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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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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출애굽기 12:7-8) 크리스천헤럴드2023.11.10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을 깊게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는 그 이야기들이 우리의 거울과 교훈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이 그림자라면 신약은 그 실체입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이야기입니다. 즉 범죄한 인간을 구하는 하나님의 구속사 입니다.유월절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죽은 그 흠 없는 어린 양은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몸이 찢어진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사건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죄악 가운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피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한다면 고기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을 상징하기에 그렇습니다.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을 보내며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자신의 피와 몸임을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기억하고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예수님이 유월절 양이시라면 우리는 유월절 날 죽은 어린 양의 피와 고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졌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갔습니다.죽음은 죄가 가져온 저주였습니다. 즉 그 피가 죄의 삯인 죽음의 저주를 넘어가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 죄의 삯인 사망의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찢겨진 몸을 상징하는 그 고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문 설주와 인방에 바르자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지만 여전히 그들의 몸은 애굽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가는 그 고기를 모든 식구가 먹으라고 합니다.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일찍 애굽을 나오게 됩니다. 즉 그 밤에 먹은 그 고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여행의 에너지, 능력, 활력이 되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죽은 흠 없는 어린 양의 그 피를 바르고 그 고기를 먹고 애굽을 나오게 됩니다. 구약의 이야기가 우리의 거울이요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라면, 그리고 그 유월절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피를 흘린 그 어린 양이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피와 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피도 고기도 그 양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즉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오는 여행의 활력을 주었던 그 고기도 바로 유월절 죽은 그 양입니다.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실수는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받고 사는 것은 자기 힘, 자기 능력, 자기 생각으로 살려고 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은 아는데 그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거가 예수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근거하여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으로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 생명의 떡입니다. 떡은 먹는 것입니다. 떡을 먹으면 그 떡은 우리의 활력이 되고 우리의 모든 움직임의 근거, 힘이 됩니다. 예수가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은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로 사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예수로 사는 사람은 많은 것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허기진 주림과 목마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왜 그런지 그들이 부럽지 않고 행복한 사람이라면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예수는 우리 생명입니다. 이 말보다 더 기독교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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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어리버리 서민수 목사의 낚시 전도법 - 잘 노는게 전도 크리스천헤럴드2023.11.10
    여러분을 즐겁게 만드는 취미활동, 혹은 운동을 통해서 얼마든지 태신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들어, 양초 만들기나 비누 만들기와 같은 취미활동을 한다고 하면, 같은 아파트 혹은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양초를 만드는 그룹을 만들 수 있다.여러분의 취미나 재능을 이용해 얼마든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을 통해 태신자들을 발굴할 수도 있다. 교회에서도 이런 재능이나 취미를 가진 분들을 중심으로 교회나 성도들의 가정에서 이런 이벤트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개척 교회인 우리 교회는 실제 공진단 만들기와 같은 이벤트를 통해 믿지 않는 분들을 초대하여 저렴한 가격에 공진단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실제 공진단을 만드는 기회도 얻고, 또 본인이 만든 공진단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까지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이벤트는 굳이 교회 건물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오히려 친구나 이웃인 성도의 집으로 초대할 경우, 태신자의 입장에서는 부담감 없이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행사를 교회에서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성도가 모이는 곳이면 그곳이 교회요, 함께 나누는 교제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다.이벤트는 교회에서 할 수도 있고 평소 자신이 품고 있던 태신자들을 초대해서 자신의 가정에서 진행할 수도 있다. 목회자와 교회는 성도들이 자체적으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운동과 같은 취미 활동도 동호회를 조직하여,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그 가운데에서 태신자들을 발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본인이 주도적으로 그룹을 만들고 무언가를 리더해야 하는 위치에 서는 것이 두렵고, 또 나설만한 특기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오히려 교육이나 취미, 운동과 관련된 그룹을 찾아서 그 그룹에 가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평소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취미나 운동을 할 수 있는 동호회를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은 종류의 그룹을 찾을 수 있다.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그룹을 찾아서 회원이 되기만 하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들이 생기게 된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기회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는 성도들의 사회 활동이나 취미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다. 왜? 전도를 위해서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교회가 성도들을 잡는다. 심지어 뺑뺑이를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목회자도 있다. 교회 안에서 내보내지를 않는다. 성도들이 365일을, 52주를, 목사 눈앞에, 교회에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목회자도 있다. 도대체 성도들은 언제 전도할 수 있을까?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관계 맺지도 못하는데, 언제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전도는 얼마든지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떠밀려서 억지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 방법이 아닌, 자신의 기호와 취미, 특기를 고려해서 세팅하면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한 번은 집 근처에 있는 가죽 공예반에 등록하여 가죽 공예를 배우며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적이 있었다. 가죽 공예를 통해 다른 사람들(태신자)에게 선물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형성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경험해 보았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만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낚시 전도법’이다.앞에서 설명한 여러 방법을 통해 아직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면, 이제 그들의 이름을 리스트 업(list up) 해나가면 된다. 우리는 이것을 ‘태신자 리스트’라고 부른다. 낚시 전도법에서는 태신자들을 리스트화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 전도를 하겠다고 작정하고 전도해야 할 사람들을 리스트화하지 않으면 작심삼일이 되거나 흐지부지 끝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교회와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이 태신자 리스트를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기도하며 함께 관리해 주어야 한다. 태신자 리스트에 기본적으로 이름이 기록되었다면 무엇보다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매일 기도를 심어야 한다. 기도 없이 영혼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 없이 영혼 구원을 위한 능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단 마귀도 우리만큼이나 태신자가 주님의 사이드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힘쓰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태신자들의 정보와 그들의 근황을 일일이 적어, 어떻게 기도하며 섬겨 나갈 수 있을지를 꼼꼼하게 기록해 두어야 한다. 구체적인 영혼 구원을 위한 이름이 없는데 어떻게 기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두리뭉실 묶어서 영혼 구원이라고 말하고 기도하지 말자. 지금 내가슴에 기도를 심고,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할 이름이 없다면 지금 당장 이것부터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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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열렬한 팬 크리스천헤럴드2023.11.10
    자녀들이 모두 대학으로 진학해서 집을 떠나서 살자 아이들의 짐도 조금씩 정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남겨두고 간 것들 중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물건들은 남에게 주기도 하고, 처분하기도 했다. 짐 정리를 하다 보면 오래된 사진들도 다시 꺼내 보게 되는데, 아이들의 어렸을 때 모습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내 자식은 뭔가 다르고 특별해 보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처럼 부푼 기대를 갖고 바라보았던 그 때가 떠오른다.  처음 스케이트장에 데려갔던 날, 배운 적도 없는데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균형 잡고 혼자 잘 서있는 큰딸을 보며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여 놀랐었다. 혹시 포스트 김연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에 부풀어서 어느새 큰딸이 올림픽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을 했다.커다란 마이크를 능숙하게 붙잡고 노래하는 둘째 딸을 보며 순간 군중둘의 환호성이 터지는 큰 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을 떠올렸었다.태양계 행성들을 모두 외우고, 과학 채널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막내 아들을 보며 NASA에서 근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했다.그랬었다.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 꿈들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그들의 꿈과 나의 꿈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또 포기하고, 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생길 거란 걸 안다.그렇게 또 다시 세월이 흐르고, 무엇이든 가능했던 시기들이 하나 둘씩 지나가고, 기회 또한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 거란 것을 안다.그래서 추리고 또 추렸던 꿈들 마저도 거리가 멀어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고, 그저 무엇을 하던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라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고, 그 마저도 불안해져 어느 날 "얘가 밥은 먹고 살겠지?" 하며 모든 꿈을 접게 되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언제나 너의 열렬한 팬이란다.“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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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일하며 사역하는 모든 목회자들을 응원하며 크리스천헤럴드2023.11.10
    필자는 신학대학교에 입학을 했던 해에 처음으로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사역을 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1989년도 였으니 올해로 사역자로 살아온 세월이 햇수로 35년째를 맞이한다.그때부터 지금까지 일터에서 일을 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전임사역, 풀타임 사역을 한 기간을 계산해 보니 포모나의 어느 교회에서 부목사로 재임한 4년이 전임사역의 전부였다.나머지 30여년의 사역기간동안, 교회 사역을 물론 쉬어본적은 거의 없었고 사역과 동시에 세상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 오고 있다.참 많은 일들을 했다. 청소는 기본이고, 식당에서 닭을 자르는 일, 웨이터, 한글학교 교사, 쉐프, 웨어하우스 물품정리, 피아노 렛슨, 성악 렛슨, 대학원 조교, 운전, 공연 출연 등등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과연 세상 일들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교회 사역만을 해 왔다면,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까? 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역의 결과물들이 나왔을까?그에대한 대답이 그때마다 달랐지만, 지금 이 순간에 다시금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올씨다 이다첫째로는, 내가 선택해서 세상일을 병행한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 왔음을 믿는다.둘째로는,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일을 따로 하지 않아도 생활이 될 만큼의 사례비를 보장받고 풀타임 사역을 하는 것이 목회자의 가장 바른 모습이라고들 믿는다.묻고싶다. 그게 뭐가 바른 모습이냐고 그러면 이런 답들을 내 놓는다. 말씀을 깊이 묵상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 받아야 사역에 힘을 낼수있다고.그리고 가장 중요한 목회자의 사명인 말씀준비에 최소한 3-4일은 준비시간이 필요하다고. 이들의 전제는 사실 맹점이 있다.목회자들이 사역을 펼쳐야 하는 주된 장소가 교회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목회자가 교회에서만 사역을 한다면, 그야말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찬스가 아예 막혔다는소리가 아닌가?목회자가 목회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성도들이다. 성도들에게 뭘 가르치는가?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아낌없이 발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그런데 교회 문화권 안에만 갖혀 지내는 목회자가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온전히 가르친다는 말인가? 일하는 목회자들에겐 정말 유익이 많다. 성도들의 삶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다.무엇때문에 그들이 힘들어 하는지, 무엇때문에 그들이 아파하는지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쉽게 공감할수 있다. 쉽게말해 눈높이가 같아진다는 말이다.목회자 들에게 감히 고한다. 설교가 다가 아니다. 아니, 설교는 사실 어떤면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가 아니라, 목회자 본인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오늘날의 기독교, 말로 배워 말로 가르치고, 말을 배워 말만 할줄아는 교인들만 가득하다.진짜 목회자라면, 말이 아닌 삶으로 성도들을 가르쳐야 한다.3-4일 준비해서 주일에 40분 설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회자의 사명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 보시라, 정말 그런지를 필자는 일하는 목회자 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목회자들과 교제할때에 참 많은 감동을 받는다.그들은 말로 배워 말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그렇다.일터에서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들을 한다. 그 이야기 들엔 언제나 최고의 은혜와 넘치는 긍휼함의 이야기들이 묻어있다.좀 투박한 얘기들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들을 듣게 될 그들의 성도들을 떠올려 본다. 주석이나 참고문헌 뒤적여 가며 지식과 교양을 자랑하는 듯한 유창한 설교와 과연 비교가 될까? 략하고, 일하시는 목회자분들께 한말씀 올립니다. 힘내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기죽지 마세요,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이 그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부르신 성직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마세요!비록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게 느낄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일터에서 말씀 전할 준비를 충분히 시키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그 세상의 한 가운데에 두 발을 딛고 서 계시는 모든 일하는 목회자 분들을, 제가 할수 있는 가장 큰 축복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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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
    [오피니언] 신선묵 교수의 교수칼럼 - 경청과 공감 크리스천헤럴드2023.10.26
    인간 관계와 지도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은 소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일반적으로 소통이라고 하면 말을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소통은 말이 아니라 표정이나 행동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경청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음의 지혜를 얻는 경청”라는 책에서 조신영은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경청을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첫째, 경청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아주 간단하게 훈련하는 방법이 있다. 앞으로 몇 일 동안 친구와 가족과의 대화 중에 약 30초 정도 끼어듬없이 들으려고 노력해보라. 그냥 무조건 30초를 말을 하지 않고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대화 중에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끼어들기를 하거나 상대방의 대화를 듣지 않는 순간이 될 때 그 순간에 30초만 참고 더 들어보아라.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숙제를 주는데 학생들이 놀라운 경험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내가 “30초의 기적 프로잭트”라고 이름하였다.   둘째, 간단한 대화의 규칙으로 경청하는 대화를 할 수가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새들백 교회에서 있었던 부부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틀 동안 많은 내용을 들었지만 기억에 특별히 남고 내가 삶 가운데 실행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은 “맥도날드식 대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맥도날드에 가서 Drive Through 에서 음식을 시킬 때에 스피커에  대고 음식을 주문한다. 그러면 그 스피커를 통하여 종업원이 다시 내가 시킨 것을 반복하고 이것이 맞느냐고 확인을 한다. 일반적으로 대화를 할 때에 듣지 않고 나의 이야기만 지속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리고 듣는 순간에도 남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음에 내가 할말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기에 소통이 되지않고 평행선을 달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듣고 내가 정확히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통하여 소통을 정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은 내가 정말로 듣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상대방도 나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셋째,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되 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지도력 연구에서 EQ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삶에서 이성과 논리와 윤리가 중요하지만 사실상 정서적인 측면도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로 갈 때에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이 따라 나올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와 지도력에서 마음의 차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논리를 넘어서 마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청도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마음의 차원에서 경청해야 한다. “사랑과 원칙이 있는 자녀교육”라는 책을 감동적으로 읽은 적이있다. “자녀 교육에서는 원칙과 사랑이 있는 교육을 해야한다. 원칙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먼저 공감해 주어라. 그리고 원칙을 가르쳐 주어라” 라는 것이었다. 자녀를 교육하면서 사랑만 있고 원칙이 없으면 아이들이 스포일되기 쉽고 원칙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아이들이 질식하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원칙을 가르치되 사랑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우선 사랑의 관계를 세운 다음에 그 속에서 원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사랑의 관계를 세워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이전에 아이들의 느낌을 존중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과 느낌을 존중해야 한다. 그 느낌을 인정하고 또 공감해 주지 않으면서 바른 원칙만을 가르치고 강요하면 자신의 느낌을 신뢰하지 못하는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자녀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일단은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충분히 존중해 주고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객관화할 수 있는 정서적인 힘이 있을 때에 일의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것은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에 중요하지만 모든 인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의 느낌을 존중해주고 정죄하지 않고 공감해 줄 때에 비로서 사랑의 권고를 해줄 수 있는 권위가 생기는 것이다. 사랑으로 말을 들어줌도 감정에 대한 존중도 없이 주는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하여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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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자족 (빌립보서 4:10-13) 크리스천헤럴드2023.10.26
    운전은 한번 배워 두면 그 운전 기술의 혜택을 평생 누립니다. 운전을 배움으로 평생 그 혜택을 누리듯이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교훈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 혜택이 너무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자족이라는 단어는 “자기 자신”이라는 단어와 “충분하다, 넉넉하다“는 단어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a self-sufficient and contentment” 스스로 충분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족이라는 단어 앞에 in all circumstances” 어떠한 형편이든지“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어떠한 형편“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형편이  richness and wealth비천과 풍부라고 말합니다.바울은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만족이 물질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을 물질에서 찾기 때문입니다.바울이 말하는 자족이란 일차적으로는 돈의 많고 적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요 이것을 좀 더 넓게 적용하면 스스로가 처한 환경이나 소유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면 바울은 이런 놀라운 비결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었습니까? 만일 우리도 바울처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그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것을 배우지 못했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어떤 형편이든지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환경이나 조건에 지배를 받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자족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가난하면 가난에 지배를 받아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고, 부요하면 부요에 지배를 받아 교만하게 됩니다. 이 자족을 배우지 못하면 가난해도, 부자가 되어도 문제가 됩니다.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를 배워야 합니다, 피아노를 치려면 피아노를 배워야 합니다.그렇듯이 바울은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배웠다”는 단어는 “실제로 해 보고 배우다, 행동이나 경험을 통해 배우다, -에 익숙해지다, 습관이 되다”라는 의미입니다.즉 우리가 운전을 배우는 원리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운전을 해보지 않고는 배울 수 없습니다. 자족 역시 책상에서 책이나 강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 보면서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입니다.가난에 자족하려면 그것을 가난 속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풍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풍부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고서 자신은 풍부해져도 얼마든지 겸손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배웠다는 것은 헬라어 문법상 “부정 과거형”입니다.이것은 죽을 때까지 계속 배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와 훈련을 통해 어떤 과정을 마쳐 이제는 더 배우지 않아도 됨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고 말합니다.바울은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합니다. 그 모든 모습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결국 자족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배우는 것이 됩니다. 자족을 배우면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수고, 수업료,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배워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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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부모 파워 크리스천헤럴드2023.10.26
    상담을 하면서 현장에서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것은, 상담실을 찾는 많은 분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하나같이 현재 호소하고 있는 마음의 고통의 원인이 그들의 부모라는 사실이다. 마땅히 자녀를 잘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 부모가 어째서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고통 때문에 상담까지 받아야 하는 걸까? 한 두 명의 케이스가 아니라 정말 과장하지 않고 우리 상담실을 찾는 분들의 99% 가 그들이 상담받는 이슈에 부모가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성/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기가막힌,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렇다고 해서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학대하거나 유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상담실을 찾지 않은 분들까지 고려하면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이 그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으리라고 희망해 본다. 또한 많은 부모님들이 그들 나름으로는 자녀들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정작 자녀에게는 가슴에 화살로 꽂히고 목을 조르게 되는 것을 부모님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부모, 자녀가 서로의 필요와 공급이 잘 맞지 않아 발생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즉, 자녀들이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가 주지 않고 반대로 부모는 자녀에게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퍼 주는 경우가 그렇다. 어떤 경우는 부모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자녀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다른 일(부부갈등, 가정경제, 건강문제, 고부문제 등)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녀들이 보이지 않아 자녀들이 방임되는 경우도 있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엉뚱하게 표현해서 자녀에게 사랑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부모 역시 자신의 부모에게서 학대나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키우게 될 때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부모가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알려진, 혹은 알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고 있다. 매일같이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성인이 된 후까지 고통 속에 신음하는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이런 현실을 마주하는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안타깝고 슬프다. 심지에 그 부모들 중에는 예수 잘 믿는 사역자나 교회 지도자들도 부지기수 포함되어 있으니 이 상황에 더 가슴을 치게 된다. 고통에 신음하다 더이상 견디기 어려워 상담실을 찾는 분들은 상담사들이 상담이라는 방법을 통해 치유와 회복 과정을 돕겠지만, 이것은 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배운 많은 분들이 각자의 교회나 지역에서 부모나 예비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모 세미나 같은 것들을 많이 개설해서 부모를 위한 교육을 많이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상담실을 찾는 분들이 줄어 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비록 나는 상담을 가르치고 있지만, 결국 언젠가는 아무도 상담받을 일이 없는 그 날이 오기를, 그래서 상담이 이 땅에서 필요없어지기를 고대하면서 상담을 가르치고 있다.우리는 모성애를 포함하여 부모의 사랑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자녀를 늘 따뜻하게 품어주고 수용 해준다고 말이다. 그래서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엄마를 보면서, 그래도 저 엄마는 자녀를 사랑하기는 하겠지, 단지 표현을 못하는 것 뿐이야, 라고 단정짓고 싶어진다.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기가 막히게도,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그리고 자녀를 사랑할 수 없는 부모가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자녀들은 그 부모가 언젠가는 사랑, 관심, 인정을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애타게 부모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살아온 세월이 어떤 분은 이십년, 어떤 분은 육십년이 된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것은 죄성으로 인해 타락한 인간 모습의 한 단면이다. 마땅하게 기대되는 부모의 사랑조차 죄성으로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 이렇게 부모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가진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기독교 상담에서 목표로 하는 것이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5)    다음 호부터는 부모로 인해 자녀들이 어떻게 상처를 입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눠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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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하이터치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3.10.26
    대통령, 교육부 장관이 바뀌어 교육 정책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해도 대학 입시 중심의 교육이 계속되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사람들의 인식이 계속되는 한 교육의 개선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급격한 경제 성장이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니 교육은 주입식과 획일화의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엘리트를 양산해 내었고 그 시대에 필요한 성과도 만들어 내었다. 이때 당시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들어선 지금은 각 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이 중요한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교육으로 성적으로 평가하던 방법에서 각 개인의 특성에 맞는 ‘하이터치 High Touch’의 방법으로 이 시대가 필요한 인성과 감성을 갖춘 사람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도 그동안 사회의 흐름에 편승하여 학교 교육의 방법을 도입하여 사용해 왔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도시의 교회들은 대형화가 되었고 그 사람들을 지도하고 훈련하기 위하여 여러 훈련 프로그램들을 만들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직분을 주고 교회에서 섬기도록 하였다. 그러나 교회도 역시 획일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교회에서 학교 커리큘럼처럼 정한 과정을 성실하게 거친 사람만 교회에서 인정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가 주도하고 자신들의 프로그램 세미나를 열고 그 교회처럼 커지기를 원하는 수많은 목회자가 몰려들어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교회가 그 교회처럼 되기를 노력했다. 마치 기업들처럼 자기들 프로그램을 그대로 베낀 교회 중에서 성공하여 자기들처럼 된 교회들을 선전하고 또 그렇게 그룹을 만들어 뭉칠 때 그것을 바라보던 다른 교회들은 조급하였고 소외감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모임에 참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몇 교회나 진짜 효과를 보았는지는 미스터리이다. 그런 프로그램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여긴 목회자들은 다른 대형교회의 프로그램에 또 참석하고 그렇게 몇 군데를 기웃거리지만, 자기들은 그 교회처럼 커지지 않는다는 것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고 있는듯하다.교회는 공동체이지만 각 개인의 특성과 은사로 섬기는 공동체이다. 이제는 예전과 같은 획일화와 주입식에서 벗어나 개인 맞춤 신앙 콘텐츠를 만들고 지원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목회자는 각 교인을 잘 알아야 하고 그 교인 개인에게 무엇이 신앙적으로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양육해야 한다. 교인들의 가정, 사회생활, 직업과 사업의 내용들을 신앙적으로 그리고 성경적으로 지도해서 교회에서뿐 아니라 가정과 세상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지금은 어지간한 주제들은 CHAT GPT를 통하여 정리가 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예전과 같은 문제 풀고 답 달기 정도가 아니라 각 교인들의 성향과 역량에 맞는 데이터가 만들어져서 그것을 기반으로 그 교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양육과 훈련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 어느 곳 보다 더 ‘하이터치 High Touch’가 필요한 곳이다.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봉사하는 사람을 만들고 직분을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업을 어떻게 운영하며, 어떻게 소통을 하는 것, 자신의 비전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 교회이어야 한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잘하는 일꾼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과 인성 그리고 사랑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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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3천번 외친 영광스런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천헤럴드2023.10.26
    지난 토요일 저희 부부가 함께 참석했던 소중한 모임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회를 10년이 지나도록 쉬지않고 진행하는 중국교회(은혜의 여정 교회)의 기도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침 저희는 중보기도의 후원이 절실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교회에 기도가 없으면 죽은 교회입니다. 새벽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라고 도전을 드렸는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성도님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장 월요일부터 우선 40일만 하기로 하고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모임도 어색하고 피곤하고 졸려서 힘들었는데, 기도하는 동안 교회 공동체가 뜨거워지고 기도응답이 임하고 예배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40일을 마치고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셔서 1년능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일은 예배에 집중하고 평일에는 기도회를 쉬지않고 모였습니다. 처음 선교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분들이 지금은 기도제목을 제작하며 한 영혼부터 온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중보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펜데믹으로 모일 수 없을 때는 줌으로 기도회를 이어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기도하는 분들이 서로 정이 들었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하셔서, 팍에 모여서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간절한 예배와 뜨거운 기도회를 여러 차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셔서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 생활이 없던 자녀들도 모임에 나와서 부모님들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핍박하던 남편과 친척들도 기도모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두겹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가족들이 모여 감동스런 세례식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지난 주말에는 응답의 10년을 감사하며 주님께 감사드리고 서로 감격하는 순서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의 고백은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결국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지난 10년의 기도훈련을 통해서 성도들의 기도영성과 세계선교를 향한 마음은 더욱 확고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선교현장과 사역을 이해하고, 타문화권에 대한 관심과 나누고 베푸는 은사와 능력이 향상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과 목회의 동역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제가 배운 경험은 기도가 기도를 낳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가 사역의 원동력인 것을 누구나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품고 기도하며 한 생명, 한 영혼의 소중함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알기 원하는 간절함이 깊어졌습니다. 이번 감사/축하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믿게되었습니다. 우리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기도는 역사하며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이민생활에서 느끼고 삶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내용들이 우리가 드려야 할 마땅한 기도제목들입니다.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은밀하게 눈물로 기도하는 중보기도 사명자들이 계십니다. 긍휼의 마음으로 중보기도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의 눈물과 땀을 주께서 보고 듣고 계십니다. 이제 곧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조금 더 힘을 내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우리 함께 기도의 역사를 통해서 이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오늘도 그 사랑이 그립고 목마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 사랑때문에 가슴이 뛰고 설레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춤추게 합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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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어리버리 서민수 목사의 낚시 전도법 - 텐트 메이커 크리스천헤럴드2023.10.14
    나는 목회를 하면서 동시에 회사를 다닌다. 전도사 시절 신학교를 다니면서 아는 지인의 소개로 아르바이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의원에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한의원이나 카이로프랙틱 의료원에 물품을 공급하는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생소한 분야였다. 그래도 가난한 전도사로 신학교 등록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열심히 일했다. 다른 학우들이 수업 후 커피를 마시러 패스트푸드점에 간다고 할 때 함께 갈 수가 없었다.내심 부러웠다. 함께 공부하는 동역자들과의 교제가 너무나 부러웠고 아쉬웠다.나에게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즐거움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기억들도 많았다. 아내가 식당에 일하러 가면 어린 꼬맹이 딸을 맡길 때가 여의찮았다. 미국에서 아이를 맡길 때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신학교 수업에 데리고 갈 때도 있었다. 다행히 외국인 교수들은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가난한 신학생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셨다. 아이가 도서관을 뛰어다니다 사서에게 경고받기도 했다. 물론, 그 사서도 다른 학생들의 항의가 있었기에 부득불 나에게 전달한 것이다. 수업 중 아이가 큰일을 보게 되면 화장실에서 뒤처리해야 했다. 아무튼, 어려운 시절을 지나가기 위해 나는 한의원 물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는 이 회사의 매니저가 되었고, 목회와 글 쓰는 일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나는 이 회사에 다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다. 담임 목회와 영혼 구원에 전념하면서 이 회사를 통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전도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의 당신이 처한 상황이 전도 하기로 마음먹은 후의 상황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해 보았는가? 처음 내가 이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나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일하는 시간에 열심히 일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지만, 이 직장과 일은 나의 어려운 상황을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복음과 전도의 다양성을 깨닫고 나니 사람이 눈에 들어 오고,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이 전도를 위해 엄청난 잠재된 힘과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 직장에서 판매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물건 하나하나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어제까지 똑같았던 환경인데 전도하기로 마음먹고 결단하니 직장도, 가정도, 교회도 다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회사에서 알게 된 많은 정보 가운데 약재나 보약, 공진단과 같은 제품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회를 개척하고서 주변에 몸이 아프거나 약한 사모님들과 성도들 또 태신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에게 지속해서 보약이나 약재를 통해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친절과 섬김으로 몇 년간 꾸준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꼭 내가 다니는 교회에 등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 내 마음과 나의 정성 어린 섬김과 헌신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믿는다.생각해보라. 어제까지 물고기와 배와 그물에 빠져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에 관해 말씀하신 예수님. 자신의 배와 그물을 버려놓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이것이 예수님과 사람에게 미친 제자들의 이상한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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