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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칼럼] 간질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간질병입니다.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 알렉산더대왕, 나폴레옹, 노벨, 모파상, 단테 등도 간질환자였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포괄적 의미로 보면 해당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간질은 갑자기 환자가 바닥에 쓰러지고 사지가 뻣뻣해지며, 호흡장애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의식을 잃고 수면 상태에 이르며, 의식을 찾으면 환자는 전신통이나 두통을 느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간질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벼운 신체의 반복적 행위, 즉 눈을 깜빡 거리거나, 손을 반복적으로 툭툭 치는 것 등에서부터 손이나 발, 얼굴 등 신체의 일부가 어느 한쪽으로 돌아가는 경우, 손발이 저릿 저릿하는 것, 따끔거리는 것, 의복을 만지작거리거나,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증상도 초기 간질의 증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간질의 원인은 대뇌의 피질에 이상이 생겨서 흥분이 된다고 합니다만, 실제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며, 선천성 질환, 감염, 종양, 뇌졸중, 퇴행성 질환, 두부손상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치료방법으로는 항경련제와 수술적 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만, 수술을 받았다가 자칫 뇌가 손상되면 더욱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이 방법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성경말씀을 잠시 살펴 본 후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구약의 마지막 장인  말라기서 입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해도 좋다는 구절이 나와 있고 또한 십일조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있는 기록서이기도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께 십일조로 가축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드리는 방법으로는 가축을 한 줄로 세워놓고 좁은 곳으로 지나가게 하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하며 숫자를 세다가 열 번째로 지목되는 가축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열 번째로 지나가게 하는 가축으로는 쓸모가 없는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일부러 지나가게 만들어 십일조를 드렸다는 형식에만 의존해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부분도 있고 재물을 쌓을 수 있는 축복의 말씀도 있는 기록서입니다. 말라기 1장8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1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 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축복의 말씀은 3장10절부터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의 목적은 모든 재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명령의 순종이기도 합니다. 그럼 크고 작은 간질 질환의 치료방법을 말씀 드린다면, 술을 마신다거나, 수면부족, 과식이나 변비, 스트레스로 인해 발작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우선 이것들을 자제하시면서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면, 피가 영양이 부족한 세포에 영양을 공급해 주므로 한 일주일 후에는 아주 큰 효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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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3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의 생각하며 기도하며 - 특별한 선물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 밑에 둘 아이들 선물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들, 가격이 부담이 되어 평소에 주지 못하는 선물들도 이때만큼은 큰마음 먹고 준비를 한다. 성탄절날 아침에 일어나 포장해 놓은 선물을 신나서 풀어 볼 생각에, 아이들 못지않게 나의 마음도 부풀고 기대가 된다. 평소에 갖지 못하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더 할 나위없이 기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아빠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어쩌다 한번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비싼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조금도 감흥을 주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상적 필요를 마련해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 날마다 먹는 밥, 매일 편하게 잘 수 있는 집, 계절에 따라 입을 옷 금방 헤어지는 운동화, 학원비, 병원비 등등,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상적인 것을 마련하는 일은 사실 적지 않은 부담이다.언젠가 누군가 이 비용을 돈으로 환산한 통계를 보았는데 만18세까지, 즉 스스로의 쓸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가 되기까지,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액수는 내가 모든 특별한 날마다 빼놓지 않고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선물을 준다 해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이처럼 어쩌다 한번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이 모든 것이 때때로 받는 선물하나 만도 못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탓할 수 있으랴.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상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있는데 아이가 오늘 먹을 끼니를 걱정하고,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오늘밤 잠잘 곳이 없어 불안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로서 미안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아이는 이런 일상의 필요는 부모에게 맡기고, 밝게 하루하루를 기쁘게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간혹 받는 선물이 더 특별하고, 기억날 수밖에 없다.그런데 이런 모습은 나와 내 자녀에게서만 아니라 나와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때로 내가 지금 누리고 살고 있는 일상을 특별한 축복으로 여기지 않고, 그보다는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나님아버지께 나도 특별한 선물을 달라고 간청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게 되면 그제서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하며 간증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살아가는 이 일상이 무너져 버린다면 특별한 선물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니 나 또한 하나님아버지께서 오늘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과 나의 일상을 가능케 해 주신 것에 그 무엇보다 감사해야 한다.이처럼 아이러니 하게도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마련해 주는 것은 쉽고,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마련해주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 특별한 선물은 아이를 위해서 못사줄 때보다 안 사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일상의 필요한 것들은 행여나 마련해주지 못할까 봐 염려로 잠을 못 이루던 밤도 있었고, 자존심을 버려야 한 적도 있었고, 새벽에 예배당에서 눈물로 기도한 적도 있었다. 부모로서 내게는 아이들의 일상을 마련해주는 것보다 더 치열하고 힘든 일은 없었다.그러니 아이들이 알아주던 말든, 아버지인 나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그들의 일상을 마련해 주는 것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선물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내게 허락하신 그 어떤 선물보다도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일상보다 더 값지고 특별한 선물은 없는 것이다.또 이 땅에서의 일상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영원한 일상보다 더 소중한 선물은 없다.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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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2
    [오피니언] 샘신칼럼 - '나'에게 여호야다 있습니까?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역대하 24장은 요아스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구약 성경의 모든 사건은 말세를 만난 경계와 교훈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야만 합니다.역대하 24장에 등장하는 요아스는 어린 시절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 가족이 몰살당하는 사건을 치르며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의 중심에  아주 경건한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습니다.이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아달랴가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려고 했지만 요아스가 살아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의 결과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 일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인 여호야다를 사용했습니다.여기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법칙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들의 씨를 진멸하려고 하는 사건 속에서 사탄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고, 여호야다를 통해 요아스를 보호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사람을 통해 역사하지만 사탄 역시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선한 왕이었지만, 여호야다가 죽자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 되고, 급기야는 성전에서 자기의 악함을 책망하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는 악까지 범합니다. 요아스는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어 아람 왕의 침공을 받게 되고 나중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각 자의 여호야다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대하 22장부터 24장까지를 자세히 보면 요아스에게 있어서 여호야다는 참으로 은인 중 은인입니다. 여호야다가 없는 요아스는 생각해 볼 수 없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요  부모를 대신하는 사람이요 영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 요아스가  여호야로부터 영적인 영향을 받으며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 선한 왕이었습니다.오늘날 용어로 표현하면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멘토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죽자 믿음없는 방백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타락했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듣고, 읽고, 말하는 대로 되게 되었습니다.요아스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한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자신을 한번 돌아보세요. 그리고 나의 여호야다는 누구인지를 찾아보세요.즉 내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다만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도 기억해야합니다. 즉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이 말은 나의 여호야다가 있으며, 나도 누군가의 여호야다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죽자  믿음없는 방백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요아스의 영적인 타락 속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요아스에게 선지자를 보냈습니다.(대하24:19) 요아스가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자 제사장 스가랴를 통해 말씀하십니다.(대하24:20) 그러나 요아스는 스가랴를 성전에서 돌로 쳐 죽입니다. 요아스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이제 요아스를 대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람을 통해 요아스를 다루십니다. 요아스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도 우리에게 아주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적은 무리로(아람)  큰 무리를(요아스) 다루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요 하나님의 손길임을 깨닫도록 배려하시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인간적인 시각이나 계산으로 보면  적은 무리는  큰 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법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일반적인 법칙이 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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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1
    [오피니언] 어리버리 서민수 목사의 낚시 전도법 - 태신자 리스트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우리 주변에는 자동차 판매왕이나 보험왕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있다. 그들은 결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자신의 고객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판매왕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러 가지의 방법을 동원해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 중 미래의 고객으로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고객 리스트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그 리스트를 관리한다. 그들은 그들의 고객의 많은 정보와 내용을 자신들의 일마냥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정도의 부지런함과 성실함 없이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을 소개할 수 없다. 전도도 많은 경우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최상품을 소개하는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상품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름과 정보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자동차를 파는 사람도 잠정 고객을 관리하면서 생일, 기념일, 직업, 성격, 가치관, 취미생활 등 엄청난 정보를 관리하는데, 하물며 태신자들을 대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우리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전도할 마음이 처음부터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전도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감당하는 것이고 적어도 나는 그 일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도는 너무나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라고 여기고 지레짐작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낚시하는 낚시꾼들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낚시하겠다는 일념으로 바다나 호숫가로 달려 나간다. 싫어서 억지로 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낚시 전도법은 각자가 이런 낚시꾼들처럼 기쁨으로 즐겁게 뛰어 나갈 방법과 분야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전도법이다.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교회가 저렇게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체가 되어, 당신 스스로가 동기부여가 되어 즐겁게 감사함으로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전도법이다.위에서 소개한 방법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각자의 형편과 달란트와 은사를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 태신자들을 발굴할 수 있는 여러 모양의 방법이 존재한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여러분에게 맡기신 영혼들을 찾고 찾으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각자의 리스트 북에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 나는 이런 방법으로 태신자들을 80명 넘게 섬기고 있다. 이 태신자들이 다 교회 건물로 오는 것은 분명 아니다.그러나 몇 년이 걸려서라도 조금씩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각인시킬 수 있기에 감사함으로 울며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있다. 반드시 기쁨으로 거둘 영혼의 열매가 있음을 믿는다.조금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지금 당신 마음에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태신자들의 리스트가 없다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목회자이거나 교회를 오래 다닌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살려야 할 영혼들의 이름이 있는 영혼 구원의 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이 영혼 구원의 리스트를 목회자와 성도들끼리 소그룹을 만들어 서로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것, 이 얼마나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겠는가? 부부가 서로의 영혼 구원 리스트를 놓고 함께 기도하며 기도의 씨를 뿌리는 것을 실천해 보라. 각 가정에서, 각 교회에서, 이러한 영혼 구원의 리스트를 품고 기도할 때 가정과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기도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기도의 온도가 달라질 것이다. 태신자 리스트야 말로 불특정 다수의 전도 대상자들을 특정 소수화시킨 결과물이다. 가슴에 품고 있는 태신자 리스트가 없는데 어찌 스스로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감히, 제자와 팬의 기준을 태신자 리스트의 유무에 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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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60
    [오피니언] 아모스 목사의 일터영성 - ‘자유함’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되고,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고수와 하수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식당이라는 일터에서도 고수와 하수는 분명히 구분되어 존재한다. 특별히 요리사의 경우,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가지로 정리, 정의 될수 있겠지만, 이런 측면도 있다. 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허둥대는 법이 없다.오더가 갑자기 많아지는 경우가 생겨도, 경험이 많은 고수들은 절대로 허둥대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면, 고수들은 바쁠수록, 변수가 생길수록 더 기본에 충실해 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어차피 본인이 감당해야 할 볼륨은 정해져 있기에,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하려는 시도 보다는 오더가 들어온 순서에 집중을 한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손놀림이 더 빨라지거나 하는 법도 없다. 사실 하수들과 비교되지 않을만큼 이미 빠른 속도가 몸에 익어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하나씩 오더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손님들에게 제공이 되는 것을 보게된다.반면 하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변수가 생기거나 갑자기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의 오더가 들어오면, 처음 몇초, 몇분간은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고 오더장만 멍하니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그리고 나서는 뭔가 동작이 커지고 손놀림 발놀림이 바빠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더가 순서대로도 나오지 못하고, 더 익혀서 못쓰게 되거나 넣어야 하는것 한두가지를 빼먹고 오더가 나가거가 하기가 일쑤다.바쁜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고수와 하수의 행동에도 관찰되는 특징이 있다. 고수는 바쁜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도 별 얘기가 없이 평온한 반면, 하수는 바빴을때의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신앙생활도 그렇다. 분명 이 분야에도 고수와 하수는 존재한다. 놀랍게도 식당에서 경험했던 부분들이 신앙생활 에서도 오버랩 되는 것을 자주 느낀다. 신앙의 고수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거나 혹은 예상했던 일에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더라도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분명히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믿음으로 신뢰하기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조용히 묵묵하게 이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차분히 해결하려 하는 것을 본다.반면 하수들은 어떠한가? Why Me? 를 외쳐대며, 평정심을 잃으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까지도 한다. 그러면서 그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해결도 늦어지게 되고 원만한 생활도 하기 힘들어 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예상치 못한 좋은 일들이 펼쳐졌을때 고수의 반응은 어떤가? 시끄럽지 않다.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자랑하거나 하는 일도 웬만하면 삼가한다. 반면 하수들은 시끄럽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고, 목사님께 부탁해서 간증한번 하겠다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다 생략 하고, 오늘 칼럼에서 정말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단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함’ 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 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자유함을 누리기 원하지만, 실제로 완전한 자유함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누리고 살아가는 인생고수들은 그리 많지 않다.믿음 좋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여러가지로 설명이 되겠지만, 필자는 믿음 좋은 사람의 기준 중 하나를, 그 사람이 얼만큼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지를 살핀다. 자유함을 누리는 신앙의 고수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두가지를 명심하자. 먼저는, 하나님만 신뢰하자. 다른말로,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신뢰 하지도 말고,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그 무엇, 그 어떤 사람에게도 기대를 갖지 말자.  기대를 갖지 않으면, 모든 기대치를 다 뽑아버리면, 그럼 어떤 일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다음으로는, 이미 필요한 것을 다 가졌음을 믿음으로 선포하자. 마인드컨트롤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 늘 내편이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 이실 뿐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지 않은가?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대단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면, 깨닫고 사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귀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들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다.다시한번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한것에 대해서 (Doing) 영광을 받으시기 보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 (Being)임을 깨닫고, 그런 나 답게 살기로 결단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통해 더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심을 잊지말자. 진정한, 온전한 자유함을 누리며 사는 신앙의 고수, 인생의 고수로 살아간다는 것. 참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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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세기언 제9회 신앙도서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1) 크리스천헤럴드2023.12.15
     내가 팀 켈러 목사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한국의 친구 목사님을 통해서였다. 친구 목사님은 서울의 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도시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차에 팀 켈러 목사님의 목회 철학과 사역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을 잃고 연구하던 중에 내가 한국을 방문 했을 때 나에게도 팀 켈러 목사님을 소개하며 그 분의 두꺼운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목회에 대한 소개와 신학적 배경과 사역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었는데, 이 후로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와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에게 진실하면서 영혼을 위한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목회 방법이 매우 창의적이지만 진리 안에 견고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것이 많은 목회자요,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이 책 『탕부의 하나님』 역시 나에게는 새로운 통찰과 반성을 일으키는 거센 파도 같은 책이었다.  먼저 나는 팀 켈러 목사님의 책 『탕부의 하나님』에서 두 아들에게 배분한 지면의 양을 주목했다. 거의 정확히 3분의 2를 큰 아들의 상태를 다루는데 활용한 것을 본다. 그것은 팀 켈러 목사님이 주 독자층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고려하여 글을 쓰려고 하였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 당시 특정 계층의 사람들, 말하자면 그 당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 사회의 큰 아들들이 예수님에게도 역시 구원해야 할 잃어 버린 자들로 여겨 지셨다는 것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변하지 않는다. 두 아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버지의 일방적인 사랑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은 아들은 그 사랑에 감격하며 살아나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확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 형들의 이런 모습의 이유는 "눈 멀어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더 절망적이"라는 데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형들은 그저 의무감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다.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버지의 지시를 따른다. 그 순종의 배경이 되는 것은 '두려움'이라고 지적한다. 더 정확히는 "두려움에 기초한 맹종"이라 말한다. 즉 형들의 순종은 복음에 기초한 순종이 아니라 자기의 감정과 위치를 사수하기 위한 복종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복종은 자기 의로 쌓여져 결국 이 행위적 복종의 대가로 아버지의 것을 요구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고 어느덧 아버지와 대등한 위치에서 아버지와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게 된다.이러한 형들에게서 나타나는 병적 증상들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금은 고통스럽게, 아니 사실은 매우 아픈 마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간해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극하고 화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은 세상에서 늘 감정을 잘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것이 통제되지 못할 때가 있고 느닷없이 그 벽을 허물고 나타날 때가 있어 가끔은 나 자신도 놀라곤 하는데, 팀 켈러 목사님의 담담하지만 정확한 분석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는 형들은 자기 결정에 기초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 밖에서 의의 성을 쌓으며 그것으로 존재 가치를 삼기 때문에 이를 건드리거나 무너뜨리면 불을 뿜어 낸다는 것이다. 세상을 "불행과 불화"에 빠트린다고 팀 켈러 목사님은 지적한다. 유독 자기 변호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따르며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 하는 것이 나를 평가하고 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지적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이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다 잡아도 이런 상황이 오면 내 얼굴이 이에 대한 불편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왜 그 지적이 틀렸는가를 설명하는데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 변호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탕자의 형들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크고 엄청난 진동이 나를 때렸다. "자기 변호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너무도 부끄러웠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나의 벌거벗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분이었다. 이 글을 혼자 읽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말이다.형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차라리 동생처럼 한대 맞고 '아, 아프다.' 하고 끝나는 것이 나을 성 싶은데 형들은 더 참혹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드러내고, 나는 또 이것 역시 피해 갈 수 없는 해당사항이기에 온 몸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형들처럼 자기 의에 기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내면적 증상으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 없음"을 말한다. 이에 대한 부수적인 증상으로는 기도생활이 건조하다는 것이 대표적이고, 아울러 기쁨으로 올려 드리는 찬송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 나는 잘 알 수 있다. 내 신앙 생활이 엉망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는 저자가 지적한 그런 경향이 나타남을 나는 많이 경험했다. 하나님의 일을 누구보다 성실히 감당했다고 자부하며 보낸 지난날들에 대해서 부끄러움이 없지만 그 가운데 기쁨의 찬송이 있었고 눈물 어린 감격의 기도 생활이 있었는가 묻는다면 나는 사실 할말이 없다. 그러나 그 세월을 누군가 폄하한다면 나는 또 열을 올리며 나를 변호할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였노라고, 가족들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었노라고! 그래서 나는 확실히 형들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지나치게 자조적인 투로 써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그 핑계를 저자의 단어 선택에 돌리고 싶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기가막힌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신의 한 수라 생각된다. 바로 탕자의 "형"이 아니라 "형들"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탕자와 그 형"이라고 하면 그 스토리는 그저 단순한 교훈이요 성경 속 이야기로 끝이 나 버린다. 그런데 "탕자와 그의 형들"이라고 하면 스스로 그 비유 속 형 같은 많은 이들이 자기를 떠 올리게 된다. 그 "형들"이라는 단어는 당시의 바라새인, 서기관, 제사장들 그리고 이 시대의 나를 그 자리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팀 켈러 목사님은 많은 지면을 "형들"을 다루는데 할애 하면서 동생에 비해서 훨씬 아버지에게서 멀어져 있는 대상으로,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기가 더 어려운 사람들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버지 곁에 설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동생과 매 한가지의 길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한 없는 사랑"이다. 『탕부 하나님』이라는 제목이 신성 모독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확연히 이해가 갔다. 작은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요구 조건과 그 태도를 보면서 탕자라고 말 할 수 있다면, 큰 아들이 마음으로 아버지를 이미 멀리 떠나 아버지의 권위를 묵살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잘 못된 길에 서 있는 사람인 듯 정죄하는 모습을 또 다른 탕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두 아들을 그저 사랑으로 기다리고 보듬으려는, 어쩌면 문제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무조건 적인 수용적 태도의 아버지도 분명 탕부라고 불릴 수 있을 듯 하다.     저자는 말한다. "아들의 자격과 노력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방적 마음으로 아들의 가난과 누더기를 덮는다."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형들의 무리 가운데 내가 서 있고, 스스로를 비유속 탕자의 형과 다를 바가 없음을 자책하는 마음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탕자로 머무는 것일 뿐이다. 수 십 년 목회를 하며, 그리고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는 것 외에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목회도 주님 때문에 여기까지 해 왔고, 가정도 주님 때문에 잘 지켜 졌으며, 내 인생도 주님으로 인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의를 변호하기에 열 올릴 일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형이 형의 상태를 몰랐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라고 했으니 그 위험 지대는 벗어 나도록 하자. 나에게는 다섯 살 난 딸이 하나 있다. 마냥 해맑고 사랑스럽게 웃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덧 수백  일을 들숨 날숨 부단히도 호흡하더니 이내 세상 공기를 제법 마신 인간의 구색을 맞추어 가며 끝없는 질문과 솔직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아이를 낳기 전까지 7년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자녀를 허락하신다면 가장 귀한 보물인 신앙의 유산을 꼭 남겨줄 수 있기를 기도했었다. 그러나 딸이 자라가며 그 아이가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사고의 소용돌이에서 헤엄치는 동안, 나 역시 일상에서 민낯으로 드러나는 나의 투박한 물장구 속에서 복음의 반짝이는 빛을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때로 무지했고, 종종 무관심했으며, 자주 무력감을 느꼈다. 모든 부모가 두려워하는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여전히 내게도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 내지는 일종의 반발심과 원망감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 깊은 곳에 불편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아이에게 어떠한 진심과 설득력으로 신앙을 전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다만, 이러한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부터라도 찬찬히 내가 믿고 붙잡는 복음을 정리해보자는 용기로 의지를 다졌을 때 접하게 된 책이『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였다. 처음에는 저자가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이고, 아이들과 신앙에 대해 기꺼이 대화하는 분이라기에 조금은 낮은 눈높이에서 쉽고 가볍게 읽을 만한 기독교판 즉문즉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묵직한 추천인들과 그들의 추천사를 거쳐 목록을 훑는 순간, 이것이 어린 딸을 무릎에 앉혀놓고 재밌고 교훈적인 성경 구연동화를 들려주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한껏 머리가 큰 사춘기 딸이 들이밀 서슬퍼런 이성과 감성의 질문 끝에 따뜻한 지혜와 균형잡힌 감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신앙의 방패들이 차곡차곡 전시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저자는 크리스천이자 의사로서 지성을 쌓아가는 과정, 수술대에서 의료 행위를 시행하는 과정,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의 신앙 전통과 선교 현장에서의 신앙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연구했던 하나님에 대한 사유를 풍성하게 제공한다. 딸의 예리하면서도 다채로운 질문의 스펙트럼을 포용하고 그 안팎으로 공감과 가르침을 동시에 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먼저 믿은 아버지로서 얼마나 책임감 있는 신앙의 걸음을 걸었는지를 보여준다. 그 스스로가 책에서 강조한 “생각없이, 관성대로 굴러가는 태만의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하나님은 우리 자녀의 아버지가 되어주시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아비된 자로 마땅히 공부하고 가르칠 것들이 자동적으로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땅에 함께 서 있는 자로, 한 발 먼저 디뎌본 자로 우리는 이들에게 역사와 전통의 흐름을 일깨워주고 함께 발맞춰 걷는 법을 배우며 옳은 곳으로 손잡고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책 읽는 내내 자각하게 되었다.저자는 세상이 지적하는 기독교 역사의 폭력성과 호전성에 눈가리고 아웅하기보다 해석의 역량이 낳은 오해와 실천적 방임이 낳은 실패를 직시하고 기독교의 소망과 성찰을 동시에 설파했다. 또한 오늘날에 도무지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되려 혐오와 배제의 통로가 되는 동성애 논쟁과 전쟁  및 난민문제 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뭉뚱그려 말하지 않고 분별력 있는 어조로 특정한 입장과 태도를 제시한다. 단,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연역적 사고나 편협한 경험에 의해 도달된 결론이 아니라 깊은 관심에서 우러나온 방대하고 절실한 연구의 끝에 맺혀진 열매들을 정성껏 바구니에 담아 전달하는 식이라,설득이 강요된다는 느낌보다는 친절하게 안내받는다는 인상을 받으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평생을 씨름했던 학자들의 땀방울들을 모아 그 중에서도 가장 권위있고 무결한 내용들을 체에 걸러 고운 가루를 내어 딸에게 먹여주고자 했던 아비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특히, 가장 까다롭고 난해한 전쟁과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 평화와 이상을 꿈꾸고 이루어 가는 궁극적 소망을 놓치지는 않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머뭇거리거나 현실의 냉혹함과 부조리의 거대함에 짓눌려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결의는 딸이나 독자들 뿐만 아니라 저자 스스로에게도 계속해서 되뇌이는 다짐처럼 느껴졌다.그의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저자가 균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균형감은 고삐 풀린 열정으로 하나님에 앞서, 혹은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이들이 이제껏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심겨놓은 기독교적 불편함과 불쾌감을 기독교의 본질로부터 완벽하게 떼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급하게”, “함부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낮아지고 섬기며 모범을 보이는 삶의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근본적인 진리의 불변함을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어 “옛 자아가 철저히 죽는 ‘정화’의 과정”을 거쳐 “새 자아로의 ‘변용’의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열매로 나타나야 함도 일깨워주었다.사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의 중심에는 분쟁과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슬프게도 많은 피흘림에는 종교 갈등과 성서의 오남용이 맞물려 있었다.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사회악이며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요인이라는 인식을 팽배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의 목숨보다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 땅에서 죽고 썩혀져 끝없이 복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고 들었다. 결국,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은 극단주의와 탐욕으로 인한 신앙의 왜곡, 그리고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순종하는 무지함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곧 책 전반에 걸친 저자의 접근이다. 안타깝게도 굽은 길로 접어들어 오염되어 흐르는 복음은 생명력을 잃고 오늘날의 교회와 다음 세대의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딸이, 그리고 그리스도가 핏값으로 살려낸 딸이 가짜 복음에서 시선을 거두고 복음의 진수를 누리며 자기 자신과 그와 연결된 모든 이들이 복음 안에서 해방되고 복음 안에서 재창조되고 복음 안에서 살아나고 살려내는 것을 경험하기를 기대하고 촉구하는 마음으로 모든 문장을 써내려간 듯 보인다.워낙 방대한 양의 글을 읽고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한 까닭에 딸의 단순한 질문에도 많은 신학자와 신학 용어들이 등장하게 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이나 고차원적인 답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복음이 파도파도 끝없고 결코 정복될 수 없는 무한대로 풍부한 영적  자원이기에 다양한 해석학적 위치와 사유의 범위가 연결되고 맞물리며 발견되는 은혜와 진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그것을 농축하여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내가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신앙 선배로서 충고의 말을 건넨다 해도 우리의 불완전함과 무의식적 치우침은 자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신앙의 반발심과 걸림돌을 만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겸허하게 배우는 입장에서 먼저 깨우쳐나간 과정을 공유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각기 걸어가는 고유한 길에서 빚어가는 독특한 신앙의 신비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입지에서 출발하여 깨우침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책이나 사람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쉽사리 현실의 교회와 신앙의 실망스런 면모에 낙오하고 복음 자체를 폄하하게 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필립 얀시와 그레고리 보이드처럼 기독교에 대한 합리적(?)인 회의감에 사로잡힌 이들을 위해 따뜻한 길잡이를 자처하는 작가가 우리 나라에도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다.이 책을 읽는 내내 맹목적인 신자가 아니라 값비싼 은혜의 대가를 치르는 참된 제자의 길을 소중한 딸이 걸어나가길 권고하는 저자의 진심이 문자를 넘어 가슴 깊이 전달되었다. 십자가가 반드시 가로와 세로의 접점을 가로지르며 존재하듯,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우리네 인생도 반드시 두 가지 길을 성실하게 걸어나가야 할 터이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각각 온전하게 한 인격에 담겨있듯이 우리도 전인적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세상을 품고 살아가야할 운명과 능력을 부여받았다. 치우침없이 그 십자가의 길을 감당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흘리신 보혈 한 방울 한 방울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우리 목숨보다도 귀한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머리로 이해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새긴 그 신앙은 역사와 문화의 옷을 덧입으면 덧입을수록 더욱 강력한 힘과 빛으로 세대의 세대를 이어 뻗어나갈 것이다. 그 희망으로 나의 다섯 살 난 딸의 사춘기와 청년의 때와 장성하고 노쇠한 시절을 거쳐 영원에 이르는 모든 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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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아프리카 흑암의 땅에 3천개 교회 건축을 꿈꾸며 크리스천헤럴드2023.12.14
    강신정 목사(논산한빛교회 담임/아프리카선교회 대표)가 주님의영광교회 집회 등을 목적으로 미주지역을 방문했다. 강목사는 크리스천헤럴드 본사를 방문해서 2025년 10만명 아프리카전도집회 등 관련사안을 논의하고 본사의 Focus on The GOD에 출연했다. 인터뷰내용을 간략 정리했다.                     (편집자 주) Q: 윤우경 본부장(이하 윤) : 환영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오신 방문 목적이 있으실 텐데요. A: 강신정목사(이하 강) : 이번에 하나님 은혜 가운데 주님의 영광교회(신승훈목사)와 남가주새누리교회(박성근목사) 얼바인 침례교회(권태산목사) 등에서 부흥집회 인도를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논산한빛교회가 위치한 논산은 약 12만 정도 되는 조그마한 도시로 개척해서 34년 목회를 하고 있지요. Q(윤) 개척의 배경과 과정들은? A(강): 27살, 신학교 4학년 때 기도원에서 10일 금식 후 하나님께서 논산 땅에 보내주셔서 그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작은 방에서 천막교회로 조립식 열세 평 건물로, 공사 현장에 있는 조립식 건물 뜯어서 40 평,  상가건물로 옮겼고  다음엔 교회에 불이 났었거든요. 그 이후 지금 현재 있는 논산 한빛 교회까지 건축만 제가 천막부터 친다면 6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하하Q(윤): 논산 한빛 교회가 성장하기까지 지탱해온 교회의 정체성과 목회 방향은? A(강):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개척의 마음을 주셨어요. 신학교 4학년 때 결혼하고 제가 1년 지났을 때 제가 있었던 곳을 떠나서 다른 도시로 가서 사역을 해야 되겠다 했는데 금식 기도하다가 만난 집사님이 바로 논산 분이었어요. 결국 논산에 가서 사역을 시작하게 됐고요. 지금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일곱 가지로 정리됐지만 당시엔 그냥 가서 열심히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죠. 지금 강조하고 있는 우리교회 정체성은 첫 번째는 교회 신앙이 분명한 교회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 라고 말씀을 처음 하셨지요.  두 번째로,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는 교회, 디모데전서 4장5절에 기록된 대로 말씀 기도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거룩해 지는 교회를 꿈꿉니다. 셋째로는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 입니다. 저희 교회는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로 주일날에는 부서별로 예배드리지만 주일 저녁 예배 수요일 예배 금요일 예배는 3대가 같이 예배드리지요.  네 번째 교회의 정체성은 우리가 사는 논산을 영적 문화를 이루어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행복한 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겁니다. 5번째 정체성은 한국 교회를 기도로 세우는 교회이고자 하는 것인데 한국내 5만5000 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개척교회 목사님을 모셔서 세미나도 하고있지요. 6번째 정체성이 아프리카를 세우는 교회인데  아프리카에 이제 3000개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아프리카의 유치원 중고등학교 또 중고등학교 아프리카 민족사관학교 그다음에 대학교는 교육대학을 세워서 아프리카의 좋은 교사들 믿음의 교사들을 길러서 아프리카를 변화시키는 그리고 병원과 간호대학을 세워서 그곳에 필요한 믿음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일들을 하고요. 7번째 정체성이 아름다운 노후를 책임지는 기회입니다. 교회에서 헌신하고 충성하며 달려왔던 분들이 마지막 노후가 되면 교회도 못 나오고 또 신앙생활을 못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하늘 시민이 되기 전까지 우리가 교회가 책임입니다. 교회 우리 어르신 성도님들이 너무 좋아하고 계십니다. Q(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마음을 쏟는 일을 넘어 땅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어떤 연유일까요? A(강): 우리나라가 70년대만 해도 엄청 어려웠어요. 우리나라의 급성장 배경엔 미국이나 외국 선교사들이 영적인 토대를 세워주심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 교회도 개척 당시 미국 남침례교 교구이 선교사들이 커다란 천막을 제공해줬어요. 그러면서 선교사님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우리 교회에 와서 전도 집회를 해주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교회가 성장했지요. 그런데 아프리카는 한인 선교사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지요. 어느 날 아프리카에 대한 마음을 주셨고 아프리카 목회자 세미나를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보니까, 하나님이 이곳에 부르심이 여기 있구나 라는 심정이 들었고 그때부터 선교를 시작하게 됐고요. 그리고 아프리카의 마사이에 갔더니, 정말 우리나라 예전에 70년대 80년대의 소 움막 같은 집보다 못한 곳이 교회인 거예요.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3000개 교회를 세우자 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 교회를 지을 때 한 500만 원 정도면 지금은 이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이 올랐어요. 그래서 이제 700 에서 1000만 원 정도면 한 교회를 30 평에서 40 평 정도 온전한 건물로 지역의 센터로 지어줄 수 있겠더라고요. 5년 정도 됐는데 186개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교회 세우는 일들도 학교를 짓는 일들도 너를 만나서 네가 입을 벌려 말하면 사람들을 만나게 할것이다 해서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입 벌려 말하고 다녔고 한 분 한 분이 모여 아프리카에 186개 교회를 짓게 된 거죠. Q(윤): 교회 성도님들의 반응은?  A(강): 처음부터 좋아하셨겠어요?  아름다운 노후를 책임지는 교회에는 박수치고 좋다고 했지만 아프리카 라는데는 쉽지 않았지요. 해서 우리 성도들과 함께 아프리카엘 갔어요. 청소년들도 데려가고. 실제 예배 현장을 가서 보고 그동안 제가 외쳤던 일들이 아프리카에 진행되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고백이 달라지더라고요. 하나님께서 그곳에 3만 평 땅을 주셨거든요.  이제 간호대역을 짓고 교회를 짓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로 되는구나. 믿게 된거죠. 논산, 조그마한 도시잖아요. 우리 교회가 큰 교회도 아니고요. 확신이 없다가 현장에서 확인이 되니  생긴 거예요. 갔다 오신 분들은 100% 믿고 헌신하지만 안 갔다 오신 분들은 아마 잘 믿어지지 않을거예요. 저도 사실은 안 믿어졌으니까. Q(윤): 교회 건축 3천개, 간호대학이나 또 대학 수준까지도 이끌어 가실려는 계획을 갖고 계시는데 어떤 미래를 꿈꾸고 계시는지요? A(강): 아프리카의 나무 그늘 밑이나 그냥 천막 교회에서 예배드리던 교회에 건물이 지어지면 금새  100여명이 모이더라고요.애들이 와서 예배드리고 어른들이 모이고요. 그런 교회들이 논산 한빛교회 이상으로 자라서 아프리카 더 어려운 지역으로 선교하는 교회로 자라날 것을 저는 확실히 믿고요. 또 한 가지는 학교가 세우는 일인데 탄자니아에 대학교가 세워지고 간호대학이 세워지면, 지금 간호대학이 일 층은 건축됐어요. 그래서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한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54개 나라 14억 인구인 아프리카 민족을 사랑하고 아프리카 땅의 복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정말 위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그런 리더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윤): 하나님은 원대한 계획을 시작하실떄 분명히 어떤 한 사람을 들어쓰시는 것은 확실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2025년에 아프리카 10만 명 구령선교대회를 꿈꾸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요? A(강) : 아프리카의 재작년에 갔을 때 그곳의 송 교사님이 아프리카에 와서 만명 어린이 전도축제를 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들으면 즉시 순종하는 스타일이니까 제가 만명 집회를 해본 적이 없지만 하겠다 했지요.  그런데 저희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아프리카에서 만 명 전도 축제를 하려면 논산에서 못해도 어린이 1000명은 해보고 가야 되지 않겠냐 고요. 결국 10월 2022년도 10월 아이들 천명 전도축제를 열었고 참석한 아이들이 1365명었어요. 그때는 여전히 코로나 기간이었음에도 애들이 물밀듯이 온 거죠.  저희들도 놀라고 성도들도 놀라고 정말 하나님은 알고 계셨지만 우리가 놀랬죠.  이걸 경험으로 지난 6월에 아이들 이제 전도축제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갔습니다. 만 명 은 정부에서 위험하다해서  5000명으로 제한을 해서 5000명 전도 축제를 했는데 실제로 5000명 이상이 모인 거예요. 소 세 마리를 잡고 그리고 아이들 도시락 5000개를 만들고 빵을 6000개 굽고 부스 40개 정도 만들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그들에 맞는 놀이도 하고, 그러면서 5000명 전도 축제를 하게 됐습니다. 이제 그 경험으로  2025년도에는 우리가 어른들 우리 한국의 빌리그램 전도 대회처럼 아프리카를 영적으로 부흥을 일으키는 운동을 하자. 그래서 이제 10만 명 전도축제 계획을 하게 됐습니다. Q(윤): 한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사실 어마어마한 그림이 아닌가 싶은데요. 어떤 동역자들이 계신지 그리고 이번에 어린이 전도 집회를 하셨을 때에도 교회에서 어떻게 함께 움직여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A(강) : 어린이 전도축제를 위해서  3월달에 바자회를 했습니다. 성도들이 바자회예상 수익을500만 원, 1000만 원 나올까 하더라고요.  그정도 예상이면 그냥 헌금하고 말자, 실제 목표액이 2천만원이니 그리하자 했는데 바자회 하루에 모인 기금이 2000만 원 이상이 나왔어요. 성도들이 모두 놀랐지요.  그 기금으로 5천명 어린이 전도집회는 잘 마쳤습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2025년도 아프리카10만 명 전도 축제는 저희 교회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한국 교회와 우리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정말 연합해서 목사님들도 성도들도 미국에서 300명 정도가 함께 갔으면 좋겠고요 동역할 동역자들이 정말 많이 필요하죠. Q(윤):  네 우리 아프리카 구령대회를 위해서 저희 또 헤럴드 본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A(강): 정말 감사한 것은 우리 헤럴드 크리찬 헤럴드에서 이렇게 오늘 인터뷰도 하고, 또 이 사실에 대해서 기사화하고 방송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제 입을 통해서 나가는 일들을 지금 방송이라는 또 신문 매체를 통해서 확성기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어쩌면 하나님께서 헤럴드가 하나님의 확성기가 되어서 정말 놀라운 일들을 하지 않을까? 생각이 기대가 됩니다. 네네 Q(윤) :목사님의 신앙 배경이 좀 궁금합니다.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요? A(강) : 저는 이제 충청남도 홍성 결석면 형산리 안전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마을의 교회에도 또 복음을 들은 기회가 없었어요. 중학교를 면 소재지 중학교를 간 거예요. 걸어서 1시간 10분 정도 다니는 학교였는데 하나님께서 짝을 만나게 했는데 그 짝이 예수를 믿는 신실한 친구였어요. 저한테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는 교회에 나갈 마음이 없었어요. 절에 다녔고 또 무당들이 와서 굿은 했는데 교회라는 것은 너무 생소했거든요.  3학년이 되었을 때 또 친구가 제 짝이 된 거예요. 그때 교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됐는데 하나님이 기도하는 분을 만나게 해주셨어요. 그분이 박재순 권사님이신데, 그 권사님을 만나면서 제가 이제 온전한 기도의 사람 또 신앙을 갖게 되면서 토요일날 되면 이제 교회 청소도 하고, 전도도 했죠. 전도하러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저한테 질문하는 거예요. 너 뭐하고 살래 이런 물음이 왔어요. 그때 제가 하나님, 나 전도하며 살고 싶어요라는 마음이 들었죠.  목사님이 되려면 신학 대학 간다는 것도 잘 그때 몰랐었거든요. 그러고서 이제 고 3 이 돼서 진로를 결정할 때 목사님한테 상의드렸더니, 그러면 신학 대학 가야 된다고 해서 신학 대학에 가게 됐죠 그래서 주의 길을 가게 된 계기입니다.  Q(윤): 건강에 문제가 좀 있었을 때가 있으셨다고요. A(강): 목회하면서 어느 날  교회에 불이 나고 힘들 때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내시경 검사하라는 마음을 불어주셨어요. 그때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종양이 생겼다고요. 그때 위를 거의 절제하고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사실 그때 다시 뜨겁게 또 만났습니다. 하나님 내 삶이 나는 한 달이 될지 3개월이 될지 6개월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를 사용해 달라고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쓰임 받고 싶다고 눈물로 밤에 기도했죠.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셨고 또 새롭게 만나주셨죠 그리고 이제 그다음 날 새벽이 되었을 때 몸을 씻고 나보니까, 얼굴에 병색이 없어졌더라고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분들이 성령을 받기 시작하고 그런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주셔서 지금 오늘까지 건강하게 지내고있지요.그때 결심한 게 있어요. 하나님 내가 주님이 살려주셔서 정말 어느 곳 가든지 내가 마지막 정말 집회다 생각하고 마지막처럼 집회할게요 생명 걸고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할게요. 이제 어느 곳에 가든지 제가 정말 사력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고 시간시간 성도를 위해서 안수도 해주고 기도도 하고, 지금도 교회에서 매 예배 때마다 아이들이 강단에 올라오면 제가 수요일날 금요기대회 때 꼭 안수를 해주듯이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교회가 원하면 시간시간 제가 꼭 성도를 위해서 안수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Q(윤): 미주지역 성도들에게 논산 한빛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A(강)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미국 땅에 오셔서 이민을 오셨든 그리고 공부를 하든 여러분들이 여러분 삶 속에도 고난이 있고 또 아픔이 있잖아요. 정말 한국에서 보면, 야 미국의 이민 같애 그래서 불우할지 모르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선 치열하게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고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거죠. 한국에서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미국에서도 함께하시고 그래서 욥이 고백한 것처럼 앞을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뒤를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시고 옆을 봐도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그런 고백을 하잖아.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되어 나온다고 말씀 고백을 했어요. 그렇죠. 여러분의 현재의 고난이 장차 하나님 앞에서 나타날 영광과는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살아계신 하나님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세요. 아무리 미국 땅이 좋아도 여기는 영원한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가야 될 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미국 시민으로 산다 할지라도 천국 시민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오직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이 땅에 예수님 몸인 오직 교회 붙들고 정말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 생각날 때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또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특별히 아프리카 정말 54 나라 14억 인구 그들은 하루 한 끼 먹고 삽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마사이에 가서 학교 초등학교 하나가 세워졌는데요. 아이들은 병원 가려면 5시간을 걸어가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가 그곳에 5학년 6학년 세우기 전에는 아이들이 세 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가고 또 세 시간을 와야 되는 곳도 있더라고요. 아프리카를 위해서 같이 기도해 주시고, 또 감동이 오시면 마음이 오시면 저와 함께 정말 아프리카 땅 54개 나라 14억 인구를 놓고 함께 기도하고, 또 함께 물질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함께 달려가는 저의 기도의 동역자 물질의 동역자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되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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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뉴스] “저출산 완화 사역, 교회에 기회”…돌봄 사역 실천하는 교회들 크리스천헤럴드2023.12.14
    우리나라는 올해도 합계출산율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양육 문제’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가운데 일부 한국교회들은 양육 문제 해결에 나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주요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수치이고, 감소 속도도 가장 빠르다.한 통계에서는 저출산 원인 중 ‘육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고,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이 14.4%로 3위를 차지했다. ‘양육’에 대한 문제가 출산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이런 가운데, 한국교회에서도 저출산 현상 완화와 다음세대 부흥을 위해 아이 돌봄 사역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사역에 나서는 분위기다.충남 당진 동일교회는 27년째 아이 돌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방과 후 학교 ‘비전스쿨’과 어린이집 운영을 통해 주 5일 하교 시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돌봄 사역을 실천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을 대상으로는 성경 읽기와 영어, 수학, 음악 수업을 물론, 인성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출산율을 높이는데 기여함과 동시에 신앙 교육을 통해 다음세대 사역도 실천하는 이중효과다.당진 동일교회 이수훈 담임목사는 "교회에게 기회가 왔다"며 "한국교회가 아이 돌봄 사역을 통해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고 다음세대 사역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비전스쿨과 어린이집의 보육비용도 일반 양육 기관의 표준보육비용의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의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서울 고척교회도 아이 돌봄 사역을 실천하고 있다. 2004년부터 햇수로 20년째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해 왔다. 학기 중에는 하교 후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지도하고 영어와 수학, 체육 교과목을 중심으로 수업도 진행한다. 방학 중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보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척교회가 설립한 ‘희망의 복지재단’이 보육비용을 전액 지원한다.고척교회 방과 후 교실 김세정 센터장은 "크리스천 기관으로서 저출산 시대에 도움이 되고자 사역을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출생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몇몇 교회들은 아이 돌봄 사역을 하고 있다. 돌봄 사역은 저출생 문제 완화와 함께 다음세대 교인 수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보다 많은 교회의 돌봄 사역 참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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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뉴스] 성도 3명 중 1명, "교회 안에서 외로움 느껴" 크리스천헤럴드2023.12.14
    개신교인 3명 중 1명 이상이 교회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목회데이터연구소가 12일 ‘한국교회 트렌드 2024 조사’를 기반으로 개신교인의 외로움 실태가 담긴 주간 리포트를 발표했다.조사는 지앤컴리서치에 의뢰, 전국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보고서에 따르면, 교회 출석자 36%는 교회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이들 중 61%는 소그룹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편으로 나타났다. 어떤 경우에 외로움을 느끼는지 물은 결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가 46%로 1위를 차지했다.그 다음 ‘교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때’(21%), ‘교회에서 같이 식사하거나 차를 마실 사람이 없을 때’(17%), ‘소속된 부서가 없을 때’(5%) 순으로 조사됐다.성도의 외로움 현상은 교회 밖에서도 이어졌다. 개신교인 46%는 평소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자주 혼자라고 느끼는지 물은 결과, 응답자 40%가 ‘그렇다’고 답했다. 본인이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33%가 동의했다.교회 출석 여부에 따라 외로움의 수준도 달라졌다. 가나안 성도의 경우 52%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반면, 교회 출석자는 45%에 그쳤다.신앙연수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20년 이하는 56%, 21~30년은 50%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반면 30년 이상은 38%만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개신교인 83%는 신앙 활동이 외로움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이들 중 소그룹에 자주 참여하는 성도는 95%, 가끔 참여하는 성도는 85%, 참여하지 않는 편인 성도는 68%로 집계됐다.하지만 외로움의 대처방안으로 신앙 활동(30%)보다 취미 활동(55%)이나 신체 활동(35%)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목데연 관계자는 “한국 교회가 외로운 신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서 “외로움을 대처할 수 있는 세상과 구별된 성경적 가치관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어 “성도 간의 연결을 통해 서로의 영적 상태를 돌봐주고 중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그 키는 바로 ‘소그룹’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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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뉴스] 마약, 영화·드라마까지 점령…마약 확산 부추긴다 크리스천헤럴드2023.12.14
    요즘 영화와 드라마, 뉴스를 보면 온통 '마약' 얘기뿐이다. 마약 소재 드라마는 최근 두 달 새 네 편이나 나왔다. 매체를 불문하고 마약은 흥미 유발을 위한 자극적인 양념으로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 콘텐츠 속 마약 소재·에피소드가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기보다 '흥미 본위'로 다뤄지고 있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드라마 '7인의 탈출'과 '힘쎈여자 강남순'(강남순)을 보면 규제가 비교적 강한 지상파 방송 등에서 '마약' 소재가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알 수 있다.최근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에서는 마약 파티를 벌인 주인공들이 환각 상태로 집단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등장했다. 해당 장면은 자극적인 묘사로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JTBC 드라마 '강남순'은 선천적으로 놀라운 괴력을 가진 '모녀 히어로'가 신종 마약범죄를 소탕하는 이야기가 주축을 이뤘다. 마약 관련 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코믹극으로 경각심보다는 재미를 유발했다는 평가다.지상파보다 규제가 약한 OTT 콘텐츠들은 더 노골적이다. 마약 장면 묘사가 방송보다 적나라하고 아예 마약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한다.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더 글로리'의 경우, 마약 중독자로 나온 이사라(김히어라 분)가 약물을 투약하는 장면을 비롯해 환각 증상, 금단 현상까지 묘사돼 논란이 일었다. 앞서 마약 운반을 하는 1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소년비행'이 또 다른 OTT 채널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OTT 최근작들을 보면 마약 묘사가 더 두드러진다. 디즈니+ '최악의 악'은 한 형사가 한중일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강남 연합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드라마다. 그렇다보니 마약 제조와 유통, 이로 인한 혈투까지 마약과 관련된 범죄 세계가 자세히 다뤄진다.이 밖에도 코미디와 누아르, 로맨스 등 여러 장르물에서 마약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심지어 학원물에도 마약 소재가 스며들었다. LG U+모바일tv 오리지널 드라마 '하이쿠키'는 한입만 먹어도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의문의 마약 쿠키가 엘리트 고등학교를 집어 삼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에서는 학생이 마약 영업상으로 뛰고 학교에 마약으로 만든 쿠키가 유통된다. 마약을 제조하는 공간도 학교 기숙사 세탁실이다. 학생들은 한입이면 집중력이 높아져 성적이 오르는 고가의 쿠키를 먹고 환각에 빠진다.최근에는 연예계를 휩쓴 마약 스캔들과 맞물려 마약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시청자들의 주목도도 높아졌다.마약 복용으로 인한 각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 반영된 결과라지만, 마약이 흥미 위주로 다뤄지며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무디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미디어가 마약 문제를 단순히 흥미성으로 접근할 경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마약에 대한 심리적 경계심을 낮추는 등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청소년 마약 근절 및 예방 대책 토론회'에서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약물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고 재미로만 접근하는 드라마가 늘고, 연예인의 잦은 마약 논란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누그러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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