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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가성비와 효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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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로 교회 사역을 처음 시작한 것이 올해로 3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Chef 로서 식당관련 업종에서 일을 한지가 연속으로는 9년째 이며 이전의 모든 식당관련 경력을 다 합하면 대략 15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전혀 쭈뼛거림 없이 누군가가 물으면, 그렇습니다 저는 일터 사역자 입니다 라고 말을한다.
한번도 식당의 주인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일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식당 경영의 가장 큰 목적은, 어떻게 하면 손님을 만족스럽게 하면서도 동시에 식당에 이윤을 많이 남길수 있을까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기 위해서 따지는 것이 가성비와 효율성 이다. 최소한의 직원을 적제 적소에 투입해서 효율적으로 경영을 해야 하기에, 때로는 경력이 없는 두세사람을 채용하기 보다, 급여를 많이 주더라도 한사람의 경력직을 고용하기도 하고, 식재료에 있어서도 손님들이 만족하면서도 포만감 있게 먹을수 있음에도 재료비가 최소한으로 들어가는 식재료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한다.
교회 사역의 현장에서는 어때야 할까? 놀랍게도 많은 교회들이 일반 비지니스에서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가성비와 효율성을 교회 사역에서도 적용 하려는 모습들을 보게된다. 이건 아니지 싶다. 이래서도 안되고 이럴수도 없다.
장황하게 설명할수는 없지만, 한두가지만 이야기 해 보려 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아마도 이 질문을 들으면 자동으로 이런 대답들이 나올 것이다. 영혼구원! 부흥! 그리고 이 영혼구원과 교회의 부흥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담임목회자 이다.
교회가 오랜기간 부흥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쇠퇴 하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담임 목회자가 훌륭한 사람으로 바뀌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도 한다. 혹여 여러 이유와 사정으로 담임목사가 공석인 교회들은 어떤가?
그 교회들이 제시하는 청빙의 기준을 보고 있노라면, 동의가 되는 부분이 더 많기는 하나 어떤 항목들은 눈쌀을 찌푸리게 하거나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조건(?)들도 적젆게 볼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원하는 목회자 들이다.
지금 현재 사역하고 있는 사역지가 있음에도, 더 나은 조건의 교회로 옮겨가고 싶어서, 본 교회에는 비밀로 하면서 청빙원서를 부끄럼없이 제출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줄 아는가? 오히려 청빙 조건에 현재 사역하지 않고 있는 목회자만 지원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실상은 정 반대다. 현역으로 사역하는 목사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청빙 광고가 더 많다.
이렇게 까지 해서 수퍼스타급 목사를 모셔와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은 효율적인 영혼구원, 그리고 교회부흥을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혼구원이, 교회의 부흥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의 성공 원리와 같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으며, 또한 교회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분부하신 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는 자명하다.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교회를 부흥시키라는 부탁이 아니었고, 제자 된 너희들 이라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라고 부탁하셨음을 잊으면 안된다. 예수님이 친히 비유로 드신 잃어버린 양 한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주목하자. 효율성이 아니다. 가성비가 아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영혼 구원에만 초점을 둔 비유 라고도 말할수 없다.
이 비유의 초점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고, 그 한마리의 양은 지금 예수를 믿지않는 세상속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라고 한번 생각해 보길 권면한다.
예수님은 어떤 교회를 보기 원하실까? 수퍼스타 한사람이 교회 전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며 숫적으로 부흥되는 교회를 더 보기 원하실까? 아니면 교회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모든것을 다 쏱아 부어서라도 한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의 교회를 더 보기 원하실까?
더이상 부흥을 얘기하지 말자. 더이상 영혼구원만을 강조하지 말자. 교회는 가성비를 따지는 곳이 아니다. 두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던지, 2천명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던지, 그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서로를 사랑으로 살리고 든든히 세우는 것 만이 목표여야 한다.
지난 주간에 오래 알고 지내던 어느 부부의 요청으로 만남을 가졌다. 대형교회에 오래동안 헌신하고 있는 부부인데, 흔히 하는말로 시험에 들었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기가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내용이 어떻길래 물었더니, 이 교회가 오늘날 대형교회로 성장한 것의 가장 큰 요인이 자신이 목회 했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그렇기에 자신의 뜻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도 말했단다.
십수년간의 신앙생활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가며, 우린 과연 이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사역을 했으며 모든것을 드려 헌신한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한번에 몰려왔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그 목사도 사랑하신다. 사랑 하시되, 그 목사가 교회를 부흥 시켰기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요, 남들보다 나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 하시기로 결정 하셨기에 그 의지적인 사랑으로 그 목사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것 이라고 말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복음 13장 1절) 라고 말이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도 땅 끝까지 가라 라는 사명으로 새겨듣고 있지만, 정말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사랑으로)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 이었다는 것을 잊지말자.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은 자명하다.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교회들이 ‘부흥’ 이나 ‘영혼구원’ 이라는 단어만을 붙들고 효율성과 가성비 따져가며 요령부리는 것을 멈추고, ‘끝까지 서로를 사랑하라’ 라는 아가페의 사랑이 너가 아닌 나에게서 보여지기를 가장 바라고 원하신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그렇기에 당연히 존재목적도 달라야 한다. 여튼 부흥과 성공은 아니다. 사랑만 있으면 되고, 사랑만 남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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