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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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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광근 목사의 "순종이 열매를 맺을 때" 크리스천헤럴드2025.01.11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누가복음 5장 5-6절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어려워합니다.순종은 때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길을 떠나 미지의 길로 가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성경은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놀라운 열매들에 대해 끊임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 그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베드로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기에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순종은 단지 행동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 있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따라간다는 표시입니다.하나님의 계획은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그 계획 속에는 항상 우리의 유익과 선함이 담겨 있습니다.오늘 하루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주시는 감동이 있다면, 그것이 작은 일이라도 순종해 보세요.용서의 말을 전하는 것이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그 작은 순종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이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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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4
    [오피니언]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AI를 바라보는 기독교적 관점 크리스천헤럴드2025.01.11
    AI 시대가 도래했다. AI란 무엇인가? 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는 단순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수준을 뛰어넘는 딥러닝(Deep Learning)을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의 신경망 구조를 모방,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여 지금까지 고밀도의 학습과 추론, 문제 해결 능력을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이해하며, 특정한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현재 OpenAI의 ChatGPT를 선두로 해서 구글 Gemini, 마이크로소프트 Copilot등 글로벌 기업마다 수백억달러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 개발과 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야말로 AI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AI는 2016년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가 승리하며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는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의 창의적 사고를 모방하고 첨단의 머신러닝으로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수준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건은 AI 기술이 가져올 잠재력과 그에 따른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시간이 지날수록 AI는 더욱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은 신앙 공동체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AI는 의료, 교육, 일상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고 깊게 스며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는 AI가 암 진단과 수술 보조 시스템에서 인간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인간 의사의 눈으로 식별 불가능한 CT, MRI, X-ray 이미지를 정밀 분석해 진단 정확성을 높이고,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질병 발생 가능성을 미리 예측하고 신약개발과 맞춤형 환자 치료를 가능케 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AI 기반 학습 플랫폼이 최고 수준의 맞춤형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탁월하면서도 쉬운 교수법으로 밤낮없이 학습과 연구를 돕는다. 교육 분야에서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교육 불평등과 학습 격차를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래서, AX Mission 연구소도 전세계 2억 6천명의 아동들을 위해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해 이 사역을 준비중에 있다. AI는 또한 언어 번역 및 통역 서비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여행에서 언어 장벽을 허물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인간의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영어가 어려운 할머니가 손자에게 마음담은 영어편지를 작성하고 답장을 바로 해석하며 세대간 소통을 적극적으로 한다. 교회에서의 실시간 예배 번역 기술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소외되었던 성도들에게 예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AI 기반의 성경 연구 도구는 원어자료 등도 쉽게 번역하여 성경 공부와 설교 준비를 더 깊이 있게 지원하여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귀중한 연구를 도와준다. 이러한 기술들은 신앙자료의 접근성을 확대하고 글로벌 공유를 가능하게 하여 교회와 성도뿐 아니라 자료활용의 한계를 호소하는 해외 오지의 선교사에게도 큰 유익을 준다. 이처럼 신앙과 복음, 교육과 선교적 도구로 활용하면 누구도 하나님의 선한 도구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AI의 발전이 신앙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출현이 우리 삶에 유익과 폐해를 동시에 준 것처럼, AI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가 없으면 오히려 무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AI를 바라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창조의 주체이시며, 인간에게 창조적 능력을 부여하셨음을 가르친다. AI 기술도 이러한 창조적 능력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인간의 활용 도구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데 얼마든지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먼저 일반 은총의 도구로, 인류 전체에 유익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이 주는 윤리적 도전에 대해 성경의 원리에 따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이는 AI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분별하고, 그 사용이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떤 AI 기술 사용도 윤리적 기준과 성경적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AX Mission에서도 지난 가을에 1차 세미나와 Zoom강의, 방송을 통해 LA와 한국, 전세계에 성경연구 설교 세미나로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께 구체적 사례를 통해 AI시대를 이해하고, 준비 활용하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올 1월에도 2,3차 최고 수준의 세미나를 개최하여, 목회자와 성도들이 더 깊은 성경연구를 하고 학업중인 학생들이 최고 수준의 논문을 작성하며, 자라나는 다음세대에 고난이도의 공부도 탁월한 이해력과 자기주도적 최고의 학습이 가능하도록 학부모들을 도울 것이다.결론적으로, AI는 신앙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기술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을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에 참여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되, 윤리적이고 성경적인 기준에 따라 그 사용을 분별하는 것은 신앙 공동체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 문명과 AI의 혁신 속에서, AX Mission 연구소는 이러한 문명을 소외되지 않고 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세미나와 방송, 본지의 칼럼 연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연구소는 신앙과 삶이 조화를 이루며, AI가 개인과 공동체에 더 큰 유익을 주도록 다양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앞으로 AI가 신앙 생활과 교회 사역, 학문과 자녀 교육에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이충희목사 /  AX Mission GMU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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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3
    [오피니언] 탈진을 긍정하라 16 -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4 - 언더우드 크리스천헤럴드2025.01.11
    선교사는 개인의 일과 사역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장시간 근무함으로써 탈진에 이른다. 탈진은 크게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구분한다. 외부요인은 교육적인 것과 직장에 대한 기대, 직업적 요인과 부적절한 자원 및 관리 유형과 장시간 근무이고, 내부요인은 이인화, 개인화 감소, 개인 성취도 감소가 해당한다.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는 장시간 업무과다로 인해 탈진을 경험하였다. 그는 뉴욕 대학교와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884년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85년 한국장로교 선교위원회에서 파송을 받아 조선에 도착했다.그 당시 선교초기에는 호의적인 동료가 거의 없고, 위생 상태가 형언할 수 없었다. 선교사들은 특이한 외로움, 고립, 시련에 처해 있었다. 대부분의 거리는 좁았고, 하수로 가득 찬 더러운 도랑과 우기에는 거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대부분 선교사 집은 진흙으로 지어졌으며, 종이 창문이 있었다. 때때로 성벽 안에 호랑이와 표범이 발견되었다. 모기와 파리는 사람들을 괴롭혔고, 장티푸스, 발진티푸스, 열병, 천연두, 이질 등 온갖 질병이 흔했다. 미신의 지배를 받아 무당, 유령, 도깨비, 분노한 조상의 영혼에 대한 두려움과 온갖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을 채웠다. 여름에는 습도와 더위가 합쳐졌고, 겨울에는 냉혹한 추위에 떨었다. 몇 안되는 선교사들은 주민들로부터 고통스러운 오해를 받았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삶의 긴장을 더했다. 언더우드는 본성이 사교적이고 상냥하며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과로와 외로움과 기후 때문에 1887년 심하게 병이 났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선교위원회는 그를 일본으로 휴가를 보내어 치료했다. 누군가는 그에게 그것을 빌미삼아 오명을 씌워 사임서를 제출하게 했다. 그러나 위기는 정직하게 풀려났다.그는 1905-1906년 겨울에 심한 감기가 걸려 중한 후두염까지 생겼다. 기침과 불면증, 발열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약물의 조합으로 극도로 쇠약 해졌다. 분명히 지치고 병약했지만, 성경 번역과 문학 작업을 놓지 않았고, 위원회에서 봉사하며, 시골 교회를 감독했다. 그의 신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선교위원회는 그를 스위스로 보냈다. 손과 발이 류마티스에 걸렸고, 기침도 더 심해졌으며, 전신이 독에 시달리는 듯 했으나 치료와 휴식으로 회복되었다. 1910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수술하기도 했다. 그 후 사역과 언어공부 등의 과로로 몸을 상하게 하여 1916년 미국으로 건너와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했으나, 결국 그 해 10월에 57세로 사망했다.그의 업적은 한국 최초의 고아원(경신학교)과 새문안 장로교회를 설립했고, 한국 전도 협회, 피어슨 성경 연구소, 현재 연세대학교를 설립했고, 최초의 한국어 찬송가집을 발행했으며, 4대 복음서를 번역했다. 교회, 학교,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전념을 다했다. 그의 탈진은 장기간 과다업무로 인한 과로가 주요 원인이었다. 신체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초래했고, 심리적으로 언어장벽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문화적으로 저문화 충격이 있었다. 언더우드가 결말은 과로를 다스리지 못했지만, 그동안 회복했던 것은 신체적으로 휴가를 떠나 치료한 것과 심리적으로는 인내심과 행복한 기질의 쾌활한 성격이 도움이 되었고, 영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희망의 열정과 헌신이 극복의 요소였다. 팀 켈러(Timothy  J. Keller)는 주님처럼 일하고, 주님처럼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계도 배터리를 오랫동안 사용하면, 수명을 다한다. 인간의 몸도 휴식과 안식의 삶이 필요하다. 언더우드가 사역을 지탱할 만큼의 힘을 가졌던 것은 업무의 자리를 벗어나 휴식하며, 치료한 덕분이었다. 우리는 더 오랫동안 사역하려면, 영·혼·육 간의 균형된 안식을 누리므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언더우드 기도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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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2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2025년 1월의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1.11
    1 오늘도 어제처럼 강추위속에서도 건강을 지켜 주시고 내일까지 추워지는데 이런 추위가 오래가지 않아 감당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2 강추위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길에 누워 밤을 세우는 동족들을 위해 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악의 세력이 강하게 달려들고 있지만 이 모든 세력보다 더 강력한 하나님의 손길이 대한민국을 붙들고 계시는 것을 생각할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3 새해가 되면 누구든지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진짜 축복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사형통, 부자, 평안 등등 우리가 원하는 복은 다양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찬송을 부를때마다 진짜 형통이란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임을 재확인하며 올 한해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를 드립니다.4 우리의 시선이 날마나 어디로 가는지 또한 매일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여리고성을 정탐한 두 사람은 견고한 성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보았기에 담대하게 여리고성을 점령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오늘도 어디로 향하고 가는지 살피는 하루였기에 감사를 드립니다.5 살다보면 생활속에서 생기는 감정이 단조음으로 우울해지거나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의 변주가 들어올때가 있는데 이런 믿음의 변주로 인해 삶의 리듬이 경쾌하게 바뀌어 집니다. 현실은 매우 슬픈 단조로 연주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생길때마다 새로운 힘과 용기가 용솟음치는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함께 주시니 감사가 넘칩니다.6 성경에 소개된 대다수의 스토리들이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할 것을 강조하신 것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이심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에 선조들과 약속하신 것을 철저히 지키실 하나님을 근거로 하여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으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이런 마음으로 드리기를 강조하시오니 감사를 드립니다.7 하나님이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들입니다. 주님도 세상에서 사역의 대상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힘이 약해 억울하게 당하는 자들을 찾아서 일을 하셨습니다. 교회나 어떤 사역에도 약자들을 중심으로 사역이 되어지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점점 더 알게 해 주시면서 내 마음안으로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대상들은 힘없고 홀로 자립할 수 없는 사모들을 향한 마음입니다. 이런 초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시선을 따라 갈것을 새해에도 결심하며 이들을 찾아 섬길수 있는 길을 더 넓게 열어주실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8 주님이 원하시는 산제사란 주님을 통해 구원받고 거룩하게 된 성도들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이 몽땅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루의 일과중 어떤 것도 제외되는 것 없이 몽땅 주님께 드려 다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9 성결이란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할 수 있기에 나를 택하신 분이 나의 아버지되심을 항상 실감나는 삶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믿음의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였는데 감히 사모로 택하시고 거디에다 이 귀한 사모들을 섬길자로 택해 주신 것만 생각해도 온 전신이 소름끼칠만큼이나 감동이 밀려 오곤 합니다. 이런 직위에 걸맞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성결로 가는 길임을 알고 감격과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10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는 것은 더 없는 영광입니다. 사진 한번 촬영하는데 거금이 들고 함께 식사하는 것, 3분 면담하는 것에도 수십만불씩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안에 좌정하시고 늘 함께 계시는 데는 일원 한푼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믿음의 부족임을 알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함의 가치를 더 많이 알게 해 주실것을 간절히 바라며 성령의 감동을 구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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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가치 vs 무가치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우리 인생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상과 사람은 두 가지로 나누어 지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무가치한 것을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한 사람들로 정리가 됩니다.가치관이란 무엇입니까? 가치관이란 가치있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을 가치관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더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며 만남을 가지며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로 인해서 사람은 세상의 가치관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계시록 18:9-10을 살펴보면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많은 젊은이가 울고 가슴 아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바벨론은 그 당시의 로마를 말합니다.바벨론의 멸망, 로마의 멸망으로 인해서 자기가 당할 불이익과 손실, 피해와 손해를 볼 것에 대해서 생각하니 그 손익계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탈무드에 ‘이 세상에 열 가지 부가 내려왔는데, 그중에 로마가 아홉을 받았고 나머지 하나를 전 세계가 어렵게 겨우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처럼 로마가 그 시대에 교역하며 누렸던 사치품은 엄청났습니다. 화려한 사치품이 넘쳐났습니다. 상인들은 로마와의 교역을 통해서 쌓은 부와 권력으로 더 사치스럽고 부도덕한 생활을 여러나라에 전파한 사실을 성경이 지목하고 있습니다. ‘만국이 미혹되었도다’라고 말입니다. 성경 처럼 탐욕이 무서운 이유는 탐욕은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도 온다는 사실입니다. 부자들은 부자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필요를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자들은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도둑질과 거짓말도하고 속임수를 쓰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습니다. 조지 맥도널드(George Mcdonald)는 ‘부자만이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는 것, 돈이 없거나 부족함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들 역시 돈의 노예이다’ 라고 합니다. 탐욕이 이웃들의 필요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들고, 궁핍한 자들에게 무관심한 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탐욕과 무관심은 한 세트입니다.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탐욕이 들어오면 사람이 교만해져서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갑질을 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다른 한 가지는 가치있는 것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로마가 많은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환란과 핍박으로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당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영적전쟁에서 실패하지 않고 최후 승리를 얻고 면류관을 받아 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예레미야 51:62-6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은 그 순간에 이익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억누르는 강력한 힘, 압제와 압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환란과 핍박을 피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마주서서 싸웠습니다.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서 우상과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박해를 받으며 예수님을 따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놀랍고 존경스런 대단한 교회역사를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어떻게 이럴수 있습니까? 영원한 가치를 발견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기가 입을 손해, 당할 피해 때문에 로마의 멸망을 슬퍼하며 애통하고 가슴을 치는 것과는 다르게, 영원한 가치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로마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심판을 기도하며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기다리고 견딜수 있습니다. 성도는 영혼의 가치를 자신의 존재 안에 간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하는 환란, 잠깐의 고난, 육체의 불편함 등에 물러서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듣는 자들이 일어나고 믿는 자들이 살아나고 힘을 얻고 칠전팔기의 신앙을 유지하는 믿음의 선배들을 히브리서 11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가치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가고 말씀을 따라갑니다. 영원하고 선하시고 신실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가치요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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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삶으로 전하는 복음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전도지로 하는 전도, 메가폰을 들고 하는 전도, 우리 교회로 와 보세요 라고 선전하는 전도방식은 더이상 효과적인 전도방법 이라고 말할수 없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필자의 의견은 안하는 편이 더 낫다고 믿는다.과거에는 복음의 기본 요소가 무엇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였기에 위에 나열한 전도 방법들이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예수에 대해서 이미 다 들어봤고, 교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들을 하기에, 아무리 외쳐봐야 그들의 삶으로 전도의 외침이 침투하지 못한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전도법을 개발해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지난 30년 정도를 돌아보면 오만가지 새로운 전도법 들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유행이 되었다 사그러 들었다를 반복해 오고 있다.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칼럼이라는 특성상 다 략하고,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전도는 특정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전도는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는 그저 삶으로 살아내는 것 자체가 전도 여야하고, 그런 전도, 그런 삶이라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일으키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 결국은 전도란 성화 되어가는 나 자신이 그 자체로 전도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내 삶의  여정속에 영혼 구원의 역사는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레 일어나게 되는 현상이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다. 예수님은 전도지를 들고 전도하지 않으셨다. 정한 시간 한 장소에 늘 가셔서 똑같은 말씀을 선포하고 외치신 적도 없으셨다. 어느 누구와 대화하더라도 똑같은 패턴의 대화를 반복하신 적도 없으셨다.그저 살아가시는 삶의 자리에서 순간순간 누구를 만나던 어떤 상황이든 예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예수님으로 인해 삶이 좋아졌음을 우리는 안다.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다. 하지만 너무나 멋지다.이제 그 사명을 우리가 이어받은 것임을 잊지 말자. 어떤 방법으로 할까를 고민하기를 멈추고, 누구와 함께할까도 고민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내 삶의 현장에서 나는 예수님처럼 살겠다 라는 결단을 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랑의 사람으로 살면 그것으로 너무나 충분하다.예수님의 영혼 사랑의 방식은 너무나 심플했다. 세 가지만 기억하자.1. 먼저 다가가셨고, (물론 다가온 이를 거절하지 않으셨고,  2. 함께 시간을 보내셨고, 3. 언제나 살리는 말 (살리는 기적) 을 하셨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조차 ‘방법’이 되면 안 된다.무슨 말인가 하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착한 일인 것처럼, 위의 세 가지를 인위적으로 한다고 해서 예수님 닮아가는 삶으로 성장함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닮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이 세가지를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다.지금 칼럼을 적고 있는 지금, 2024년도가 거의 저물어 가고 있다. 그리고 2025년 새로운 해는 어김없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어떤 계획과 결단으로 새해를 맞이하겠는가?독자들이 결정하는 계획과 결단과 더불어 이것 한 가지만 덧붙이면 어떨까 제안한다.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이라도 예수님을 닮아가겠다 라는 결단! 즉 사랑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해 보기를 권면한다. 뭔가 거창해 보이는 결단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사랑의 사람이란, 나로 인해 너의 삶이 좋아지기를 소망하고 사는 사람이며, 사랑의 사람이란, 더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으로 너를 대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기도 하다.사랑의 왕으로 오신 주님. 단 한 번도 사랑을 구걸한 적이 없으시고 언제나 사랑을 주는 왕으로 사셨고 지금도 그 사랑엔 변함이 없으시다. 이젠 우리 차례다. 아니, 내 차례다.모든 교회가 교회의 수적인 부흥의 소원을 내려놓고, 성도 개개인이 사랑의 사람이 되기로 결단하는 것을 서로 돕는다면, 아마도 그때부터 교회는 수적으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일으키게 될 것을 확신한다. 예수님의 새계명을 잊지 말자. 교회를 부흥시키라 하지 않으셨다. 생업을 내려놓고 땅끝까지 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이 우릴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명령하셨다. 어떤 계획과 결단도 이 명령보다 앞설 순 없다.‘사랑의 사람이 되겠다’ 라는 이 결단으로부터, 삶으로 전하는 복음의 여정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해야 하는 사명이다.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독자들 모두에게 아낌없이 그리고 남김없이 부어지는 연말연시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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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 되도다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살다 보면 누구나 난처해질 때가 있는데 나는 바로 외식을 할 때이다. 비교적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고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외식을 할 때는 예외일 때가 있다. 바로 쿠폰 사용 때문이다. 쿠폰 쓰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업체입장에서는 새로운 손님을 끌기 위해 할인을 해주며 일시적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쿠폰을 들고 식당에 가면 일하시는 분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태도는 공손해지며 조심스럽다. 주문할 때 행여나 직원이 계산을 잘못해서 미안해 하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서 무안 해진다. 계산을 잘못한 이유가 바로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쿠폰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계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쿠폰적용이 번거롭고 헷갈릴 수 있다. 특히 익숙지 않은 직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을 불러서 계산할 때도 있다. 하필 내 뒤에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아도 바쁠 텐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게 된다. 우리 가족은 외식할 때 쿠폰이 있는 곳이면 꼭 쿠폰을 사용한다. 음료수는 잘 시키지 않고 물을 마시는 편이다. 또 포인트를 정립해야 하니 계산은 크레딧 카드로 하고 음식이 남으면 투고 박스 달라고 해서 꼭 싸간다. 식당의 정상 판매가격보다 싸게 먹고, 마진이 높은 음료수는 시키지 않고 남은 음식은 일회용포장용기를 달래서 꼭 싸오니 우리 식구는 가는 식당마다 도움이 되질 않는다. 한번은 쿠폰을 집에 두고 나와서 가려던 식당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꾼 적도 있다. 쿠폰으로 싸게 먹을 수 있는데 정상 가격을 주고 먹는 게 아까워서이다. 그렇다고 팁을 후하게 주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서빙 하시는 분들께도 상냥하게 대한다. 식당주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버들에게도 별 도움이 안 되니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먹고 난 그릇들을 정리해놓고 테이블도 좀 닦아 놓고 나온다.그래서 음식점에서 나올 때 자주 미안한 마음이고, ‘우리 같은 손님들만 오면 이 집 돈 못 벌겠다’ 는 생각에 부디 제값 내고 먹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매상을 올려 주기를 바라고 떠난다. 그리곤 얼마 후 다시 가서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 가면 당당할 수가 없다. 그 식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꼭 당당 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교회이다. 이곳에서 만큼은 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당당할 수 없듯이, 섬기라고 부름 받은 곳에서 섬김을 받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것을 줄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목자로 세움 받은 교회에서 만큼은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피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해도 주장하지 않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해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면 교회는 사랑의 대상이지 기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말한대로,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전 5:4) 내게 상 주실이는 교회가 아니라 목자장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교회를 열심히 섬겼을 때 꿈틀대는 보상심리이다. 내가 한만큼 인정받고 대우받기를 원하는 기대이다. 내 수고에 대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하고 싶은 태도이다. 이런 바람이 지나쳐 나의 수고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교회도 내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기대가 도가 남으면 나의 이익과 야망을 위해서 성도들의 희생도 감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주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게 된다. 내 스스로 상을 추구해서 후에 목자장에게 받을 상급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오늘날 목사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자기 몸인 것처럼 좌지우지하고, 정치인이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을 악용하고, 경찰이 봉급인상을 요구하며 약탈 행위를 지켜만 보고,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기득권을 주장하는 행위 모두 다 이유가 있다하나 주는 사람에서 받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때때로 교회에서 실망스러운 일을 겪게 되고, 내가 기대한 만큼 인정해 주지 않고, 때론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나는 나를 부르신 그곳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교회는 항상 나에게 사랑의 대상이 되고 기대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뜻을 받아 나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께 하듯 교회를 사랑하고 주는 자로 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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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5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3- 로버트 토마스>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선교사는 타문화 가운데 기하학적으로 복잡하고, 위험하여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토마스 홈즈와 마수수(Thomas Holmes and M. Masusu)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측정했다. 측정지수를 보면, 배우자의 죽음 100, 결혼 50, 임신 40, 생활 환경의 변화 25, 거주지 이동 20, 식습관 변화 15로 나타났다. 선교사의 타문화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반 사람들 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Robert Jermain Thomas: 최난헌 1840~1866)는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에서 신학을 마치고, 1863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해 7월 21일 런던선교회(LMS)에서 중국으로 파송을 받았다. 하지만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아내와 사별했다.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 했다. "제 사랑하는 아내 캐로라인(Caroline Godfrery)이 작년 3월 24일 사망했고, 이로 인해 저는 완전히 무력해졌습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제 슬픔이 다시 터져 나옵니다…방금 시작한 고귀한 일에 그 어느 때보다 온전히 헌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지금은 깊은 슬픔에 짓눌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정과 기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무리 심각한 시련이라도 이 영광스러운 대의에서 나를 떼어놓지 말고, 오히려 그녀의 평화롭고 고통 없는 종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거두셨으니, 주의 이름에 찬양이 있을지어다.” 그는 이렇게 마무리를 했지만, 슬픔과 절망이 아련했다. 12월의 중국 상하이는 매우 춥고,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다른 숙박시설을 찾아 떠났다가 아내의 마지막 모습도 지켜보지 못한 채 비운을 접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으로 큰 충격을 받아 선교를 사임하고, 상하이에서 옌타이로 옮겼다. 그곳에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조선 천주교 신자 김자평과 그 동료들을 만나면서, 조선에 대한 새로운 선교 열정이 일어났고, 한국어를 공부하여 1865년 9월 백령도에 도착했다.  그후 2개월반 동안 황해도 연안에서 섬 주민들에게 성냥, 케이크, 성경을 나눠주며, 서양문물을 전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 당시 한인들은 목이 잘릴 위험을 감수하며, 성경을 받아들였다. 다시 북경으로 돌아간 토마스는 조선을 향한 열정으로 1866년 8월 16일, 중국어 성경을 갖고, 통역 겸 안내자로서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병인년 천주교 박해로 인해 군졸과 관민들은 미국 배를 공격하여 폭발했다. 토마스는 성경을 안고 헤엄쳐 탈출했지만, 칼을 겨눈 박춘권에게 성경을 주며, 찔려 죽게 되었다.토마스는 사별의 신체적, 심리적, 영적인 탈진을 순교로 승화시켰다. 탈진의 과정은 어떠한 요소로 원인을 제공하여 우울증과 탈진으로 나타나지만, 방향 변경 또는 개인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회복한 방법을 레나르트 할스텐(Lennart Hallsten)의 탈진 과정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몰입하는 헌신이다. 그는 17살에 첫 설교를 할 만큼 의욕적이며, 재능이 있었고,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를 섭력하여 언어학자로서 선교현장에서 두각을 보였다. 또한 선교사들을 위해 6개월 동안 의학지식을 쌓았으며, 신학을 졸업하자마자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지원했다. 둘째, 좌절된 노력이다. 그는 아내의 사망소식으로 완전히 탈진했다. 셋째, 해결 방법은 방향 변경이었다. 깊은 슬픔을 겪은 후, 선교를 사임하고, 이직을 했다. 휴식하는 동안 심신의 안정을 찾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명에 순종했다. 그는 선교의 열정을 다시 느끼고, 조선을 두 번 방문했다. 끝내 개신교 첫 번째 순교자로서 짧은 인생을 마감했지만, 그 생명의 열매는 끝이 아니었다. 박춘권은 안주 성공회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평양 대부흥과 복음화 물결을 낳았다. 그의 고귀한 피는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토마스는 타문화에서 배우자의 사망으로 스트레스 지수 1위와 탈진을 경험했지만, 휴식과 새 소명으로 선교의 열정을 다시 일으켰고, 가장 고귀한 순교의 이름으로 복음의 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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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참된 리더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 크리스천헤럴드2024.12.22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다. 그의 말과 행동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며, 국민의 안정과 직결된다. 한국의 최근 사태는 그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렀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대통령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국민을 상대로 군사적 조치를 동원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과오였다.국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국민의 불안을 공포로 바꾸어 놓았다. 자유를 억압하고 평화를 깨뜨리는 조치는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정치의 본질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데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구하기 위해 국가의 근본 원칙을 무너뜨렸다. 결국 그를 지지하던 국민들마저 등을 돌렸고, 같은 당 국회의원들조차도 탄핵에 찬성했다. 국민의 분노는 국회를 움직였고, 탄핵 결정으로 이어졌다.기독교의 시각에서 볼 때, 지도자의 자리는 특권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다. 성경은 참된 리더십의 표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한을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며 제자들과 백성을 끝까지 보호했다.예수님도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와 로마의 정치 권력 사이에서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고, 그 결과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지만 그는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끝까지 고난을 감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은 희생과 사랑, 섬김으로 이뤄진다.예수님의 고난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승리의 길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했고, 배신한 제자들조차도 용서하며 다시 품으셨다. 진정한 리더는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동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고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이제 교회는 이 사태를 바라보며 무엇을 배워야 할까? 교회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교회는 연약한 자와 실패한 자들을 품는 공동체로 보일 것인가, 아니면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외면하는 집단으로 보일 것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 많은 통계와 수치가 교회의 기대와는 상당히 먼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모습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이상적인 모범이 아니라 현실적 지침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지키는 피난처가 되어야 하며, 고통받는 자들, 낙담한 자들, 실패한 자들을 품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끝까지 함께 걸어가야 한다.그러나 현실은 종종 다르다. 교회가 권력과 명예를 지키는 데 몰두할 때, 사람들은 교회를 떠난다. 교회가 죄인들을 품기보다는 정죄의 자리가 될 때, 사람들은 교회에서 위로와 치유를 찾기보다는 심판과 비난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진영논리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해 자기들의 입장만 고수한 듯 보였다. 진정한 교회는 세상의 논리와 달라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리더십의 길을 따르는 교회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품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교회도 성도들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는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진정한 리더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한을 내려놓고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은 그의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파멸로 몰고 갔다. 국민들은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지층과 국회의원들마저도 그를 외면했다.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권한을 행사하여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며 사람들을 보호하셨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품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권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우리의 기도는 단순하다. "주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자신의 자리와 권한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게 하소서."오늘의 교회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군림하는 집단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을 따르는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는 교회가 어떤 리더십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로서 사람들을 품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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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죽을 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4.11.26
    언제부터인가 저는 죽을 좋아하게 되었고 대심방 기간에도 된장찌게 아니면 죽을 자주 먹었습니다. 최근에도 죽을 먹자고 했더니 대접하시는 분이 난처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사실 일반 식사보다는 소화가 잘되고 속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죽을 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죽을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죽을 끓이기까지 준비하는 과정과 정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재료를 씻고 썰고 볶고 풀어서 양념을 하고 약한 불로 천천히 저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에는 간과 양념을 적당히 해야 합니다. 죽을 먹는 요령도 배워야 합니다. 죽을 먹는 것도 실력입니다. 죽은 조금씩 떠야 하고 위에서부터 자주 떠서 먹어야 합니다. 당연히 어느 정도 식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소모되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의 정성이 더해질 때 음식도 맛이 있고 풍미가 깊어지고 모양새가 나타납니다. 사실 우리는 죽에 대해서 너무 낮게 평가를 합니다. 아주 쉬운 것으로 표현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죽도 일품 요리 중에 하나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아주 중요한 음식입니다. 아기들이 자라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 부드럽고 목넘김이 수월하게 만든 묽은 죽처럼 만든 이유식입니다. 몸이 아픈 환자가 아픔과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첫번째 음식이 바로 죽입니다. 그리고 며칠 금식을 한 후에 제일 먼저 대하는 음식이 동치미와 죽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절대로 음식으로써의 죽은 쉽지도 않고 천하거나 흔하지 않습니다. 죽은 결코 쉬운 음식이 아닙니다. 죽은 생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전하고 연장시키며 살리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우리들이 마지막에 먹어야 할 음식도 죽입니다. 죽을 잘 먹고 소화하면 부족한 새 힘을 얻고 생명의 자리로 회복되어 돌아옵니다. 그만큼 시간과 마음의 정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을 소화하고 잘 먹으면 활기를 찾고 살아나게 됩니다.저는 아내가 쉽게 만들어주는 음식으로 당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아프고, 때로는 아내가 몹시 아플 때에 먹고 싶다고해서, 죽 쑤는 요리 비법을 자세히 알려주었지만 눌어붙고 태우고 설익고 망쳐버렸습니다. 우리 중에는 죽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MZ세대의 젊은이들이 가장 먹기 싫어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죽이라고 합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못하면 ‘우리 목사님 오늘 설교 죽을 쑤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밥을 잘 준비해서 밥상을 차려놔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편에서 누구는 그런 죽을 너무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죽도 없어서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배부른 소리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만 배부르면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배려하는 안목이 사라져 버립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에만 불우 이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절에만 새신자, 새가족 초청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늘상 우리주변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근본이고 쉬운 것을 간과하며 살아갑니다.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받은 사랑과 관심을 나누고 되돌려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따뜻한 밥상 한끼와 마음의 감사와 고마움을 나누어 주시길 바랍니다. 격려와 칭찬의 인사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해피댕스기빙!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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