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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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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1-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8 <윌리엄 제임스 홀 일가> 크리스천헤럴드2025.08.07
    핍박 가운에 밀알로 썩어져 조선을 사랑한 일가를 본다.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 Hall)는 평양 최초의 감리교 의료 선교사이다. 1890년 뉴욕시 메디슨가 빈민의료선교에서 만나 1891년 12월 조선 땅에 도착했다. 이들은 그 이듬해에 한국최초의 기독교식 결혼식을 올렸다. 닥터 홀은 평양선교를 위해 책임자로 임명되어 광성학당과 병원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조선에 온지 2년째인 1894년 7월 청일전쟁 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치료하다가 자신이 병에 감염되어 숨을 거두었다. 로제타는 남편 없이도 여성선교를 감당했다. 그녀가 1890년에 도착하여 진료를 시작한 첫날 4명으로 시작하여 3년간 1만 4천명을 치료했다. 남편이 순직한 후 1894년 평양에 병원을 세웠고, 1894년 평양 여맹학교, 1898년 광혜여원, 1900년 평양외국인학교, 1909년 농아학교, 1928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와 인천 간호전문보건대학 등을 설립했다. 그녀는 조선인 에스더와 박유산을 의사로 키웠고, 오봉래에게 점자를 가르쳐 특수교육 교사로 키웠다. 로제타는 43년간 조선을 위해 사역했다.로제타의 외아들 셔우드 홀은 의료선교사가 되어 조선 최초의 해주 결핵요양원을 설립했다. 그는 결핵 퇴치 자금 마련을 위해 조선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셔우드 홀과 아내 메리안 홀은 15년간 헌신하다가 1940년 일제에 의한 강제추방을 당했다. 닥터 홀의 일가족이 조선을 위해 헌신한 기간은 73년이었다.필자는 닥터 홀 일가의 탈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로제타는 장질환을 앓았고, 닥터 홀은 기침으로 시달렸으며, 온 가족이 이질을 앓기도 했다. 홀은 의사, 간호사, 약제사, 안내역까지 혼자 맡아 일했기 때문에 고된 사역이었다. 평양에서 밤낮 환자를 치료해주다가 병에 걸렸다. 발진티푸스와 고열과 온 몸이 마비되어 결국 순직했다. 로제타는 여성선교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쉴 틈도 없이 치료함으로써 힘겨운 사역이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로제타는 남편을 잃고, 4살 된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싸웠다. 그리고 영적 탈진도 경험했다. 가족의 절반을 잃음으로써 인생의 아픔과 두려운 시련을 겪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겨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교훈도 희미 해졌다. 셔우드 홀은 결핵요양소를 운영하다가 스파이로 몰려 형을 언도 받는 사건으로 조선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닥터 홀의 일가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초조와 공포감, 그리고 심리적 압박도 많이 경험했다.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당시 천주교들이 처형을 당하던 시기였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조상을 숭배하는 관습과 힘든 투쟁의 시간이었고, 기독교 포교자는 사형한다는 법 때문에 공포와 위협을 당했다. 외국인들은 조선 아이들을 잡아먹고 약으로 쓴다는 소문이 퍼져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평양은 가장 문란하고 더러우며 폭력배들로 유명한 곳이었다. 10만 인구 중에 외국인은 닥터 홀 가정 뿐이었으므로 언제 폭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청일전쟁은 시체들이 널리게 했고, 악취와 몸서리 쳐지는 잔해를 낳았다. 선교사는 시험 이상의 고통과 시련을 경험했다.닥터 홀 일가의 탈진회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닥터 홀의 지혜로운 대처방법이다. 문화충격과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 보다 어려움을 즐겁게 대처했다. 둘째, 닥터 홀의 굳은 신념과 헌신이다. 닥터홀은 조선인들의 적개심 앞에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의료사역에 헌신했다. 셋째, 로제타의 약속과 헌신이다. 가족을 잃은 상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사역을 감당할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네 번의 전쟁을 체험하면서도 여성사역과 병원 및 학교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했다. 넷째, 셔우드 홀의 사랑과 친절한 헌신이다. 그는 원수가 아버지 홀을 죽이려 했고,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던 원수 같은 집안의 아들과 손자를 폐병과 결핵에서 치료해줌으로써 그의 가족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기쁨을 누렸다.윌리엄 제임스 홀은 일생의 사역이 짧은 듯 했지만, 가족들의 선교사업에 길을 다져주었다. 그의 일가족은 조선을 향한 열망과 사랑의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지막까지 태극기를 향하여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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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우리는 하나님의 깃발아래 있습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8.07
    교계의 연합행사에는 대부분 여러 모임 단체에서 주관하고 참가하기에 행사시간이 길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에 당연히 순서가 길어지고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는 국민의례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순서입니다. 그래서 행사에는 언제나 기수단이 깃발을 들고 앞서서 입장을 합니다. 저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기수단원들이 입장할 때에 가슴이 뛰고 설렙니다. 행사의 개회선포와 같기 때문입니다. 기수단이 입장함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인도 되고 순서자들은 ‘마음준비를 단디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자기 일처럼 일하는 봉사자들과 은밀한 섬김으로 힘을 더해주시는 조력자들과 봉사자들이 협력할 때, 그리고 참석자들의 호응이 뜨거울 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까이에서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번의 행사 중에 눈여겨 보았던 몇몇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행사의 서막을 열어주시는 찬양팀들입니다. 그리고 합창단으로 각처에서 오셔서 헌신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어른들의 모임과 거리가 먼 친구들, 바로 기수단으로 섬겨주는 우리 2세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합행사 모임의 시간은 주말 오후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 이유는 각자가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한 예배 시간을 피해서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모임시간이 얼마나 힘들고 긴 시간이었을지 죄송한 맘이 들었습니다. 또한 행사 전에는 최종 리허설을 합니다. 한 시간 전에 오셔서 각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의상을 입고 악보와 준비물을 챙겨야 합니다. 마이크부터 방송실과 순서에 대해서 의논을 해야 하고, 파킹 랏과 실내온도와 조명도 점검해야 합니다. 행사 전의 긴장감으로 이 시간은 모두가 예민한 시간입니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행사를 마치면 어두운 저녁시간이 되어서, 행사에 참석했다는 말은 온 주말의 시간을 다 허비한 것과 같습니다. 가정에서 쉬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을 시간에 몇 시간동안을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야 합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친구들입니다. 성경에서도 중요한 깃발이 나옵니다. 바로 여호와 닛시(Jehovah-Nissi, 뜻: 여호와는 나의 깃발)입니다. NIV영어 성경에는 원어인 히브리어가 없습니다. 그대신 영어로 ‘The Lord is my Banner’ 입니다.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투를 치릅니다. 모세는 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를 내세우고, 모세는 산 위에서 두 팔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세의 팔이 힘들어서 쳐질 때면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편에서 팔을 붙들어 줍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무찌릅니다. 승리 후에,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명명합니다(출 17: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승리를 기념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의 행사는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인 선한 싸움에 자원함으로 참가해서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최후의 승리를 위해 영적전투 중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전선의 최전방에서 함께 싸우는 동지들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용사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팀, 합창단, 기수단은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영광을 돌려드리는 분들입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거룩한 깃발을 높이들고 주께 찬양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깃발아래 있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여전히 펜데믹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높은 출석율과 자녀들의 웃음소리가 교회에 더 울려퍼지도록 회복되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를 방문하는 친구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하게 수호하는 주 예수의 군대로 성장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배를 함께 준비하며 수고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우리의 친구들이 어른들의 예배에 힘을 더해주니 만날 때마다 힘이 생기고 든든함을 느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 간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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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20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7 - 아델 매리언 필드> 크리스천헤럴드2025.07.07
    전체 선교사의 30%이상이 중대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그 중에 소수는 스트레스와 탈진으로 인해 알코올 섭취, 약물 과다, 흡연 증가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스트레스와 탈진 유발 원인은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 탄력성을 갖는다.19세기 후반은 여성들의 해외사역이 빛을 발휘한 시기이다. 여성 선교기관과 더불어 독신 여성 선교사가 급증했고, 세계 복음화 사역에 놀라운 역사를 남겼다.아델 M. 필드(Adele Marion Fielde, 1839-1916)는 독신 여성 선교사, 사회운동가, 과학자, 작가로서 활약했다. 그녀는 의학을 공부했고, 2년 동안 생물학도 공부했다. 또한 주립 사범대학에서 공부한 뒤 교사가 됐다. 부모님을 따라 침례교도에서 자라났지만, 젊은 시절 부모님의 허락 하에 만인구원파 신자가 되었다. 27세 때, 침례교도 태국 선교사 후보생인 사이러스 칠콧(Cyrus A. Chilcott)과 약혼 했다. 두 사람은 태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녀가 100일 정도의 험한 항해 끝에 만난 것은 신랑이 방콕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는 비통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당시 항해를 이렇게 기록했다. “고국 땅 해안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서 있노라니 갑판 위로 천천히 함박눈이 내렸다…다음 날은 밤새도록 파도가 높이 일었고 며칠 연속 우리는 선실 침대에서만 지내야 했다…인도양에서 만난 태풍은 우리가 탄 배를 며칠 동안 거칠게 몰아갔다…자비와 수마트라 사이의 좁은 해협을 지날 때에는…밀림 열병이 선장을 제외한 모든 승객들을 덮쳤다…혈관으로 마치 얼음이 지나는 것 같은 한기가 느껴지더니 이내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혼수상태에 빠진 나는 이제 죽는가 보다 생각했다”필드는 태국에서 6년동안 선교사역을 했고, 그 다음 중국에서 20년간 약 500여명의 전도부인을 훈련시켰다. 그녀의 훈련방식은 예전과 달리 훈련구조, 운영 방식, 훈련 목표를 제도화하며, 조직 관리 실력과 훈련계획을 활성화시켰다. 전도부인들의 이야기는 “탑 그림자”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후 1889년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그녀는 사후 10년 후, 침례교 선교회에서 “우리 성경 학교들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받았다. 필자는 필드의 탈진에 대해 발견하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녀는 선교사로서 첫 항해의 출발은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이었다. 100일여간의 항해는 열병으로 혼수상태를 경험했고, 태풍과 좁은 해협은 두려움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약혼자의 사망소식은 공허함과 고뇌와 비통함을 자아냈다. 침례교 태국 선교내의 동료 남자 선교사와는 충돌과 긴장감이 악화되었다. 미혼 여성으로서의 오해와 불신자들과 어울린다는 비난과 남자 선교사 보다 상당히 낮은 연봉처우 등은 종종 시험 거리였다. 그녀가 침례교에서 금지하는 카드놀이를 한 것과 댄스파티에 참석한 것은 비난의 소재였다. 6달에 걸친 논란은 그녀가 급기야 대마초 여섯 통을 피우게 만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신경과민으로 약물을 남용했다. 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방콕과 중국의 사역 환경은 심히 열악했다. 적막하고 지독한 쓴맛을 경험했다. 서양인 속에도 남녀 선교사간의 차별과 특히 독신 여성으로서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 필드의 탈진회복 방법을 모색한다. 첫째,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아픔은 하나님을 믿기에 견딜 수 있게 해줬다. 둘째, 독신 여성 선교사로서 자부심이었다. 독신 여성으로서 부당한 처우는 2년간의 논란 끝에 합당한 대우를 하도록 만들었다. 독신 여성이 기혼 남성에 비해 효율적이라고 증명했다. 셋째, 그녀는 재능을 잘 활용했다. 싹싹한 성격과 능숙한 중국어와 타고난 글 솜씨는 선교회에 귀한 자산이 되었다. 그녀는 여러 저술과 학술 논문과 중국의 “산터우 방언 사전”과 가이드를 완성했고, 개미 연구로 개미학에도 공헌을 했다. 탈진은 훈련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아델은 자신의 싹싹한 성격과 글솜씨를 활용하여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운동가로서, 과학자로서, 작가로서 많은 업적을 기여했다. 이처럼 긍정심리학의 도구인 성격 강점과 대표 강점 적용하기를 추천한다. 자신을 돌아보아 성취한 것, 경험 등은 자신을 잘 대표하는 상위 강점이다. 대표 강점은 현재의 정체성이며, 미래의 소중한 자산이다. 대표 강점을 많이 적용할수록 회복 탄력성을 갖고, 행복 지수가 상승하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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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타이밍 크리스천헤럴드2025.07.07
    아르헨티나에서 살다 미국으로 온 아내 덕분에 남미 바비큐인 “아사도” 를 알게 되었다. 소고기를 부위별로 숯불에다 장시간 구워서 먹는 요리이다. 모든 부위를 통갈비처럼 두껍게 잘라서 굵은 소금과 레몬으로만 간을 해서 구워 먹는 단순한 조리법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고기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별미이다. 다른 양념 없이 절묘하게 간만 해서 먹는 이 요리는 먹어본 사람은 그 진가를 안다. 간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잘 굽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방법은 얇게 썬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고 익으면 먹는 것이지만, 아사도는 큰 고기덩어리를 통 채로 굽기 때문에 익는데 오래 걸려서 불조절을 잘 못하면 태우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사도를 시도하는 초보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실수가 고기 겉은 태우고, 속은 날고기처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설익게 굽는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비싼 고기를 잘못 구워서 절반도 먹지 못하고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만만하게 보았다가 손님들을 모셔놓고 여러 번 곤욕을 치렀다.  굽는 과정은 사실 간단하다.  숯을 태워서 불길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죽으면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불이 된다. 그런데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불이 채 죽기 전에 고기를 먼저 올려 놓았다가 센 불에 고기를 태우고 마는 것이다. 고기속까지 익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열이 너무 쎄서 더 굽지 못하고 불판에서 빼야 한다. 이렇게 불 위에 올렸다 뺐다 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고기 겉은 타고 속은 전혀 익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가 없게 된다.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 어느정도 경력이 쌓여 이제 나름 가족과 주위에서 아사도를 잘 굽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싼 대가를 치르고 터득한 비결이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고기를 불판위에 올려놓는 타이밍이다.  한 시간 가까이 숯불 위에서 익혀야 하기 때문에 불이 너무 강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된다. 조절이 가능한 가스불과 달리 숯은 열을 가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굽기에 알맞은 적정 온도가 있기 때문에 그 때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고기를 잘 굽는 비결은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빨리 구워 먹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야 하고, 더 기다리면 불이 꺼질 것 같은 불안감과 조바심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어 고기를 불 판에 올려 구워 보면 절대로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겉이 타지 않고 속도 아주 잘 익은 최상의 고기 맛을 즐기게 된다. 고기를 구워 본 사람이라면 의외로 가장 잘 구운 고기는 처음보다 나중인 것을 경험한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증거이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의욕이 앞선다고, 불같이 뜨거운 열정이 있다고 해서 주님께서 일을 맡겨 주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적당히 죽어야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쓸모 있는 불이 되는 것처럼 내 자아가 죽었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된다.성급해서, 내가 너무 원해서 그 타이밍을 주시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이 개인의 계획이든 사업 확장이든 교회 건축이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오히려 적절한 때를 감지하지 못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주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꾹 참고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섣불리 달려 들었다가 타버린 고기처럼 투자한 것의 절반도 못 건질 때가 있다. 인내는 주님에 대한 신뢰이며 타이밍은 하나님의 시간인 것이다.“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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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1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빛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7.07
    지난 6월 8일, 영국 플리머스 대학 연구진은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전 세계 해양의 약 21%가 지난 20년간 점점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션 다크닝(Ocean Darkening)’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바다 표층의 변화로 인해 태양빛이 더 이상 바다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영향은 해양 생물의 90%가 살아가는 ‘광달층’에 직격탄이 된다. 광합성이 가능한 이 층에서 플랑크톤이 자라지 못하면, 먹이 사슬이 붕괴되고 생물 다양성이 위협받는다.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이 뉴스를 읽으며 문득 오늘날 교회 생태계가 떠올랐다. 교회의 생태계의 변화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과정에서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회도 ‘처치 다크닝(Church Darkening)’이라는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외형은 여전하지만, 신앙의 생명력이 스며들던 깊은 층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말씀은 선포되지만 마음으로 흡수되지 않고, 공동체는 모이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며, 소통은 있지만 진심이 부족하다. 교회 내부에 빛이 닿지 않는 그늘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금 커다란 변곡점에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강화되는 진영 논리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대화를 갈라놓는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바깥 세상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교회 안에도 이미 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같은 설교를 듣고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며, 동일한 사안을 두고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목회자와 교인 사이, 교인과 교인 사이, 세대와 세대 사이의 균열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소통의 부재’가 있다. 교회는 서로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빛이 사라진 바다에 생명이 머물 수 없듯, 소통이 없는 교회에도 건강한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빛이 닿지 않는 교회, 그것은 이름만 남은 조직일 뿐이다.오션 다크닝을 극복하려면 바다의 순환 구조, 조류, 온도를 바르게 조정해야 한다. 교회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흐름을 복원하고, 서로의 온도를 느끼며,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소통이 있다.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나의 언어를 나누는 깊은 행위다.소통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우선해야 할 첫 번째 변화는 ‘듣는 리더십’이다. 이제는 설교만으로 통하지 않는 시대다. 목회자는 공동체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다양한 삶의 자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인은 신앙의 대상이자 사역의 동반자다. 그들의 이야기가 교회 정책과 방향 속에 반영되어야 진정한 ‘몸의 공동체’가 된다.둘째, 세대 간 대화가 절실하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언어로 신앙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른 세대는 ‘우리가 하던 대로’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 그들의 질문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어른들은 가르치려 하기보다 들으려는 태도를, 청년들은 비판보다 제안과 참여를 통해 다리를 놓을 수 있어야 한다.셋째,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예배와 비대면 교제가 일반화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었다는 반성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소통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 안에 ‘진심’이 담겨야 한다. 교회는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디지털 융합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플랑크톤은 바다에서 산소를 만들고 먹이 사슬의 기초를 형성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의 소통은 신앙의 산소이자 공동체의 기반이다. 듣고, 말하고, 함께 걷는 단순한 행위 안에 교회의 본질이 담겨 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의미 있으려면, 먼저 교회 안에서 그 빛이 살아야 한다.“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한마디가,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밝힐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이고 강력한 빛이 될 것이다. 세대와 진영 논리에 치우친 침묵을 깨는 용기, 그것이 곧 회복의 시작이며, 소통은 그 가장 중요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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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10 김광근 -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 크리스천헤럴드2025.07.0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잡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 17-18절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몸은 지치고 계획은 어그러지며 때로 사람들의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마음이 소모되곤 합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현실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걸사람'이 쇠하여 가는 대신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고백합니다. 시선을 현실적인 어려왔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고정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현실 위에 놓인 더 큰 진리를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고난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무게를 헛되게 두지 않으십니다. 순간적인 환난은 결국 영원한 영광을 빚어 내는 재료가 됩니다. 우리는 눈앞의 손익 계산으 로는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 속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어려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의 렌즈를 바꾸어 보십시오 우리 삶의 현실속에 놓인 환경 너머를 바라볼 때 약해져 가는 것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영원한 영광을 심고 계십니다. 잠시의 환난이 빚어 낼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며 . 오늘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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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핑계가 많은 사명자 크리스천헤럴드2025.07.07
    좋은 뜻으로 함께 모여서 한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일을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긋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마음속 표현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몇 번은 “사정이 있었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그럴 사람이 아니지, 내가 더하면 되지” 하면서 상대방이 힘을 내고 초심으로 회복할 것을 기대해봅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여전히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눈치없이 이번에는 핑계를 댑니다. 말도 함부로 하고 자신이 옳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약속은 자신의 명예와 삶이 걸린 소중한 가치와 시간입니다. 핑계와 변명의 특징은 금방 들통이 난다는 것입니다. 핑계와 변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열정을 약화시켜서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핑계하고 변명은 습관이 됩니다. 자기만 모르고 남들이 다 아는 습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핑계란 “내키지 아니하는 사태를 피하거나 사실을 감추려고 방패막이가 되는 다른 일을 내세움” 혹은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네이버사전) 이라고 정의합니다. 변명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으로 정의합니다. 우리 인간의 핑계와 변명은 창세기의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신 이후에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우리 죄의 시작이 될 줄은 아담과 하와도 몰랐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때에 핑계와 변명은 거짓과 불의함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 결과들이 대부분 찝찝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하고 마음을 불편해집니다. 선을 넘으니 결국 죄가 되었고 하나님과는 영원히 단절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핑계와 변명을 댑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못하고, 이 사람은 맘에 안들고 저 사람은 나쁘고, 그렇게 말하다가 자기의 연약함과 약점도 변명거리가 됩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로 대며 하나님께서 명령을 철회하시길 기대합니다. 언변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애굽의 학문을 익혔고, 말과 행사에 능한 사람이라고 성경이 말씀합니다(행7:22). 결국 언변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애굽으로 가지 않으려는 핑계고 꼼수입니다. 하나님 뜻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불순종과 거부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자신은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아닙니다.출애굽기 4:10~17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입니다. ‘입’, ‘혀’, ‘말’이라는 단어가 무려 14번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설득하시는 장면입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사명은 사명을 받은 자의 조건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보내신 이의 능력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당연히 사명자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옳습니다. 결국 모세의 핑계를 들으신 하나님은 ‘입’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천명하시고, 모세의 입과 함께 계셔서 모세가 할 말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하십니다.오늘날 우리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노래를 못해서 성가대를 못하고, 가르치는 은사가 없어서 교사를 못합니다. 바빠서 교회에 못가고, 피곤해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정말로 몸이 약하고 병 중에 있어서 혹은 직업상 예배와 봉사 시간이 겹쳐서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핑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행사의 책임자이고 초청인임에도 불구하고 약속된 모임에 불참을 하고 핑계를 둘러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린아이들도 하지 않는 일을 부끄럼없이 저지릅니다. 핑계와 변명을 둘러대는 모습을 공동체에서 내 가족과 어린 자녀들이 보고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럼에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은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고집과 연약함, 불순종하는 죄를 하나님이 끝까지 인내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모세의 불평과 핑계때문에 그를 포기하셨다면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무명의 양치기로 인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대장정의 구원을 인도하는 역사의 주인공과 사명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고집도 세고 성질도 못난 우리를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명마다 핑계거리를 대고 변명구실을 찾는 우리를 설득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 길을 만드시며 일꾼으로 빚어가십니다. 이민생활 속에서 감당해야 할 사역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런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부터 이제라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정직한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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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9 김광근 -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 크리스천헤럴드2025.06.1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 장 1절 교회 생활은 종종 '내가 좋아하는 방식'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지만 믿음의 삶은 때로 그 본능을 거스르는 희생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예배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예배는 단지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산 제물'이란 말은 살아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상태를 의미합니다.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산 제물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우리는 나의 권리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하며,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택해야 합니다.이러한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희생과 순종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원한다면 그 출발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기꺼이 선택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는 그 순종을 통해 세상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등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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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9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6 - 조세핀 캠벨> 크리스천헤럴드2025.06.14
    선교사는 전인적 건강 검진이 필요하다. 하워드 크라인벨(Howard Clinebell)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종합증후군을 탈진이라고 하며, 전인적 건강을 추구하였다. 선교사는 자칫 영성관리만 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자부하지만 그렇지 않다. 선교사도 한 인간으로서 통합적인 돌봄이 필요하다.조세핀 필 캠벨(Josephine P. Cambell)은 개척교회 목사 조세핀 캠벨(Joseph Campbell)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잃었고, 남편도 건강이 악화되어 사별을 하였다. 2년후 딸마저 성홍열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수년 내 가족 모두를 잃었으나,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일생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공헌하기로 결심”하고 간호사 교육을 받았다. 그후 청나라에 첫 파견되어 10여 년 간을 선교 활동을 하였고, 1897년 10월 미국 남감리회 해외여선교부에서 조선으로 파송 하는 최초의 여자 선교사가 되었다. 캠벨은 선교사업 뿐만 아니라 간호와 치료 및 진료를 병행했다. 윤치호의 도움을 받아 고가나무골에서 선교와 간호 활동을 시작하였다. 어느 날, 더럽고 무지한 소녀를 보며 여성학교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1898면 6명의 학생으로 자골학당(캐롤라이나 학당)을 기숙학교 형태로 운영하였다. 가난한 집 여자 아이들을 한문과 한글을 가르쳤다. 그후 수가 늘어나 성경, 산술, 독본, 생리학, 지리, 역사, 물리, 영어, 한국고전 등을 포함했고, 1903년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 내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배화학당’이 되었다. 1901년 배화학당 내에 예배당을 건축하여 ‘루이스 워커 기념 예베당’이라 했고, 전도부인 양성도 주력하여 신자 수가 급증했다. 예배당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훗날 종교교회와 자교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그녀는 간호, 교육, 예배 및 전도, 성경번역, 사회봉사 활동 등을 사역하다가 1919년 과로와 병세로 조선에서 별세했다.필자는 캠벨의 탈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녀는 선교사, 간호사, 전도자로서 선교와 교육과 예배당을 헌당하며, 과도한 사역을 했다.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났을 때도 조선 선교를 위해 강연을 다니고, 후원자를 모집하며, 사역자를 모집하기를 강행했다. 특히 조선 여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양계업과 양봉을 가르치는 것을 준비했다. 1918년 발목부상과 디프테리아로 심장이 약해졌다. 건강이 다 회복되지 않아 지인들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선을 위해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 가서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며, 1920년 8월에 다시 조선으로 왔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윤치호와 리드 가족이 떠나면서 남송현의 선교사업이 침체 되었다. 교회 주일예배가 중단 위기에 처했고, 매일학교와 주일학교가 폐지되었다. 선교 사역의 위기로서 심적 부담이 심했을 것이다. 셋째, 영적 탈진이다. 갑자기 가족 모두를 잃고, 불행의 연속 가운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을 경험했다. 넷째, 문화적 탈진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은 무지하여 외국인을 편견과 무시와 모욕을 주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전통 문화와 충돌 및 불신이 따랐다.캠벨의 탈진회복 방법을 모색한다. 첫째, 신앙의 힘이다. 갑자기 가족을 모두 잃고, 절망과 고통 중에 믿음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와 큰 포부로 간호교육을 받고, 선교활동에 나섰다. 둘째, 영육 간의 휴식이다. 그녀는 선교활동을 하면서 3번의 휴가를 가졌다. 말년에는 안식을 온전히 취하지 못한 탓에 과로로 신병을 얻어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자신 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므로 선택한 자의적 헌신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신체적 역량에 맞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녀는 밤을 세워가며 한글을 익혔고, 1개월 만에 통역 없이 조선인들과 유창한 한글을 구사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담았기에 불결하고 무지한 여자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했고, 무지에서 깨어나도록 교육과 여성의 지위향상에 기여했다. 선교활동의 비용부담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헌신은 조선인들에게 감동과 신뢰를 안겨주었다. 선교사역을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먼저 스스로 자신의 신호를 인식하고 점검하며 문제의식, 원인 및 해결방안을 찾아 탈진을 통해 회복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전인적 건강을 추구하여 신체적·심리적·영적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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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6월에 드리는 감사노트 크리스천헤럴드2025.06.14
    1 오늘의 암송구절은 출39:43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입니다. 그동안 해온 모든 사역이 과연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되었는지 다시금 점검하는 시간주셔서 감사합니다.2 에스더가 나라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로 작정하고 금식을 선포 할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왕에게 나아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을때 오빠인 모르드개의 권유로 작정하고 담대하게 왕의 앞에 나아갈수 있었으니 영적 멘토를 두는 자들의 받는 복이 얼마나 큰지 다시한번 살펴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3 험악한 한 평생을 걸어오는 동안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때마다 나타나시는 맨토님들을 한분씩 머리에 떠올려 보니 이렇게 귀한 축복을 받게 해 주신 하나님게 새삼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4 이런 큰 은혜를 갚을 길은 오로지 맨터링이 필요한 사모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고 또 주는 일외에는 없음을 알고 나의 힘이 다하는 그날까지 이일을 하리라 결심하게 하심 감사합니다.5 욥의 친구들은 위로하러 왔지만 위로는 커녕 오히려 정죄만 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때 욥은 친구들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을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우리도 때로는 상대방을 위로한답시고 내방식대로 내의견과 방법을 제시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어려움에 처한 자들은 의외로 다른 것을 필요로 할때가 있으니 욥기서가 주는 교훈을 받으며 다시금 위로의 방법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6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는 이미 응답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못한채 계속해서 달라고만 할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한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신 말씀대로 아직 내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루어진것으로 간주하고 누릴수 있는 믿음을 더 크게 가져야 할 필요를 느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7 주의 재림이 임박한 요즘 땅에 것에 집중하던 눈을 올려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강조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도 내 가슴을 칩니다. 구체적으로 묵상하며 없어질 땅에것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위엣것에 대한 묵상으로 시간을 보낼수 있어서 감사합니다.8 큰일을 하는것보다 하루에 해야할 일과중 사소한것에 충실히 하며 하루에 한눈금씩만 크는것이 가장 효과있는 성장입니다. 겉사람은 후퇴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 지는것이 나이 먹어가는 보람이요 완벽하기보다는 약점과 실수를 감싸주는 아량이 커지는 것이 오히려 실력이 되니 이것이 가장 큰 감사덩어리라 생각합니다9 개인주의가 극도로 강조되는 세상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시대속에서 세례요한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그는 광야의 소리라고 스스로 소개합니다. 소리는 흔적이 없습니다. 바람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그의 생애는 억울하게도 여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지만 여인이 낳은 자중에 가장 큰자라고 소개합니다. 이 세례요한을 생각할때마다 많은 도전을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10 오늘은 평소보다 더 구체적인 축복기도를 할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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