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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하루한장 말씀 -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무명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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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항 자 같으나 유명한자 로 우리를 새겨

사람의 이름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나타내는 도장이나 사인(sign)도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기 위해 이름이 불려지면 개인의 명예로움과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이름들이 기록된 본문이 여러곳에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여러차례 기록된 인물도 있고, 단 한 번 기록된 인물도 있습니다. 느헤미야 12:1-21은 1차 포로귀환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명단입니다. 1차 귀환은 BC 536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한 해는 BC 444년입니다. 그러니까 3차 포로귀환 때 돌아온 느헤미야와 비교하면 92년의 세월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오랜시간이 흘렀는데 1차 귀환에 동참한 지도자들의 명단을 뒤늦게 느헤미야가 기록합니다. 그 중에서 20개 가문에 속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명단을 12장에 별도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100년이 지난 이름들을 새롭게 거명하고 기록하는 이유는 그들을, 그들의 희생과 수고를 기억하고 후대에 알리기 위한 목적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침공에 의해서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겠다는 마음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왔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헌신과 수고가 씨앗처럼 땅에 뿌려졌기에 100년이 흐른 지금에 그 열매가 맺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들의 수고와 눈물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고백입니다.
예를 들면, 스룹바벨이란 이름의 뜻이 ‘바벨론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듯이 그들은 바벨론 생활에 정착해서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폐허가 된 고국땅으로 돌아와 무너진 터를 재건하는 일에 뛰어든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가나안 땅은 다 무너지고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기업도 없고 성전도 없고 제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에 세워질 하나님의 공동체를 소망하며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희생하는 헌신자들을 통해 믿음의 공동체가 굳게 세워지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한국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그당시의 상황과 환경도 열악했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문화와 음식과 언어가 바뀌었지만 생명의 복음을 전하려는 수 천명의 선교사님들과 열정과 가족들의 후원과 헌신이 있었기에 세계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미지의 조선 땅에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숨을 내건 희생과 예수님의 사랑을 품은 복음의 씨앗이 시대를 따라서 영혼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처럼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세우고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충성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후대에 기억되지 않고 시간 속에 뭍힌, 이름없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 가운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자료가 사라지고 불타고 없어졌을지라도 지금까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신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숨은 수고의 눈물과 잊혀진 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성도의 수고와 희생을 기억하시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고후 6:9)로 그들의 이름을 당신의 마음에 새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도들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주시고 기억하십니다(사 49:16).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을 가진 성도로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역사에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즉 영적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재정립되고 회복됩니다.
우리는 세상이 기억하는 유명한 자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진 이름을 가진 성도로서 오늘도 생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새 역사를 위해 충성을 다해 수고와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속히 날아가는 짧은 인생을,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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