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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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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AI 기술과 기독교 윤리적 관점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최근 몇 년 사이 ChatGPT를 비롯한 다양한 인공지능(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사회 전반이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이게 되었다. 교육을 비롯해 모든 사회의 분야 특히, 교회 공동체 역시 이 기술적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교회가 온라인 예배와 디지털 사역이라는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했으며, 이는 AI 시대가 이미 우리 곁에 깊숙이 다가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AI의 등장과 활용은 교회가 더 폭넓은 사역의 기회를 얻는 동시에, 이에 따른 신앙적·윤리적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도전을 던지고 있다.현재 AI 기술의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의료 분야이다. AI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여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거나 개인 맞춤형 치료법을 추천함으로써 실제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도 AI를 이용한 알고리즘 트레이딩과 개인 맞춤형 금융자문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교육 분야에서는 개개인의 학습 능력과 관심사에 따라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탁월한 효과가 학생과 교수등 교육 현장에 적용되고 있으면 이에 대한 여러 논란들도 발생하고 있다.이러한 사회적인 AI의 급변하는 흐름 속에 교회도 역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다양한 AI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AI 기반의 영상 및 예배활용, 교육등의 시스템을 통해 교회 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 가고 있으며, 온라인 목회 상담 챗봇을 통해 성도들의 고민과 영적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특히 미국 내 한인 이민교회들 중에는 AI 기술을 활용하여 다문화 사회에서 겪는 언어 장벽 문제를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교회에서는 다국어 동시 통역 시스템이나 AI 기반의 성경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신앙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본 AX Mission 연구소에서도 미국 엘에이를 중심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의 성경연구를 위해 돕기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여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탁월한 AI학습법에 대한 세미나도 개최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이 AI기술을 이용해서 어렵고 힘든 학업의 과정을 맞춤식,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최대한의 학업 성과를 이루기 위해 돕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활용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AI 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은 프라이버시 침해, 데이터 남용, 알고리즘 편향성 등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돕고 섬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인간이 가진 윤리적 결정과 인간 가치를 축소시키는 형태의 기술 사용은 단호히 경계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특히 AI가 사용자의 민감한 정보를 지나치게 수집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거나 무분별하게 관리할 경우,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신뢰는 크게 손상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몇몇 AI 챗봇 서비스가 개인정보 관리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으며, 이는 교회 현장에서도 잘못 사용될 경우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다.이를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교회와 신학교가 중심이 되어 AI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술 활용에 관한 명확한 기독교적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위원회는 각 교회의 AI 사용 사례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며, 신앙 공동체가 기술적 위험을 예방하고 신학적 책임감을 가지고 기술을 활용하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이와 더불어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AI 기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신학교에서 AI 관련 교과목을 편성하고 신앙과 신학적 기준에 부합하여 기독교적 윤리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여 바로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실제적인 사례 기반의 워크숍과 현장 실습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모든 목회자들이 AI를 지혜롭고 신앙적으로 책임 있게 활용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결론적으로, 교회가 AI 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 신학적·윤리적 관점에서 기술을 평가하고 활용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과 창조 질서를 존중하면서 AI를 섬김의 도구로 활용할 때, 교회는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히 영향력 있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지금 우리가 내리는 신학적 평가와 윤리적 결정이 미래 세대에게 건전한 신앙적 유산을 남기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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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7
    [오피니언] The letter 05 김광근 -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6절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겸손한 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높이시고,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겸손은 단순히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내 힘과 지혜로 모든 것을 이루려 하기보다,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참된 겸손입니다.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계획에만 의존하지만,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다릴 줄 압니다.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때,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리를 높이시고우리가 가야 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보세요.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당신을 높이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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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6
    [오피니언] 이정기 칼럼 - 지금 시국에 우리가 해야 할 일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윤석열 대통령의 최후 진술이 끝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절반의 국민이 격노할 살벌한 상황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는 끊임없이 양분화되어 왔다. 동조와 반대,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 다양한 형태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반복돼 왔다. 이러한 양분화는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됐다. 양분화는 사회 몰락의 전조 현상이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사회는 쇠퇴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언론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사회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극단적인 이념을 경계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교육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 통합은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모두가 사회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더욱 발전되고 번영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느헤미야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사람이었다.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에서 자랐지만 유대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느헤미야의 공식 직함은 페르시아 아닥사드다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었다. 옛날 권력은 왕과 가까운 거리에 따라 비례했기에 왕의 신임을 받던 실질적인 실세였다. 그런데 동생 하나니를 통해 조국의 상황을 듣게 된다. 백성들이 능욕을 받고,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비통한 소식이었다. 느헤미야는 비참하게 무너진 조국의 모습과 고난당하고 있는 민족을 생각하며 수일동안 슬퍼했다. 무너진 조국 때문에 흘린 눈물이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한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느 1:5).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과거에 조상들이 지은 죄와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기도한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습니다.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느 1:6~7). 우리도 기도할 때 이 민족이 거룩하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절제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사치한 죄, 동성애를 옹호하는 죄악도 회개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면 여러 나라 가운데 흩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하나님,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면, 흩어진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해 주시옵소서”(느 1:8~9).  느헤미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며 기도했다. 범죄하면 흩으시겠다는 말씀처럼 흩어버리셨지만, 돌아와 계명을 지키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기대하며 기도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약 4개월간 지속됐다. 당시 느헤미야는 왕이 가장 신임하는 술 관원이었다. 어느 누구보다 안락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형통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느 1:11). 왕의 은혜를 입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느헤미야를 돕도록 섭리하신다. 마침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한다.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셨다. 느헤미야는 나중에 백성들에게 왕궁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느 2:18),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셨다”(느 2:20).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았다”(느 6:16)라고 말한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에 의해서 된 것임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조국을 사랑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이 진멸하시려고 하자 이렇게 기도한다. “이 백성이 큰 죄를 범하 였나이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모세가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사도 바울도 자기 동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것을 원한다고 고백했다(롬 9:3).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얼마나 부조리가 많은지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비판보다는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비판하는 입술을 기도하는 입술로 바꿔야 한다. 느헤미야처럼 공동체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느헤미야처럼 조국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며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나라가 하나 되고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연약한 자를 배려하고 불쌍히 여기며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어도 우리가 엎드려 기도하면 절망의 땅에서도 기적은 일어날 것이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느헤미야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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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5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환란의 바다일지라도 감사로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1오늘도 변함없이 새날 주시고 아침에 기상할수 있는 건강주셔서 감사합니다.2 오늘의 암송말씀은 시120:1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입니다.평탄할때보다 환난이 닥쳐올때의 부르짖는 소리가 제대로 나올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맛볼수 있으니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우리를 환난의 바다에 던지시는 것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3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고 스스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외치긴 하지만 당혹스럽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실때가 있습니다. 이런 정황속에서도 잘 견디기만 하면 전에 누려보지 못한 기쁨을 누릴수 있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4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은 당신의 삶의 기로에서 선택할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나타날수 있지만 스스로 죄인의 옷을 입고 십자가위로 가셨습니다.나에게도 이런 선택의 특권을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실까를 찾아 나서게 하심 감사합니다.5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곧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순간 주님안에 들어가게 되기에 주님과 하나되는 기쁨을 누릴수 있으니 좀더 철저히 순종할것을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교회안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부쩍 증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인생이 막 태어나서부터 죽기전까지 각각 특징을 가지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 들면서 이 시기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할때 노년기는 용서와 화해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남을 용서하기에 앞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기 보다는 자신에게 찾아 먼저 자신을 용서해야 남도 용서를 할수가 있습니다. 영향력있는 어른이 되어갈수 있으니 노인으로만 그치지 말고 어른이 되기 위해 새롭게 도전하며 감사를 드립니다.7 이스라엘 왕들을 보면 처음엔 우상을 철폐하고 하나님만 섬기도록 통치를 잘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들도 있었지만 마무리를 할땐 욕심의 극치로 달려가 결국 하나님의 버린바되는 안타가운 왕들의 역사를 볼때마다 재결단을 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8 요한복음 17장은 십자가 지기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고별기도입니다. 읽을때마다 가슴이 뭉클해 지곤 합니다.하나님이 아들과 성령이 하나됨 같이 우리도 주안에서 하나되기 위해 간곡히 기도하는 내용을 읽을때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또한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지를 알게 하심 감사를 드립니다.9 노인이 된다는 의미를 알고나면 노인이 되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 할일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노인이 되느냐가 더 간절한 바람입니다.노인의 특징은 지혜요 기다릴줄 아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이 되는 것을 너무 슬프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픔과 통증속에서 절제의 실력이 점점 커지는 특혜도 주셨으니 날마다 감사를 드립니다.10 오늘도 지구촌 구석에서 나 홀로 위로받고 싶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아 힘들어 하는 사모님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가셔서 참된 위로를 해 주실것을 간구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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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사순절,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19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해마다 사순절을 맞이하기 전에 절기를 위한 치밀한 준비에 임합니다. 가을부터 관련된 설교자료와 심방, 집회 일정을 신중하게 챙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순절 절기 자료를 편집해서 몇 교회와 선교지에서 공동교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마치고 선교지의 영혼들에게 보급하고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은 나 자신이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해마다 40일 사순절 큐티 교재를 만드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역에 필요성을 느끼고 자원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작업이 수렁에 빠진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울고,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해 무명한 나 좀 도와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렇게 울음이 터져서 울다가 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 지고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으며 말씀속에 사순절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16대 링컨 대통령은 ‘나는 울면 안되기 때문에 웃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남북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라의 환경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둘로 갈라져 서로 죽이고 죽어가는 전쟁의 비극속에 살면서 울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눈물이 없는 것보다는 눈물많은 인생이 오히려 더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눈물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애통, 회개, 기도, 위로, 기쁨 등을 나타냅니다. 눈물은 고난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눈물은 단순히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위로와 치유, 영적 성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흘리는 눈물,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눈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통해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아시며, 우리의 눈물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 눈물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수많은 믿음의 기적과 역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민 생활 속에서 눈물은 필수요소입니다. 울어야 삽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들통이 났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고 슬플 때에 맘껏 울어야 삽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장아장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도 악쓰고 울어댑니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와서 끌어않고 위로해 주며 다독입니다. 걸린 돌을 대신 뻥 차고 혼내줍니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하는데 어느 부모가 눈물 없이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어느 엄마가 딸을 시집보내면서 맨정신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습니까? 딸을 바라보며 두 손을 잡고 흘리는 그 눈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엄마의 눈물은 눈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생명이고 사랑입니다.하늘의 아바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체면 차릴 것 없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아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부르시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모든 죄를 고백하고 사함을 받으십시오. 문제를 아뢰고 해결을 받으십시오. 속상함을 토하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우리 주만 믿으면 구원함을 얻으며 영생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야로 흘리신 눈물의 기도,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눈물은 바로 사랑이고 구원입니다. 우리를 영원천국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초청장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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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치유의 시작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최근 한국에서 몇 명의 젊은 연예인들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이 볼 때 화려하고 엄청난 인기와 수입으로 늘 행복할 것 같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이 많다. 뉴스를 통하여 듣고,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들의 죽음 뒤에는 각각의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었으며,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발언, 일반 대중의 무차별적인 공격, 그리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들을 더욱 고립되게 만들었다. 이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교회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한다.연예인들은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정한 수입, 경쟁적인 방송 환경, 그리고 단체 생활로 인해 가족과의 단절을 경험하며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지속적인 경쟁 속에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작품 속 캐릭터와 실제 자신의 괴리로 인한 정체성 혼란도 심각한 문제다. 특히 그들이 법을 어기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경우, 무차별적인 공격은 견디기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높은 공적 자의식으로 인해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이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된다.연예인 자살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의 태도도 문제다. 연예인의 죽음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다루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나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튜버들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며, 이는 사회적 논의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예인들은 공인으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한 인간이며, 대중의 이해와 보호가 필요하다. 기독교계 역시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연예 산업이 보다 도덕적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공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모든 교회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들과 관련된 교회는 연예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과 압박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제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는 심리적 지원과 회복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심리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상담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독교적 가치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또한, 연예인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연예인들은 직업 특성상 고립되기 쉽기 때문에, 교회가 연예인들이 자유롭게 교제하고 서로 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중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건강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멘토링과 직업적 윤리 교육도 중요한 역할이다. 연예인들에게 건강한 가치관과 직업 윤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기독교적 멘토링을 제공하고, 연예인 선배들과 신앙적인 리더들이 멘토가 되어 직업적 고민과 개인적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교회는 연예인들의 자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대중과 미디어의 태도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건전한 미디어 소비 문화를 장려하고, 연예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공적 담론을 주도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연예인들을 위한 긴급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예인들이 즉각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 핫라인을 운영하거나 관련 기관과 협력해야 한다.연예인의 자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보도,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발언, 대중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연예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이들이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고, 건강한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기독교적 가치 속에서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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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8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5- 존 로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스트레스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심리적 기제로서 스트레스 대처반응에 따라 디스트레스(distress)와 유스트레스(eustress)를 유발한다. 스트레스 경험에 따라 박탈감과 탈진에 이르기도 하고, 반대로 매우 유쾌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존 로스(John Ross, 1842-1915)는 스코틀랜드에서 선교사로 파송 되어 거의 40년 동안 중국 만주와 한국 개신교 교회에 이바지 하였다. 그는 게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지만, 영어와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남달랐다. 11개 언어를 구사했고, 성경번역과 주석에 업적을 남겼다. 특히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신양성경을 번역하고, 자립과 자기 전파와 자치에 중점을 두었으며, 선교 이론과 실천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필자는 로스의 탈진을 다음과 같이 발견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는 한글 신약성서 번역을 완성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번역자 팀은 수년에 걸쳐 구성원이 바뀌었고, 우리가 아는 이름은 일부일 뿐이다. 다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로스였지만, 한 사람이 제2외국어를 배우고 번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로스는 스튜어트(M. A. Stewart)와 결혼하여 1872년 8월에 산둥반도 엔타이 선교지에 도착했다. 부인은 1873년 2월말에 아들 드러먼드(Drummond)를 낳고 얼마 후, 소천 했다. 아내를 잃고, 상심이 컸을 터이다. 다른 심리적 압박은 한글 신약성서 출판을 위한 재정 문제였다. 스코틀랜드 국립성서공회는 본문의 인쇄 활자를 만드는 비용만 제공했고, 실제적 비용은 기독교 자선가를 찾아 기부로 충당했다. 1874년은 만주에서 고려문을 방문했다가 파견된 스파이로 오해를 받았고, 1880년대 초에는 해외 선교위원회 및 모교회와 긴장 상태를 일으켰다. 그가 한글 성경번역과 학술연구로 인해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 듯 여겨졌기 때문이다. 연합 장로교 신학관의 학생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사용하며, 특정 부동산을 구매한 것도 갈등의 문제였다. 비난을 받은 그는 사임을 고려할 정도였다.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당시 조선은 외국인과 교류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었다. 조선인이외국인을 섬기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모든 친척이 감옥에 갇히고, 몇몇은 참수될 상황이었다.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조선인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고 배부했던 것은 많은 어려움을 감수한 일이었다. 복음서가 배포되던 때, 조선의 수도에서 혁명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갇혔다. 개종자들은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조선의 참담하고 암담한 상황이었다. 또한 조선의 겨울날씨는 2피트 눈이 쌓여 몹시 추웠고, 복음을 가지고 고개를 넘기에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좁고 거칠었으며, 여름은 습했다. 로스의 탈진 회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과도한 역량을 발휘한 뒤 새로운 충전을 위해 휴가를 떠났다. 그는 선교사역을 잠시 중단하고 1879년 3월에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중에도 한글 번역이 출판되도록 하는 노력과 역사서를 출판하기도 했지만, 쉼으로 새로운 충전과 도전이 되었을 터이다. 둘째, 복음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열정이다. 아내 사망의 슬픔에서 일어나 언어공부에 집중했고, 선교사업 계획을 세웠다. 그는 선교본부 편지에 조선의 쇄국정치는 무너질 것이고, 천성적으로 순수한 종교적 성향 때문에 기독교가 급속히 퍼져 나갈 것이며, 새 민족과 새 나라와 새 언어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일부 성경이 불태워지고, 나머지는 압록강에 던져졌을 때, 압록강을 마시는 조선인들은 생명수를 얻겠고, 불에 탄 성경재는 조선교회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로스는 열악한 상황에도 복음의 소망을 놓치지 않았다.셋째, 조선의 문화 충격을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한글로 신약성경을 번역하며,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 결과, 번역을 도와준 조선인과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고, 조선인 스스로 첫 교회를(소래교회) 세우는데 영향을 미쳤다. 넷째, 한글 성경번역을 위해 여러 명의 조선인 동역자들을 만난 축복이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믿는 조선인들이 번역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번역은 1882년 한글 ‘예수셩교전서 누가복음’과 1887년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다섯째, 화합의 영성이다. 1874년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선교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을 때, 선교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여 에큐메니컬한 노력에 헌신했다. 로스는 여러 스트레스와 탈진의 국면에서 유스트레스로 전환하여 탈진을 회복했다. 탈진을 경험했을지라도 탈진의 신호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바라보는 노력은 회복 탄력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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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교회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下)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AI와 교회의 미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AI는 학교 교육에서 보다 밀도있게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이 맞춤형 교육으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부분으로 자기주도 학습을 위해 최적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교회에서도 교육적인 도구로 활용할 때, 학생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고 큐티를 구성하며 좀더 깊고 실제적인 말씀 나눔이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다. 단순한 주입식 학습이 아닌 자기 주도형의 신앙생활이 가능하기에 이런 장점을 극대화 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신앙 지도가 함께 영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AI가 교회사역을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으려면, 교회는 신학적 원칙과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AI를 활용할 때에는 신학적으로 검증된 자료인지를 분별하도록 돕고, AI가 신앙적 가치관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목회자의 지속적인 감독이 필요하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AI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신앙적으로 건강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AI와 인간 목회자가 협력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AI는 설교 준비, 성경 연구, 상담 보조,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목회자와 교사는 AI가 할 수 없는 영적 지도와 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사역을 강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AI를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이를 통해 복음 전파와 신앙 교육의 새로운 기회로 삼을 때, 교회는 AI 시대에도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결론: AI를 통한 목회 혁신,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이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성경연구와 설교 준비, 신앙 성장과 교육, 복음 전파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AI를 활용한 온라인 성경 공부 플랫폼은 개별 성도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고, 개인의 신앙 여정에 지속적인 도움으로 효과적인 신앙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교회 내 소그룹 활동에서도 AI를 활용한 성경 공부와 말씀 나눔을 통해 구성원들의 영적 필요를 파악하고, 맞춤형 돌봄을 실현할 수 있다.AI는 교회의 행정과 목회를 지원하며,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설교와 선교사역등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교지에서 AI를 활용한 번역 시스템을 통해 현지 언어로 된 성경 교육이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또한, AI 기반의 신학 연구 도구는 모든 목회자들이 더욱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해준다.살펴본대로 AI는 세상을 변혁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과 영성은 AI의 기술이 아닌 인간 목회자의 역할에 달려 있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본질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되, 그 과정에서 신학적, 윤리적 기준을 확립하며 균형 잡힌 접근을 유지해야 한다.AI 시대에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는 AI를 도구로 삼아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펼쳐야 할 것이다. AI는 교회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를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는 더욱 혁신적인 방식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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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The letter 04 - 김광근 목사의 "소망 가운데 기뻐하는 삶"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로마서 12장 12절 삶에는 기쁨과 도전이 공존합니다.때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경과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바울의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권면은, 단순한 감정적인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실 선한 계획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나옵니다현재의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미래를 신뢰할 때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우리에게 인내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믿음의 길은 때때로 기다림을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늦지 않으시며 최선의 때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오늘도 소망을 붙들고 기뻐하십시오하나님께서 모든 순간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며, 기도로 나아갈 때우리의 삶은 더욱 단단해지고,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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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결국은 사랑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3.03
    일터영성 이라는 타이틀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것이 2년 가까이 되어간다.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시간이 흐른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도 세월 속에서 변화를 마주할수 밖에 없다고도 할수있다.무슨말인가 하면, 나이를 먹게 되고 몸은 2,30대의 최고 정점을 찍고 쇠퇴기로 점점 향하여 가는 것을 막을수 없다는 사실이다.목회자로 살아온 세월이 올해로 36년째를 맞이하는데, 그 동안 관찰 되어 온 것 중 정말 놀랍도록 단순한 사실 한가지가 있다.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와 건강상태를 영적인 상태와 함께 간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쉽게 말하자면, 젊은시절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엔 영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기이며 영적인 수준이 가장 정점을 이루는 시기라고 생각들을 한다.나이를 먹으며 에너지도 떨어지고 몸도 젊은 시절 같지 않게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노력 또한 그 시기에 맞물려 멈춰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60대, 70대 이상의 크리스찬들은 영적으로 성장하겠다 라는 결심을 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헌신했던 사역들, 열매가 있었던 사역들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기 일쑤고, 지금은 영적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시냐고 여쭈어 보면, 이제 이 나이에 이 몸으로 뭘 할수 있겠는가? 반문 하면서, 이제는 그저 예배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나 열심히 하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 것들이 없다고들 말한다.우리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연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것을 정말 하나님은 원하실까?세미나와 집회를 인도할때에 필자가 택하는 주제는 언제나 예외없이 영적성장 이다.이 칼럼에서 모든것을 말하기엔 너무 제한적이지만, 그저 몇가지만 말해보기로 한다. 영적성장의 핵심은 ‘일, 사역’이 아니라 ‘됨’에 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엄청난 하나님의 맡기시는 일들을 잘 해결하고 감당할수 있다 라는 페러다임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영적성장은 의외로 그 목표나 너무나도 간결하고 명료하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의 어떤것을 닮아야 하는가?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 사랑의 사람 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2천년전 십자가의 사건을 클라이막스로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그 사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믿어야 한다.사랑의 사람이 되겠다는 영적성장의 목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 목표임을 잊지말자. 오늘의 칼럼은 더 이상의 설명 보다는, 며칠전 적어 놓았던 사랑에 대한 짧은 단상으로 가름하기로 한다.아파본 사람, 가족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 건강함을 자랑삼아 떠들어 대지 않는다. 아픈 이들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불우했던 사람, 지인 중 정말 불행한 사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행복해도, 그 행복함을 대놓고 자랑하고 떠들어 대지 않는다찢어지게 가난해 봤던 사람, 가난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요함을 여기 저기 마구 떠들어 대며 의시대지 않는다자고로, 자랑이라 함은, 모두가 함께 기뻐해 주고 박수쳐줄 만한 일 이어야 가장 바람직한 것 일텐데, 작금의 사람들의 자랑 이라는 것을 보고 듣다 보면, 대부분은, 그래, 그래서 너는, 너네는 참 좋겠다… 이런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아픔과 고난을 진정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는 짓, 쏟아내는 말 마다 어쩜 그리 밉상인지. 정말 너를 위해주는 인격자는, 결코 떠들어 대며 나를 자랑하지 않는다.예수님이 그러셨다. 단 한번도 그 무엇이든 자랑하신 적이 없으셨다. 오직 한가지 자랑하신 것은,자신이 사랑하신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이 존귀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 자랑하셨다. 얼마나 존귀히 여기셨으면, 십자가를 코 앞에 두시고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 13:1) 라고 기록되어 있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순간에도, I am with you always! (Matt 28:20) 라고 말씀하셨을까. 서로가 서로의 자랑이 되는 커뮤니티가 바로 천국이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것들은 전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니, 결국 다 지나갈 것들에 시간과 정력과 꿈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영원히 남을 것에만 모든것을 쏟아부어라. 결국은 사랑이다. 가진것을 자랑하기를 멈추고, 자랑하기 위해 모으는 것을 멈추고, 지혜로운 말과 사랑으로 이웃을 기쁘게 하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고 살아보라.  당신이 선 그곳이 천국임을 감사함으로 고백하게 될 터이니.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랑의 사람임을 확신하고, 내가 밟고 서 있는 그 어느곳 에서도 예수님 처럼 사랑의 사람으로 기꺼이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하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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