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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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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교회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下)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AI와 교회의 미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AI는 학교 교육에서 보다 밀도있게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맞춤형 교육으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부분으로 자기주도 학습을 위해 최적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교회에서도 교육적인 도구로 활용할 때, 학생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큐티를 구성하며 좀더 깊고 실제적인 말씀 나눔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단순한 주입식 학습이 아닌 자기 주도형의 신앙생활이 가능하기에 이런 장점을 극대화 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신앙 지도가 함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AI가 교회사역을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으려면, 교회는 신학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를 활용할 때에는 신학적으로 검증된 자료인지를 분별하도록 돕고, AI가 신앙적 가치관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목회자의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신앙적으로 건강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AI와 인간 목회자가 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AI는 설교 준비, 성경 연구, 상담 보조,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목회자와 교사는 AI가 할 수 없는 영적 지도와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사역을 강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AI를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이를 통해 복음 전파와 신앙 교육의 새로운 기회로 삼을 때, 교회는 AI 시대에도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결론: AI를 통한 목회 혁신,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이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성경연구와 설교 준비, 신앙 성장과 교육, 복음 전파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AI를 활용한 온라인 성경 공부 플랫폼은 개별 성도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개인의 신앙 여정에 지속적인 도움으로 효과적인 신앙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교회 내 소그룹 활동에서도 AI를 활용한 성경 공부와 말씀 나눔을 통해 구성원들의 영적 필요를 파악하고, 맞춤형 돌봄을 실현할 수 있다.AI는 교회의 행정과 목회를 지원하며,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설교와 선교사역등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지에서 AI를 활용한 번역 시스템을 통해 현지 언어로 된 성경 교육이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또한, AI 기반의 신학 연구 도구는 모든 목회자들이 더욱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해준다.살펴본대로 AI는 세상을 변혁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과 영성은 AI의 기술이 아닌 인간 목회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되, 그 과정에서 신학적,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며 균형 잡힌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AI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는 더욱 혁신적인 방식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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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4 - 김광근 목사의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 삶"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로마서 12장 12절 삶에는 기쁨과 도전이 공존합니다.때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바울의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권면은, 단순한 감정적인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실 선한 계획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나옵니다현재의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미래를 신뢰할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우리에게 인내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믿음의 길은 때때로 기다림을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늦지 않으시며 최선의 때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오늘도 소망을 붙들고 기뻐하십시오하나님께서 모든 순간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우리의 삶은 더욱 단단해지고,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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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결국은 사랑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일터영성 이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것이 2년 가까이 되어간다.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도 세월 속에서 변화를 마주할수 밖에 없다고도 할수있다.무슨말인가 하면, 나이를 먹게 되고 몸은 2,30대의 최고 정점을 찍고 쇠퇴기로 점점 향하여 가는 것을 막을수 없다는 사실이다.목회자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36년째를 맞이하는데, 그 동안 관찰 되어 온 것 중 정말 놀랍도록 단순한 사실 한가지가 있다.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와 건강상태를 영적인 상태와 함께 간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쉽게 말하자면, 젊은시절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엔 영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기이며 영적인 수준이 가장 정점을 이루는 시기라고 생각들을 한다.나이를 먹으며 에너지도 떨어지고 몸도 젊은 시절 같지 않게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노력 또한 그 시기에 맞물려 멈춰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60대, 70대 이상의 크리스찬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겠다 라는 결심을 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헌신했던 사역들, 열매가 있었던 사역들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 일쑤고, 지금은 영적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시냐고 여쭈어 보면, 이제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뭘 할수 있겠는가? 반문 하면서, 이제는 그저 예배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나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들 말한다.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연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것을 정말 하나님은 원하실까?세미나와 집회를 인도할때에 필자가 택하는 주제는 언제나 예외없이 영적성장 이다.이 칼럼에서 모든것을 말하기엔 너무 제한적이지만, 그저 몇가지만 말해보기로 한다. 영적성장의 핵심은 ‘일, 사역’이 아니라 ‘됨’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엄청난 하나님의 맡기시는 일들을 잘 해결하고 감당할수 있다 라는 페러다임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영적성장은 의외로 그 목표나 너무나도 간결하고 명료하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의 어떤것을 닮아야 하는가?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 사랑의 사람 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2천년전 십자가의 사건을 클라이막스로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한다.사랑의 사람이 되겠다는 영적성장의 목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 목표임을 잊지말자. 오늘의 칼럼은 더 이상의 설명 보다는, 며칠전 적어 놓았던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가름하기로 한다.아파본 사람,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 건강함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지 않는다. 아픈 이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불우했던 사람, 지인 중 정말 불행한 사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행복해도, 그 행복함을 대놓고 자랑하고 떠들어 대지 않는다찢어지게 가난해 봤던 사람, 가난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요함을 여기 저기 마구 떠들어 대며 의시대지 않는다자고로, 자랑이라 함은, 모두가 함께 기뻐해 주고 박수쳐줄 만한 일 이어야 가장 바람직한 것 일텐데, 작금의 사람들의 자랑 이라는 것을 보고 듣다 보면, 대부분은, 그래, 그래서 너는, 너네는 참 좋겠다…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아픔과 고난을 진정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는 짓, 쏟아내는 말 마다 어쩜 그리 밉상인지. 정말 너를 위해주는 인격자는, 결코 떠들어 대며 나를 자랑하지 않는다.예수님이 그러셨다. 단 한번도 그 무엇이든 자랑하신 적이 없으셨다. 오직 한가지 자랑하신 것은,자신이 사랑하신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존귀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 자랑하셨다. 얼마나 존귀히 여기셨으면, 십자가를 코 앞에 두시고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 13:1) 라고 기록되어 있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순간에도, I am with you always! (Matt 28:20) 라고 말씀하셨을까. 서로가 서로의 자랑이 되는 커뮤니티가 바로 천국이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것들은 전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니, 결국 다 지나갈 것들에 시간과 정력과 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영원히 남을 것에만 모든것을 쏟아부어라. 결국은 사랑이다. 가진것을 자랑하기를 멈추고, 자랑하기 위해 모으는 것을 멈추고, 지혜로운 말과 사랑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고 살아보라.  당신이 선 그곳이 천국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될 터이니.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랑의 사람임을 확신하고, 내가 밟고 서 있는 그 어느곳 에서도 예수님 처럼 사랑의 사람으로 기꺼이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하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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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하나님의 속깊은 마음에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1 오늘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 새로시작하는 하루를 기대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2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알려주신 일들을 놓고 계속 꿈만 꾸고 있다보면 하나님도 아무일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을 맛볼수 없으니 여기에는 단단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기에 이 믿음을 구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3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일들을 하라고 하실때가 있습니다. 낯선 세상을 향하여 한발자국 떼라고 하실 때 무조건 순종하는 자에게만이 주시는 축복이 있으니 나에게 이런 명령이 무엇인가를 또 생각하며 찾게 하심 감사합니다.4 자녀들을 향한 기도가 응급으로 올 때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부르짖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5 하나님은 우리와 모든 일들을 함께 하고 싶어서 나를 부르시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까지도 같이 하자고 하십니다. 이럴때 나를불러 주시는 하나님은 고생스런 길로 가자고 하실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간곡한 부탁이 나를 사랑하는데서 온다는것을 알수록 오히려 힘들어서 헉헉 되면서도 순종할 마음 주시니 감사가 넘칩니다.6 오늘은 북가주 에이레네 방에서 말씀을  전하는동안 얼마나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였던지 사모님들로부터 전보다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수 있어서 몇배의 축복을 느끼는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7 오늘의 암송구절인 수21:4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말씀대로 세월은 흘러가 과거의 상처도 점점 잊어져 가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때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이루어 주시는것을 볼때마다 새삼 하나님의 속깊은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8 또한 이사야 42:9 에는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 말씀이 오늘따라 눈에 확 들어오면서 가슴 깊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동안 되어지는 사역에 놀랄때가 많았는데 이것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안에 다 들어있음을 발견하고나니 앞으로 새일을 행하실 하나님이 더 깊숙히 내 마음안으로 들어오셔서 속삭여 주시니 가슴이 뛰면서 감사를 외치게 됩니다 9 두아들을 놓고 결국 오랜 투병끝에 소천하신 사모님을 생각하면서 두고 간 두아들을 잘돌보겠다고 하시는 선교사님의 약속의 말씀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면서 함께 짐을 지고 갈 마음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10 그외에도 알게 모르게 사랑하던 이들을 세상떠나 보내고 슬픔에 빠진 채 오열하고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부어지기를 바라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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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믿는 구석!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다가 부산의 한 청소대행 업체 이름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름이 ‘믿는 구석’입니다. 구석 구석까지 믿음을 주는 믿는 구석이라고 회사를 소개합니다. 그만큼 청소분야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로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치고 확실하게 일한다는 당찬 표현입니다. 이름이 참신하고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에 83세가 넘으신 이영숙 권사님이 35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서 무척 긴장하고 불안하다며 근심하고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고된 이민살이를 하느라 한국에 갈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 방에서 변화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시고 기도를 받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출국하기 전날 전화를 드리니 밝은 목소리로 ‘목사님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시길래 ‘어떻게 마음이 평안해지셨느냐?’고 하니, “우리 손녀 딸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권사님에게 믿는 구석이 생긴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란 긴박한 순간에 나를 도와주거나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대상 혹은 그 무엇을 말합니다. 믿는 구석이 마련되어 있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렵고 긴장했던 모든 일들로 인해서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믿는 구석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안전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자신감과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은 불안해하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믿는 구석이 없는 사람, 믿을 구석이 없는 사람, 믿는 구석을 모르는 사람은 매일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에 떨며 긴장된 삶을 살아야 하기에 인생이 비관적이고 소망을 모르기에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점점 믿지 못할 것을 믿는 구석으로 붙잡으려고 합니다. 뭔가 안전장치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험을 만들려 하고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입니다. 물질입니다. 사람입니다. 돈이 많으면 근심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상야릇하고 기괴한 문신을 몸에 새기고 달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름모를 우상화된 것을 지니고 다니기도 합니다. 개가 집을 잘 지켜준다고 믿기도 합니다. 정말 개가 집을 잘 지키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믿는 구석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의지하는 한 불안과 근심, 걱정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티베트 격언에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심 걱정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해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늘 근심과 걱정을 달고 살아갑니다.성경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 14:1)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믿을 것 하나도 없는 블안한 이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들의 믿는 구석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내가 ‘믿는 구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근심과 걱정을 거두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세상과 사람만을 바라보는 눈은 걱정과 근심 가운데서 의지할 무엇인가를 늘 찾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노력은 에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찾는 것이기에 결국에는 헛되고 헛된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고되고 함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처음과 나중되시며 우리의 산 소망이요 반석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불안함과 두려움의 통로를 차단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의 세계로 지경을 넓힐 때에 우리는 근심에서 벗어나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믿는 구석! 믿을 구석! 변찮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나의 믿.는.구.석. 예수님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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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정재영 칼럼 - 교회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면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정교분리를 신념으로 삼고 교회나 목회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국 초기부터 교회와 정치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해왔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는 교계 단체가 지지 성명을 발표해 개신교계 내부에서 큰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보수 진영의 교회들은 엄격한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보수정권을 옹호했으며, 진보 진영의 교회들은 사회참여와 정권 반대 운동을 하면서 대립 양상은 더욱 심화됐다. 또한 개신교인 장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마다 교회 안에서의 노골적인 지지 발언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이를 주도한 촛불 집회에 대한 입장 차이로 한국교회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에는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태극기 집회가 열렸고 태극기 집회 참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발언들이 교회 안에서도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작년 말에 시작된 또 한 번의 탄핵 정국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도 양극단으로 치닫는 결과를 낳고 있다. 철저하게 이념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심지어 악마화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과연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자괴감 섞인 한탄이 나오고 있을 지경이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 사이에 SNS를 통해 확산되는 정치 발언과 정보들 중에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도 다수 포함돼 교회가 정치로 오염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른 신앙관을 갖는 데에도 큰 걸림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학습장으로서 교회우리는 교회와 정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교회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토크빌은 미국의 교회들을 관찰하면서 매우 큰 인상을 받았다. 유럽의 교회들이 국가 교회 형태로 때로는 현실 정치와 결탁한 가운데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반면, 미국의 교회들은 개교회 안에서 시민들의 민주주의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의 기초가 바로 교회와 기독교 정신이라는 발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그가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의 요지다.한국교회 역시 전래 초기부터 민주주의 학습장의 역할을 해왔다. 초기 한국교회에서는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론회가 활성화됐으며, 자발적인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면서 공공의 공간으로서 수평의 의사소통을 수행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인 토론이 뿌리내리기 전에도 교회 안에서는 부서들마다 토론을 통한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신앙심에 기초한 애국심에 표현이기도 하지만 전국을 엮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조직이 교회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한국 역사에서 교회는 민주적인 조직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현재의 한국교회 안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교회에서 말이 많은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고 덕스럽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서 토론의 기회는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일방적인 지시나 주장들이 대신하고 있다. 토론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본 덕목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강단에서의 선포만 있고 강단 아래서는 권위적인 위계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려우니 교회 안에서는 정치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정치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싸움으로 번지고 심지어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바람직한 정치 참여최근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교회가 정치에 압도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문제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른바 ‘구국의 일념’으로 거리에 나서고 있으며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공공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하기보다는 교세 확장과 교권 유지 등 세상과는 벽을 쌓고 자기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에만 몰두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교회의 현실 참여도 대부분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공공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실 참여는 공공성이 담보돼야 한다. 어떠한 정치 표현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공공의 관점에서 유익한가를 점검해야 한다. 우파나 좌파나 스스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공공성은 헤게모니와 당파성 너머에 있다. 공공성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성찰적으로 대상화하고,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공공성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공공성이 무엇인지 몰라서라기보다는 모든 인간 행위자들 스스로가 예외 없이 강력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서 보다 넓은 차원에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여기서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는 초월의 이상과 경험 현실 사이에 적절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창조적 긴장’(creative tension) 관계일 때에라야 종교가 현실 사회에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생명력은 현실에 대한 ‘초월성’에 있다. 현실 세계에 동화되어 세속 가치에 매몰돼 버린다면, 종교의 본질인 초월의 이상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만 종교는 초월의 기준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의 이상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한다면, 성경의 가르침 또는 하나님의 뜻에 다름 아니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 속한 그 무엇이라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일부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정치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하는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지만, ‘믿는 바에 대한 도덕적 실천’이라는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한다면 모든 국민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어야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란 시민들의 참여,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의 등과 같은 민주주의 과정 전체를 포함한다.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기독 시민의 참모습일 것이다.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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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7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4 - 제임스 게일>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로리 앤 톤(Laurie Anne Tone)은 선교사의 탈진 원인을 직업, 대인관계, 심리, 타문화, 영성이라고 밝혔다. 선교사는 잦은 변화의 스트레스 연속상에서 탈진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은 한국인을 가장 잘 이해한 선교사로서 어둠 속에 빛을 선사한 선교사이다. 그는 무디(D. L. Moody)가 주도한 집회에서 선교를 결심하고, 1888년 4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YMCA로부터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의 음식을 먹고, 옷을 입으며, 조선 전국을 12회 이상 순회했다.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구하여 조선인처럼 살았다. 그의 업적은 성서 번역과 찬송가 개편 및 최초의 영한, 한영사전을 만들며, 천로역정을 한글로도 번역했다. 문서 선교활동에 힘썼기 때문에 조선 고서적과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데 일임했다. 또한 정신여학교와 경신학교의 새로운 교육 기반을 마련하고, 1900년 연동교회 목회를 시작으로 27년간 사역했으며, 조선에서 40년간 활동했다.필자는 게일의 탈진을 다음과 같이 발견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는 평신도 선교사로 시작했기 때문에 풍부한 재정 후원을 받지 못하고, 이곳저곳 일거리를 찾는 고독한 선교사였다. 파송 단체가 재정난으로 후원이 끊기자, 1891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로 전직하여 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40년 조선 선교사역을 하는 동안 한국성서공회 회장, YMCA 초대회장, 조선 예수교장로회 독노회장, 연희전문학교 이사, 평양 신학교 교수, 피어슨 기념성서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휴가도 제대로 떠나지 못했고, 직책들을 보아도 많은 사역으로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지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그는 동료 선교사들 간에 갈등을 경험했다. 마펫 덕분에 안수를 받았고, 평생 친구가 될 것 같았지만, 평양 신학교를 두고 의견 불일치로 갈등이 심했다. 또 다른 갈등은 교회 분열이었다. 연동교회는 천민 출신 고찬익, 이명혁 장로를 선출했고, 이어서 광대 출신 임공진 장로를 장립하다가 양반 교인들의 반발이 일어나 교회가 분리되었다. 갈등은 심리적일 뿐 아니라 영적 탈진까지 동반한다. 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조선의 당시 상황은 격동과 혼란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쇄국과 개방으로 혼탁하고, 중국과 일본의 침략 가운데 헤매는 때였다.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게일은 1890년 헤론 선교사 권유로 그 집에 거주하게 했다가 2개월 만에 헤론이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 1908년 아끼던 고찬익 장로를 잃었고, 사랑하는 아내 헤리엇 깁슨도 잃었다. 3.1 독립만세 운동을 목격하며 일본인의 총칼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았고, 1919년 4월은 일본군이 제암리 마을 예배당에 불을 지르는 사건과 총살 및 총검에 사람들이 찔려 죽는 것을 보았다. 더욱 마음에 사무치는 사건은 게일의 아들이 두 살 때 사망한 일이었다. 게일은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의 죽음과 죽어 가는 영혼과 독립투사들의 투옥으로 괴로워했고, 전쟁기간 동안 영혼의 건조함으로 큰 고통과 영적 탈진을 경험했다.게일이 탈진을 회복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조선을 사랑한 열정이다. 그는 “조선에 가지고 갈 좌우명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것은 ‘나의 도움이 여호와에게서로다’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1927년 사임할 때 “내 언제까지 내 마음에 한국을…”이라고 하며 애틋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가 그토록 조선을 잘 이해한 덕분에 하나님을 다신론 ‘하늘의 주’에서 유일신론 ‘유일하신 큰 분’으로 번역하도록 크게 공헌했다. 조선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과 여러 갈등을 극복하고 헌신할 수 있었다. 둘째, 여행과 휴가였다. 그는 전국 순회를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마음이 회복되었다. 휴가 중에도 조선을 외국에 알리는데 힘썼지만, 사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셋째, 평생의 동역자 이창직(게일의 어학선생, 천로역정 번역 협력자)과 한국인 동역자가 많았고, 어려울 때 동료 선교사들의 돕는 손길이 있었다. 선교사역의 잦은 변화 속에 은혜의 손길은 탈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믿음이 견고한 게일은 역방향으로 이승만의 스승이자 멘토 역할을 감당했다. 게일은 선교활동의 여러 변화 속에서 탈진을 경험했지만, 조선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다른 사람들을 멘토 할 정도로 강건하여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일어서며, 조선의 근대화와 영혼에 빛을 선사했다.김 은 주 교수미주장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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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2월에 올리는 10가지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1 세상은 복잡하고 매우 불안한 상태이지만 조용히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와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2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낸 기쁨으로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성숙한 기도는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과 친밀해 져서 이유를 모르는 마음에 평화가 물릴듯 밀려와 기쁨이 넘쳐와 결국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해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비추소서" 라는 찬양의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시니 감사가 더욱 넘칩니다.3 내게 닥친 어떤 난문제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이미 우리의 삶에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준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상대적이 아니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 주신 것이기에 우리 앞에 닥친 어떤 사건들이 흔들어 놓을 수 없기에 감사도 따라서 절대적인 요소가 들어있어서 감사합니다.4 시 4편 7절 "주께서 내게 두신 기쁨은 저들의 포도주와 곡식보다 더하니이다" 이 말씀은 남편잃고 건강도 잃고 부모도 잃은 채 홀로 병실에서 잠못자는 밤을 지새우고 있을때 주신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 오는 순간 번개처럼 스쳐가는 말씀은 내 마음안에 화살 같이 꽂히더니 힘없이 쓰러져 있는 나를 벌떡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내게 힘을 주신 것을 느끼고 나니 그 후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다시금 경악하며 감사를 드립니다.5 복음이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신 이유도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은 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갈등과 고민속에 헤매일때가 많습니다. 내가 받은 복음에 문제가 있는 걸까? 모세의 중보기도나 바울의 중보기도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신 주님의 사랑을 나도 분명히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중보기도자로서 내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위해 사랑하지 못할까? 사모님들을 섬길때마다 내 자신을 향해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해 왔지만, 사모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 온줄 알고 있지만 이제와서 모세나 바울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할뿐입니다. 사랑의 빚진자로서 낮은 자리에서 섬길것을 순간마다 섬길것을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놓칠때마다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익숙한것, 과거에도 많이 해봐서 잘할 수 있을것이라고 착각하는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항상 처음으로 하는 마음으로 모든 순서에 있어서 주님께 묻고 또 묻는 습관을 갖고자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7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이 멈출때마다 백성들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는 훈련을 잘 받은 것처럼 나도 주의 인도하심따라 가만있으라고 할때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여유가 많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달리다가 갑자기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열정적인 사역자들일수록 힘이 듭니다. 그래서 주님보다 앞질러 먼저 가다가 실패할때도 많이 있음을 고백하며 절대 순종 절대 감사를 위해 새롭게 다짐하게 하심 감사합니다.8 이사야가 입술을 숯불로 지져 주실것을 요구한 후 주여 나를 보내소서 라고 고백한 대로 내 입술을 성령의 숯불로 지져 주실 것을 먼저 간구하면서 또 다시 재헌신을 할 것을 순간마다 잊지 않을 것을 결단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9 지경을 넖혀 주실것을 약속받고 나서부터는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넓은 마음을 구하면서 사소한 일로 고민하던 것들을 뒤로 던져 버리고 앞으로 전진 해 나갈것에 염두를 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10 오늘도 구석구석에서 사역하시는 사모님들중에 갑작스런 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무슨 새일을 하실 계획임을 느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황순원사모CMF 선교원 (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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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목사 -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도 못 갚습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성도님 중에 성품도 좋고 친절한 분이 계신데 이분은 항상 하나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마음은 이해가되고 공감되고 인정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험난한 오지에 선교를 다녀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예배 의식이나 봉사활동 같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진행되는 사역이나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우선하여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 죄는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종교로도, 선행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보혈 카드가 아니라면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신용불량자의 카드일 뿐입니다. 당연히 우리 카드는 모두 사용 중지된 상태입니다. 우리 주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불량픔 인생으로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5% 밖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95% 는 외부의 영향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주시고, 햇빛도 비춰주시고, 비도 내려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겨우 5% 일을 한 것 뿐인데 ‘내가 죽도록 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해서 결실을 보았다’고 큰소리 치는 것을 봅니다. 내가 한 일은 아주 적은 일입니다. 전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건강을 주셨고 지혜를 주셨고 힘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심고 거두지 않고는 수확물을 거져 얻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곡식이 자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최고 절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개혁주의 성경학자인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Johannes Vos)는 ‘은혜란, 하나님의 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을 향한 그분의 과분한 사랑’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뜻합니다. 인간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비교불가, 측량불가 할 정도의 차이가 드러날 것입니다. 마치 일만 달란트 빛진 자가 탕감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는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갚을 길이 없고,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주셨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경건과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보증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입니다. 목자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도자 보호자 되시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을 믿기로 결단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고 지금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혹 여전히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되갚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아멘!최재홍목사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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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교회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AI 시대,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인공지능(AI)은 우리 시대의 핵심 기술로 자리를 잡고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하여 학습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로에는 인간 운전자 없이 운행되는 웨이모 택시가 도심(LA,샌프란시스코,피닉스등)을 수없이 질주하는 것을 본다. 학교에서는 교육시스템을 앞서가는 많은 학생들이 벌써 AI를 그들의 학습 보조도구로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느껴지지 않아도 의료계와 기업 시스템등에도 급속도로 발전된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Deepseek AI모델 발표로 미국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급속도로 AI시대로 변화하는 가운데, 교회와 목회 역시 AI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교회와 목회자는 AI를 생활의 단순한 기술적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인 복음의 본질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 사역이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도구인 AI를 잘 활용하여, 신앙의 핵심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이 시대 목회자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AI와 목회의 융합: 새로운 가능성과 신학적 고민AI 기술은 목회 현장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깝게는 AI를 성경 연구 도구로 활용하여 설교를 보다 깊고 폭넓게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급한 심방에 성도의 특수한 형편과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성경본문과 설교 힌트를 AI를 통해서 바로 도움 받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교회의 상황과 목회철학에 맞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성도의 신앙상태를 분석하여 개인 맞춤형 신앙 훈련을 제공하는 등 AI 기술은 목회 현장에서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심지어 목회자의 모든 설교와 신앙칼럼등을 데이타화하여 웹페이지에 AI 챗봇을 만들어 24시간 목회자를 대신하는 기본적인 신앙 상담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물론 이것은 신학적 검토 및 목회자의 목회철학이 허용되어야 가능하다.또한 AI 기반의 성경 연구 도구는 설교 준비에 필요한 주석과 역사적 배경을 신속하게 검색하고, 원어 연구를 보조하는 등 목회자의 연구 과정을 돕는다.그러나 AI의 발전이 목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 AI는 엄청난 언어 데이터(LLM)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응답하는 도구이므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개별적인 성도들의 상황에 대해 인간적인 공감을 필요로 하는 목회적 활동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 또한, AI가 제공하는 신학적 정보는 복잡하게 설계한 알고리즘에 영향 받기에 목회자의 신앙적 검정이 필요하고, 신학적 왜곡의 위험을 내포할 수 있다. 따라서 AI를 활용할 때에는 신학적 검토와 목회자의 신앙적 지도가 앞서야 AI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어느 시대도 성령의 역사와 영적 지도자들보다 앞서가는 하나님의 영원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AI와 설교: 효과적인 도구인가, 신학적 도전인가?설교는 목회자의 핵심적인 사역 중 하나이며, AI는 설교 준비를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AI는 방대한 성경및 신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본문의 원어분석, 구조분석, 평행분석등을 도와주고, 관련된 해석을 제공하며, 논리적인 설교 구조를 제안할 수 있다. 또한, 영어권 성도나 다문화 교인, 해외 선교를 위해 다국어 번역을 지원함으로써 설교의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다. 설교 연구에 필요한 주석과 역사적 배경을 신속하게 검색하고, 요한 칼빈, 요한 웨슬레등 위대한 성경 학자들의 원서를 쉽게 번역하여 더 깊은 관찰과 주해를 돕고, 본문의 원어(히브리어,헬라어등)를 분석하며 연구를 보조하는 등 목회자의 연구 과정을 돕는다. AXMission연구소는 이미 GMU신학교, 미성대학교 등에서 목회자의 설교 연구를 돕는 세미나를 통해 많은 목회자들에게 연구방법론을 소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매주 Zoom 무료강좌를 통해 목회자의 설교연구를 실제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DXCHURCH.ORG에 들어가면 본 연구원들이 개발한 35단계의 ChatGPT를 활용한 설교연구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설교 주제를 보다 균형있게 구성하고 본문의 깊은 분석을 통해 연구의 수준을 높이고 설교문을 탁월하게 만드는 수사학적 연구와 성도들의 피드백도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완성된 설교문을 성경공부 교재나 주보 칼럼등으로 바로 변환 작성하는 방법등 획기적인 노하우를 제시한다.그러나 AI를 설교 원고를 자동 생성하는 도구로 오용하거나, 적당한 인공적 설교작성으로 남용해서는 안된다. 이는 신학적 깊이가 부족할 수 있으며, 설교자의 영적 권위가 약화되며 뜬구름잡는 중심없는 설교로 변질되는 위험이 있다. 성도들은 지식과 정보 전달 이상의 성령의 깊은 감동있는, 영감넘치는 설교와 실제적인 공동체의 적용을 기대하기에, AI만으로는 설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AI는 설교 준비를 좀더 깊고 폭넓게 하는 준비 과정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되 윤리적 문제가 없도록 하며, 최종적인 설교의 구성과 영적 적용은 목회자의 책임 하에 완성되어야 한다.  (다음 호로 이어진다)이 충 희 목사AX Mission 대표GMU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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