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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정말입니까? 십자가가 하나님 사랑의 클라이막스 인가요?

작성일 : 202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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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한 '바로 지금'의 하나님 사랑을 믿는 것이 클라이막스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위해 오신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주러 오셨다.  

믿음이란 단어는 기독교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단어 중 단연 으뜸이 되는 단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수도 없이 많이 해왔던 질문 같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필자는 흔히 이야기 하는 모태신앙의 소유자 인데, 어린 시절 신앙생활 했던 경험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어린시절 마주했던 나를 가르치셨던 목회자 분들은 나에게 믿음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던가? 놀랍게도, 믿음에 대한 대부분의 가르침이 ‘소원’ 과 연결시켜 강조하고 가르쳤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라’ 라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었던 게다.

지금은 어떤가? 감히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아주 초보의 영성으로는 믿음을 내 소원과 결부시키는 것이 굳이 해서는 안될 일 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꽤 오래 한 사람이라면 이제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정말 의미있게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함을 권고한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과 그 사랑이 지금도 변함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 없을 것임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 사건을 아는가? 십자가 사건을 믿는가?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사건임을 믿는가? 그런데 만약 이 시점에서 이렇게 물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예수님의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당연히 십자가 입니까? 맞는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표현이다.

왜 그런가 하면, 십자가 사건이 인류를 구원할 근거가 되는 엄청난 사건 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예수님의, 하나님의 사랑의 사역이 그 사건을 기점으로 멈추어 진 것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죽기 까지 하셨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라. 하나님의 사랑은 시작부터 위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증폭 되어져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성경을 읽다보면, 아 하나님은 정말 위대한 창조주 시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어느덧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나를 향한 사랑이구나 라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에도 오늘에 이르기 까지 나와 함께 하셨구나 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면에서 필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결코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라고 주장해 본다. 하나님 사랑의 클라이막스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리고 나에게 향해 있음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며, 그것을 믿고 사는 이가 정말 복된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앞으로의 내 삶을 통해서도 지금보다 더 큰 증폭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의 순간 순간마다 함께 함을 믿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보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에 탄복하게 될 것이다.

Great Commission, 즉 대사명 이라고 불리우는 마태복음 마지막장의 마지막 두 구절을 아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새번역)

예외없이 모든 교회와 신앙인들이 이 표현들에을 주목하고 강조한다.  가라! 모든 민족에게! 제자 삼으라! 침례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 지키게 하라! 그래서 그것들을 사명이라 부르며, 그 사명을 이루어 내기 위해 모든것을 드리고 바치며 힘쓰고 애쓰며 산다.

왜 그러고 사세요? 왜 그래야만 하나요?  라고 물으면, 받은 은혜가 커서요, 혹은 주님의 명령 이잖아요 라고 대답들을 하면서, 힘들고 지치고 번아웃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사명을 위해 모든것을 쏟아낸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점점 더 커진 최고의 크기의 사랑으로 이 순간 나에게 함께 함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아마도 다른 표현이 눈에, 그리고 가슴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믿음이란 결국 이것을 믿는 것이다.

Great commission 이 아니라 이 구절은 Great promise 라고 해야 더 정확하지 않을까. 사도요한도 요한복음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13장1절, 새번역) 라고 말이다. ‘끝까지’ 라는 말은 이미 끝났다 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도 유효하다는 말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 하다는 말이며,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그리 하시겠다는 말이다. 이것을 믿는것이 진짜 믿음이다.

소원따위를 이루어 줄것을 믿는 믿음에서 벗어나 참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과 교회들에 넘쳐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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