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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샘신칼럼- 베드로와 십자가

작성일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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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힐 신앙고백도 “자기부인” 없이는 넘어뜨리는 사탄의 도구일 뿐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곧 기독교에 대한 오해, 무지임을 알아야만 한다. 현대 변질된 복음은 십자가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사라지게 했다. 즉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예수 없는 기독교를 만들어냈다. 

그러면 예수 없는 기독교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자리에 스스로 앉아있는 기독교다. 그 사실을 베드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다. 베드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마16:15-16) 대답을 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주님은 이어서 주님이 고난을 받고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마옵소서”라고 항변한다.  그러자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몇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사탄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넘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사탄의 소원이 있다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사탄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사용한다. 

이 사탄의 전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란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고 매우 인간적인 호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넘어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주님이 생각하는 넘어짐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생각하는 넘어짐이다.  흔히 믿는 사람이 간음을 하면 넘어졌다고 말한다.  문제는 간음만 넘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면 그것 역시 넘어진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했다면 그 일이 어떤 일이든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믿는 우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다. 기가막힐 신앙고백이 있었지만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극찬을 듣는 신앙고백 후에 주님을 넘어뜨리는 일에 사탄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칭찬과 책망이 바로 이웃에 있었고 성공과 실패가 바로 함께 나타났다.  우리는 칭찬, 성공 옆에 책망과 실패가 있음을 망각함으로 칭찬들을 때, 성공할 때 넘어니다.  칭찬들을 때 책망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성공할 때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는 것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면 베드로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베드로에게 자기 부인이 없었고 십자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 부인이 없고 십자가가 없다면 베드로처럼 머리로는 알고 입술로는 신앙고백을 하지만 그것이 삶에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훗날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2-14)라고 고백한다. 

베드로가 이렇게 달라졌다면 우리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마땅히 달라져야만 한다. 고난을 참으라는 수준이 아니라 베드로는 고난을 즐거워하라고 권면한다. 

참는다는 것은 억울하고 손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반면에 즐거워하는 것은 나에게 유익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참된 신앙이란 참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는 신앙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지식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지각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참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참는 신앙생활은 기쁨을 상실한 금욕주의자 되게 할 뿐이다.

우리 안에 오신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심으로 참는 신앙생활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생활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시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던 베드로였지만 이제 베드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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