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터뷰] 김재곤 장로 편 / 한국 [주]가마치통닭 그룹 대표
페이지 정보
본문
한국 합동측 교단의 미주설립에 참여하고자 한국에서 부터 방문한 한국 가마치통닭 그룹 대표 김재곤 장로를 만났다. 평탄치 않았던 인생 곳곳에서 하나님의 간섭과 그를 통한 섭리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윤우경 본부장(이하 윤): 이번에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가마치 통닭, 가마치는 무슨 뜻인가요?
김재곤 장로(이하 김): 누룽지의 가마솥에 누룽지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구요. 고소하다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룹이라기보다는요 가족적인 분위기로 저희는 사육을 하고요. 사육을 하고 종괴도 가지고 있구요. 또 도계에 이어 가공을 해서 전국 프랜차이즈 한국에 있는 프랜차이즈 750여 개 점포에 공급하고 있고 저희가 직접 개발한 소스나 양념 파우더 등을 가공을 해서 체인점에 공급하는 수직 계열화된 프랜차이즈 기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윤: 상상을 초월합니다. 직원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김: 전국에 있는 저희 실제 직원은 한 230명 정도 입니다. 저희 직영점이 현재 12개 정도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구요. 그리고 나머지 나머지 750여개는 전부 프랜차이즈 가맹 회사입니다.
윤: 염광교회를 섬기신다고 하셨는데 교회 잠깐 소개해 주세요.
김: 염광교회는 40년 전에 개척해서 은평구 녹본동에 위치하고 있고요. 이제 40대 된 목사님이 2년전 부임하셔서 아주 활기차게 부흥되고 있는 교회이고요. 성도들을 한 400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고 또 우리교회는 무엇보다도 교육 부서가 굉장히 활성화되고 있고 또 어린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그런 교회라서 차세대 희망 있는 교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윤: 남다른 간증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장로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셨는지요
김: 누구나 성도라면 다 간증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에게는 좀 특별한 주님의 만남이 4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저는 26살 때 처음으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는 사고를 만나서 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 되는 일이 생겼지요.
너무 억울해서 누명 씌운 사람들을 찾아가서 죽이고 저도 죽겠노라 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교도소에서 조그마한 기드온 책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제게 찾아오셨고 저는 용서에 대해서 말씀을 깨닫고 제 인생의 전환점,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된거죠.
윤: 구치소에 들어갈 때와 나왔을 떄, 용서를 배우기 전과 배운 후, 어떤 변화의 인생을 사셨던가요
김: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 다니는데 큰 믿음 없이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은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으셨나봐요. 그런데 마태복음 6장 14절 15절의 말씀을 제가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보면 너희가 만일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내 잘못을 용서하시겠다는 그 말씀이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온거죠. 결국 저는 그 사람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그 후엔 제 마음의 평안과 알 수 없는 그런 미래 불안감이 사라지고 제 마음이 굉장히 큰 자유를 깨닫게 된거죠. 그때부터 하나님을 알아가게 됐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윤: 그 일로 해외 취업을 나가려고 했던 일은 수포가 되었겠네요.
김: 이미 수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던 면허증도 다 취소가 되었고 제 직장까지 잃어버리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지게 된 것이죠.
윤: 인생이 바닥을 쳤다.. 는 심정이셨겠어요.
김: 그렇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바닥에서 오히려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두려움과 걱정 염려를 다 덮었지요. 하나님은 그 해에 믿음 좋은 자매를 만나게 해 주셨고 또 그 이듬해 결혼하게 돼서 가정을 가지게 되었고 또 아내가 믿음이 좋아서 저의 삶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셨지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고 또 용서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가정을 꾸리고 나면 제일 먼저 각각의 사람에게 숙제로 오는 것이 생업의 문제 먹고사는 문제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해 주셨을까요?
윤: 가마치 통닭이라는 그 큰 기업을 이루시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장로님 그 과정을 좀 나누어 주시죠.
김: 장사를 하면서 주일성수를 못 했습니다. 근데 교회를 다니면서 제 마음의 부담이 오게 되었는데 하루는 결단을 하고 서울 시내에 있는 거래처 한 40~50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제가 이제 주일날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토요일 날 이틀 분량을 준비해서 영업하시는 데 지장 없도록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한 절반 정도는 이탈될 거라고 결단 한것인데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2곳만 떨어져 나가고 나머지 한 40여 군데는 동의 해 주셔서 주일성수를 하면서 사업에도 큰 어려움 없이 가능했었지요. 이것 역시 하나님의 참 큰 선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날엔가는 또 큰 우리나라에서 한 두 번째 가는 회사가 제가 운영하는 공장을 사 주고 또 저를 그 회사의 대표이사로 운영할 수 있도록 안정될 때까지만 경영을 맡아달라 요청해 왔죠. 그 회사 사주가 저를 놓아주질 않아 한 6~7년을 하다가, 아 여기서 정년을 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회사가 또 다시 매각이 되는 바람에 저는 거기를 또 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 양계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러면서 충주 쪽의 한 만 평을 땅을 일부 계약하고 일부는 또 사고 또 은행에 빚도 좀 내고 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고 뭐 환경평가도 아무 이상 없이 다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반대에 민원 제기로 그 양계사업을 못 하게 됐습니다.
결국 저는 기도하게 되었지요. 그 일로 하나님은 제 삶을 기도원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무려 1년을 기도하게 하셨어요.
그 당시에 어떻게 하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해야 될지 굉장히 두려운 마음이었고, 또 앞날에 계획도 없이 일이 막히니 굉장히 힘들었는데 1년을 기도하게 하시면서 주신 응답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이자 비용은 더 커지고 수입도 없이 하루에 만 원으로 하루 생활을 기도원 가서 기도하고, 헌금 드리면서 기도원 생활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았는데 아무런 변화는 없었어요.
하나님은 과연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이런 마음이 저를 좀 힘들게 할 때도 있었으나 그해 말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됐죠. 그 사람을 통해서 다시 직장을 얻게 되었고 함께 사업을 하게 됐는데 계획도 없이 그분이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사업을 축소하는 바람에 제가 고스란히 인수받아서 오늘날 이렇게 가마치 사업을 하게 된것이지요.
이 사업이 결국 닭 사육을 하면서 유통사업까지 확장 했는데 프랜차이즈 본사에 닭을 공급하게 됐었지요. 그런 와중에 공급해드리던 치킨집들이 한 분 두 분, 그 사업체를 인수 해달라는 기회들이 생기면서 여러과정을 거쳐 1호점 2호점 개장을 하다가 의도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750- 760개 지점이 운영중이고 지금도 매월 10개 이상씩 오픈이 되면서 이 어려운 시기에도 굉장히 성장 속도가 높고 매출도 굉장히 많이 오르고 있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하게 한 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윤: 분명히 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업 운영 방침도 있으실 것 같애요.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신가요?
김: 제 계획에는 본래 없던 것인데 하나님이 이 사업을 내가 할 수 있도록 3년간 준비하게 하시고 그 준비한 사업체를 저한테 몽땅 주었을 때 아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쓰실려고 나를 사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구나 해서 저는 그 사업체를 그때부터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건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수익의10분의 1을 작정해서 지금은 선교사님 5분과 농어촌 목회자들을 위해 매월 10만 원 이상씩 매년 10분을 섬기게 됐지요.
이제 사업한지 8년째 되는데 현재 91분을 섬기고 있고 또 전도용으로 닭을 도계를 해서 매년 10만 수 이상으로 전국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제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 쓰시고자 하는 그 목적대로 변함없이 지속 중이고 내년이면 100분을 섬기게 되는 해가 되게 됩니다.
윤: 해외로 진출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김: 현재 국내에선 매월 10개 이상이 오픈되는데 향후 5년 이내에 1500개까지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 오픈이 목표입니다. 1500개가 되면 해외 시장을 한번 두드려 봐야지 하는데 4년 후면 제 나이 70세가 됩니다. 은퇴 할 때 겠지요. 그 때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 그동안 하나님께 기도하던 일들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 현재로는 해외 사업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
윤: 예 아쉽습니다. 엘에이에서 가마치 통닭을 맛볼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까 말씀 도중에 은퇴 이후에 갖고있는 계획이 있으시다고 하셨어요. 나눠주시지요. 어떤 계획이십니까?
김: 한 4가지 정도인데요. 첫째 장애가정을 돕는 일입니다. 사실 저희 큰딸은 생후 6개월 부터 뇌성마비 악성 간질이라고 하는 장애를 안고 2년밖에 못 산다고 했는데 기도 중에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누워서만 살던 아이가 5살엔 앉기 시작했고, 일어서기 시작했고, 지금은 걷기도 하죠. 86년 생인데 의사소통도 안되고 신변처리도 안되는 상태이긴 하지만 아주 건강하게 잘 살고있죠. 가족들과 늘 행복하게 기도하지요.
경제적인 여건들을 허락해 주셔서 불편함 없이 잘 양육하고 있습니다. 3-4분의 돌봄이들 께서 24시간 이 아이를 케어하시는데, 이 아이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소통이 안 돼서 때로는 답답해 하지만 그래도 자기한테 좀 잘하면 손 갖다 잡아다 주고 아빠 손 하면서 특별히 저를 좋아합니다. 하하
그 후로 두 딸을 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는데 이 아이들한테 저희 신경을 잘 못 썼어요. 막내는 결혼했고 둘째는 지금 보스턴에서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이 두 딸들이 장애있는 언니를 정말 사랑스러워하고 아끼지요.
큰 딸 때문에 우리는 장애자 가정의 그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두고 키우면서 지체장애아를 가진 가정은 일상 생활이 안 됩니다. 그래서 평생 이 아이를 케어하면서 일도 할 수 없고 같이 붙어있어야 되는데 그런 애로사항을 제가 알기 때문에 장애자 케어센터를 좀 만들어서 이 아이들을 잘 돌봐야 되겠다 싶어요.
처음엔 장애아 10명을 직접 돌보고자 했는데 최근에 아내하고 의논하기는 부모보다 그 아이를 잘 키우는 사람이 없으니 남이 맡는 보다 그 가정에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고 있습니다. 매월 300만 원 정도씩 10 가정에게 생활비로 후원하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이제 100명의 목회자 선교사들을 섬기게 되는데 이분들이 노후 준비가 되신 분도 있고 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들은 노후준비 없이 선교지에서 사역하는데 선교지에서 돌아오면 이분들을 맡아줄 곳이 없는 거예요. 생활이 안되요.
지금 섬기는 선교사100분 중 선정해서 평생 동역자가 돼서 이분들과 같이 살자 그래서 그분들 일자리도 좀 만들어 드리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해서 집이 없는 분들은 거기 와서 살 수 있도록 하자 해서 경기도 쪽에 땅도 준비가 돼있고요. 또 그 분들의 자녀 중에 학비 때문에 신학을 하지 못할 경우 100프로 장학금 지원해 주자 하고요.
세 번째는 저는 여행을 많이 못 했잖아요. 젊었을 때 많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사실 여행할 겨를이 없고 아이들에게도 참 많이 미안한데 노후에는 여행을 다녀야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그냥 여행을 다닌 것보다도 선교사님들 100분들의 선교현장 방문해서 함께 기도도 하고 그분들의 속사정도 살피면서 국내나 해외 여행을 다니고자 합니다.
더불어 전도용 만화책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만화로 전세계 복음화를 꿈꾸시는 김종두라는 만화 작가와 함께 새 만화로 전 세계를 복음화 하고자 해서 최소한100만 권을 만들어 가지고 배포하자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기드온 사역을 현재 하고 있거든요. 참 하나님께서 그 섭리가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40년 전에 교도소에서 기드온 소책자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제 삶이 변화됐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기드온 이사를 한 10년 전부터 하게 됐는데 아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고 제 삶을 기드온사회에게 헌신할려고 작정하고 지금 은평캠프에서 한 30여 분을 잘 섬기고 있습니다.
윤: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생각해 보면 용서는 정말 인간관계에서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기는 다 잘했고 상대가 나에게 다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운거죠.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핵심 중에 핵심은 용서의 삶이잖아요. 결국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평생을 그릇된 길로 가거나 예수님의 정말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를 쥐고 살아가고 있는데, 저는 이 시대의 크리스찬이라면 적어도 용서하는 삶을 좀 배우고 용서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생각을 하고요.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마음에 참 상처를 입고 목회를 하시다가 용서에 대해서 저한테 한번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1만 달러한테 빚진 종에 대해서 예수님이 천국에 비유해서 하신 말씀을 깊이 이렇게 깨달아 보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용서하고 살자 이제 그런 제 인생에 또 신앙의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경험되어져서 하나님의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살면 좋겠다싶습니다.
윤: 용서의 하나님으로 인생을 살고 계시는 우리 김재권 장로님을 모시고 함께 했습니다. 사람들마다 아 나는 늘 피해자야 난 늘 피해를 입기만 했어.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또 가해자이기도 했다라는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귀한 말씀 나눠주신 가마치 통닭 그룹의 대표이신 김재곤 장로님, 오늘 귀한 시간 정말로 고맙습니다.
- 이전글[심상은목사 편] OC교회협의회 33대 회장 심 상 은 목사 24.07.28
- 다음글"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권태진 목사 편 / 군포제일교회 24.06.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