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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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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크리스천헤럴드2023.09.29
    일상을 벗어나서 여유를 찾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무척 중요하다. 쉼을 통해서 새로운 충전과 힘을 얻고 삶을 재정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쁘고 힘든 이민 사회속에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때를 아는 것이다. 때를 아는 것은 지혜이다. 쉬어야 할 때와 일을 해야할 때를 아는 것이다. 주중의 삶과 주일의 거룩함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이다.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서도 인생의 중요한 때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강조한다.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개인 스스로의 삶이 흐트러지고 함께하는 공동체의 거룩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방향이 흔들리기도 한다.그래서 목표와 목적이 분명한 집중하는 삶이 되어야 한 걸음 더 성취와 승리로 다가서게 만들어 준다.책에서 읽은 내용중에 조련사들이 사자를 길들이고 훈련하는 방법을 소개한 것을 읽었다. 사자를 조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포효하며 살기등등한 사자앞에서 조련사는 다리 4개인 의자를 흔들어서 보여 준다. 그러면 사자의 눈 앞에 4개의 다리가 흔들거리고 나타나면 사자는 당황하는데 그 이유는 사자는 한 가지 목표(다리 하나)를 바라보고 바람같이 달려가 먹이를 물어뜯는 습성이 있는데, 갑자기 바라봐야 할 목표가 4개가 되었기 때문에 집중을 못하고 혼란스럽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사자는 목표물이 여러개가 되어서 급기야 목표물을 상실하고 온순해 진다고 한다. 한 가지만 생각하고 본능을 깨우며 살아온 사자에게 목표물이 4개가 된 것은 목표물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의자 조련방법을 통해서 조련하면 바라봐야 할 목표가 많으면 사자에게 있는 맹수의 야성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사자의 습관을 길들이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도 있다.나는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여러가지를 다 잘 할수가 없다.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감당할 능력도 없다. 환경이나 시간 여건이 조성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가 한 곳을 집중해서 바라볼 수 없도록 수시로 유혹과 시험도 다가온다. 우리 신앙생활에 영적도전이 점점 세찬 파도처럼 다가온다. 나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삶의 요소들이 발목을 잡고 멈춰세운다.많은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사자를 조련하는 조련사처럼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인생 길을 달려가는 우리에게 한 가지를 바라보자고 권면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고 말씀한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 하나님만 바라보면 항상 함께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셨다. 출애굽 여정중에 광야에서는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만 죽음에서 건져 주셨고 생명을 얻고 살아났다. 어둔 죄악 길에서 살았을지라도 십자가의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으면 구원을 얻게 하셨다. 우리보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도 오직 한 길, 그 길, 예수님이 가신 생명의 길을 따라갔다. 예수님 한분을 생각하며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를 지으신 나를 만드신 여호와께 있다”고 찬양하게 하신다.우리 예수님만 바라보면 힘이 생긴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골치아프다. 해결할 힘도 능력도 없는 자기 문제에 빠져서 본질을 잃어버리고 삶은 지치고 신앙의 정상궤도를 벗어나게 만든다. 나는 우리에게도 다리 4개를 번갈아 보다가 무기력해지고 힘이 빠지는 맹수의 제왕 사자의 욕심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는 우리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할 때가 되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환난날에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신다. 말씀이 능력이 된다. 우리의 눈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한 분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이 우리 안에 충만케 될 것을 나는 믿는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되시니~~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우리 주 예수님이다.” 샬롬!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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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당신은 성경 선생님입니까? (마15:10) 크리스천헤럴드2023.09.14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무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어떤 사람들은 분노했다. 반면에 제자들도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주님께 나아가 이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주님께 부탁했다.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에는 반드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그 말씀을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마15:16)고 되물으셨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울 수 있겠다.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듣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가 그 말씀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하는 사람을 성경은 교사, 그런 일을 혹은 가르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즉 설교란 본문을 다시 한번 더 쉽게 설명하는 것이겠다.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 중 하나가 그 설명(가르침)을 생략한 채 정답만 제시한다. 압축된 정답만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정답은 외워서 알지만 그 의미는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무지만이 아니라 오해를 하고 더 심각한 것은 정답을 외워 알기에 무지나 오해 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렇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 교사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정답을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성경 교사는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답만 외우게 하지 말고 그 정답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할 일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이 말하는 순종과 복에 대한 개념을 우선 알아야한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인정하는 행위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결국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라”는 말씀이다.고대 사회의 왕은 백성들을 위해서 그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또한 백성들의 필요를 채웠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안전과 필요를 공급을 책임지신다. 하나님께서 안전을 책임져 주시기에 두려울 일이 없고 공급을 책임져 주시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어 왕으로써 하실 일을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의 안전과 공급을 책임져 주시기에 순종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평안이 찾아온다.  성경은 그 평안을 복이라고 말한다.“나는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답만을 외우고 있는가?”를 정직하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의 답은 아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성경을 설명할 수 있으면 이해한 사람이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이다.  나는 성경 선생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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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소중한 지체 크리스천헤럴드2023.09.14
    얼마전 대한항공에서 승객들의 몸무게를 잰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른 일시적 행정절차이지만 오해를 살 여지가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나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승객과 수하물의 중량을 측정해서 비행기에 실어야 할 연료양을 정하기 위한 안전수칙으로 보인다. 비행기는 통상 실제 필요한 연료보다 1% 정도 더 많은 연료를 싣고 비행한다. 정확한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연료를 싣지 않아도 되어서 연간 10억 달러 정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이 몸무게 측정을 거부할 수 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조사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에 하와이언 항공 사모아 항공사가 승객의 무게에 따라 가격을 책정할 계획을 밝혀 언론에서 이슈가 되었다. 키가 크고 등치가 큰 사모아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평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사모아 항공은 승객 몸무게에 따라 비행기 좌석 값을 정하는 첫 항공사가 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왜 항공사들이 이렇게까지 무게 절감에 사활을 거는 걸까? 그 이유는 항공사의 가장 큰 지출이 연료이기 때문이다. 연료 손실은 고스란히 항공사가 부담하는 것이고 그 손실은 회사 이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연료 절감은 곧 수익이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필요 없는 무게를 줄여야 한다. 이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오래전 대한항공에서 흥미로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기내에 버려진 과자를 일년 동안 방치해 두었을 때 발생하는 연료손실을 계산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무게라도 불필요한 것을 싣고 다니면 손해라는 뜻이다. 그러니 꼭 필요한 것만 두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야 한다. 이러한 항공사의 사정은 비행기를 타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비행기를 탈 때 부치는 짐에 대한 별도의 요금은 없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항공사가 짐의 개수와 무게에 따라 추가 요금을 받고 있고, 받지 않은 항공사도 무게 제한이 있어 초과하면 적지 않은 비용을 내야 한다. 이 정책 또한 한동안 승객들의 불만을 샀다. 항공사들이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내놓은 여러 정책들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필요한 무게를 줄이는 것이다. 연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필요한 것을 싣지 않는 것이다. 한 예로, 비행기는 몇 년마다 정기적으로 새로 외관을 칠하는데 그 위에 덧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페인트를 다 벗겨내고 맨 살 위에 다시 칠한다고 한다. 불필요한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보잉 747-400 비행기 외관을 칠하는데 페인트 55통 정도가 사용된다고 한다. 페인트 한통에 10파운드 정도 하니 페인트의 무게만 550 파운드라고 보잉사에서 밝혔다. 그러나 디자인에 따라서 페인트 100통, 즉 1000 파운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연료에 영향을 미친다. 칠을 벗기는 작업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불필요한 무게로 인한 연료손실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은 없애야 한다.비행기는 삼백만 개가 넘는 부품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수많은 부품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꼭 필요한 부품이라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도 필요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없다. 모두 각기 제 역할이 있고, 그 기능때문에 비행기의 일부가 된다. 과자 하나도 연료 낭비가 되는데 비행기에 필요 없는 것이 기체에 절대로 포함될 수 없다. 한국의 나로호 로켓이 초기에 여러 번 발사에 실패했는데 그 원인 중 하나는 손바닥만한 링 부품의 문제였다고 한다. 이렇게 필요한 모든 부품들이 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안전한 비행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교회도 같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도를 한 몸으로 비유하며 그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는 꼭 필요한 일부라고 쓰여 있다. 성도들은 몸의 부분처럼 생김새와 역할이 다를 뿐 제각기 필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함께 있어야 완성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비행기에 필요 없는 부품은 없듯이 교회에도 필요 없는 지체는 없다. 비행기 몸체에 사용되는 모든 부품이 하나로 부품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 비행기처럼 성도 모두가 한 몸을 이루어 제 기능을 다 할 때에 능력있고 부흥하는 온전한 교회가 이루어진다. 팬데믹이 끝났다. 거리 두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같이 교제하고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교회로 돌아가도 된다. 그런데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선택한 성도들 중에는 자신이 그 공동체에 꼭 필요한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란 존재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교회는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이라 말씀하신다. 나는 공동체에 꼭 필요한 지체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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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처음처럼 마지막까지 주 예수님만을!” 크리스천헤럴드2023.09.14
    지역사회를 섬기며 여러 교회의 예배와 행사에 참석해서 순서를 맡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중에 목사안수식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목회사역을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시는 남가주프라미스교회 창립 12주년 기념주일에 있었던 목사 안수식에서의 일이다. 성도님들을 대신해서 장로님 내외분과 함께 참석중이었는데 목사안수를 받을 분을 소개하는 담임목사님은 “이번에 안수받으시는 분은 11년동안 우리 교회에 오셔서 찬양사역을 감당하시는 동안 한번도 ‘아니오(NO)!’ 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예배당은 안은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누군가는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로도 축하의 표현을 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분들도 있었다.어찌 생각해보면 사역자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좀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사실 나도 무척 기쁘고 설레기도해서 아내의 눈을 마주하고 엄치척으로 호응했다. 목사안수를 받는 분의  성품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담임목사님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어서 사역의 출발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 즐겁고 기쁜 목사안수식이었다.마침 내게 선배의 조언을 부탁하시기에 고심하며 “목회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하시는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눈치를 잘 살피셔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셔야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전해드렸다. 교단 안수위원 목사님의 권면 중에 ‘초심유지’라는 말씀이 와닿았다. 그러면서 내가 맞았던 그 첫 순간들을 기억해 보았다. 1995년에 목사 안수를 받던 감사와 감격스런 순간, 아내를 만난 순간, 딸 리베카가 태어난 순간, 미국에 도착한 첫날, 담임목회를 시작하던 순간 등등 제 인생의 첫 순간들을 생각하니 원망과 불평을 했던 몇가지 일들이 떠올라서 부끄러움과 죄송함으로 가슴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눈으로는 목사안수식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십자가를 떠올리며 주님께 깊은 회개와 죄송함을 품고 지난 사역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다.이 교회가 개척한 이후로 새벽 4시 30분에 문을 열고 기도를 드리는 어느 한 장로님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교회를 위하여 고단한 새벽 잠을 깨우고 성전의 문지기로 서원을 드리고 일터로 달려나가는, 자기 인생을 전적으로 내드리는 숨겨신 헌신과 섬김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이 밀려왔다.인생을 마칠 때까지 목적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힘든 일이다. 세월이 지나도, 상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이어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성경의 인물들 처럼 환란과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노아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건 다니엘의 변하지 않는 믿음처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처럼 말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욘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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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신선묵 교수의 교수칼럼 - 선교적 영성 (1) 크리스천헤럴드2023.08.25
    오늘날 하나님의 선교, 선교적 교회론 등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선교 활동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고 그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신학화하고 영성을 이해하는 관점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성을 접근할 때에 존재적인 영성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그것의 표현 방식의 한 부분으로 그의 사역과 선교를 이해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그의 선교 사역을 이해하고 그것의 기초로써 존재적인 영성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영성과 선교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영성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교회 공동체 속에서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선교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존재 중심적이다. 그러므로 신앙 생활의 한 부분 그 중에서도 가장 주변에 놓인 존재의 표현일 뿐인 선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까지 이루어져야한다는 면에서 선교를 강조한다. 이러한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신학을 할 때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는 전통적인 신학의 영향에서 나온 것이다. 선교적 영성이란 이렇게 우리가 존재적인 관점에서 영성을 잘 갖추어야 하고 그 표현으로 활동으로써 선교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관점이 아니다. 선교적 영성이란 본질적으로 영성이란 선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는 영성의 주변부가 아니라 선교가 아닌 영성은 없는 것이다. 영성이란 활동없이 존재적인 영성이 먼저 있고 그것이 선교 활동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가 영성이다. 선교는 영성에서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영성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영성이란 우리의 존재적인 영성이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고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선교 활등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신학을 할 때에 하나님의 존재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활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활동을 즉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신학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본질을 알 수는 없다.  단지 그분의 선교 활동을 통하여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일 뿐이다. 존재보다 활동이 우선한다.물론 결국 우리의 신학과 영성에서 존재와 활동이 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축이 기존의 신학과 영성에서는 존재에 관심을 주었다면 현대 선교 신학에서는 그리고 선교적 영성에서는 하나님의 활동하심과 우리의 활동에 관심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 활동하심을 이해하고 우리가 그 활동에 참예함의 관점에서 신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존재와 인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중요성은 따로 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 활동의 기초이자 동기로서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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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어리버리 서목사의 낚시 전도법 -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 소수로 (결론) 크리스천헤럴드2023.08.25
    우리는 위의 네 가지 카테고리만으로도 적지 않은 전도 대상자(태신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도 대상자를 더 많이 발견하고 또 발굴하여 그들을 품고, 그들을 위해 힘써야 하므로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사람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전도는 기본적으로 성도 개개인이 하는것이지만, 교회적으로 전도하려는 성도들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교회로서의 태신자 발굴이 필요하다. 교회가 여러 가지 방법 중 단기적인 행사 혹은 외부 이벤트를 통해 태신자들을 발굴하여 기성 성도들에게 그들을 맡길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카테고리에 각자의 달란트와 은사를 통한 입체적인 방법을 추가하면 더 많은 사람(태신자)을 찾을 수 있다.예를 들어, 교회에서 풀타임으로 목회하는 목사들의 경우 교회는 위에서 열거한 방법에 많은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만나는 모든 손님, 혹은 동료가 다 교인들이다.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전도할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직업을 통해서는 태신자 리스트를 작성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확장된 모델을 만들게 되면 얼마든지 추가로 태신자를 발굴할 수 있다. 목회자인데, 기타를 조금 친다고 가정해 보자. 교회 안에서 찬양 인도를 한다고 하면 이분의 경우, 기타를 가지고 얼마든지 확장된 모델을 만들 수가 있다.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기타 무료 레슨, 혹은 기타 동호회를 조직할 수 있다. 꼭 자신의 거주지가 아니어도 교회에서 기타 무료 레슨과 같은 클래스를 운영하면 교회 바깥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 일 년에 한두 번 학생들이 리사이틀을 통해 배운 실력을 자랑할 수 있고, 자신들의 친구나 부모들을 교회(다른장소)로 초청할 수도 있다. 이런 전도 모델은 개인과 교회가 함께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전도 방법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기타를 무료로 지도하는 재능기부의 모양이지만, 이 일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부모들과도 접촉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태신자 발굴이 가능해지는 것이다.나의 경우, 운동하는 아들을 바래다주며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많은 학부모와 만날 수 있고, 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침이면 커피를 사 들고 아침 먹거리와 함께 대접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혹자는 나에게 물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명이나 교회에 전도했고 몇 명이나 교회에 등록했느냐고. 하지만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전도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데려다 등록시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전도라는 것이다. 나는 거저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의 정성과 열정으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나의 섬김과 사랑의 표현은 오직 예수님 때문이다. 내가 굳이 내 돈을 써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내 개인의 사익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많은 목회자의 관심이 주일 교회의 출석 인원과 등록 인원에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들은 나에게 개척교회인 우리 교회의 상황을 물어보시곤 한다. 분명한 것은 낚시 전도법의 전도는 롱텀 프로세스(Long Term Process)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은 꼭 사람의 머릿수와 똑같은 결과치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태신자의 경우 4~5년을 넘게 교제하면서도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짧은 시간 여러분의 교회를 더 많은 사람으로 채우기를 원해 이 전도법을 사용한다면 결과에 실망할 수도 있다. 낚시 전도법은 교회 건물에 사람을 데려다 놓는 획기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하심을 전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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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바울은 어떤 충격을 받았는가? (행9:19-22) 크리스천헤럴드2023.08.25
     오랫동안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 날 단번에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수십년 담배를 피던 사람이 갑자기 담배를 끊는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술을 먹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외적인 변화다. 외적으로 일어난 변화는 내적변화의 열매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우연히 종합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은 간암입니다. 술과 담배를 끊지 않으면 1개월을 넘기지 못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하게될까? 에이! 이미 망가진 몸 먹고 마시고 그냥 죽자 할까? 아마도 아무리 오랫동안 먹고 피던 술과 담배라도 살기 위해서는 끊게 될것이다. 이런 변화는 충격적인 변화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충격적인 인생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울의 이야기다.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그리스도인을 향한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바울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말이다.다메섹으로 떠나는 바울의 모습과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이 이렇게 달라졌다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바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 역시 구체적이지 않고 어쩌면 모호한 표현일 수 있겠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바울의 생각에 어떤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다메섹 도상에서 달라진 바울의 생각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다메섹에 도착했을 때 바울이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각의 변화는 그에 따르는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다메섹에 도착한 바울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 전의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바울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사칭한다고 믿었었지만 이제는 사칭이 아니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다시 말해 바울의 생각, 지식, 지각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바울의 생각을 바뀌게 한 것일까? 바로 주님의 부활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한 주님을 만나던 것이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구약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바울이었기에 바울에게 있어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요 사기꾼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니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명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적변화란 생각의 변화이다. 만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진다면 행동의 변화 역시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이 달라질까? 여기서 말씀과 성령님이 등장한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 주셔야 한다.  하나님을 그 일을 어떻게 행하실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일 하신다. 다시 정리하자면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이해시키시며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바울처럼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생각의 변화가 없다는 것인데 바울은 간증하기를 "매일 새롭다"고 했다. 바울은 매일 매일 달라졌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화라고 말한다. 성화의 은해가 우리 모두의 삶속에 오늘도 그리고 매일 매일 일어나 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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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소통은 의미부여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3.08.25
    LA 경찰(LAPD)가 약 30년 만에  9,000명이 되지 않고 3년 동안 1,000명이 감소하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신규 지원자가 줄어들다가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 이후 Black lives matters 운동으로 경찰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고 예산도 삭감되었다. 그래서 경찰 인력을 줄어들면서 그 결과 범죄 발생은 많아지니 치안이 불안해졌다.이에 놀란 시장과 의회가 나서서 경찰 수를 늘리고 기존의 경찰들을 머물게 할 방법으로 연봉을 올려주는 등의 여러 가지 방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경찰 수는 더 줄어들고 있으며 몇 년 내 더 많은 경찰들이 퇴직과 사직으로 직업 변경의 계획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신규 보너스 제공과 연봉을 올리는 경제적인 부분도 문제이지만 핵심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하여 봉사하던 자긍심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내놓는 여러 가지 방안들이 대부분 경제적인 부분에 맞춰져 있어서 안타깝다.교회도 목회자들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신학교 지원자들이 현격히 줄어들었고 신학교는 졸업 학점을 줄이면서 생존을 위하여 애쓰고 있지만 이미 인구 절벽이 시작되었고 코로나를 거치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몇몇 목회자들의 여러 범죄가 매체를 통하여 드러난 후 더욱 목회자 수급은 더욱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극소수의 대형교회 목회자 외에는 많은 경우 목회자들이 생계를 위하여 다른 일들을 해야 할 정도의 상황에서 목회적인 자긍심마저 무너지면 목회자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교회들조차 목회자의 생계에 대하여 너무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몇몇 교인들은 목회자가 특별한 잘못이 없는데도 서슴없이 비난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예전에 그런 식의 말을 하면 어떤 의식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세대가 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합리적이지 않고 근거없는 비난이나 비판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러면 젊은 세대는 점점 교회를 떠날 것이고 그 현상이 이미 많은 교회들에서 나타나 나이 든 교인들이 대다수인 상황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목회자가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과 교인들에게 받는 상처로 과연 이 길이 맞는가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된다. 그러면 목회자는 교회를 떠나고 그 교회는 그렇게 목회자들이 떠나는 일이 반복되다가 결국에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될 것이다.목회자들에게 가난이 미덕인 것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가난하고 다들 먹고 살기 힘들던 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함께 그 환경에 동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교인들은 나름대로 살만하고 여유도 있는데 목회자들에게만 과거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기준을 내세운다면 너무나 이기적인 태도이다.교회에 젊은 세대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조금 있으면 목회자도 부족할 수 있다. 이미 조금씩 그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교회가 살아나고 다음 세대가 회복 되려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겠지만 우선 목회자의 회복이 우선이다. 교인들은 목회자의 가치를 인정하여 지지해 주고, 함께 동역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비전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는 살아나고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을 것이다. 교회는 담임목사 뽑는 광고하면 수십 명씩 지원하고 그 중에 심사하여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 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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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가이드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자주 가기 어려운 먼 곳이고 비용도 많이 드니 가서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도록 철저히 준비를 하고 갔다. 비행기표 구매와 호텔예약은 이미 여러 달 전에 마쳤고, 떠나기 한달 전에는 가볼 곳들, 먹을 것들, 구경할 것들, 지하철 노선과 버스와 기차표도 미리 알아보고 예매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하니 스케줄도 효율적으로 짰다. 동선을 따라 여행할 곳을 정하는 것도 막상 가보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시간과 교통비를 줄이고 힘도 아껴,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준비를 해야 하니 가이드가 사전에 해야 할 일이 제법 많다.이렇게 세심히 준비를 해도 막상 가보면 여러 변수가 생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고 날씨가 변덕스러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놀이동산에 가기로 한 날 비가 많이 내리면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날씨 확인을 했음에도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인솔자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이런 힘든 준비과정이나 예측하지 못한 현장의 변수가 아니라, 바로 따라오는 사람들이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생체리듬의 시간이 반대인 곳에서 진행되는 여행의 시작은 지친 몸과 마음이다. 여행으로 들뜬 마음은 피곤함에 수그러들고 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관광보다 숙소에서 늘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로 인해 첫날부터 여행 계획이 틀어질 위기를 맞는다. 모두가 내키지 않는데 지친 몸을 일으켜 따라 나서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그렇다고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여행 계획을 바꾼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여행의 목적이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라면 인내와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걸어야 하고 이동해야 한다. 덥다고 하루 종일 그늘 아래 앉아 있을 수 없고, 비가 온다고 방 안에만 있는다면 여행을 할 수 없다. 가야 볼 수 있고, 겪어야 경험할 수 있다. 가장 큰 실수는 상황에 따라 쉽게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시에는 반응이 좋고 몸은 편해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런 추억이 없다.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이 되게 하는 것도 가이드가 할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할 일은 여행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고생이 되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좋은 여행이 된다면 당시의 수고는 잊혀지고 좋은 추억만 남는다. 가이드가 할 일은 이 고비들을 잘 넘겨서 계획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지치고 피곤하면 불평할 수 있다. 여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잠시 힘들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이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독려하며 잘 따라오도록 설득한다.가이드는 모두의 의견과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경계한다. 저마다 생각과 의견이 분분하다. 모두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때마다 계획을 바꾼다면 차질이 생긴다.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이다. 관심이 없었던 경험을 하고나서 생각이 바뀌어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가이드는 일시적인 반응은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중요한 계획을 수행해 나가는 것에 목적을 둔다.그러니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 모든 계획은 가이드에게 맡기고 그가 인도하는 대로 가고, 보고, 경험하면 조금 힘들고 고되어도 많은 것을 배우는 좋은 여행을 하게 된다. 그 결과를 위해서 가이드가 철저히 준비를 한다. 여행이 끝나면 왜 이곳에 갔는지,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알게 된다. 가이드를 믿고 따르는 것이 좋은 여행을 위한 가장 현명한 결정이다.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계획을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꼭 경험하고 가야 할 길로 인도하신다. 나의 인생이 풍성한 삶이 되도록 꼭 필요한 것을 보고 배우고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열심을 다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그러나 그 과정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때가 많을 것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경험도 있고, 가기 싫은 곳도 있을 것이다. 피하고 싶은 힘들고 고된 과정도 있을 것이다. 이때 포기를 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계획과 목적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나를 위해 준비하신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 알게 될 하나님의 뜻과 놀라운 결과를 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힘이 들어도 끝까지 가야 한다. 그곳에 도달해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가족 모두 아빠가 가이드 하느라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줬다.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힘들고 불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참 좋은 여행이었다며 고마워했다. 다음에 다시 가족 여행을 떠날 때 이번의 경험이 신뢰가 되어 아빠를 믿고 또 다른 여행을 따라나설 수 있게 된다. 어찌보면 이것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목적일지도 모른다. 여행만큼 동반자들을 가깝게 하는 게 없다.우리 가족은 같이 여행을 다녀온 후 한층 더 가까워졌다. 서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다. 함께 보고 느끼며 공감한 것들이 생겼다. 같이 걷고 고생하며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여행에서 돌아와도 오랫동안 함께 간직할 추억과 나눌 이야기가 생겼다.하나님을 따라가는 것도 같다. 가다보면 예비하신 길로 인도하신 이유를 알게 된다. 결과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이 경험이 신뢰가 되어 나를 더 멀고, 긴 여행으로 인도하실 때도 믿고 따라 나서게 된다.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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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정답 보다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3.08.13
    얼마전 ‘라이프 코칭’ 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인도 하던 중, 참여한 젊은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자신이 지금 너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자매의 어머니가 위로의 명목으로 다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의도치 않게 큰 싸움을 하고 말았다고 눈시울을 붉히더라.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처음엔 모든 일이 잘 될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시다가, 갑자기 자매를 향해 지금 너가 겪고있는 아픔은 따지고 보면 그 문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너에게 감사함이 부족하기에 찾아온 현상이라고 하셨단다.그러면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네가 감사할 일들을 찾아서 그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곧 네 안에 있는 염려와 걱정이 사라질것 이라고 하셨다며,왜 우리 엄마는 나의 어려운 상황에 공감해 주시지 않고 정답을 강요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을 하더라는.지금 이 시대는 ‘경청’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로 넘치는 시대라 할수 있겠다.사실은 목회자 직업군에서 이런 사람들이 특히 많음을 보게 된다.많은 이들이 목회자를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정답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누군가가 나의 아픔과 어려움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기를 바래서 찾아오는 것인데, 많은 목회자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듣는 중에도 끊임없이 어떤 정답을 얘기 해 주는 것을 고민하는 경우를 보게된다.하지만 정말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것 보다는 정성을 다해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복음서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사역도 많은 부분 경청과 공감의 사역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여러 곳에서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사역들을 하셨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낮고 천한이들,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 계셨고, 학교나 클래스를 만들어 그들을 교육하시는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과 함께 어울리시면서 그들의 삶을 삶으로 공감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물론 그렇게 삶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외없이 삶이 좋아졌음을 우리는 안다.경청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으면 경청할 수 없다.깊이 듣는 대화를 하면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을 수용해 준다고 느끼게 되며,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될 때 서로에 대해 신뢰감을 갖게 되고, 사랑의 관계가 형성된다.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면, 말하기 보다 듣기에 초점을 맞추고 마주 앉아야 함을 잊지말자.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말은 예수님 처럼 살겠다는 말인데, 경청은 그 삶의 핵심 중에도 핵심임을 잊지 말자.진정으로 듣는것이 사랑이요,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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