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6 페이지

본문 바로가기

뉴스

  • 56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인류문명은 어디로? (2)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여러분! 자연과 잘어울리세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세요. 그럼 나도 참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4.에너지 문제이다 인류는 매년 석유 100억톤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인류문화는 마치 에너지 소비 중독증에 걸린 문화와도 같다. 석유는 앞으로 30-40년이면 고갈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석유가 공해와 오염에 가장 큰 원인이 되고있다. 전기는 그래도 크린 에너지에 속한다. 태양에너지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에너지이다. 그러나 밀도가 약해서 공장은 못 돌린다. 가정이나, 학교, 그리고 교회에서는 그래도 이용될 수 있다. 원자핵을 이용해서 산업용에너지로 사용하는 방법을 6천억불 이상 들여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아려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무석유 문명이 도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대체 에너지를 발명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오늘날의 모든 교통과 산업이 모두 스톱하게 될 것이다.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어야 하는데 아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미래 과학연구 기관들이 아직도 뾰족한 수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옷, 안경, 식품 청과제, 아스피린, 화장품이 모두 석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분 석유가 사라질 때 어떤 세상이 올지 아는가?     이제 석유문명을 떠난 새 문명건설을 시작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역청으로 쌓은 바벨탑을 무너뜨린 것은 석유문명의 종말을 예언하는 것이다. 원자로의 수명도 40-60년이 되면 폐기되어야 하는데 지금500여개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석유가 고갈되면 다 멈출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디에 폐기시키겠는가? 큰일이다. 지층이 조금 움직여도 원자로의 방사선이 샌다는 것이다. 방사선이 새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한다. 인체를 파괴한다.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인간이 가장 방사선에 약하다. 토끼나 쥐는 비교적 강하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임산부는 기형아를 낳는다.지난해 일본에서 쓰나미로 원자로 방사선이 유출되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제가 몇년전 우크라나이나 갔다가 체레노빌 원전사고로 일어났던 비참한 상황을 기념전시관에 가서 보고 참 놀랍고 무서운 사실들을 많이 알았다. 지금 지구상의 원자로를 안전하게 폐기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부탁하신대로 하나님의 동산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관리하고 다스림으로 공해와 오염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5 .식량과 물의 고갈 문제이다 최근 엘리뇨 현상에 의해 홍수와 태풍등 재해로 많은 나라들이 식량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량의 문제가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호주 알젠친, 몇 나라 만이다. `그 외 대부분의 나라가 식량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앞으로 21세기중반에는 식량난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 본다. 미국의 인공위성이 지구의 지하수 저장량을 측정하고 있는데 산림이 번성한 곳은 괜찮다.그러나 중국 양자강 주변, 몽고 중앙아세아, 북한, 아프리카 대부분, 호주도 서서히 사막화해 가고 있으며 중남미도 사막화해가고 있다. 남미는 아마존강의 산림이 다행이 공해와 지하수를 보존해주고 있다. 아마존강 주변의 산림을 없애면 남미뿐 아니라 전세계의 기온이 달라지게 되고 급속히 남미가 사막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옥토 1샌치미터가 이루어지기 까지는 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나야 일워진다. 성경에 보면 토양을 매7년마다 안식년을 주어서 쉬도록 했는데 이것은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이다. 계속 땅을 경작하면 땅이 못쓰게 된다. 그러므로 매7년 마다1년을 휴식케 하므로 8년째는 좋은 옥토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 원리를 무시하고 욕심으로 농사하다 보니까 땅이 다 산성이 되어 농사가 안 된다. 그러나 일년간 쉬면 다시 회복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지킬 때 축복을 받았다. 이것을 어기고 땅을 착취만 하니까 땅이 인간에게 보복을 한다. 그래서 성경은 땅들도 하나님의 구속을 탄식하며 호소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구가 온난화해 감으로 농작물이 또한 안 된다. 수산업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좌외선이 증가 하고 있다. 좌외선이 증가하면 곡식이 잘 자라도 열매가 하나도 맺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소고기를 좋아하는데 1년에 10억이 넘는 소가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소들을 키우기 위해 산림이 목장으로 파괴된다. 그들이 내보내는 소대변이 대기와 물을 오염시킨다. 그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므로 병이 생긴다. 요새는 소를 기르면서 여러 가지 인공 홀몬을 복용 시키거나 주사를 놓아주어서 그런 소고기를 먹을 때 인체에 해롭다. 그러므로 콩을 먹고 두부를 먹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대기오염도 막아서 유익하다. 사람이 먹어야 하는 식품이 어떤 것인가? 무공해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오늘날 공해 음식을 마구 먹어 인체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인구증가로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1세기 중 하반기에 이르면 80-100억 인구를 헤아리게 될 것으로 본다. 지금도 70억을 넘어섰다. 이때 오는 문제는 식량난뿐 아니라 자원의 부족으로 큰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지금 세계각국정부가 다 빚 때문에 심각하다. 세계는 과도한 경쟁으로 서로 망해가고 있다. 큰 정부와 많은 기관과 조직, 무기생산, 인공위성발사 등으로 인류는 지금 재원이 고갈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류가 서로 경쟁하므로 자원을 낭비하지말고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므로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무공해 식량을 협력해서 생산해야 한다. 각국이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해서 서로 나누어 먹을 때 피차 살아 남을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특별히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협력할때 인류는 이제 살아남을수 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란 소설이 있는데 거기 보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은 마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동물농장에 끌려가 ‘일만하면 먹여줄 것이니까 일하라’는 주인의 말에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이것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식량고갈을 피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무서운 식량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다.물은 어떠한가? 물이 생명이다. 물이 부족하지만 창조의 질서를 따라 순환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현재물 중에 2.5%만이 단수이다. 단수를 아껴야 한다.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2500cc의 물을 마셔야 산다고 말한다. 바닷물이 96.5%이다. 이물은 단수가 아니다. 빙수는 황금과 같은 것이다. 지하수나, 토양수도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보화이다. 보석에도 결정수가 들어있는데 물이 없으면 보석이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고 한다.  그런데 물의 오염으로 단수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대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어가는 것은 나 자신의 생명이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자연은 제2의 생명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공기와 물을 깨끗게 하는 것은 나의 생명을 사랑하고 병들지 않도록 나의 집안을 깨끗게 하는 것과 같다. 지금 세계에서 오염된 더러운 물을 마시므로 하루에 어린이들이 15,000명이 죽어가고 있다  6.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에이즈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깨고 성적으로 방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큰 문제가 된다. 현재 한 보고에 의하면 에이즈병균에 감염된 환자가 2790만명인데 여기에 5배를 가산한 수룰 실제수로 본다. 에이즈병자가 아프리카에 제일 많다. 원숭이 에이즈가 있는가 하면 보복형 에이즈병도 있다는 말을 듣는다. 말하자면 에이즈환자가 고의로 다른 사람에게 에에즈 병을 옮기는 것이다. 생화학무기 중에 에이즈무기가 있다는 말이 있다. 21세기 중반까지는 에이즈로 약 2억 가량이 사망할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21세기 말까지는 세계인구의 반이 에이즈로 사망 할 것으로 내다 보기도 한다.  이제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현대문명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하는 데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다.우리들이 회개하지 않는한 소망이 없다. 지구의 종말과 문명의 파멸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현대문명은 The Point of No Return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통과한지 오래 되었다. 지구종말을 알리는 운명의 시계 바늘이 지난해 11시54분에서 금년들어 11시55분으로 옮겨졌다. 거이 자정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바벨탑을 쌓아온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류의 문화를 회개하고 하나님중심의 문화를 새롭게 건설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소망이 있다. 오순절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단절되었던 언어가 방언으로 의사소통이 회복되고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은 바벨탑에서 흩어지고 혼돈 속에 빠진 인간들이 성령의 역사로 치유되고 하나되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러한 구원과 치유와 회복의 사명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다.
    Read More
  • 55
    [오피니언] 신선묵 목사의 교수칼럼 - 저널링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오래전의 일이지만 한국의 드라마 중에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대장금이라는 훌륭한 여성 한의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대장금이 비록 교육을 많이 받을 기회는 적었지만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글로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그리고 재료들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을 글로 기록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의학 지식을 축적해 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또 다른 위인인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에서도 인상 깊은 것이 그의 난중일기이다. 전쟁통에 그것도 오늘날처럼 편하기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벼루를 갈고 붓으로 글을 써야하는 그 시대에 전쟁의 와중에서도 일기를 적고 끊임없이 전쟁 상황 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그것이 다음 전쟁의 중요한 자료로 삼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적어가는 기록의 힘이 대단하다. 이런 일기쓰기는 영성생활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에 처음와서 신학교에 다닐 때에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려고 하면은 우리는 무릎꿁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미국 학생들이 노트를 하나 가지고 와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끊임없이 적어가는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었다. 그들은 소위말해서 저널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적어가는 것이다. 로버트 클린톤 교수는 성경 속에서 느혜미아를 관찰하면서 느혜미아서가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라고 시작되는 데에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일반적으로 다른 성경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예언자에게 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느혜미야는 선지자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적어놓고 있는데 그것들이 성경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클린톤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저널링의 중요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는 저널링을 날짜를 기록해두면 하나의 벤치 마크가 될 수가 있다. 삶에서의 중요한 성장 혹은 쇠퇴  등을 볼 수 있다. 둘째는 기록을 해두면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기억할 수가 있다. 저널을 가끔 되돌아 보는 것도 중요한데 하나님을 새로이 찬양할 수 있게 하고 그가 이전에 하신 것 들을 뒤돌아서 기억할 수도 있게 해 준다. 셋째는 저널링을 하다보면 우리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우리가 배운 것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넷째는 저널링은 우리로 하여금 갱신하고 회복하게 도움을 준다. 우리 신앙 생활이 점점 더 나태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때에 저널링이 우리를 일 깨운다. 우리의 저널링 기록들은 자라나는 젊은 지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저널링은 다른 이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저널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저널링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쌓아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을 드린다는 것과 둘째는 저널링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하나님께 드린 구별된 시간 만큼 깊어진다면 동시에 기록하는 만큼 그 관계가 구체적이고 디테일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글로 적으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스타일이다. 기도하다가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 없을 때에도 글로 나의 마음을 쏟아내다 보면은 어느샌가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하게 느껴지고 또 하나님의 뜻이 하나씩 실타래 풀리듯 구별되는 경험을 하고는 한다.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도 나의 확신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는데 물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하였으면 얼른 바꾸어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나의 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에 확신을 흔들릴 때에는 이전에 기록한 기도를 보면서 재확신을 하 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 영적 훈련 중에서 가장 중요한 틀 중에 하나는 저널링이 아닌가 싶다.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분야에서도 저널링을 하는데 많은 유익이 있다. 나의 인간 관계들 그리고 사역에 대한 것들도 저널링을 한다. 또 건강을 위하여 수영을 하면서 저널링을 하였는데 많은 유익을 받았다.수영을 하면서도 코치가 어떤 것을 설명해주고 훈련시킨다. 나는 매일 수영을 한 이후에 그날 내가 깨달은 것 특별히 몸으로 깨달아진 것들을 하나씩 기록하였다. 코치가 말한 것을 내가 실제로 하면서 깨달아 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매일 하나씩 그것을 기록해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매일 수영을 하면서 오늘은 어떤 면이 새로 깨달아지지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수영이 잘 안되는 날은 집에가서 그 동안 저널링했던 것을 살펴보면 내가 그때는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현재 주위를 두지 않았던 점들이 보이고 스 스로 교정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축적된 내용이 아마 다른 사람을 코치할수있을 정도의 내용들을 모은 것 같다. 학생들에게 교수법을 가르키면서 이론적으로 공부한 뒤에 학습 토론을 위하여 “Freedom Writer”  Inner city 라는 영화를 함께 보았다. 한 백인 젊은 교사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학교에 부임하여 아이들을 교육하는 이야기이다. 폭력과 인종간의 갈등으로 물들고 교육가들 조차 포기해 버린 아이들 속에서 학생 자신들의 이야기를 찾게 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게 하고 듣게 해줌으로써 소망이 없던 아이들에게 그들의 버려진 삶을 회복하고 서로간에 참을성을 배우고 세상을 변화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 속에서 교사 Erin Gruwell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게 해주기 위한 수단으로 저널을 쓰게 한다. 교사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아무런 부담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나아가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영성 생활 속에서도 때로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기 쉬운때가 많다. 그러나 저널링을 통하여 나 자신의 참 소리, 갈등내면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경험을 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친밀감이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신선묵 교수월드미션대학교
    Read More
  • 54
    [오피니언] 김병학 교수 칼럼 - "소통은 때를 아는 것이다" 크리스천헤럴드2022.08.25
    얼마 전 한국에서는 표절에 관하여 크게 뉴스거리가 되었고 그 중에 어떤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음악이나 논문을 표절하였는데 그 내용이 도에 지나칠 정도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표절 문제는 요근래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분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거론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었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또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이런 비도덕적인 모습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고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이다.그런데 대부분의 표절한 사람들은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반면에 어떤 분야는 다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베끼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경우도 많다. 또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분야도 많다.교회는 이런 두 부분의 양면적인 모습이 모두 공존하고 있다. 교회는 철저하게 베끼고 그대로 답습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또 전혀 그럴 수 없는 부분이 있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답습해 하며 그대로 닮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야하며 예수님이 살아간 그대로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신 그대로 교회는 닮아 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은 것 같이 자신을 닮으라고 가르쳤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이 간 길이 결코 쉽거나 넓고 편한 길이 아니고 좁고 거칠고 고통과 아픔의 길이지만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길이고 이것이 교회 살아가야 할 그리고 감당해야 할 방법이다. 이것에는 기본적인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특별한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교회는 다른 것을 베껴서는 절대 되지 않는 모습도 있다. 대형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방법을 작은 교회들이 베끼거나 따라할 필요는 없다. 작은 교회의 나아갈 방향이 대형교회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교회들 마다 세우신 이유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목사들의 설교 표절이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드러난 문제이고 여전히 계속 들려오고 있기도 하다. 매일 설교를 하고 또한 행정과 목회 등으로 바쁜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치고 또한 매일 설교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단순히 바쁘다는 것으로 핑계가 될 수 없다.  목사들이 다른 사람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 보다 더 설교를 잘하고 해석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설픈 내 설교를 전하는 것 보다 저 사람의 좋은 설교를 전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옳지 않은 마음이다. 이것이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 사람의 설교를 그대로 베끼고 심지어 오타까지 베끼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않는다. 목사는 말씀을 묵상하는 법과 주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교인들을 심방하고 상담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여 분별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목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현장에서 교인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하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설교가 아니라 내 설교를 전할 내용이 점점 쌓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교회가 코로나 이후 나아 갈 방향을 제대로 잡을 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답습하되 지금의 상황과 현장의 모습을 잘 파악하여 창의적인 목회를 할 때이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어느 누구도 목회의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누가 더 많이 말씀을 연구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교인들을 돌보는가가 중요한 때이다. 교회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를 알아야 한다. 김병학 목사(주님의교회 kim0409@gmail.com)
    Read More
  • 53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치유하시는 하나님(1) 크리스천헤럴드2022.09.06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박희민 목사님의 지상설교 6번째 주제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두번째 설교이다. (편집자주)  오늘 본문말씀이 금시초문인 분들은 없겠지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여러번 읽은 말씀이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은 늘 새로운 말씀에만 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말씀속에 심오한 진리가 계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이전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세요’라는 가사도 있다.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모두-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 우리의 가정도 병들고 사회도 병든 병리적 사회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강효순, 나영이 어린이의 성폭행사건 등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든 사회인가를 잘 말해준다.우리의 육신의 질병보다 영적질병이 더 치명적이며, 한걸음 더 나가 가정과 사회 그리고 생태계가 병든 것이 더 심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벨상을 받은 전 고어 부통령은 An Inconvenient Truth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심각한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종말을 곧 가져올지 모른다고 경고하였다. 우리가 살고있는 로스엔젤레스는 천사의 도시라는 뜻인데, 실제로는 많은 폭력, 범죄, 살인, 강도, 절도, 마약, 인종 간의 갈등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고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요, 한계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식을 하고 7일간 잔치를 베풀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약속한 것이다.14절에 보면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고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 지라’했다. 여기서 그들의 땅을 고친다는 말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육신의 질병, 정신적, 영적인 질병을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모든 질병과 생태계의 질병까지 모두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치유의 하나님이시다.  말4:2절에는 내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 올라서 치유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저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기뻐 뛰리라고 했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치유하셨다.  제게는 믿음의 어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변계단 권사님이란 분이었다. 이분은 특별히 병고치는 신유의 은사를 받은 분이었다. 6..25 당시 한국교회에서 신유집회를 통해 수많은 병자가 치유되는 기적을 행하였다. 저는 그 집회에서 참석해서 예배인도와 설교도 많이 했는데, 저도 기도하면 병자들이 치유되고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저는 하루 종일 수천명의 중환자들을 위해 치유 기도하는 그 권사님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힘들어 보였는지 ‘하나님 저는 신유의 은사는 사양하겠습니다. 그저 말씀의 은혜만 은혜 만 주셔서 설교나 좀 잘하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 제가 어려서는 내성적이고 말을 너무 못했다. 중학교때는 옆에 앉은 친구가 말을 좀 더듬어서 그것을 흉내 냈더니 저도 말이 가끔 더듬어 졌다. 그런데 그래도 이정도 설교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런데 제가 목회하면서 중환자 심방때는 몇 번 후회했다. 그때 ‘제게도 신유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 병자들이 기도할 때 좀 벌떡벌떡 일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한적이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기도해서 병자를 다 고치면 의사들이 할 일이 없지 않아요. 한 유명한 크리스천의사는 나는 환자를 돌볼 뿐 고치시고 치료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이 고쳐 주시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가 ‘너희가 악한 길에서 떠나면’ 고쳐 주시겠다고 말씀하였다.  즉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서면 고쳐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렘2:13에 보면 나의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하나는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이요, 둘째는 물을 스스로 운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죄가 무엇인가?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죄요, 세상의 엉뚱한데서 생수를 얻으려고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판 죄가 가장 큰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없이 자기 힘으로 자기 장식대로 살려는 죄가 가장 큰 죄며 거기서 돌아서라는 것이다.  회개란 말의 희랍어는 돌아선다는 뜻이다. 혹은 변화된다는 뜻이다 마치 애벌래가 나방이로 변화되듯이 우리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삶, 세상의 것에 삶의 가치와 목적을 두고 산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서고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외친 첫 말씀이 ‘회개하라 찬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었다.  이상혁선교사가 쓴 ‘채워주심’이란 책이 있다. 아리조나 아메리칸 인디안 호피족 선교에 관한 책이다. 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위해 음식을 많이 준비하여 저녁식사와 집회에 초대하였다. 수백명이 모여들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늦게 몇 사람이 저녁을 얻어먹기 위해 찾아 주었다. 정성껏 준비했던 선교사들은 크게 실망하고 낙심이 되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젊은 선교사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지내는데 하나님께서 계속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신다. ‘너부터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보다 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했다는 선교보고, 업적에만 관심이 있지 정말 그 인디언을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마음은 없지 않느냐?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보다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교만의 죄가 네게 있지 않느냐? 그 교만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밤 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새벽에 둘째날 집회를 준비하기 위한 기도회를 갖으면서 이 젊은 선교사가 어제 밤 괴로웠던 이야기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들이 그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멸시한 죄, 선교 실적만 생각하고 그들의 한 영혼 한영혼을 사랑하고 섬기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두번째 집회를 준비하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새벽은 선교사들이 눈물로 회개하면서 기도회를 가졌다. 그리고 더욱 겸손해저서 동네를 다니면서 둘쨋날 저녁 집회에 초대했다. 저녁이 되자 어디선가 많은 인디언들이 모여 들었다.  둘째날 집회는 이 젊은 선교사의 간증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회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을 정말 사랑하지 못한 죄, 멸시한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 때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나타났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부흥운동은 언제나 회개운동에서 시작되었다.  
    Read More
  • 52
    [오피니언] 최재홍 목사의 카톡큐티 -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죄악상 (창19:1~11) 크리스천헤럴드2022.09.06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악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은 하편으로 선하고 아름답고 고상하지만, 동시에 악하고 변태적이며 사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타락한 죄악상은 이런 인간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천사들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과 만납니다(1). 이들은 롯의 강청에 못 이겨 그의 집에 들어가 무교병을 대접받고, 저녁이 되어 자려고 했습니다(3). 그때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 롯의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을 끌어내라고 요구합니다(4~5). 외지인을 성폭행해서 자신들의 예하로 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공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 정도로 사악하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돔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소돔과 다르지 않습니다.*이 폭도들의 요구 앞에서 롯은 그들에게 악행하지 않기를 타이릅니다(6~7). 소돔은 죄악이 관영한 도시였습니다. 이미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죄인이었다’고 묘사되었을 정도입니다(13:13). 롯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이 소돔을 거처로 선택했습니다. 마땅히 떠나야 할 곳에 머물러 있어, 함께 멸망당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죄의 자리에서 머물지 않아야 하며,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롯은 자신의 집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두 딸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손님들의 안전 보장을 제시합니다(8). 이런 방식은 사회 관습화된 집단 폭력을 막기에 너무 무기력하고 서글픈 모습입니다. 죄를 죄로 막으려는 세속적 발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죄와 타협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죄를 짓게 할 뿐아니라 결코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싸워야 합니다.*소돔 사람들은 롯의 제안에 오히려 더 포악스럽게 반응합니다(9). 외부에서 들어온 주제에 자신들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 한다면서 롯을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이제 그들은 롯을 해칠 기세로 문을 부수고 집에 난입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롯은 소돔 사람들의 광기 어린 폭력에 희생당할 위기를 맞습니다. 실로 참혹한 죄악상과 타락상이 끔찍합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양보하면 할수록 죄는 더욱 깊숙이 침투하여 우리를 파괴하고 멸망시킬 것입니다.*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으로 난입하려는 순간, 손님들이 개입해 문을 닫고 롯을 보호합니다(10). 그리고 문밖 폭도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지리멸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11). 하나님은 극적인 순간에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후에 손님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앞으로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할 계획을 통보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를 거스르고 파괴하는 죄의 준동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겔 16:50)*오늘날 세상은 소돔 사람들 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갑니다. 분명 이런 모습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죄의 자리를 피하고 죄에 대해 항상 민감하며 거룩함을 따라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을 받은 거룩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세상적인 사고와 습관에 있는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불을 밝혀서 영적 눈이 멀어 헤매는 이들을 비추게 하소서. 더 교묘하고, 더 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경건한 삶으로 드러내게 하옵소서.최재홍목사쉴만한물가교회 GLAM(Global Leadership Academy for Mission)(909)682-0581Jaychoi0331@hotmail.com
    Read More
  • 51
    [오피니언] 김요셉 목사의 카톡큐티 - 사마리아인 비유의 의미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카카오톡 아이디 kimbg1212로 연결하시면 메일 카톡으로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큐티자료를 보내 드립니다.오늘 본문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잘 알려진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가 나온 배경에는 율법사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22:37~40) 이 율법교사도 같은 내용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율법교사의 대답은 완벽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영생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율법교사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인지” 예수께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의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자신들이 지켜야 할 사랑의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계를 넘어간 이웃 사람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율법교사는 자신이 좀 더 넓은 울타리를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려고 예수께 이웃이 누구인지를 질문했던 것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는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즉 자신의 취향에 따라 나의 이웃이 될 사람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취향에 따라 순종할 수도 있고 불준종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납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긴채 고통 속에서 외로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 길을 지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성별된 사람들이 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모범이 되어야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그 다음은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는 여행 중에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과 서로 경멸하며, 원수로 지냈던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기준에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으로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를 불쌍히 여깁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에게 기름과 포도주로 응급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옷을 찢어서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귀에 태워 여관에 데려와 책임을 다하여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그 다음날 새벽에 일찍 떠나야 할만큼 바쁜 사람이었으나 도움이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바쁜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였습니다. 이 말씀 후에 율법교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자신의 기준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읽은 대로, 그가 이해한 대로, 그가 믿는 대로 잘못 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약 영생이 나의 노력이나 행함으로 얻어야 한다면 나는 불가능합니다. 라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강도를 만나서 죽을 수 밖에 없는자 이었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셔서 사아리아 인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를 받은 자답게 은혜를 나누며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Read More
  • 50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인류문명은 어디로? (1)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희민 목사의 지상설교 5번째 주제 ‘인류문명은 어디로?’ 첫 번째다. (편집자 주)“한마디로 인류는 그동안 바벨탑 문명을 쌓아왔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 이 역청은 석유가 원료로다. 현대문명은 석유가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석유문명이다”인류문명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을까? 인류와 인류문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인류가 계속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분들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기 보다는 비관적이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엘고 전부통령도 ‘불편한 진리 (An Inconvenient Truth)’라는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생태계의 파괴로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그럼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문명을 발전시켜왔는가? 한마디로 인류는 그동안 바벨탑 문명을 쌓아왔다. 오늘 읽은 창세기 11장에 보면 인류는 동방으로 옮겨오다가 시날 평지에서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다. 이 역청은 석유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석유가 없으면 꼼짝 못하는 석유문명이다. 이러한 바벨탑은 결국 인간의 자기 이름을 내려는 이기심과 하나님을 향해 도전해보려는 인본주의적 교만에 근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그러한 인간의 교만을 치심으로 인류는 언어에 혼돈이 왔다. 진정한 대화가 단절되었다. 오늘 인류가 직면한 문명의 현실과 미래는 바로 바벨탑의 종말을 바라보는 듯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아슬아슬한 길을 걷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중엽 까지도 현대 과학문명은 끝없이 밝은 유토피아의 세계를 약속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점점 그 앞날이 어둡고 종말적이다. 그 동안 과학은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종말을 부인하였는데 오히려 과학이 인류의 종말을 증명해가고 있다. 아이로니칼 한 이야기이다. 기계문명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1. 컴퓨터 문제이다류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갖다 준 것이 사실이다. 지구가 완전히 작은 마을이 되었다. 농부들도 이제는 일하다가도 핸드폰을 돌려 점심을 주문해 먹고, 다이얄만 돌리면 세계 어느 곳에 있는 사람과도 쉽게 통화 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특별히 기술문명(technology)의 혁명은 콤퓨터의 발명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고, 인류문화를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하였다. 콤퓨터 하나로 온 세계의 그 엄청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방지일목사님은 100세가 넘었는데도 얼마나 콤퓨터를 즐기며 세계 각곳에 있는 선교사들에게 이매일을 열심히 보는지 모른다.이렇게 컼퓨터에 의존해서 일하다보니까 이제 콤퓨터만 shut down되면 모든 업무가 스톱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에 공항에서 콤퓨터가 스톱하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꼼작 못하는 것을 경험했다. 정치, 경제 국방, 산업, 모든 분야에서 큰 문제와 혼란이 야기된다또한 염려되는 것은 이 콤퓨터가 마귀의 손에 들어가 악용될 때 굉장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을 감시하고 인간들의 정보를 악용해서 자유를 빼앗고 꼼짝 못하게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콤퓨터 사이언스에도 들어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콤퓨터가 사용되도록 이끌어가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콤퓨터를 악용하지 못하게 막고 인류의 번영과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실현해가는데 선용하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2. 복제인간의 문제유전공학의 발달로 복제인간이 가능해 짐으로, 여기서 생기는 윤리적 신학적 문제가 큰 사회적 잇슈로 대두되고 있다. 자칫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도전하므로 초래될 수 있는 무서운 단계에 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등장할 위험한 상황에 와 있다. 물론 학자들 중에는 짐승의 품종개량과 장기이식용으로 복제인간을 만들면 좋지않느냐고 말한다. 동물의 품종개량까지는 몰라도 장기이식의 경우에 그것을 사용하고 그 복제인간을 폐기처분 해야 하기 때문에 심각한 윤리문제나 인권문제가 대두 되지않을 수 없다. 만일 복제인간의 출현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지 못한 인간이 출현하게 되면, 이 사회는 큰 혼란과 비극이 생길 것이 틀림없다.   3. 생태계의 파괴 문제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지난 100년 동안 인류가 저지른 가장 큰 범죄행위는 환경 파괴 라고 지적했다. 즉 하나님이 지구를 통해 인류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을 파괴함으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생명의 존엄성과 생태계의 소중함을 저버렸다고 했다.최근 기상의 변화로 많은 피해가 지구상에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기상의 이변은 인간의 실수로 생기고 있다. 자연구조속에 여러 가지 물체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이동을 하면서 수분이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비가되어 땅에 내리고, 다시 비가 산과 지면에 스며들면서 어떤 물은 며칠 만에 어떤 물은 몇 년 후에 생수로 흘러나오고 또 바다로 흘러 들어 가, 지구는 자동적으로 순환되면서 지구전체의 균형을 유지해 가고 있다. 그런데 오존층의 파괴로 최근에는 기상이변이 각 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지진이나 폭우로, 태풍이나 쓰나미로, 뜨거운 온도와 재난으로 엄청난 물질적 피해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프리언(Freon)가스가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고 해서 안심 하고 그 동안 생산해 냈다. 그 동안 만든 인공화학물이 4천만톤을 넘는데 이것이 대기권을 넘어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공위성을 쏘면서 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일로 샌디에고에서 프리언가스를 생산하는 두폰 회사의 과학자들과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 격심한 공박전이 있었다. 두폰 회사에서는 대체 물질을 만들어 내겠다고 했지만 못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큰 잘못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기가 오염되고 물이 오염되어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그것은 곧 우리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고 죽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과 우리 생명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수년전 동남아에서 수십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해일, 하이티에서 있었던 지진, 미얀마에서 있었던 30여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난, 홍수, 폭우,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서 있었던 쓰나미도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불러운 재난이라고 할수 있다. 오존층이 회복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번개가 칠 때 회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개가 칠 때마다 ‘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좀더 긴 시간동안 번개를 쳐서 오존층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기도 해야 될 것 같다. 다른 방법은 인공위성을5천개쯤 하늘에 띄워 인공번개를 만들수 있다면 그것도 회복시키는 한 방법이 될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 돈은 막대한돈 이다. 현재까지 지구상에는 5천여개의 인공위상이 발사되었는데, 그 중에 2천5백 여개는 떨어지고, 현재 2천5백여개가 공중에 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인공위성하나 발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엄청난다. 그러므로 인공위성을 띄워 인공번개불로 오존층을 깨끗이 한다는 것은 거이 불가능하다. 이점에서 인류는 이제 프리언 가스를 안 만들어도 위기에 직면하고 만들어도 파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어있다. 기상이변으로 남북극의 빙산이 서서히 녹아가고 있다. 세계가 온실게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기온이 올라가 폭염이 계속되고 빙산이 다  녹아버리게 되어있다. 지금도 해안선이 높아지면서 섬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데, 이대로 나가면 앞으로 얼마 안가서 해안지대의 집들이 다 물에 잠기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륙지방도 안심 못한다. 뉴욕 동경, 상하가 물에 잠기고 시베리아와 카나다의 평원까지 낮기 때문에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다.인간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해서 계속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면 이렇게 온 지구가 사막화하게 된다. 나무를 심으면 다소 방지할 수 있다. 큰 나무 하나가 50톤의 물을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면 기후도 좋아지고 물맛도 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50년이 걸린다. 현재의 기상이변을 사람의 힘으로 해결 못하고 있다.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이 주는 먹거리로 자연 안에서 살다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자연의 한 지체이다.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다.신토불이라는 말이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잘 돌보는 일은 인간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반인륜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지금 생태계의 파괴로 11,046종의 동식물이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사명을 주셨는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녹색세계사라는 책이있다. 이책은 자연환경 즉 생태계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책에 남태평양 하단에 있는 이스터섬에 관한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다 멸종되었는데 하나의 미스테리이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부족간에 서로 경쟁하면서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나무를 다베고 돌을 채석하여 석상을 만들면서 자연이 전부 파괴되고 훼손되면서 짐승도 사라지고 자연이 퇴폐되면서 자원도 고갈되어 멸종되었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이책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엘조니주 카이카이바브 고원에는 사슴과 퓨마와 늑대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퓨마와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으니까 사슴을 보호하기위해 퓨마와 늑대를 잡아없앴더니 처음에는 사슴이 늘어났는데 나중에는 사슴이 풀을 다 뜯어먹어 고원이 황폐해지면서 사슴도 차차 멸종되는 것을 발견했다.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말해준다.여러분! 자연과 잘어울리세요,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세요. 그럼 나도 참멋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Read More
  • 49
    [오피니언] 조영석 목사 칼럼 - 돌아볼 여유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바쁘다고 인사를 생략하고,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추월해서 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고, 그렇게 해서 딱히 얻은 것도 없다. 대신 잃은 것들은 분명하다은행에서 줄을 서서 내차례를 기다리는데 앞에 있는 할아버지께서 은행원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이 지체된다. 할아버지는 친구를 대하듯 은행원에게 말을 건네며 안부를 묻고, 떠날 때도 잘 지내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을 끄는 할아버지를 보며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잠시 인사를 나누는 것도 못 기다리며 조급해 하는 나도 문제가 아닌지 싶었다.가만히 보면 어르신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은퇴로 인한 삶의 변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간에 쫓겨 살았던 이전의 분주한 삶을 마감하고 이제 천천히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가정을 돌보고, 책임을 다하고, 미래를 위해 젊음을 희생하며 살았던 시절이 지나고 드디어 얻은 여유와 자유이다. 바빠서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이제는 자세히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운전을 하며 바람을 느끼고, 눈 안에 더 많은 풍경을 담고 싶을 것 같다.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지난 날의 행동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해온 사람들, 급해서 인사를 건너뛴 사람들, 빠르게 추월하고 지나쳐 버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지금 사과할 수는 없지만, 더이상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고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 한창 일터에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애쓰고 수고해야, 나도 여유로운 은퇴를 꿈꿀 수 있다. 지금은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나의 꿈도 쫓아야 하니 그럴 여유가 없다. 불필요한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낭비이고, 갈 길이 먼데 느리게 가는 것은 사치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급히 움직이고, 서둘러 다음 일을 보러 간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대부분 부질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바쁘다고 인사를 생략하고,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추월해서 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고, 그렇게 해서 딱히 얻은 것도 없다. 대신 잃은 것들은 분명하다. 누군가에게 인사할 기회를 잃었고, 따뜻한 말한마디 건넬 수 있는 순간을 놓쳤다. 안부를 묻고 축복해줄 기회를 잃었다. 이 모든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한 소중한 것들이다.또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었을 것이고, 양보하지 않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갈 길이 급하다 보니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미안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기회가 있었을 때 조금 더 잘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렇다면 먼 훗날 찾아올 여유를 기다리기 보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무심했던 사람들을 달리 대해야 한다. 외면하고 지나친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제라도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고 축복을 해야 한다.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하려고 하면 이미 소중한 기회들을 놓친 후가 될지도 모른다. 또 내 삶에 그런 여유가 찾아올지 않올지 알 수도 없다. 어쩌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지 모른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바쁘다는 핑계로 큐티를 건너뛰고, 시간이 아깝다고 기도를 줄이고, 다른 일로 분주한 동안 성경책에 먼지가 쌓여간다. 나의 삶에 주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신경쓰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릴 수 있다. 교회도 다르지 않다. 빠른 부흥을 위해 모든 힘과 자원을 성장에 쏟아붓는 동안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서두른 덕에 단시간내에 급성장을 이루었지만 성도들은 피폐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날 교회가 본질을 놓쳤다고 실망하고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침체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을 돌아보니 급히 가는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더 늦기 전에 내 삶에 허락된 모든 만남과 관계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오늘도 바빠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이웃을 돌아볼 여유는 갖고 살아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조영석 목사찬양사역자
    Read More
  • 48
    [오피니언] 송경화 교수 칼럼 - 애착 3 : 거부 회피형 불안정 애착 크리스천헤럴드2022.08.09
     세상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느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 부모에게 나는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을 일관되게 받게 된다부모는 그냥 아기를 낳아주고 음식과 의복 등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신체적, 물리적 필요뿐 아니라 정서적 필요를 충분하게 채워 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생후 3년 동안 부모가 무슨 이유에서든 아기의 정서적 필요를 충분하게 채워주지 못한 경우, 아기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거부 회피형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기 쉽다. 어느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겠느냐마는,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엄마나 아빠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거나, 부부 갈등이 심하거나,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다거나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아기의 정서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애착을 형성하는 3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부모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이후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비록 말도 못하고 사리 분별이 잘 안되는 어린 아기이지만, 생후 3년 동안 아기는 부모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된다. 아기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느낌, 그리고 이 세상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느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 부모에게 나는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을 일관되게 받게 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서서히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불안정 애착 유형이 거부 회피형이다. 거부 회피형 유형의 아이는 인간 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인으로 자란다. 친구가 있거나 없거나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도 별 감동이 없고, 심지어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피곤하다 생각되어 가능하면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 소수의 사람과만 교제하고 혼자 남겨져도 외로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대화를 즐기지도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거부 회피형 유형의 사람이 연애나 결혼하면 처음에만 조금 반응하다가 곧 연인, 부부 관계에서도 철수한다. 즉, 데이트를 귀찮아하고 돈을 쓰는 데 인색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집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주로 TV 나 핸드폰만 보거나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편 애인이나 배우자는 이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고 대화를 할 수가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거부 회피형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은 이 사람이 실제로 인간관계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친밀한 인간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약점까지 다 보여주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상대방이 자신을 거부하고 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에 쉽게 인간 관계에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만 3세까지의 아기 적 시절에 그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상처받고 버림받을 바에야 차라리 관계를 만들지 말자는 나름의 인생 철학을 만든 것이다. 거부 회피형은 자기 긍정, 타인 부정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자기 긍정이란, 자신에 대해 좋은 이미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타인 부정이란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의 신실함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거부 회피형의 사람은 자기 혼자서도 얼마든지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느끼고, 동시에 다른 사람은 믿을만 하지 않으니 친밀한 관계는 아예 만들지 않는게 좋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은 부부관계 뿐 아니라 다양한 가까운 관계에서 친밀감을 주고 받지 못해서 메마른 관계를 유지하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본인도 힘들어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부 회피형의 사람은 자기 긍정에 타인 긍정까지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즉, (비록 나의 부모는 그렇지 않았지만) “내 앞의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버리지 않을 만큼 신실한 사람이다” 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되뇌이고, 약간 불편감을 느낄 정도로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고 자신의 마음을 더 열어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타인 긍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애착 유형은 만 3세까지 부모의 양육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굳어지는 것이므로 본인이 뭔가를 잘못했다기 보다는 부모의 일방적인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 탓을 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스스로 안정형 애착 유형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면 애착 유형도 서서히 변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내 삶의 주인이 부모가 아닌 자신이 되어 보자!송경화 교수월드미션대학
    Read More
  • 47
    [오피니언] 지상설교 - 박희민 목사편 - 크리스천과 노동 (2) 크리스천헤럴드2022.07.26
     설교를 제대로 준비하는 목사들이라면 설교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물론, 삶의 철학, 세계를 보는 시각과 가치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존경받는 목회자들은 자신만의 명설교들을 가지고 있다. 남가주 한인 기독교계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로 꼽히고 있는 목사 중 한 명이 새생명선교회 회장 박희민 목사다. 박희민 목사는 1936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1974년부터 남가주에서 목회했다. 1988년부터 나성영락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2004년 은퇴했다. 현재 새생명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희민 목사의 지상설교 4번째 주제 ‘크리스천과 노동’ 두 번째다. (편집자 주)목사가 돈을 너무 잘 헤아리면 은혜가 안된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목사라고 말한다. 서툴러야 신령한 목사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목사도 돈을 좀 알아야 한다밤이 오기 전에 열심히 살라는 것주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여러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열려있지 않다. 일하고 싶지만 할수 없는 인생의 밤이 곧 찾아온다.복음주의자들이 기피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이다. 속으로 좋아하면서 겉으로 기피한다.목사가 돈을 너무 잘 헤아리면 은혜가 안된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목사라고 말한다. 서툴러야 신령한 목사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목사도 돈을 좀 알아야 한다. 재정을 좀 알아야 교회가 빚더미에 오르지 않고 파산당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파산당한 교회가 너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정교회이다. 한인 교회들도 많은 교회들이 부채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저는 재정을 잘모른다. 그러나 빚지는 것은 무서워한다. 제가 이 교회 부임했을 때는 페어팩스에 있는 유대인 회당 건물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었다. 약 6개월 후에 교회건축이 시작되었다. 제가 캐나다에서 14년 좀 모자리게 섬겼는데 교회가 3만불 정도를 전별금으로 주어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객원교수로 섬기던 녹스 신학교와 토론토한인장로교회 장학금으로 바치고 저희 나성영락교회에 건축금으로 만불을 바쳤다. 그당시 3만불장도는 지금 3만불보가 큰 돈이 었다. 예를 들어 제가 부임할 때 교회가 3만 몇 천불을 사례및 주택비로 주었다. 그리고 부임한지 1년 반에 교회 건물을 완공하고 입당하였다. 담임목사로 위임받을 때는 350여만 불 의 빚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다 갚고 그동안 바랑카땅, 병공장, 은혜관, 중국사람이 하는 장동차 수리하는 건물과 땅 스타코에 속한 작은 땅을 모두 사들이고 제2교육관을 짓고 기도원을 구입하였다. 그리고도 수백만불 남기고 은퇴했다. 성경에보면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수 없다고 했다. 아주중요한 말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대조해서 언급한 말은 돈밖에 없다. 그만큼 돈의 위력이 크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과 영성 생활을 위해 물질관이 바로 정립 되어야 한다. 요한 웨슬레도 ‘너희 돈주머니가 회개까지 천국에 들어 갈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물질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마찬가지로 우리의 일과 노동, 직업과 사업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한다.여러분! ‘경영이 없는 경건’과 ‘경건이 없는 경영’ 이 둘중에 어느 것이 더 문제가 되고 해가 되며 악이 된다고 생각하는가?좀어려운 말인가? 좀 골치가 아픈 질문이지요? 둘다 꼭같이 해로운것이다. 신앙과 선교를 앞세워도 사업을 잘 못하면 하나님의영광을 가리운다. 또한 사업과 돈을 잘벌어도 남을 착취하고 속여 벌면 잘못된 것이다. 비성경적인 것이다.사업을 잘하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더 잘 섬기고 더 성실히 순종 하는 삶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소명이다.잘못된 직업관과 노동관1) 동서양의 이원론 탓도 있다. 교회에서 하는 것은 다 거룩한 것이고, 세상에서 하는 것은 다 천박하고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인가? 맞는 말 같은데 틀린 말이다. 목사직도 호구지책을 위해 한다면 가장 천한 직이 된다. 그러나 길거리를 청소하는 일도 하나님의 동산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면 가장 거룩한 성직이 되는 것이다.2) 동양의 무속신앙도 한 몫을 했다. 동양의 무속신앙은 신을 LOCALLIZE한다. 예를 들면 산엣가면 산신령이 있고, 바다에 가면 물귀신이 있고, 통시에 가면 통시 귀신이 있다. 그러나 그 장소만 떠나면 그 신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 그곳에서만 그 신이 지배하므로 잘 신을 달래면 된다. 거기만 떠나면 그 신으로부터 해방된다. 이런 무속신앙의 영향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있어서 예배당 안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잘 섬기면 되고, 밖에 나가서는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신자와 꼭같이 행동하게 된다.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불꽃같은 눈으로 항상 우리를 꾀둘어 보시는 하나님이시다.목회가 소명인 것처럼 샌드위치 직업도 소명이다. 목회자는 교회(목회)로 부름 받았고. 직업인은 직장으로 부름받은 것이다. 골3: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교회를 건축하는 곳을 어떤사람이 지나가다가 보고A라는 일꾼에게 왜 당신은 여기서 일하고 있소? 물었더니 죽지못해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자기 일이든지 교회일이든지 죽지못해 일하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B라는 일꾼에게 같은 질문을 던젔더니 그는 돈을 벌기위해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여러분! 일하는 목적이 단순히 돈 벌기위함이라면 그도 행복한 사람은 못된다. 그리고 C라는 일꾼에게 물었더니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기쁨과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바로 소명감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소명감으로 하느냐? 소명감 없이 하느냐가 우리의 하는 일을 하늘과 땅의 차이로 만들어 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서 하는 일은 가룩한 일이고 세상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인 일로 생각한다. 이것은 맞는 말 같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교회서 하는 일도 자기 영광과 자기 유익을 위해 한다면 가장 천하고 세속적인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성경적인 올바른 직업관1) 직업은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섬김을 위한 것이다. 창1: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다스리고 관하였는가? 그러지 못했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연과 생태계를 학대하고 착취했다. 그래서 지구의 온난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세계가 이상기후로 곤욕을 치루며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잘관리하고 다스리라는 문화문령을 우리는 성실히 이행하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복을 받는 길이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수지 맞을려고 그렇게 명령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함인 것이다.2) 직업은 이웃사랑의 길이다 그것으로 생업 이상으로 봉사와 섬김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다. 봉급을 받고 이윤을 남기는 것은 더 오래 섬기고 전문인으로 잘 섬기기 위해서다. 많이 남기는 것은 더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연구비). 우리가 학교와 회사에서 교수나 사원으로 일할 때 총장과 사장과 계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계약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생은 성실히 공부하고 교육받는 것이 가장 우선권이다. 남는 시간에 전도하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공부 안 하고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다. 3) 자원봉사는 거룩하고 돈받는 것은 거룩하지 아니하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자원봉사는 한계가 있다. 돈 받고 해야 책임있게 일하고 잘 섬기게 된다. 유급봉사는 가) 섬김의 질을 높여준다(The quality of service). 문화가 발달한 나라나 사회일수록 섬김의 질이 높다. 서비스 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 사회의 문화수준을 알아보려면 그 사회의 서비스 정신을 보면알수 있는 것이다.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의 문이 열렸을 때 처음 여행 갔을 때 비행기나 호텔에 들어가보면 서비스가 전혀 없었다.나) 섬김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다. 좋은 서비스가 지속되려면 그러한 섬김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댓가가 뒤받침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자기에게 졸은 직업이냐? 그 일을 할 때 우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힘이 생기고 에너지가 넘쳐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좋은 일이다. 그런 일을 통해 자기도 만족하고 성장하며, 결국 사회에 기여하게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게 된다.다) 섬기는 자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물론 우리 일이 돈 버는 것 이상으로 자기만족과 보람을 가져오며, 자기 성장을 줄 뿐 아니라, 사회에 유익이 되고 기여하게 될 때 하나님께도 영광되는 것이다.끝으로 소경의 눈을 떠서 밝은 세상을 바라보게 한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서인가? 주님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셔서 새로운 안목과 통찰력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창의적으로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벨상 하나도 겨우 받았다. 그러나 유대인은 거의 200개나 받았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창의적인 교육과 삶의 훈련을 받으며 살기 때문이다.  
    Read More