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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은주 교수의 탈진을 긍정하라 17 <탈진 관점으로 본 선교사 이야기 4 - 제임스 게일>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로리 앤 톤(Laurie Anne Tone)은 선교사의 탈진 원인을 직업, 대인관계, 심리, 타문화, 영성이라고 밝혔다. 선교사는 잦은 변화의 스트레스 연속상에서 탈진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은 한국인을 가장 잘 이해한 선교사로서 어둠 속에 빛을 선사한 선교사이다. 그는 무디(D. L. Moody)가 주도한 집회에서 선교를 결심하고, 1888년 4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YMCA로부터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의 음식을 먹고, 옷을 입으며, 조선 전국을 12회 이상 순회했다. 조선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구하여 조선인처럼 살았다. 그의 업적은 성서 번역과 찬송가 개편 및 최초의 영한, 한영사전을 만들며, 천로역정을 한글로도 번역했다. 문서 선교활동에 힘썼기 때문에 조선 고서적과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데 일임했다. 또한 정신여학교와 경신학교의 새로운 교육 기반을 마련하고, 1900년 연동교회 목회를 시작으로 27년간 사역했으며, 조선에서 40년간 활동했다.필자는 게일의 탈진을 다음과 같이 발견한다. 첫째, 신체적 탈진이다. 그는 평신도 선교사로 시작했기 때문에 풍부한 재정 후원을 받지 못하고, 이곳저곳 일거리를 찾는 고독한 선교사였다. 파송 단체가 재정난으로 후원이 끊기자, 1891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로 전직하여 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40년 조선 선교사역을 하는 동안 한국성서공회 회장, YMCA 초대회장, 조선 예수교장로회 독노회장, 연희전문학교 이사, 평양 신학교 교수, 피어슨 기념성서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휴가도 제대로 떠나지 못했고, 직책들을 보아도 많은 사역으로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지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둘째, 심리적 탈진이다. 그는 동료 선교사들 간에 갈등을 경험했다. 마펫 덕분에 안수를 받았고, 평생 친구가 될 것 같았지만, 평양 신학교를 두고 의견 불일치로 갈등이 심했다. 또 다른 갈등은 교회 분열이었다. 연동교회는 천민 출신 고찬익, 이명혁 장로를 선출했고, 이어서 광대 출신 임공진 장로를 장립하다가 양반 교인들의 반발이 일어나 교회가 분리되었다. 갈등은 심리적일 뿐 아니라 영적 탈진까지 동반한다. 셋째, 문화적 탈진이다. 조선의 당시 상황은 격동과 혼란으로 점철된 시대였다. 쇄국과 개방으로 혼탁하고, 중국과 일본의 침략 가운데 헤매는 때였다.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길거리에 내버려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게일은 1890년 헤론 선교사 권유로 그 집에 거주하게 했다가 2개월 만에 헤론이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 1908년 아끼던 고찬익 장로를 잃었고, 사랑하는 아내 헤리엇 깁슨도 잃었다. 3.1 독립만세 운동을 목격하며 일본인의 총칼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았고, 1919년 4월은 일본군이 제암리 마을 예배당에 불을 지르는 사건과 총살 및 총검에 사람들이 찔려 죽는 것을 보았다. 더욱 마음에 사무치는 사건은 게일의 아들이 두 살 때 사망한 일이었다. 게일은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의 죽음과 죽어 가는 영혼과 독립투사들의 투옥으로 괴로워했고, 전쟁기간 동안 영혼의 건조함으로 큰 고통과 영적 탈진을 경험했다.게일이 탈진을 회복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조선을 사랑한 열정이다. 그는 “조선에 가지고 갈 좌우명이 있어서 감사하다. 그것은 ‘나의 도움이 여호와에게서로다’이다.”라고 고백한 것과 1927년 사임할 때 “내 언제까지 내 마음에 한국을…”이라고 하며 애틋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가 그토록 조선을 잘 이해한 덕분에 하나님을 다신론 ‘하늘의 주’에서 유일신론 ‘유일하신 큰 분’으로 번역하도록 크게 공헌했다. 조선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과 여러 갈등을 극복하고 헌신할 수 있었다. 둘째, 여행과 휴가였다. 그는 전국 순회를 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마음이 회복되었다. 휴가 중에도 조선을 외국에 알리는데 힘썼지만, 사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셋째, 평생의 동역자 이창직(게일의 어학선생, 천로역정 번역 협력자)과 한국인 동역자가 많았고, 어려울 때 동료 선교사들의 돕는 손길이 있었다. 선교사역의 잦은 변화 속에 은혜의 손길은 탈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믿음이 견고한 게일은 역방향으로 이승만의 스승이자 멘토 역할을 감당했다. 게일은 선교활동의 여러 변화 속에서 탈진을 경험했지만, 조선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다른 사람들을 멘토 할 정도로 강건하여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일어서며, 조선의 근대화와 영혼에 빛을 선사했다.김 은 주 교수미주장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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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2월에 올리는 10가지 감사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1 세상은 복잡하고 매우 불안한 상태이지만 조용히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와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2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낸 기쁨으로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성숙한 기도는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과 친밀해 져서 이유를 모르는 마음에 평화가 물릴듯 밀려와 기쁨이 넘쳐와 결국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해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비추소서" 라는 찬양의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시니 감사가 더욱 넘칩니다.3 내게 닥친 어떤 난문제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근거는 이미 우리의 삶에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준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은 상대적이 아니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 주신 것이기에 우리 앞에 닥친 어떤 사건들이 흔들어 놓을 수 없기에 감사도 따라서 절대적인 요소가 들어있어서 감사합니다.4 시 4편 7절 "주께서 내게 두신 기쁨은 저들의 포도주와 곡식보다 더하니이다" 이 말씀은 남편잃고 건강도 잃고 부모도 잃은 채 홀로 병실에서 잠못자는 밤을 지새우고 있을때 주신 말씀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 오는 순간 번개처럼 스쳐가는 말씀은 내 마음안에 화살 같이 꽂히더니 힘없이 쓰러져 있는 나를 벌떡 일으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내게 힘을 주신 것을 느끼고 나니 그 후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다시금 경악하며 감사를 드립니다.5 복음이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신 이유도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은 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갈등과 고민속에 헤매일때가 많습니다. 내가 받은 복음에 문제가 있는 걸까? 모세의 중보기도나 바울의 중보기도의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신 주님의 사랑을 나도 분명히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중보기도자로서 내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을 위해 사랑하지 못할까? 사모님들을 섬길때마다 내 자신을 향해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해 왔지만, 사모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해 온줄 알고 있지만 이제와서 모세나 바울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할뿐입니다. 사랑의 빚진자로서 낮은 자리에서 섬길것을 순간마다 섬길것을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6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놓칠때마다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면 익숙한것, 과거에도 많이 해봐서 잘할 수 있을것이라고 착각하는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항상 처음으로 하는 마음으로 모든 순서에 있어서 주님께 묻고 또 묻는 습관을 갖고자 다짐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7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이 멈출때마다 백성들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구름이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는 훈련을 잘 받은 것처럼 나도 주의 인도하심따라 가만있으라고 할때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여유가 많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달리다가 갑자기 가만히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열정적인 사역자들일수록 힘이 듭니다. 그래서 주님보다 앞질러 먼저 가다가 실패할때도 많이 있음을 고백하며 절대 순종 절대 감사를 위해 새롭게 다짐하게 하심 감사합니다.8 이사야가 입술을 숯불로 지져 주실것을 요구한 후 주여 나를 보내소서 라고 고백한 대로 내 입술을 성령의 숯불로 지져 주실 것을 먼저 간구하면서 또 다시 재헌신을 할 것을 순간마다 잊지 않을 것을 결단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9 지경을 넖혀 주실것을 약속받고 나서부터는 입을 크게 벌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넓은 마음을 구하면서 사소한 일로 고민하던 것들을 뒤로 던져 버리고 앞으로 전진 해 나갈것에 염두를 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10 오늘도 구석구석에서 사역하시는 사모님들중에 갑작스런 병에 걸려 고생한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무슨 새일을 하실 계획임을 느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황순원사모CMF 선교원 (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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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목사 -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도 못 갚습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성도님 중에 성품도 좋고 친절한 분이 계신데 이분은 항상 하나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 마음은 이해가되고 공감되고 인정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험난한 오지에 선교를 다녀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예배 의식이나 봉사활동 같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진행되는 사역이나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우선하여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 죄는 무엇으로도 계산할 수 없습니다. 종교로도, 선행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보혈 카드가 아니라면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신용불량자의 카드일 뿐입니다. 당연히 우리 카드는 모두 사용 중지된 상태입니다. 우리 주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불량픔 인생으로 살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5% 밖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95% 는 외부의 영향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주시고, 햇빛도 비춰주시고, 비도 내려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겨우 5% 일을 한 것 뿐인데 ‘내가 죽도록 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해서 결실을 보았다’고 큰소리 치는 것을 봅니다. 내가 한 일은 아주 적은 일입니다. 전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건강을 주셨고 지혜를 주셨고 힘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심고 거두지 않고는 수확물을 거져 얻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곡식이 자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최고 절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개혁주의 성경학자인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Johannes Vos)는 ‘은혜란, 하나님의 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들을 향한 그분의 과분한 사랑’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뜻합니다. 인간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저울에 달아본다면 비교불가, 측량불가 할 정도의 차이가 드러날 것입니다. 마치 일만 달란트 빛진 자가 탕감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는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갚을 길이 없고, 갚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갚을 길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그런데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 삼아주셨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는 우리가 경건과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의 보증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양입니다. 목자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도자 보호자 되시는 예수님과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과 말씀을 믿기로 결단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고 지금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혹 여전히 그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되갚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아멘!최재홍목사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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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이충희 목사의 "AI와 크리스찬의 만남" - 교회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AI 시대,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인공지능(AI)은 우리 시대의 핵심 기술로 자리를 잡고 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하여 학습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로에는 인간 운전자 없이 운행되는 웨이모 택시가 도심(LA,샌프란시스코,피닉스등)을 수없이 질주하는 것을 본다. 학교에서는 교육시스템을 앞서가는 많은 학생들이 벌써 AI를 그들의 학습 보조도구로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느껴지지 않아도 의료계와 기업 시스템등에도 급속도로 발전된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Deepseek AI모델 발표로 미국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급속도로 AI시대로 변화하는 가운데, 교회와 목회 역시 AI의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교회와 목회자는 AI를 생활의 단순한 기술적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인 복음의 본질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 사역이 하나님이 주신 시대적 도구인 AI를 잘 활용하여, 신앙의 핵심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이 시대 목회자의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AI와 목회의 융합: 새로운 가능성과 신학적 고민AI 기술은 목회 현장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깝게는 AI를 성경 연구 도구로 활용하여 설교를 보다 깊고 폭넓게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급한 심방에 성도의 특수한 형편과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성경본문과 설교 힌트를 AI를 통해서 바로 도움 받고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교회의 상황과 목회철학에 맞는 성경공부나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성도의 신앙상태를 분석하여 개인 맞춤형 신앙 훈련을 제공하는 등 AI 기술은 목회 현장에서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심지어 목회자의 모든 설교와 신앙칼럼등을 데이타화하여 웹페이지에 AI 챗봇을 만들어 24시간 목회자를 대신하는 기본적인 신앙 상담을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물론 이것은 신학적 검토 및 목회자의 목회철학이 허용되어야 가능하다.또한 AI 기반의 성경 연구 도구는 설교 준비에 필요한 주석과 역사적 배경을 신속하게 검색하고, 원어 연구를 보조하는 등 목회자의 연구 과정을 돕는다.그러나 AI의 발전이 목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 AI는 엄청난 언어 데이터(LLM)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응답하는 도구이므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개별적인 성도들의 상황에 대해 인간적인 공감을 필요로 하는 목회적 활동에서 한계를 보일 수 있다. 또한, AI가 제공하는 신학적 정보는 복잡하게 설계한 알고리즘에 영향 받기에 목회자의 신앙적 검정이 필요하고, 신학적 왜곡의 위험을 내포할 수 있다. 따라서 AI를 활용할 때에는 신학적 검토와 목회자의 신앙적 지도가 앞서야 AI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어느 시대도 성령의 역사와 영적 지도자들보다 앞서가는 하나님의 영원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AI와 설교: 효과적인 도구인가, 신학적 도전인가?설교는 목회자의 핵심적인 사역 중 하나이며, AI는 설교 준비를 보조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AI는 방대한 성경및 신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본문의 원어분석, 구조분석, 평행분석등을 도와주고, 관련된 해석을 제공하며, 논리적인 설교 구조를 제안할 수 있다. 또한, 영어권 성도나 다문화 교인, 해외 선교를 위해 다국어 번역을 지원함으로써 설교의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다. 설교 연구에 필요한 주석과 역사적 배경을 신속하게 검색하고, 요한 칼빈, 요한 웨슬레등 위대한 성경 학자들의 원서를 쉽게 번역하여 더 깊은 관찰과 주해를 돕고, 본문의 원어(히브리어,헬라어등)를 분석하며 연구를 보조하는 등 목회자의 연구 과정을 돕는다. AXMission연구소는 이미 GMU신학교, 미성대학교 등에서 목회자의 설교 연구를 돕는 세미나를 통해 많은 목회자들에게 연구방법론을 소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매주 Zoom 무료강좌를 통해 목회자의 설교연구를 실제적으로 돕고 있다. 특히 DXCHURCH.ORG에 들어가면 본 연구원들이 개발한 35단계의 ChatGPT를 활용한 설교연구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설교 주제를 보다 균형있게 구성하고 본문의 깊은 분석을 통해 연구의 수준을 높이고 설교문을 탁월하게 만드는 수사학적 연구와 성도들의 피드백도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완성된 설교문을 성경공부 교재나 주보 칼럼등으로 바로 변환 작성하는 방법등 획기적인 노하우를 제시한다.그러나 AI를 설교 원고를 자동 생성하는 도구로 오용하거나, 적당한 인공적 설교작성으로 남용해서는 안된다. 이는 신학적 깊이가 부족할 수 있으며, 설교자의 영적 권위가 약화되며 뜬구름잡는 중심없는 설교로 변질되는 위험이 있다. 성도들은 지식과 정보 전달 이상의 성령의 깊은 감동있는, 영감넘치는 설교와 실제적인 공동체의 적용을 기대하기에, AI만으로는 설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AI는 설교 준비를 좀더 깊고 폭넓게 하는 준비 과정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되 윤리적 문제가 없도록 하며, 최종적인 설교의 구성과 영적 적용은 목회자의 책임 하에 완성되어야 한다.  (다음 호로 이어진다)이 충 희 목사AX Mission 대표GMU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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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광근 목사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시는 하나님" 크리스천헤럴드2025.02.11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편 32장 8절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크리스찬의 기본적인 믿음입니다.우리는 종종 인생의 길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어떤 선택이 윤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아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은 혼자 길을 찾아 헤매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때로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거나 조급한 마음으로 결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며, 그분의 인도하심은 언제나 가장 완전한 길로 이어집니다.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고,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오늘 당신이 고민하는 일이 있습니까?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며. 그 길에서 당신을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김 광 근 목사Mission AWAK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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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김병학 목사의 소통하는 교회 - 소통은 시대를 선도하는 것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2.01
    트럼프가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김정은과의 핵감축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세계는 더 이상 이념이 아니라 자국의 실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발 빠르게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전략적인 판단을 요구받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변화 속에서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여전히 정치적 이념 논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성경적 관점이 아닌 특정 정파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를 통해 교회 내부에서도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유튜버, 인터넷 기사, 교회 지도자들의 편향적 사고가 교회의 본질을 흐리고,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는 역할을 방해하고 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념을 넘어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나 종교 권력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서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과 달리 정치적 이념에 휩쓸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면,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교회는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는 오히려 사회와 단절되고 있다.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교회 내부에서도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교회는 정치적 논쟁을 부추기기보다, 복음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무엇인가? 첫째, 교회는 성경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치적 편향성을 띠지 않고, 공정성과 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둘째, 교회는 신자들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극우 유튜버나 편향된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기보다, 성경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비판적 사고를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셋째,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강단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삼가고, 대신 성경적 가치에 입각한 윤리적 가르침을 제공해야 한다. 교회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순간, 복음은 퇴색하고 신뢰를 잃게 된다.실리를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제 사회는 이념보다 실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 교회도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실질적인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정치적 논쟁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며, 교육과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또한, 교회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되, 세상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복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지금 한국 교회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정치적 논쟁에 휩쓸려 사회적 신뢰를 잃을 것인가, 아니면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여 시대를 선도할 것인가. 교회는 이념이 아니라 복음을 중심으로 소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한국 교회를 통해 구현될 때, 교회는 다시금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에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한다.김병학 목사(주님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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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져도 이기는 인생 크리스천헤럴드2025.02.01
    야구에서 타자를 평가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지표가 타율이다. 좋은 타자의 기준은 3할 타격률이다. 이를 확률로 환산하면 30%의 성공률이다. 쉽게 말해 열 번 타석에 서서 세번 안타 이상을 치면 강타자로 인정받고 몸값은 수천 억원에 달한다. 수천 억을 버는 최고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타석에 열 번 서서 일곱 번 아웃 당하고 단 세번만 성공적으로 공을 쳐내도 어마어마한 대우를 받는 세계적인 선수가 된다.시험지로 평가할 때 100점에서 30점을 맞았다면 F 미만이다. 그런데 야구에서는 강타자만 낼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이다. 현역 선수 시절동안 4할, 즉 40% 타율을 친 타자는 150년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래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면 아무리 대단한 선수들이라도 타석에서 아웃 당하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보게 된다.흥미로운 것은 다른 스포츠처럼 타자가 스스로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투수는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타자가 칠 수 있는 사정거리와 범위 안에 공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한다는 것이다. 칠 준비를 하고, 투수가 공 던지는 것을 빤히 보고 있는데 그것을 쳐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이다. 또 투수의 공을 성공적으로 쳤다 해도 필드에는 8명의 수비수들이 지키고 있다. 첫번째 관문인 투수와의 대결에서 이겨도 두번째 관문인 사방에 퍼져 있는 수비수들에게 막혀 좀처럼 베이스로 출루하는 것이 어렵다.왜 이렇게 타자가 이기기 어려운 것일까? 그것은 이 게임은 처음부터 공평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타자와 투수의 맞대결로 보이지만 투수 뒤에는 여덟 명의 수비수들이 돕고 있다. 타자가 투수를 이겨도 수비수 8명이 막고 있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1대 9의 싸움이다.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다. 성공률이 월등히 낮을 수밖에 없다. 혼자서 아홉 명과 싸우는 것이니 세 번을 이기는 것도 사실은 대단한 것이다. 이 세 번을 이기기 위해서 타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낮은 성공률로도 이길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이다.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다. 세상에 나를 저지하는 힘이 훨씬 많고 강하다. 내 능력으로 역부족인 싸움이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다. 내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세상에서 대부분 지면서 산다. 실패가 성공보다 많다.성경의 인물들을 보아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성공한 사람들을 보아도 그들의 삶 속에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다. 성공보다 더 많은 패배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을 실패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작은 가능성을 위해 매번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믿음으로 이뤄낸 그 한번의 성공이 승패를 뒤집었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우리가 매번 성공할 것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이기는 날 보다 지는 날이 더 많을 것을 아신다. 그러나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을 알면서도 경기에 최선을 다 하는 선수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매번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다면 낙심할 필요 없다. 헛스윙으로 삼진 아웃 되고, 달리다가 아웃 되고, 있는 힘껏 친 공 이 플라이아웃 되어도 타석에 설 때마다 아주 작은 가능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처럼 나도 노력을 멈추지 않다 보면 어느 날 꼭 이겨야 하는 싸움에서 승리할 때가 온다.새해가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나의 지난 기록을 볼 때 올해도 내가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올해도 쉽지 않은 도전과 어려움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싸움에서 패배가 더 많을 것이 확률적으로 분명하다.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열 번에서 일곱번은 패할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로 한번 이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으로 한번 이기고, 성령님의 감화감동하심으로 한번 이기면 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껏 쳐낸 공이 모든 수비수의 키를 훌쩍 넘기는 홈런으로, 지고 있는 경기를 뒤집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인생역전의 한방이 될 수 있다.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조영석목사(찬양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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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전도를 더 잘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2.01
    새벽마다 일어나서 주께 엎드려 간구하는 저의 기도제목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먼저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중요한 기도제목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도제목과 사역을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전도의 열매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해에도 목표를 정하고 이루게 하셨습니다. 올해에도 새로운 가정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전도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전략과 감각을 위해서 전도 성경구절을 암송하고 전도훈련 서적과 전도자들의 간증과 교재를 자주 찾아 읽습니다. 사실 전도대상자에 따라서 접근방법의 효율성과 복음제시 방법이 많이 변화되었고 펜데믹 이전과 이후로도 차이를 느낍니다. 그리고 직장과 거주지역 혹은 신세대들을 위한 접근법이 필요하기도 합니다.전도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은 사실 전도대상자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나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나의 고정관념의 문제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잘 변하지 않는 생각,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들’을 고정관념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들이 굳어져서 내 생각과 인생 경험이 오히려 전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럴거야, 그래서 힘들거야, 저 사람은 하지 못할 거야, 나이가 많으니까, 이민생활이 얼마 안되니까’ 등등! 전도대상자와 만남전부터 시작되어 대화하는 중에도,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저는 제 자신의 고정관념과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우리에게는 어떤 고정관념들이 있을까요? 특정지역 출신이나 인종에 대현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학벌과 외모에 대한 것 그리고 체류신분이나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 등 다양합니다.특히 부정적 고정관념은 문제가 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도대상자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과 길을 막아서게 됩니다.예수님 당시에서 서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유혈통이 아니라 이방민족과 피가 섞여 있기에 부정하고 천한 사람취급을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 단 둘이 함께 있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습니다. 불순하고 불결한 오해와 소문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물을 달라고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에 사마리아 여인은 크게 당황하며 어째서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며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편견을 깨는 환상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셨고, 이방인 고넬료를 찾아가서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구약성경의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 우리에게도 다양한 이유로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이웃, 관계가 틀어진 친구나 직장동료, 친척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그들을 멀리하고 외면하라고 부추기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복음을 전하러 불편하고 불리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요 좁은 문이라고 믿습니다.고정관념과 편견을 내려놓는다면 전도에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사역에서도 편견을 벗어버리면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이민 교회에 대한 고정관념, 목회자에 대한 편견, 다인종에 대한 편견을 벗어야 합니다. 전도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를 버리고 비우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비하신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최재홍 목사(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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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두잉(Doing)을 내려놓고, 비잉(Being)을 돌아봅시다” 크리스천헤럴드2025.02.01
    예수님이 정말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목적만을 이루어 내는 것은 결코 아니실 것이다.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시기 때문이다.하나님에겐 언제나 우리 피조물인 인간들 자체가 목적이셨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찬송과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우릴 지으셨다고 한다. 이해되는 부분이 있지만 큰 틀에서는 그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을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한 사랑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그리고 우리와 우리 사이에 그 사랑을 누리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셨기에 우리를 빚으시고 호흡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의 본질이며, 그 본질의 근본이 되는 것이 바로 조건없는 사랑이며 이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은혜의 시작이다.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 위에 군림하시거나 우릴 부리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모든것을 계획하셨다니 그야말로 은혜요 축복이요 감사가 아닌가!벌써 새해 1월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새해가 되면 꼭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새로운 결심들이다. 물론 세상의 사람들이 하는 결심들과는 결이 다르긴 하다.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겠다, 기도를 쉬지 않겠다, 성경읽기에 더 열심을 내겠다, 교회에서 한가지 이상의 봉사를 하겠다, 성경공부 몇개는 꼭 이수 하겠다, 올해 안에 한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겠다, 등 등의 결심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것들이 무엇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들이다. 즉, 두잉 (Doing)을 중심으로 한 결심들이다.  두잉은 신앙인의 삶에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선 순위를 잘 살펴야 한다. 두잉 보다는 비잉(Being)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비잉의 핵심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목적으로 창조 되었는지, 어떤 형상으로 지음 받았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분명하게 정립이 된 후에라야 그 비잉을 유지 및 더 단단히 하기 위한 두잉을 적용할수 있는 것이다.비잉에 관심을 두지않은 두잉은 결국 흔히 말하는 번아웃 (Burnout)을 반드시 맞이하게 된다. 슬럼프 빠지기도 하고, 회복되어 다시 열심을 내며 두잉에 힘쓰다가, 또 다시 번아웃 되면서 죽을때 까지 무한반복을 하다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우리의 비잉, 즉 우리의 됨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런면에서 이미 우리, 나 라는 존재는 누구와도 비교불가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엄청난 존재임임을 잊지말자. 그렇다, 우린 이미 사랑의 사람으로 지음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온전히 감사하자. 나아가서 온전함을 넘어 완전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라는 결심을 내려놓지 말자. 목표는 예수님이다. 온유와 겸손, 그리고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님 처럼 살기를 결단하고, 그 결단을 도와 달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보면 어떨까.거듭 말하지만, 사랑의 행위를 하는 사람이 사랑의 사람이 아니다. 사랑의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잉(doing)을 위해 했던 모든 결심들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달이라도 두잉 보다 비잉(being)에 초점을 맞추어 보길 권면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사람이 되어가라는 권면이 아니다. 우린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비교불가한 대단한 존재(포이에마) 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겠다 라고 결심해 보자.겸손히 무릎을 꿇을때 마다 성령님께서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위로와 격려도 넘치도록 해 주실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버려도 된다.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는 편이 더 낫다. 요한복음 15장을 보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멋지지 않은가? 가슴 벅차지 않은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살며 사랑으로 마치는 삶! 하나님은 우리가 이루어 내는 그 어떤 업적으로 인해 기쁨과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니, 두잉(Doing)을 잠시 내려놓고, 비잉(Being)을 먼저 살펴보자. 예수님 같은 사랑의 사랑의 사람으로 내 남을 삶을 살아가겠다 라고 오늘, 지금 이 순간 결심해  보자. 그 결심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리라 확신한다. 하나님은 나의 지금 이대로의 모습 일지라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기뻐하시는 분 이심을 잊지말자. 그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가?!이 아모스 목사(LA 씨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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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황순원의 10가지 감사노트 - 설날에 쓰는 감사 노트 크리스천헤럴드2025.02.01
    1 오늘은 한국의 명절인 설날을 준비하는 날입니다. 이민생활에는 이런 명절이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인들이 많이 거하는 지역에서는 떡국이나 송편을  먹으며 모국을 그리워하는 날이기에 감사 드립니다.2 주일 예배후 친교시간에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며 기쁜 마음으로 서로 떡을 떼는 시간 주셔서 이것이 진짜 성찬식이 아닌가 생각하며 은혜로운 시간 보내면서 감사를 드립니다.3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만 존귀하면 됩니다라는 고백이 입으로는 나오지만 정작 이런 사실이 정말인가를 테스트 하는 사건 앞에서는 산산이 무너져 버리고 나 개인이 인정 받음과 인기에 몰두하는 자신을 볼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감사를 드립니다.4 젊은 나이에 선교지로 나가 충성되이 섬기던 중 갑작스럽게 남편과 사별 한 후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선교지에 머물러 자녀들과 함께 굳굳히 사명을 감당하시는 어느 홀사모님과 연결되어 잠시라도 위로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5 홀사모님들을 이런 저런 환경에서 만나게 될때마다 나의 아픔이 다시 기억되어 힘들긴 하지만 오히려 에너지로 변하여 그 분 들을 섬길수 있게 해 주시니 어떤 경험이든지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6 조상들중에는 순교한 자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환경앞에서는 자신이 없음을 날마다 깨달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순교역사를 보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전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니 또 다시 성령의 충만을 더욱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 감사를 드립니다.7 주의 사역을 시작할때부터 사탄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초긴장 자세와 함께 성령의 도움을 철저히 구하면서 강력한 영력과 담력을 키워야 하기에 날마다 엎드려 고백합니다. 상한 심령으로 구할때 언제나 변함없이 들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감사 드립니다.8 오늘의 암송구절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의 가장 원하시는 것은 서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이 모두 하나요 은사도 하나라고 하시면서 하나된 사람들의 언어도 같은 말을 하며 같은 마음을 가질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낮은 자리에서 남을 대할 때 진정한 겸손의 자세를 보일수 있으니 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을 상기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9 몇 년전에 양손과 양발을 절단하고 의족과 의수를 하신 사모님과 오랜민에 안부인사를 드렸더니 의수로도 그림을 그리고 곁에서 그를 돕는 자가 그것을 전도지로 만들어 전도하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양손과 양다리를 다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만 불편하면 얼굴을 찡그리는 나의 모습이 못내 부끄럽고 사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주셔서 감사를드립니다.10 오늘도 머나먼 오지에서 사역하는 사모님들뿐만 아니라 조국땅에 아직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병들어 눈물 흘리는 사모님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며 주여 하루속히 그들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큰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기도할 마음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황순원사모 - CMF 선교원 (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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