그는 이렇게 마무리를 했지만, 슬픔과 절망이 아련했다. 12월의 중국 상하이는 매우 춥고,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다른 숙박시설을 찾아 떠났다가 아내의 마지막 모습도 지켜보지 못한 채 비운을 접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큰 충격을 받아 선교를 사임하고, 상하이에서 옌타이로 옮겼다. 그곳에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조선 천주교 신자 김자평과 그 동료들을 만나면서, 조선에 대한 새로운 선교 열정이 일어났고, 한국어를 공부하여 1865년 9월 백령도에 도착했다. 그후 2개월반 동안 황해도 연안에서 섬 주민들에게 성냥, 케이크, 성경을 나눠주며, 서양문물을 전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 당시 한인들은 목이 잘릴 위험을 감수하며, 성경을 받아들였다. 다시 북경으로 돌아간 토마스는 조선을 향한 열정으로 1866년 8월 16일, 중국어 성경을 갖고, 통역 겸 안내자로서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병인년 천주교 박해로 인해 군졸과 관민들은 미국 배를 공격하여 폭발했다. 토마스는 성경을 안고 헤엄쳐 탈출했지만, 칼을 겨눈 박춘권에게 성경을 주며, 찔려 죽게 되었다.토마스는 사별의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탈진을 순교로 승화시켰다. 탈진의 과정은 어떠한 요소로 원인을 제공하여 우울증과 탈진으로 나타나지만, 방향 변경 또는 개인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회복한 방법을 레나르트 할스텐(Lennart Hallsten)의 탈진 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몰입하는 헌신이다. 그는 17살에 첫 설교를 할 만큼 의욕적이며, 재능이 있었고,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를 섭력하여 언어학자로서 선교현장에서 두각을 보였다. 또한 선교사들을 위해 6개월 동안 의학지식을 쌓았으며, 신학을 졸업하자마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둘째, 좌절된 노력이다. 그는 아내의 사망소식으로 완전히 탈진했다. 셋째, 해결 방법은 방향 변경이었다. 깊은 슬픔을 겪은 후, 선교를 사임하고, 이직을 했다. 휴식하는 동안 심신의 안정을 찾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명에 순종했다. 그는 선교의 열정을 다시 느끼고, 조선을 두 번 방문했다. 끝내 개신교 첫 번째 순교자로서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그 생명의 열매는 끝이 아니었다. 박춘권은 안주 성공회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평양 대부흥과 복음화 물결을 낳았다. 그의 고귀한 피는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토마스는 타문화에서 배우자의 사망으로 스트레스 지수 1위와 탈진을 경험했지만, 휴식과 새 소명으로 선교의 열정을 다시 일으켰고, 가장 고귀한 순교의 이름으로 복음의 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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