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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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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관 심 크리스천헤럴드2024.02.10
    교회를 가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들을 보게 된다.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줄어서 인지 더더욱 눈에 띈다. 예배 후 친교실에서 만나면 아이들을 챙기느라 엄마 아빠는 밥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어 보인다. 우리 부부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 그때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아기 용품들을 챙겨 유모차에 태우고 바쁘게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당시의 경험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생기면 어른들의 삶에도 여러 변화가 생긴다. 그 중 하나는 이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아기 용품들이다. 무엇이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필요치 않았으니까 잘 모르고, 관심밖에 일이었으니 보았어도 생각없이 지나치게 된다. 우리의 경우는 유모차였다.첫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유모차에 난생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것이어서 자주 본적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어떤 유모차들이 있는지,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온라인으로 찾아보고, 아기용품점에 가서 직접보고, 브랜드도 알아보고 가격비교도 해보고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유모차가 갑자기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를 가도 유모차가 보였다.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눈에 밟힐 정도로 많이 보였다.좌로 봐도, 우로 봐도, 어디를 보아도 시선을 두는 곳마다 유모차가 보였다. 심지어 가다가 혹시 하며 위를 보아도 건물 위층에 유모차가 보였다. 설마 여기는 없겠지 하며 쳐다보면, 어김없이 그 곳에도 유모차가 있었다. 심지어 유모차 주차장까지 보였다.온 세상이 유모차로 가득했다! 두발 달린 유모차, 세발 달린 유모차, 네발 달린 유모차, 모양과 종류도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유모차들이 가는 곳마다 가득했다. 세상천지에 이렇게 많은 유모차가 있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많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아이들을 낳아서 유모차가 많아졌을 리는 없고 다만 내가 관심을 갖게 되니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관심을 갖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관심을 버려야 하는 것들도 있다. 내 마음에 이미 가득한 것들이다. 내가 욕심내는 것들,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이 가는 것들, 내 육이 갈망하는 것들은 이미 충분히 나의 관심안에 있다. 이것들은 내 본성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찾는 것들이다. 오히려 관심이 지나쳐 실수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관심을 낮춰야 할 것들이란 뜻이다.새해다.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정하는 때이다. 내 영이 간구해야 할 것들에 관심이 없어 가까이 있음에도 잊고 살 때가 있다. 옆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적으로 무뎌져서 관심 갖지 않고 살 때가 있다. 우리에게 많은 필요가 있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영을 건강케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영적인 것에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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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하늘, 비 오는 날의 기도 크리스천헤럴드2024.02.10
    지난 2월 첫 주말부터 쉬지않고 쏱아지는 장대비는 흡사 하늘에 구멍이 났다는 표현을 해도 될만큼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Southern California 에 집중호우와 홍수경보가 계속해서 발령되고 게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는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코리아 타운은 정전으로 신호등마저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는 뉴스를 봅니다. 저는 며칠 전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처마 밑 물받이와 배수로를 청소했지만, 오늘은 물받이 중간부분에 틈새가 벌어져  폭포처럼 물이 흐르고, 현관 마당은 물이 넘쳐서 계속 쓸어내야 했습니다. 바로 하늘에서 내린 비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천둥과 번개가 소리와 장마철 폭우를 만나면 무서웠습니다. 당연히 거대한 자연의 위력과 기후에 압도당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사실은 누군가 저에게 알려준 이상한(?)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세상에 사는 나쁜 인간들 때문에 화가 나셨고 그래서 진노하는 증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회 이재만 교수는 하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늘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수많은 별들을 담고 있는 우주 공간의 밤하늘과 새가 날아다니는 대기권이다. 대기권에는 질소 78%, 산소 21%, 기타 1%의 기체가 일정한 비율로 혼합되어있다. 이 혼합비율은 지표면으로부터 지상 80Km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대기권의 기체가운데 산소는 생물의 호흡에 절대적이다. 산소의 비율이 더 높으면 생물이 살기에 더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기 중에 산소 함량이 1% 높아지면 산불이 일어날 확률이 70%가 높아진다. 반대로 산소의 비율이 조금만 낮아지면 불을 붙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당장 숨쉬기도 힘들어진다. 대기 중에 가장 많은 질소는 모든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소다. 비 온 후에 식물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은 비가 대기 중에 있던 질소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질소는 토양에서 얻은 양분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기 때문에 가뭄이 오래 지속될 경우 물 부족만큼이나 질소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해진다. 또한 다량의 질소는 가연성 기체인 불안정한 산소 사이에서 대기를 안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기 중에 있는 미량의 오존은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여과기(오존층) 역할을 하며, 이산화탄소는 지표에서 발사되는 빛의 일부를 흡수해 지구에 따뜻한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대기를 구성하는 이들 기체들은 완벽한 성질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고, 사람과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합니다.성경 창세기에서 하늘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첫 순간부터 등장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둘째 날에는 궁창으로 물을 나누며 대기권을 만드시고, 이 공간에서 다섯 째 날에 새들이 날도록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후에 매번마다 ‘그대로 되니라’는 종결어를 사용하신 것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높고 푸른 하늘과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을 삼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아침 중보기도 시간에 집중호우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이웃들을 위해서 합심해서 기도드렸습니다. 내 삶이 조금 힘들고 불편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계신 것도 아닙니다. 자연재해와 환경때문에 혹은 삶의 관계와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산 자들이 이만큼, 이렇게 보호와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에 기쁨의 순간이 오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때로 숨이 멎는 어려운 순간에도, 그 환경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끝없이 펼쳐지는 저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완전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할 뿐입니다(사43:21). 최근 존경하는 데이빗 강 장로님께서 카톡으로 ‘비 오는 날의 기도’(양광모 시인) 라는 시를 보내주셨는데 제 마음에 감동과 은혜가 되었습니다.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게 하소서// 천둥과 번개 소리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의 소리에 떨게 하시고/ 메마르고 가문 곳에도 주저 없이 내려/ 그 땅에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 언제나 생명을 피워내는 봄비처럼 살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비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하늘 높이 무지개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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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크리스천헤럴드2024.01.26
    한국의 영화 한 편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계속 상영 중이며, 미주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영화는 ‘서울의 봄’으로, 1979년 12월 12일에 한국에서의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분노의 게이지가 얼마나 올라갔고, 심박수가 올라가는 경험을 하였다는 영화 관람 후기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역사에서 일어났을까?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아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이 군인으로서의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든, 교회든, 아니면 가정 또는 회사든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겠지만, 그들과 함께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주변의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얻은 것 때문에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를 수 있겠지만, 그들과 함께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교회도 과거 역사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고, 정치나 세상 경영에 개입하면서 세속화가 되었고 타락한 것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교회가 국가에 영향을 끼치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는 것은 세상에서도 크게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개혁의 정신은 약해졌고, 몇몇 대형 교회들이 생기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많이 줄었다는 통계이다. 이제는 교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각 교회가 움직인다고 말하면 과한 것일까.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 의미는 교회는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집중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자기의 직업과 가정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도록 세워야 한다.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더 좋은 기회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위기를 통과하며 오히려 더 순수해졌고, 그때 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워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을 한다. 지금은 교회의 위기이다. 교회의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의 위기이다. 이때 교회는 순수함을 회복해야 한다. 바라기는, 목회자들의 기도 자리가 눈물로 젖고, 한 영혼을 품고 양육하고 세워가는 일에 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더디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는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조급함이다. 그러면 자꾸 자리를 벗어나서 더 좋은 방법들을 찾으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교회다움을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더 좋은 방법을 찾을 때가 아니라, 교회다움을 회복할 때이다. 교회는 교회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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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
    [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삶과 행동을 통한 신앙의 전수 크리스천헤럴드2024.01.26
    파울러는 아이들이 언어를 익히고 상징체계를 알게 되고 서서히 인간관계를 넒혀 가는 3-7세에 직관적-투사적 신앙(Intuitive-Projective faith)으로 발달한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언어가 발달하기는 하지만 아직 정교한 교리를 설명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감각과 이미지, 스토리텔링 등을 통해 신앙적인 내용을 받아들이는 시기이며, 주변의 어른들의 신앙 행위를 보고 배우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아주 중요한 매체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신앙 교육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에 무섭고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그 상상력을 장악하게 되면 그 영향력도 아주 크다. 즉,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탄이나 분노하는 하나님의 이미지, 끔찍한 지옥의 이미지 등은 이 시기 아이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신앙에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도덕적, 교리적 금지 사항이나 의무 사항을 강조하기 위해 이 시기 아이들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될 때 아이들은 평생동안 벗어나기 힘든 짐을 떠안게 될 수 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시기는 신화적-문자적 신앙(Mythic-Literal faith)의 단계로서 이 때의 아이들은 소속된 공동체의 신앙 체계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이 발달한다. 이와 같은 이 시기 아이들의 인지 발달 수준을 고려할 때, 유치원 단계의 아이들은 그림이나 동화 구연의 방법으로 신앙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고 초등학교 단계의 아이들부터는 본격적인 교리 교육이나 성경공부가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부모를 포함한 공동체 성인들의 신앙의 모습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추상적으로 사고하거나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신앙 공동체의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삶을 보면서 신앙을 배운다. 그러므로 롤 모델이 되어 본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배우는 것과 보는 것에 괴리를 느낄 때 보는 것에 더 신뢰를 주고, 이 괴리가 커질 수록 결과적으로 배우는 것의 영향력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삶을 살지 않는 부모를 볼 때 아이들은 부모의 이중적인 삶을 신앙생활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크게 다를 때, 아이들은 교회 안에서의 모습을 가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신앙을 전수해 주는 부모에 대한 불신과, 그 부모를 통해 전수되는 신앙 자체에 대한 불신과도 연결이 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그림과 동화와 교육을 통해 신앙 전수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부모와 어른들의 삶을 통해 그 신앙이 어떻게 일상에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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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
    [오피니언] 신선묵 교수의 교수칼럼 - 코칭과 경청 크리스천헤럴드2024.01.26
    오늘날 코칭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코칭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삶 가운데 이런 변화와 성숙을 이루도록 돕는 역할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도우려고 할 때에 많은 경우에 우리의 분석력으로 가르치고 잘못을 지적하고 결정을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코칭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실행하는 본인이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고 변화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한 방안들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코치는 질문과 경청 그리고 격려를 통하여 스스로 변화를 잘 해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이다. 코칭을 실행해 보면서 가장 처음 마주친 어려움은 내가 답을 줄 수 없고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코치를 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해줄 수 있는 말들이 너무 많은데 내가 그것을 절제하고 본인 스스로가 답을 찾아 나아가도록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그 만큼 평소에 우리가 상대방이 스스로 변화를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하지 않고 우리가 답을 주고 결정해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결국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욕을 꺽고 의존적 존재로 만들고 그리고 변화를 위하여 생각을 넓혀가도록 돕지 못했던 것이다.한번은 직장 동료에게 코칭을 실행하였다. 코칭을 마친 다음에 피드백을 받아보았다.  그분의 말씀이 나와의 대화에서 늘 가르침을 받고 지적받는 느낌이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어주는 모습이었다고 하였다. 평소에도 나름대로 경청하고 격려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코칭을 실행해 보면서 상대방이 그전에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나도 코칭을 실행해보니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전에는 내가 머리를 짜내어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따라와 주지 않아서 좌절된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나 코치를 하면 나의 목적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답답하였지만 내가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선한 부담감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코칭을 마쳤을 때에 상대방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경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람 중에 하나는 파커 팔머가 있다. 그의 인간의 영혼에 대한 이해가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경청으로 이끌어 준다.“인간의 영혼은 해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말을 하고자 한다” 이 문장이 나오는 배경은 파커가 서로간의 어려움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는 소그룹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놓는 순간에 그 문제에 대하여 너무 쉽게 답해 버리면 그 말하던 사람이 자신의 어려움이 쉽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서 도리어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이다. 그가 워크숍에서 채택한 토론 방식은 퀘이커 교도들의 “정화위원회 (Clearness committee)” 라는 것인데 이것은 개인의 영혼을 지켜주면서 개인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아주 오래된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여러가지 종류의 소그룹에서 혹은 코칭이나 대화에서 도움을 주는 중요한 통찰이다. 그는 영혼을 야생 동물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우리가 숲속을 달려가며 도와줄테니 어서 나오라고 영혼에게 소리친다면 영혼은 더욱 꼭꼭 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침착하게 기다린다면 영혼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조용하고 침착한 방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영혼이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대화의 기본 규칙을 필요로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알맞다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영혼이 알맞은 수준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대답을 찾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퀘이커 교도들은 역설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인간은 진리의 중재자인 내면적 교사를 갖고 있으며, 그 내면적 교사의 발언을 듣기 위해서는 서로 주고받는 커뮤니티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이 모델은 개인이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게 도와주는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한편, 그 커뮤니티가 외부적인 논지와 조언으로써 개인의 내면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기본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경우 사람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또 그 대화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코치나 상담가의 역할이 대화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것이라는 점도 이런 통찰과 맥을 같이한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깨달아가는 것이고 코치나 상담가 혹은 소그룹에서 다른 구성원들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작업을 해 나아가도록 함께해주되 듣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나를 가르쳐 줄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정죄하지 않고 들어줄 사람, 그래서 나로 하여금 내 내면의 소리를 듣고 답을 찾아 갈수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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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샘신칼럼 - 우리가 싸우는 이유 (The reason we fight) 크리스천헤럴드2024.01.26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2차 전도 여행에 마가를 데리가는 문제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충돌을 합니다. 바나바의 생각은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었고, 반면에 바울의 생각은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것이 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그 일로 인해 크게 다투고 헤어지게 됩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행 15:39)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고 헤어졌다는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던 동역자요. 목숨을 걸고 선교사로서 1 차 전도 여행을 함께 한 사람들이었음에도 불 구하고 그들은 싸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가 싸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를 찾아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것은 그들의 기질이나 성격이나, 은사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기질이나 성격이나 은사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했고, 1 차 전도여행도 문제없이 다녀온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마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였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지만, 마가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단호했습니다. 즉 생각의 차이로 인해 그들은 다투었고 갈라섰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생각이 달라서 다투었고, 계속 다투다가 결국은 헤어집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다투었기에, 그리고 그들이 다툰 이유는 생각이 달라서입니다. 결국 모든 싸움이란 생각이 다르기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싸운 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할지라도 두 사람의 생각이 같지 않으면  그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안에서 같은 생각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뜻이 하나가 되지 아니하면 같은 길을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다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다투는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시켜야 됨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완고하다고 말합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시키는 것을 순종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자기 부인이라고도 말합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굴복시키는 것이 순종이라면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싸움이란 다른 말로 하면 전쟁입니다. 전쟁에는 엄청난 대가가 지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거역하며, 하나님과 전쟁을 치룬다면 그 대가는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이길 수 없는 승산이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의 반대가 평화, 평안이라면 그것은 순종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하나일 때 우리는 그것을 평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내적 평화는 우리가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 인 말씀을 지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보너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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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시대와 문화의 옷을 입은 복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4.01.26
    펜데믹 이후에  목회사역 중에 우리가 다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지금 이 시대는 복음의 옷을 잘 입혀야 할 때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빗 킨나만의 표현으로는 “코로나 펜데믹은 다음 세대 신앙 전수 현장의 날씨가 아니라 아예 기후를 바꾸어버렸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기후인가에 따라서 우리도 변화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먹는 음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차이가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과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질 것입니다. 당연히 기후에 따라서 입고 살아가는 패션과 복장도 달라져야 합니다.얼마전 주일 예배시간이었습니다. 바쁘게 사역중인 목사님이 동부에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는데 자신을 소개하는 이력과 경력이 주보 한면을 가득채웠습니다. 박사학위도 여러개, 정부기관에서 받은 표창장과 감사편지 목록도 기록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호기심/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습니다. 정리해드리면, 잠깐 전하기로 약속된 시간을 한참 지나서 결국 다음 순서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자랑과 반말과 욕설도 하고, 담임목회자를 이름만 부르기도 헤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강단과 마이크가 필요없는 비매너/무매너와 유행가를 부르고, 찬양팀 기타도 치다가, 중간중간에 소리를 지릅니다. 연세드신 분들이 움찔하며 놀랍니다. 짝기도를 하자고 손을 잡는데 입고 온 제복과 흰 셔츠가 때와 땀으로 반들반들했습니다. 물론 제복을 자신이 열심히 흘린 땀의 흔적으로 시골 농부의 옷처럼 소중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십년 이민 목회자로서 처음 겪는 일이라서 충격이었습니다. 영성과 지성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 외길 인생 복음의 열정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주께 충성하고 사랑한 헌신이 부러울 정도인데 아쉬움이 큰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성경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 생활이 연결되지 못한 복음의 답답함과 거북함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렇게 부탁을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하려는 자도 준비가 되어야 하고, 복음을 듣는 대상자에 대해서도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함을 다시 배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언어와 열정도 중요하지만 말의 습관과 절제와 열정을 관리하는 것도 은혜인 것을 배웠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설교학에서는 설교가 목회의 종합예술이라고 정장복 교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충무교회의 박종렬 원로목사님은 설교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신신당부 하셨습니다. 목회데이터 연구소 2019년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의 신앙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설문에 1위 어머니 53%, 2위 목회자 33%, 3위 아버지 30%였습니다. 그런데 2021년 조사에서는 목회자와 아버지의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아버지 33%가 목회자 25%를 앞지르고 2위를 차지했습니다. 데이빗 킨나만의 Un Christian에서 미국교회에서 청소년이 교육부서를 졸업한 이후에 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86%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기독교 인들이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랑하는 사역자와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시대가 분초마다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가 힘이되는 인공지능 AI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던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함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우리 시대에 맞게 복음이 문화의 옷을 입고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인종과 나라와 기후와 환경을 초월한 사랑의 옷을 입고 바다를 건너서 복음에 빛진 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시대와 문화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큰 희생(순교)도 감수했습니다. 우리도 시대에 걸맞는 복음의 옷을 입고 준비해야 합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행동양식과 그들의 생각을 상상해보고 해석하고, 무시로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며 복음의 옷을 지어야 할 때입니다. 땅끝까지, 마지막 한 영혼에게 복음이 전달될 때까지, 예수님이 다시오실 종말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역자와 성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복음이 이 세대를 관통할 문화의 옷들로 아름답게 지어서 예수이름으로 전달되는 그날을 비전으로 삼고 기대합니다. 그날,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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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결심중의 결심” 크리스천헤럴드2024.01.12
    매년 새해가 되면 가장 사람이 많아지는 곳이 어디일까? 모두가 예상하는 그곳, 그곳이 맞다. 바로 Fitness 클럽. 저마다 새로운 결심을 하고 운동을 해서 몸을 튼튼히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지만, 통계에 따르면, 2,3 주쯤이 지나고 나면 실제로 클럽에 나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다시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앙인들의 경우는 어떨까?어떤 설문조사나 통계를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새해를 맞아 여러 계획들을 세울 것이다. 뭐가 있을까?올해는 성경 일독을 하겠다. 올해는 매일 큐티를 하겠다.  올해는 한명 이상 전도를 하겠다. 올해는 어디가 되었든 간에 선교를 꼭 한번은 동참하겠다. 새해에는 새벽예배를 보다 자주 참석 하겠다. 이번 해에는 교회에서 한가지 봉사를 꼭 맡아서 하겠다. 등등..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동시에 나도 뿌듯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할 것이다. 나는 뿌듯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 딱히 기뻐하지 않으실 이유는 없으시겠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정말 보기 원하시는 것이 다른것에 있다고 믿는다.하나님은 우리의doing에 열광하지 않으신다. 열광할 이유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것의 주인이시요,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뭘 한다고 해서, 아니면 안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달라지는 것은 없다.대신에, 하나님은 우리의 ‘됨’이 하나님의 자녀다움에 근접해 있는 모습을 기뻐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영어로 표현 하자면 being  이라고 할수 있겠다. 짧은 칼럼속에 많은 내용을 담아내기 어려워 간단히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쉽고 유감이긴 하나, 그래도 독자들에게 몇가지 부탁을 드려보려 한다.무엇을 해서 better Christian으로 보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의 됨을 점검해 보고 나는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됨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결심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기를 부탁드린다. 4가지를 점검해 보면 좋을것 같다. 오늘의 내 삶에 사랑이 있는가? 오늘의 내 삶에 기쁨이 있는가? 오늘의 내 삶에 자유가 있는가? 오늘의 내 삶에 평안이 있는가?너무 흔한 단어들을 적어보았지만, 사실 이 네가지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하더라도 이 네가지가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이 네가지를 잃어버리면 안된다.필자에겐 무남독녀 딸아이가 하나 있다. 나는 열여덟살 내 딸이 무언가를 이루어 냈을때 물론 이제껏 기뻐했고 칭찬해 줬고 치하해 줬다. 하지만 내가 딸에게 가장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그 무엇을 해서가 아닌, 어떤 순간에라도 딸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하고 기쁨이 샘솟는 것을 경험한다. 딸아이가 행복해 하는 순간엔 거의 예외없이, 사랑, 기쁨, 자유, 평안의 요소들이 내제되어 있음이 관찰 되더라.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다르지 않을것이다.내가 가장 행복할때 하나님도 행복하실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는가? 그 행복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얄팍한 쾌락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나누고 간증할 수 있는, 사랑, 기쁨, 자유, 평안을 누리는 참 행복. 사실 그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을때에 가능하며, 원래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갈때 가능하다. 여러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한가지로만 표현한다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갈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다.누군가 나에게 목사님은 딸을 사랑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라고 대답하기에 앞서서,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왜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대답 대신에 이렇게 말해줄것 같다. 당신도 자녀가 있어보면 이 질문이 왜 쓸데없는 질문인지를 알게 될것이요, 라고 말해주겠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사랑 할만한 짓을 해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때 부터, 의지적인 결단을 가지시고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셔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우리를 사랑 하시는 분 이시다. 그것이 은혜요, 그것을 믿는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되고싶다는 소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이미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대표성품인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올해 소원이 있다면, 제발 doing은 걷어 치우자. 내가 사랑의 사람으로 이미 지음 받았음을 깨닫고,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결단을 해 봄이 어떨런지.이것을 어떤 이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더라. 예수님 처럼 살고싶다. 라고. 그렇다.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 처럼 살아가겠다는 가장 거룩한 결단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결단을 가장 기뻐 하시리라 믿는다. 한번 사는 인생,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예수님 처럼 말이다! Live lik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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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어 른 크리스천헤럴드2024.01.12
    큰딸이 밥을 먹다 물을 엎질렀다. 동생들과 장난치다가 곁눈질로 물컵을 잡다 놓쳐 식탁에 엎지른 것이다. 가족식사를 하다 말고 흐르는 물을 닦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한눈 팔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는 실수였으니 잘못을 지적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어서 주의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아이들 방이 늘 엉망이다. 옷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도, 책상도 정리정돈이 안되어 있다. 조금만 부지런해도 이렇게까지 어질러지지 않았을 텐데, 결국 아이들이 게으르거나 책임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다시 한번 잔소리를 했다.그러던 어느 날 큰딸과 둘이서 어디를 가게 되어서 차를 타고 가는데 딸아이가 팝콘을 가지고 옆자리에 앉았다. 딸이 조심성이 부족하다 생각해서 흘리지 말고 먹으라고 미리 주의를 줬다. 나도 같이 먹으면서 운전을 했다. 그런데 같이 먹다가 그만 내가 먼저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니 흘린 것을 털어내며 아무 생각 없이 가던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아빠가 불공평하다며 탄성을 지른다. 그리곤 하는 말이 자신은 조금만 실수를 해도 혼나는데 아빠는 아무리 실수를 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로 자신은 식탁에서 조금만 물을 엎질러도 혼나는데 아빠는 비싼 노트북에 커피를 흘려서 키보드를 망가트렸는데도 혼나지 않는다며 억울해 했다.실은 얼마 전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던 중 곁눈질로 컵을 잡다가 쓰러트려 키보드에 커피를 조금 엎질렀던 적이 있었다. 빨리 수습을 했지만 이미 늦었는지 자판기 키 몇 개가 작동되질 않아 결국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자판기 전체를 교체해야 했다. 그리고 또 이것은 딸이 모르는 일이지만 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해 전 늦은 밤에 집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가 깜박 졸아 물컵을 쓰러트려 노트북위에 물을 완전히 엎질러서 노트북을 새로 구입해야 했었다. 그리고 또 솔직히 말해서 내 서재도 아이들 방 못지않게 어질러져 있다. 여러 번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던 아내도 이미 오래 전에 간섭하기를 포기했다.딸아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운전을 하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딸의 말처럼 나는 실수를 해도 혼나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벌을 받지도 않는다. 왜냐면 우리 집에서 나는 가장 높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인 나를 혼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집에 아무도 없다. 그래서 실수를 해도 괜찮고, 잘못을 해도 덮어진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가 가장 어른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나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내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방종할 수밖에 없다. 실수를 해도 괜찮고, 잘못을 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는, 간섭 받지 않는 어른이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 내 행위를 바로 하지 않으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더 나이가 들어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영원히 하나님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사무엘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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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세계의 변화와 성도의 마음가짐 크리스천헤럴드2024.01.12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인사를 나누며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2024년을 전망하는 10가지 트렌드 기사가 영국의 Economist 잡지사의 편집장인 Tom Standage의 글(Tom Standage’s ten trends to watch in 2024)로 소개되었습니다. 개인적 의견을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 투표 대장정입니다. 올해에는 42억명 인구가 속한 나라의 70개 이상의 선거가 예정되었다고 합니다. 요셉과 대니얼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공동체에서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2) 미국 대선이 11월 5일 실시됩니다. 60번째 대통령 선거/ 제 47대 대통령을 선출하거나 현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선거입니다. 동시에 미국 상하원, 주지사 선거도 진행됩니다.  기독교 영성이 회복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3) 기로에 선 유럽의 분위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시간끌기 속에 유럽과 세계가 연료와 곡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미국이 전쟁에서 빠지려는 분위기로, 유럽의 군비 증강이 요구되는 현시점입니다.4) 중동 지역의 혼란입니다. 지난 2023년 11월 안식일을 틈타서 1400명을 무고히 살상한 하마스의 선제공격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역 내의 하마스 축출을 명분으로 보복 공격을 진행중이고 이란의 참전이 우려됩니다. 예멘의 후티 반군과 레바논의 헤즈볼라 무장세력이 이스라엘에 항전을 선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화약고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5) 다중 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국제기관의 감시 불능 상태입니다. 먼저 36개 아프리카 국가 중에 6개 국가에서 유혈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둘째로  중국 러시아 이란의 연합 공조 세력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서구 연합의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대응의 온도차가 국가별로 다릅니다. 동시에 중국의 대만(타이완) 공격에 대한 각국의 온도 차이가 서로 다른 것도 혼란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6) 제 2의 냉전입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고 기독교 탄압을 강화하며 민주주의 확산방지를 위해서 법과 무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외국신앙서적 반입과 전시 및 출판을 불허하며 온라인 상에서 성경 및 기독교 출판물 상거래를 금지하고 있습니다.7) 새로운 에너지 지형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리튬, 구리, 니켈의 중요성은 훨씬 더 증대된 반면에 석유, 개스, 그리고 이들 자원의 공급을 지배하는 지역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원을 무기화해서 고립시키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8)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될 것입니다. 서구경제는 2023년에 예상보다 나은 성적으로 마쳤으나 아직 고금리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고 소비가 위축된 상태이며, 상황이 나빠질 수 있는 금융업, 은행과 상업용 부동산은 주의가 요망됩니다. 중국은 현재 디플레이션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미국은 불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라도 나머지 국가들은 위험군에 속해 있습니다.  9) 인공지능의 현실화입니다. 2023년 Big Teck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해였습니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의 주가 지수는 올 한해 80% 이상 상승했습니다. 앞으로 규제들이 더 강화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됩니다.10) 요원한 세계 통합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Tom 편집장은 전 세계가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즐기게 될 것이고, 우주 비행사가 달 주위를 돌고, 남자 20세 이하 크리켓 월드컵을 관람하는 동안에 국가간의 이념, 빈부, 정치, 종교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합니다.한편 비즈니스 10대 키워드 중에서는 특이하게 전 세계 인구 10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과 펜데믹 이후 재택 근무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미국 기업은 60%가 재택근무를 허용하면서 사무실의 1/5이 빈 공간이 되어 주거용 단지로 개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두 가지 이슈가 주목됩니다.성경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마24:7~8)고 말씀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인자가 오실 날’에서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과 능력의 기도로 무장하고 깨어있는 크리스쳔의 삶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더 기도!( The Pray!’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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